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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45-종교간의 갈등

염불선이야기45-종교간의 갈등


오랜 동서의 냉전시대가 가고 21세기에는 세상 갈등의 중심에 종교가 서 있다. 지금도 가끔 뉴스의 1면을 장식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그렇고 미국의 9ㆍ11테러를 정점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또 그렇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최근 문제가 된 ‘봉은사 땅 밟기’를 비롯하여, 부산의 어느 공개 기도회에서는 ‘범어사의 법당이 무너져라’는 기도를 하고, 심한 경우 절에 불을 지르거나 불상을 파손하는 등 그 갈등의 양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종교는 신앙, 즉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매개로 하고 있다. 그런 개인의 종교적 신앙이 개인적 수준에 머물 때는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집단화 되고 그 종교적 신념이 행동으로 표출될 때는 요즘처럼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럼 이런 종교적 갈등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종교적 갈등을 완화 내지는 해소시킬 수 있을까? 우선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간의 문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불교는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우리 중생이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반면, 기독교는 창조주인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신에 대한 온전한 복종과 섬김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처를 이룬다는 목표와, 신에게 구원받아 천당에 간다는 것은 상당히 달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내면적으로는 둘 다 개인의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생의 한계를 벗어나 영원한 행복에 이른 존재가 부처님이고, 신에게 구원받아 가고자 하는 천당은 영원한 행복이 보장된 곳이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님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부처님을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법신불의 개념과 유사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불교에서는 우리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교리는 없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불교의 신앙을 우상숭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불교를 공격해 기독교화 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상은 ‘이 세상의 원리이자 질서이고 생명인 법신불을 인격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히려 그들 마음속의 그릇된 신념과 편견이 우상이고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라는 덕목이 불교의 자비와 다르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개념이 불교의 법신불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해야 불필요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종교 간의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의 간디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난 예수를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조용히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