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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44-세상이 우리를 철들게 한다

염불선이야기44-세상이 우리를 철들게 한다

 

얼마 전 오래전에 인연을 맺었던 신도 한 사람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 10여년만의 만남인지라 그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기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꽤 잘 나가던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사람은 행색이 초라하진 않았지만 옛날의 의기양양하고 거들먹거리는 인상과는 달리 차분하고 정리된 듯한 인상을 내게 주었다. 그 동안에 어떻게 지냈느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그 사람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오던 그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업(家業)을 물려받았고 자신의 책임아래 회사를 운영하다가 결국 부도를 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애지중지하던 맏딸마저 사고로 잃고 술로 여러 해를 보내다가 건강도 많이 상했었다고 한다. 그의 주변에 어울리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오히려 그가 연락하면 여러 가지 핑계로 피하는 세상인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그 후 친척들의 도움으로 조그만 가게를 열어 허드렛일부터 배워 지금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소설 같은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먼저 ‘유복한 집안에서 어려움 모르고 살던 그가 꽤 힘든 시간을 보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과 달리 그 사람의 성숙되고 안정된 모습을 보며 ‘저 사람에게 저런 시련(試鍊)이 없었더라면 지금 저 사람이 보여주는 성숙함과 안정감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음악 가운데에서 명작(名作)으로 이름난 작품들은 대개가 비극을 테마로 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아마도 한 그루의 나무가 풍성한 잎과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야 하듯이, 우리 인간이 시련과 역경을 통해 보다 성숙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과 시련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편 달리 생각하면 고통과 시련이야말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그 신도의 예처럼 부잣집 아들로만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리가 만무하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傲慢)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인데 다행히도 시련과 고통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학교와 비슷하다. 하기 싫은 숙제도 해야 하고 때론 잘못하면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벌도 받듯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가 주는 교훈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영글어가고 성숙해간다. 사람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냥 나이를 먹어 늙어간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여름의 모진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 속에서 과일이 익어가듯 사람도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이 우리를 철들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