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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43-동체대비

염불선이야기43-동체대비


서울을 벗어나 교외로 접어드니 온 산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올해의 단풍은 유난히도 고운 것 같다. 요즘 마곡사가 있는 공주 태화산에 갈 일이 부쩍 많아졌다. 연수국장이라는 소임 때문에 전통불교문화원에 출장이 많아진 때문이다. 상설연수(常設硏修)를 처음 시작할 때의 우려와는 달리 연수에 참석하러 오시는 스님들의 진지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루 6시간 이상 강의가 있다 보니 쉬는 시간마다 커피나 녹차가 스님들의 졸음을 쫓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 보니 하루에도 몇 백 개의 종이컵을 쓰게 되고 쓰레기통에 쌓여가는 종이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무거워만 갔다.


그러던 중 어느 스님이 스테인레스 머그컵을 준비해 연수에 참석하는 스님들께 선물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래서 마련한 머그컵을 들고 다니는 것이 익숙치 않아 불편하다는 스님도 있었지만 환경보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다소의 불편은 감내할만 했다. 일반적으로 환경운동은 사용자인 우리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자연을 이용하고 누리려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전개돼 왔다. 유한(有限)한 자원인 자연을 한꺼번에 써버리고 오염시키면 결국 그 재앙(災殃)이 우리 인간에게 돌아옴으로 우리를 위해 소중하게 관리하고 오랜 세월동안 잘 이용하자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의 환경운동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불성(佛性)이 있으며 나아가 모든 존재를 부처님의 화현(化現)으로 간주한다. 또 현상적인 측면에서의 모든 존재는 마치 대나무 숲의 대나무들처럼 겉으로는 개별적인 존재처럼 인식되지만 땅속에서는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서로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사용자인 우리 인간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자는 입장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해 자연이 파괴되고 훼손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 파괴되고 훼손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요즘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어 산마다 등산객이 넘쳐나 등산객이 많은 산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아마 등산객들이 집에까지 쓰레기를 들고 가기가 귀찮아서 나 혼자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쓰레기를 버렸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산에 쓰레기가 많아지면 우리가 이용해야 하는 산이 오염되기 때문에 산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산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흡사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던 쓰레기를 왼쪽 호주머니에 옮겨 담는 것과 같다고 본다. 쓰레기가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는 것과 왼쪽 호주머니에 있는 것이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상을 어떤 철학, 어떤 가치관으로 인식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은 달라진다. 우리가 세상을 부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자연은 우리인간이 사용하고 누리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로 인식될 것이다. 아마 자기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을 즐길 사람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