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선이야기42-인과(因果)
간혹 절에서 불자들의 신행상담을 하다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은 제법 양심적이고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을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마다 장애(障碍)가 많고 뜻대로 이룰 수 없는데 주변을 보면 부처님 가르침과는 어긋나게 거짓말 잘하고 남에게 모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가 정말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세상을 살펴보면 착하고 남에게 베풀고 양보만 하는 사람이 항상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모진 행동만 하고 자기 권한만 주장하는 사람이 항상 못 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세상의 이런 불합리한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불교의 인생관(人生觀)은 과거의 전생(前生)과 현재의 현생(現生)과 미래의 내생(來生)을 인정한다. 바꿔 말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과거 전생에 지은 업의 과보일 수도 있고 현생의 과거 어느 시점에 지은 업의 과보일 수도 있다. 현생의 과거 어느 시점의 업의 결과로서의 과보라면 우리의 기억력에 의해 어느 정도 인과관계를 추측해 감내(堪耐)할 수 있겠지만, 과거전생의 업에 대한 과보라면 우리는 전생의 일은 기억할 수 없으므로 마냥 억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중국선종의 초조 달마스님은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 거기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보원행(報怨行)과 수연행(隨緣行)이 그것인데, 보원행은 금생에 우리가 고통을 받는 순간이 오거든 이 고통은 과거에 내가 지은바 원인의 대한 결과로서 생각하고 달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 중생은 고통은 싫어하고 행복은 좋아한다. 따라서 설사 자기가 지은바 업에 따른 결과로서 인식되는 고통도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하물며 전생의 일이라 기억할 수도 없어, 내가 지은 업의 원인의 결과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고통이 주어진다면 십중팔구는 싫어하고 고통을 준 인연을 미워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본인이 지은 업에 따른 과보로 인식하여 달게 받아들여, 또다시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켜 악업을 짓는 악순환을 피하라는 소중한 법문인 것이다.
수연행은 우리에게 기쁘거나 영예로운 일이 있더라도 너무 기뻐하거나 우쭐거리지 말고, 이것도 또한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로써 인식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게 달게 받아들이고, 즐겁거나 영예로운 일이 있어도 인과로서 받아들여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는, 득실(得失)에 따라 마음에 증감(增減)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수행일 것이다. 인과에 어긋나지 않는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이렇게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수 있어야 진정한 ‘평삼심(平常心)이 도(道)’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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