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忍辱) 하여야 살 수 있다는 사바세계에 다행히 사람 몸 받고 왔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몸 받고 짐승의 마음으로 그냥 저냥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재물과 이름이 있어도 짐승의 마음으로 산다면 한 생을 가장 저급하게 살다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바세계를 끝없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의 안목으로 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이기에 사람답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부처님공부입니다. 사유(思惟)와 원력(願力)으로 완성된 사람의 모습이 보살(菩薩)이며 부처(佛)입니다.
부처와 보살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다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다겁생의 잘못된 생각으로 드러나지 못할 뿐입니다 중생의 마음 속 깊이 침몰해 있는 불성(佛性)을 드러내는 것이 수행, 부처님 공부입니다.
아득한 옛날 법장비구가 48가지 원을 세우고 다겁생을 수행하여서 아미타불이 되었듯이, 부처님 공부의 첫 걸음은 원(願)을 세우는 일입니다. 아미타불의 48가지 원을 압축한 것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이며 사홍서원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일체중생을 위한 원입니다. 아득한 옛날 법장(法藏)비구가 가던 옛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나의 수행이 나의 삶이 일체중생에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서원(誓願)이 뚜렷할 적에 수행은 탄탄대로(大路)를 가는 것이고 나와 더불어 일체중생이 행복해지는 것이며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장엄하는 일이며 사바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렇듯 먼저 대승(大乘:큰 수례. 피안의 언덕을 더불어 건너감)의 서원을 세우고 방법론(수행법)있어서 자신의 인연과 기질에 따라 염불이면 염불 진언이면 진언 화두면 화두로 공부를 지여가며 거처 또한 저자거리가 될 수도 있고 사무실일 수도 있고 법당일 수도 있고 선방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위한 원(願)이 마음으로 사무쳐 들어가면서 지혜가 드러나는 것이며 자비심․연민심․평등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흔히 부차적인 방법론(수행법)에 목숨을 거는 공부인 들도 있고 원(願)도 또한 이기적(利己的)인 이며 소아적(小我的)인 원(願)이 대부분입니다. 이기적(利己的)․소아적(小我的)․카르스마(권위)․아집(我執) 다 부처님 공부와는 정 반대며 이기적인 원과 소아적인 원을 가지고는 잠간의 행복은 있을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내 마음에 삼독심이 소멸 되여야 진정한 행복이면 더불어 성불하는 것이 너와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공부인 들은 대승의 큰 길을 두고 소승의 소아적인 생각과 이기적 생각으로 가시 밭 길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허공과 같은 마음을 십 원짜리 마음으로 옹졸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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