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육성법문 가운데 사념처 수행이 있습니다. 몸(身)과 느낌(受) 그리고 마음(心)과 법(法)을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이 네 가지를 끊임없이 관찰하여서 바른 지혜를 일으키고 탐(貪)․진(嗔)․치(癡) 삼독의 번뇌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비구여 숲에 들어가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들숨과 날숨을 관(觀)하라” 등 부처님의 육성법문은 늘 관찰하라고 합니다. 또 경전에서의 수행법도 관법(觀法) 즉 관찰입니다. 관찰(觀察)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살펴봄, 알아차림입니다. 절 집에서 흔히 하는 말 조고각하(照顧脚下: 자기의 발밑을 잘 비추어 돌이켜본다는 뜻), 회광반조(廻光返照), 조견(照見), 묵조(黙照)다 관(觀)이라는 범주에 드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화두만 하면 된다” “염불만 하면 된다”라 말하는데 수행의 목적은 탐(貪)․진(嗔)․치(癡) 삼독심을 소멸하고 반야(般若), 지혜(智慧)를 일구는데 있는 것입니다 지혜를 일구는 방법론에서 간경(看經)이다 송주(誦呪)다 화두(話頭)다 염불(念佛)이다 등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는 것입니다
수행했다고 해도 마음이 거칠고 재물과 이름과 색(色)에 헐떡거리면 그것은 반야(般若), 지혜(智慧)가 부족한 쭉쟁이 수행입니다. 반야, 지혜는 관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행을 하던 바르게 하여 탐․진․치 삼독심이 녹으면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수행에 있어서 사유(思惟)하고 관찰(觀察)하고 살펴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진 좀 했다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아가는 수행자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관(觀) 수행을 가장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수행으로 아라한과까지 이룰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 권하시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된다면 내 마음을 볼 수 있는(관찰)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내면 화내는 마음이 보이고 화내는 마음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집착하면 집착하는 마음이 보이고 집착에서 벗어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구업을 지으면 구업 짓는 마음이 보이고 구업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 다겁생의 탐(貪)․진(嗔)․치(癡)를 한 번에는 소멸시키지 못해도 계속 하여 반조(返照)하고 관찰하고 살펴본다면 일어나는 거친 번뇌 망상을 열 번에서 다섯 번으로 줄고 또 나아가 서너 번으로 줄고 결국은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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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선원 겨울식량 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