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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2. 잡아함경

93. 장신경(長身經)

잡아함경 93. 장신경(長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 장신(長身) 바라문이 700마리 황소를 줄지어 기둥에 묶고, 숫물소와 암물소 및 염소 새끼와 온갖 작은 짐승들을 모두 묶고 놓고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크게 보시를 베풀며, 여러 외도들이 여러 나라에서 찾아와 모두 참석하는 그런 사성대회(邪盛大會)8)를 열었다.

 

그 때 장신 바라문은, 사문 구담께서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사성대회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700마리 황소를 줄지어 기둥에 묶어놓고……(내지)……온갖 작은 짐승들까지 다 매어 묶었다. 이 사성대회를 위해 여러 외도들은 여러 나라에서 이 대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이제 사문 구담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 사성(邪盛)의 법을 물으리라. 그래서 내가 이 사성대회를 치르는 데 있어서 그 차림에 모자람이 없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한 뒤, 흰 마차를 타고 여러 젊은 바라문들에게 앞뒤로 호위를 받으면서 황금자루 일산을 들고 황금 물병을 지니고는, 사위성을 나와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공경하고 섬기고자 하였다.

그는 정사(精舍) 문 앞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려 걸었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지금 사성대회를 치르려고 700마리 황소를 줄지어 기둥에 묶어놓았고……(내지)……온갖 작은 짐승들까지 다 매어 묶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성대회를 위해 여러 외도들은 여러 나라에서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또 구담께서 구살라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제 일부러 찾아와 구담께 사성대회의 법과 온갖 물건의 차림새를 여쭙니다. 제가 마련하는 이 사성대회가 모든 차림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성대회 주관자는 보시를 행하여 복을 지으려다가 도리어 죄를 지어 세 가지 칼에 베이고 좋지 못한 과보를 받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의 칼과 입의 칼과 뜻의 칼입니다.

어떤 것이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뜻의 칼인가? 어떤 대회 주관자는 대회를 마련하고는 '나는 이 사성대회를 마련하여 거기서 어린 황소와 숫물소와 암물소, 염소 새끼와 또 여러 가지 짐승들을 죽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뜻의 칼이니, 이런 시주(施主)는 비록 여러 가지 보시와 여러 가지 공양을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입의 칼인가? 어떤 대회 주관자는 대회를 마련하고 '나는 지금 사성대회를 마련한다. 너희들은 거기서 어린 황소를 죽이고 나아가 잔잔한 짐승들까지 죽여라'고 시킵니다. 이것이 이른바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입의 칼이니, 이런 대회 주관자는 비록 그러한 보시와 공양을 행한다 하더라도 사실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몸의 칼인가? 이른바 어떤 대회주관자는 대회를 마련하고 자기 손으로 거기서 황소를 죽이고 나아가 온갖 잔잔한 짐승들까지 죽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온갖 괴로움의 과보를 가져오는 몸의 칼이니, 이런 대회 주관자는 비록 여러 가지 보시와 여러 가지 공양을 하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마땅히 세 가지 불[火]을 부지런히 공양하고 때를 따라 공경하며 예배하고 받들어 섬겨, 그들에게 안락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根本)이요, 둘째는 가족[居家]이며, 셋째는 복밭[福田]입니다.

어떤 것이 때를 따라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여 그에게 안락을 주어야 할 근본이라는 불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방편으로 재물을 얻고 손발을 부지런히 써서 법답게 얻은 것으로 부모를 공양하여 안락을 얻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근본이라는 불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근본이라 하는가? 선남자는 그들 즉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근본이라 합니다. 선남자는 근본을 숭상하기 때문에 때를 따라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여 안락을 드려야 합니다.

 

어떤 것이 선남자가 때를 따라 양육하고 안락을 주어야 할 가족이라는 불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방편으로 재물을 얻고 손발을 부지런히 써서 법답게 얻은 것으로써 처자·친척·권속·종·품꾼들을 이바지하고 때를 따라 공급하며 공경하여 안락을 얻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가족이라는 불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가족이라 하는가? 선남자는 가족과 살면서 즐거우면 같이 즐거워하고, 괴로우면 같이 괴로워하며, 일을 할 때에는 다 서로 순종하므로 가족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선남자는 때를 따라 이바지하고 안락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선남자가 때를 따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여 그에게 안락을 주어야 할 복밭이라는 불인가? 이른바 선남자는 방편으로 재물을 얻고 손과 발을 부지런히 써서 법답게 얻은 것으로써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능히 다스리는 모든 사문 바라문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해야 하나니, 이런 사문 바라문은 복밭을 이루어 그들을 높아지게 하고, 더욱 나아가게 하며, 자기 몫을 즐기고 그 과보를 즐기다가 미래에는 하늘에 태어나게 하나니, 이것이 복밭이라는 불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밭이라 하는가? 이른바 응공(應供)은 세상의 복밭이 되기 때문에 밭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선남자는 때를 따라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여 그에게 안락을 드려야 합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근본과 가정

응공은 복밭이라는 불

이런 불에 열심히 공양하고

충족시켜 편안하고 즐겁게 하며

지은 죄 없이 세상을 즐기는

지혜로운 사람, 하늘에 태어나리.

 

법다운 재물로 또 대회를 열어

공양할 만한 이를 공양한다면

공양할 만한 이를 공양한 까닭에

하늘에 태어나고 큰 명성 얻으리라.

 

그런데 바라문이여, 이제 선남자는 공양할 세 가지 불에 앞서 마땅히 세 가지 불을 끊어 없애야 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이라는 불과 성냄이라는 불과 어리석음이라는 불입니다. 이것들은 왜 끊어야 하는가? 만일 탐욕이라는 불을 끊어 없애지 않으면 자기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자기와 남을 함께 해치고, 현세에서 죄를 짓고 후세에서 죄를 지으며, 현세와 후세에서 다 죄를 지어 그 때문에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냄이라는 불과 어리석음이라는 불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만일 선남자가 나무를 쌓아 피운 불을 섬겨 때맞추어 고생하고 때맞추어 불태우며 때맞추어 불을 끈다면 그로 말미암아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 때 장신 바라문은 잠자코 있었다. 이 때 그 자리에 울다라(鬱多羅)라는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다. 장신 바라문은 잠시 잠자코 생각한 뒤에 울다라에게 말하였다.

"네가 저 사성대회 장소로 가서 기둥에 묶어두었던 황소와 묶여 있는 모든 중생들을 모두 놓아주겠는가? 그리고 또 그들에게 '장신 바라문은 너희들에게, 마음대로 자유로이 산이나 늪이나 들에서 마음껏 풀을 뜯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사방의 바람을 쐬면서 온갖 쾌락을 누리라고 말하였다'고 하라."

울다라는 아뢰었다.

"스승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곧 사성대회 장소로 가서 모든 중생들을 놓아주면서 말하였다.

"장신 바라문께서 너희들에게 '너희들 좋을 대로 산이나 늪이나 들로 가서 물도 마시고 풀도 뜯으며 사방의 바람을 쐬면서 스스로 즐기거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울다라가 그렇게 한 것을 아시고 이내 장신 바라문을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시어 가르치고 기뻐하게 하셨다.

이른바 율과 세존의 설법순서에 따라 계를 말씀하시고 보시, 하늘에 태어나는 공덕, 애욕에 맛들임, 재앙, 벗어나는 길의 청정함, 번뇌를 청정하게 할 것을 말씀하시어 열어 보이고 나타내셨다. 장신 바라문은 마치 깨끗하고 흰 천이 물감을 쉽게 받아들이듯이, 곧 그 자리에서 네 가지 진리를 보고,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을 얻게 되었다.

 

이 때 장신 바라문은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에 들어가, 모든 의혹을 건너고 남의 구원을 받지 않으며 바른 법 안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미 제도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를 인정하여 주소서. 그리고 세존이시여, 여러 대중들과 함께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그러자 장신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자기 청을 받아 주신 것을 알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물러갔다.

 

장신 바라문은 사성대회 장소로 돌아가 깨끗하고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상을 차리고는 사람을 보내 부처님께 아뢰었다.

"때가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때를 아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장신 바라문의 대회 장소로 가 대중 앞에 앉으셨다. 장신 바라문은 세존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자기 손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렸다. 공양이 끝나자 손 씻을 물을 돌리고 발우를 씻은 뒤에 따로 낮은 평상을 펴고 대중 앞에 단정히 앉아 법을 들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장신 바라문을 위해 여러 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치고 기쁘게 하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