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천지 우주에는 근원적으로 광명이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무슨 광명인가? 부처님의 지혜 광명,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부처님 법을 진지하게 공부를 하실 때는, 공부의 정도에 따라서 거기에 비례한 영원한 생명의 본체에 있는 광명을, 우리도 체험을 하고, 보기도 하고, 음미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진 만큼 광명은 더욱 더 빛나는 것입니다. 정말 온전히 깨달아 확철 대오廓徹大悟하면, 그때는 천지 우주가 다 광명 세계로 화化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가 완전한 경계까지는 미처 못간다 하더라도, “천우만다화天雨曼陀華요, 천고자연명天鼓自然鳴이라! 하늘에서는 광명의 꽃비가 내리고, 하늘의 북소리는 자연히 울리도다.” 하는 그런 법문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런 영원한 묘음妙音들이, 우주에는 항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맑으면 맑을수록, 그런 소리도 더욱더 기묘하게 맑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인간의 재미는, 서로 좋은 사람끼리 만나고, 또는 음식이나 잘 먹고 옷이나 잘 입고, 또는 지위가 높고, 이런 것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사실은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에 불과합니다.
이런 것은 우리 행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분명히 알으셔야 합니다. 이런 것은 죽음의 길인 것이지, 참다운 영생의 길은 절대로 못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영생의 행복,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생고를 떠나는 그 자리, 그 자리를 가려고 생각할 때는 “제법諸法이 공空이요.”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이요” 하는 자리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야 사상, 반야 지혜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영생 해탈’의 자리에는 못 갑니다.
내가 분명히 빈 것인데, 너라는 것도 분명히 빈 것인데, 나라는 상相, 너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또는 시간이 짧다, 길다 하는 상, 이른바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이런 상이 있는 한에는, 절대로 영생 행복의 극락이나 영생 행복의 해탈은 맛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해탈의 길, 곧 죽음을 면하는 길은, 어떠한 길도 현상적인 내 몸에 집착하고, 또는 자기가 느끼는 그런 상대 유한적인 사고에 집착하고, 모양에 집착하고 권리에 집착하고 재물에 집착하는 한, 갈 수가 없습니다.
모양에 집착하는, 이른바 상에 집착하는 한에는, 절대로 우리 인생의 참다운 행복은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예수의 가르침도 또는 마호멧의 가르침도 이런 가르침입니다. 성자의 가르침은 모두 영생 해탈의 길, 진리의 길, 영원히 죽지 않는 길로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상을 떠나야 영생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은 영생 불멸한 상락아정을 올바르게 느껴야 부처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셨다 하더라도, 부처님은 절대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본래면목 자리, 본래 참다운 진여불성 자리에서 볼 때는, 석가모니가 오신 흔적도 없고, 석가모니가 가신 흔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역시 똑같이 본 바탕에서 볼 때는, 가지 않고 오지 않고, 낳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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