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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0

 

70. 해탈 성불의 길은 지혜 해탈과 선정 해탈을 갖추어야 하는데, 오늘날 불교계나 세계 종교 일반에 있어서 가장 결핍된 분야가 선정 해탈입니다. 불교의 원통 무애한 반야 지혜와 아울러 선정 해탈에 대하여 각별히 유념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무량 광명의 은혜 가운데 성불제중成佛濟衆의 서원을 한껏 다짐하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불교 가르침에서 구분해야 할 것은, 해석한다는 ‘풀 해解’자와 ‘깨달을 오悟’라 하는 해오解悟 단계의 법문과, 또는 우리 몸으로 마음으로 이 가르침을 증명한다 하는 증오證悟의 법문입니다. 우리 마음도 바꿔지고 우리 생리도 바꿔져서, 오염된 자기가 전환되어 청정무비淸淨無比한 참다운 자기로 정화되어 버리는 단계가 아니면,  “부처님의 법을 증명한다” 또는 “우리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증명한다” 하는 증오證悟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승열반 자리는, 몸이 사라지고 또는 우리가 사고하는 의식 활동도 사라진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영생불멸의 자리입니다. 생사가 없는 도리입니다. 우리 중생의 안목에서는 분명히 내가 있고 너도 있고 또는 죽음도 있지마는, ‘대승열반의 경계’에서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공부할 때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굴심自屈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굴심은 ‘자기 비하심’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든가, 석가모니는 성불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못된다든가 하는 자굴심을 여의지 못하면, 이것은 참다운 불교 신앙이 못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달마 대사, 그리고 내가 갖추고 있는 생명 자체는 조금의 흠도 차이도 없습니다. 아난 존자도 이러한 가르침 정도는 아셨을 것이며, 여기 계시는 사부 대중, 우리 불자님도 충분히 아실 것입니다. 화엄경․법화경․능엄경․열반경 등을 읽으셔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구나”하는 법문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경계에 부딪치며는, “아!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알 것인가?” 이렇게 자굴심을 품는단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업장이 아직 정화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 텃밭에 상추가 제법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