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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69

 

 

69. 우리는 나와 더불어 남도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뿌리나 그대 뿌리나, 동양사람 뿌리나 서양사람 뿌리나, 모두 다 하나의 생명에서 보아야 한단 말입니다.


철학적인 용어로 이른바 유출설流出說(eman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대 모든 철학에서 말씀한 것이고, 힌두교나 다른 세계적인 종교도 대체로 그와 유사한 말씀을 했습니다. 흐를 류流자 날 출出자 유출인데, 그 뜻은 우주의 모든 존재와 생명이 우주의 본질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말입니다. 마치 바위 틈새에서 물이 솟아 흘러나오듯이, 우주의 본래 생명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부터 모든 종교가 이루어진다 이 말입니다. 어느 위대한 철인도 유출설을 부인하는 분을 별로 없습니다. 


불교의 우주관은 맨 처음도 끝도 없이 항시 영겁으로 순환합니다. 모두가 다 파괴되고 텅텅 비어서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세계, 즉 공겁空劫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형상만 없는 것이지, 생명은 그 가운데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 생명의 작용으로 해서, 다시 우주가 차근차근 형성되어 나옵니다. 이게 아까 말한 유출流出입니다. 샘물 솟듯이, 태양계가 나오고 금성 토성 지구가 나옵니다. 어떠한 존재나 근본 진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종말에는 다시 모두 진리로 돌아갑니다.


종교는 우주의 근본 진리와 항시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기본 철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 모든 정보․종교․학문 체계가 얽히고 설켜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정말로 진리를 소중히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의 번뇌를 녹여서 마음의 병자가 안 되기 위해서라도, 꼭 진리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갈등이 무명 무지에서 오는데, 무지에 대한 상식이 없으면 다른 것이 해결이 안 됩니다. 그냥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항시 불안합니다.


우주의 목적의식은 근본 서원 그럽니다. 원래 우주는 생명 자체입니다. 우리는 자칫 산이나 냇물이나 산 위에 있는 절이나, 이런 것은 생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간 정도의 업장을 가진 중생들이 가진 견해이지, 진리의 견해가 못됩니다.


진리는 우리 인간적인 견해, 탐욕심과 분노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 이런 독스러운 마음이 가셔 버린 성자의 경지에서만 참다운 진리가 보입니다. 이것을 견성오도見性悟道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견성’은 우주의 본래 성품을 본다는 뜻이고, ‘오도’는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불교 말로 참된 사람, 진인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임제 선사가 무위 진인無位眞人이라고 했는데, 무위 진인은 모양이나 이름에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배에 걸리고 무슨 감투에 걸리고 재산에 걸리면, 참다운 진인이 못됩니다.


불교의 목적은 무위 진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금생에 재산 많이 모으고 감투가 올라가는 것으로 인간의 목적을 생각하면, 정말로 안타까운 속물입니다. 소중한 자기 생명을 갖고서 속물에 바쳐서 일생을 마치면 되겠습니까? 불자님들, 목전에 가족들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고 설켜서 먹고 살기도 어렵고, 정말로 고난에 처해 있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겠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문제까지도 근본적인 해결은 꼭 진리와 더불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이 빨라지고, 또 어느 고민에도 우리 마음이 불안하지 않습니다.


유출설은 철학자로 플라톤이 맨 처음에 제창했습니다. 물론 더 앞선 분들이 다 알고는 있었지만, 한 체계를 세운 것은 플라톤입니다. 우주는 모두가 하나의 진리에서 왔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두가 그 역으로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테오리아(theoria)라는 말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한 체계를 세웠습니다. 우주는 인간이 좋다고 생각하고 궂다고 생각하고, 남을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고 욕심도 내고 하지만, 그런 것도 인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런 모든 시행 착오를 거쳐서 드디어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주는 하나의 생명에서 왔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생명으로 귀로歸路합니다. 즉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내 아내나 내 남편이나 내 자식이나, 모두가 다 실은 빠르고 더디고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가 다 근본 고향 자리, 진리로 돌아갑니다. 진리에서 왔으니 다른 데로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빨리 근본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본래로 부처이지만, 우리 마음은 지금 여러 가지 못된 생각도 하고, 또 금생에 태어나서 진리에 맞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가 뭣인지 모르고 생활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성은 진리 그대로인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우리 마음은 시간성이나 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해서 더렵혀지지 않고 오염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나쁜 생각이 형체 없이 그림자같이 좀 머물다가 나중에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 우리의 그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킬 수가 없습니다. 극악 무도한 사람도 마음 본성은 청정 무구한 불심과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본래로 부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