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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67

 

 

 

67.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佛心)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佛語)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과 교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 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입니다.

일체 만유의 근본 자성이 아미타불이요, 극락세계 역시 같은 자성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되면 그에 상응한 삼계三界(욕계․색계․무색계)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에 윤회하는 고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극락세계의 청정한 행복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를 염원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명호(이름)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진여 자성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우열이 없으니, 염불과 선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定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과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 (諸佛如來是法界身, 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 是心作佛, 是心是佛.)


저명한 선사들로서 선정일치禪定一致를 주장한 분들의 법문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염불의 공덕이 성취되면, 언제 어느 곳에나 아미타불의 참 몸이 앞에 나타나며, 임종시에는 구품九品 연화대에 영접되어 그 상품上品으로 왕생한다. (念佛功極, 於日日時時一切處, 阿彌陀佛眞體冥現其前. 臨命終時, 迎入九品蓮臺上品往生.)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1158-1210), 고려 스님, <念佛要門>


아미타불의 청정 미묘한 법신이 두루 모든 중생의 마음에 계시므로,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이 본래 차별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곧 마음이다. 아미타불의 명호(이름)를 끊임없이 분명히 생각하고 외울지니, 힘써 정진하여 그 공덕이 성취되면, 홀연히 분별이 끊어지고 아미타불의 참 몸이 뚜렷이 나투신다.

(阿彌陀佛淨妙法身, 遍在一切衆生心地. 故云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亦云心卽佛, 佛卽心...阿彌陀佛名, 心心相續, 念念不昧...久久成功, 則忽爾之間, 心念斷絶, 阿彌陀佛眞體貞爾現前) 태고보우太古普愚스님(1310-1382), :고려스님, <太古庵歌>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분명히 불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그 한 생각 한 소리에 능히 팔십억 겁 동안 생사윤회의 죄업을 소멸함과 동시에, 팔십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

(心則緣佛境界憶持不忘, 口則稱名佛號分明不亂. 如是心口相應一念一聲, 則能滅八十億劫生死之罪, 成就八十億劫殊勝功德.) ③청허휴정淸虛休靜 스님(1520-1604):별호는 서산西山, 조선 스님, 『淸虛堂集』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 극락 가리라.

(一句彌陀無別念, 不勞彈指到西方.) 육조혜능六祖慧能 스님 (638-713) , <禪淨雙修集要>


선정과 정토가 같이 있으면,

마치 뿔 난 호랑이 같이

이승에는 남의 스승이 되고

다음 생엔 부처와 조사가 되리.


선정이 없고 정토만 있어도

만萬 사람 닦아서 만 사람 가니

다만 아미타불만 뵈옵게 되면

깨닫지 못할 걱정 어찌 있을까?


선정만 있고 정토 없으면

열 사람에 아홉이 미끄러지고

중음中陰 경계가 나투게 되면

별안간 그를 따라가고 말으리.


선정과 정토가 모두 없으면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의 지옥

일만 겁과 일천 생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도 없네.


有禪有淨土 猶如戴角虎

現世爲人師 來生作佛祖


無禪有淨土 萬修萬人去

但得見彌陀 何愁不開悟


有禪無淨土 十人九蹉路

陰境若現前 瞥爾隨他去


無禪無淨土 鐵床竝銅柱

萬劫與千生  沒箇人依怙


영명연수永明延壽스님 (904-975)


 염불과 참선이 같지 않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참선이란 다만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 함이요, 염불은 자기 성품이 미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淨土임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그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면, 현세나 다음 생에 반드시 부처님을 뵈오리라” 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부처님을 뵈옴이, 어찌 참선을 하여 도를 깨닫는 것과 다름이 있을 것인가?

아미타불 넉자를 화두 삼아, 자나 깨나 분명히 들어 쉬지 않고 한 생각의 분별도 나지 않는 데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오르리라.

(有自疑念佛與參禪不同. 不知參禪, 只圖識心見性, 念佛者, 悟自性彌陀唯心淨土, 豈有二理? 經云: ‘憶佛念佛, 現前當來, 必定見佛.’ 旣曰 ‘現前見佛’ 則與參禪悟道, 有何異哉? 但將阿彌陀佛四字, 做箇話頭, 二六時中, 直下提撕, 至於一念不生, 不沙階梯, 徑超佛地.) 천여유칙天如惟則스님(1300년경),  <天如則禪師普說>


* 유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