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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부처님공부

부처님공부


저는 스님이라는 전문직 외에 원예사라는 전문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출가전의 업이 원예업이라, 이 두 가지 전문직을 잘 활용하고 사는데  어디에서 사나 객승으로 잠시를 살아도 도량에 꽃나무 심고 텃밭 일구고 염불하며 정진하고 지네면 도량도 윤택해지고 마음도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태안사시절 능소화를 심었는데 언제인가 잡지를 보니 태안사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 기사를 보고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  

  

경험적으로 살펴보면 식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법신)의 원리는 똑 같습니다. 인연과 업(보신)에 의해서 보이는 모습(화신)이 다를 뿐입니다.

율장에 보면 과분한 공양을 받은 사미승이 그 과보로 공양 받은 집 정원에 버섯으로 몇 번을 태어나 빚은 갚았다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연과 업에 따라 식물의 몸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처사시절에는 노심초사 ‘어떠하면 꽃을 잘 기를까’ 이였고 지금은 ‘어떠하면 도(道)을 이룰까’입니다. 그러나 작물(作物)의 우열은 종자(種子:운명론)이고 다음이 관리(인연․노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15센티 자라는 당근 씨앗이 있고 3십 센티 자라는 당근 씨앗이 있습니다. 15센티 자라는 씨앗을 심고 최적의 환경(노력)을 조성해주어도 30센티로는 자랄 수가 없고 30센티 자라는 씨앗을 심고 대충관리해도 20센티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15센티 자라는 당근의 씨앗을 심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면 얼마나 증감 할 수 있을까? 정확한 과학적 통계는 없지만 대충 경험적으로 20-30% 증감, 20센티 정도는 자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제가 꽃 농사지을 적에 같은 종묘회사에서 같은 씨앗을 사서 길러서 서초동 꽃시장에 나가면 다들 우리 집 꽃만 쳐다보며 감탄하는 말이 ‘저 집 꽃은 종자가 다른가?’ 합니다. 왜냐하면 꽃 상품의 질이 차이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자의 꽃이라도 관리에 따라 2-30%의 상품질의 편차는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대세도 운명론입니다 소위 역학(易學)이라는 것이 운명론(運命論)에 바탕을 둔 이론입니다. 운명은 이미 정해지였고 태여난 시(時)라든가 생긴 얼굴 모양이라든가 손에 금을 보고 인생의 흉(凶)과 길(吉)의 시간표를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운명(運命)개조론(改造論)입니다 수행(修行)을 통하여 업을 녹이고(운명을 개조) 더 나아가 성불(成佛)한 다는 것이고 누구나 성불 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행하여서 성취하는 것도 경험적으로 볼 적에는 종자(운명론) 즉 선근(善根)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다음이 정진(노력)입니다. 수행도 이미 선근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 글에도 알고 태어난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배워도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사바세계에서 소위 명인(名人)․달인(達人)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노력도 했지만 이미 알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가 금생에 수행(노력)을 통하여 얼마나 운명을 바꾸고(마음을 바꾸고, 업을 녹이고) 더 나아가 성불 할 수 있을까? 식물로 기준 한다면 2-3십% 을 교정 할 수 있는 논리인데,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작물은 주인장 잘 만나면 2-30% 성장 할 수 있는데 사람은 ?.?.?. 현재의 주변인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결국은 대부분이 ‘업 되로 살다가 간다.’가 현실적 입니다. 유명한 호킨스박사(호킨스박사의 저술은 한번 읽어볼만합니다)의 지론에 의하면 5%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합니다.


우리가 업을 녹이고 생각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신을 수 없는 채찍질하면서 삶을 역류(逆流)하여서 올라가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신도나 스님네들이 “놔두소! 업대로 살겠소!”하는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업보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눈물이 나지만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한생에 업을 5% 바꾸던 30%를 바꾸던 이것은 점점 닦아나가는 것은 돈오점수(頓悟漸修)입니다 그러기에 경전에서는 많은 수행 단계(위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돌연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5센티 자라는 당근씨앗이 10만개에 하나 백만 개에 하나가 돌연변이로 30센티를 자란다는 것입니다. 육종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 돌연변이입니다 품종개량은 다 이런 돌연변이를 연구하여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돌연변이는 절집 말로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이며, 일초직입여래지(一超入直如來地:인간은 출생하면서부터 이미 부처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수행자가 바로 절대의 경지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라니 한 독에 보살초지(初地)에서 8지(地)로 뛰어올랐다! 숨 넘어 갈 적에 ‘나무아미타불’ 열 번만해도 업이 다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논리입니다.  


큰 절에 살적에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A.스님이 있었습니다. 짐작하건데 어릴 적에 박복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식물도 어린 묘에서 잘 기르면 무탈(無頉)로 잘 자라며 사람도 어릴 적에 박복한 삶이 평생 정신적 장애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질 더러운? A.스님이 지대방에 들어오면 안에 있는 스님네들이 다들 나가고 도서관에 들어가면 도서관에 있던 스님네들이 다 들 나가는 것입니다 A.스님이 있으면 항상 시비가 벌어지고, 잘못하면 싸우게 되니 다들 피하는 것입니다. 소위 왕따인데 이 스님이 갈 곳은 법당밖에 없습니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법당에 신발 들고  들어가(누구인줄 모르게) 부처님 뒤, 불단 밑 공간에서 뭘 하는 것입니다.


 

법당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다’‘다’‘다’‘다’ 뿐인데 짐작으로만 A스님이 ‘다라니하는 구먼’ 생각하며, 마음이 짠 합니다. 제가 큰 절에서 나올 때 까지도 다들 A스님을 싫어했습니다. 그 후에 큰 절에 갔더니 A스님이 대중 스님네들의 찬탄을 한 몸에 받고 살다가 떠났다는 것입니다.

A스님이 점심 공양 후 매일 큰 법당에 들어가 금강경․관세음보살보문품․보현행원품을 독송하는데(그 때도 법당 뒤 불단 밑 공간에서) 법당에 참배하던 신도님이 독송소리에 감복을 해서 법당보살님에게 저 스님누비해주라고(옷을 항상 남루하게 입었어요) 보시 받은 것이 누비10벌 값이였고  10벌을 누비 없는 스님에게 회향했다고 하는 데 그 뿐이 아니고 사람이 완전히 변하여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는 것입니다.


천(千)에 하나 만(萬)에 하나라서 그렇지 노력하면 돌연변이로도 업을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이 녹았다 운명이 바뀌었다 깨달았다 하면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 아 - 업을 녹이는 데는 인고(忍苦)의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넘기면 극락세계가 펼쳐지는데 다들 인고의 세월을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 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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