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불교법문 가운데서 구사론(俱舍論)같은 것은 불교의 우주론입니다. 우주론을 그 속에다 하나의 논장으로 체계화 시켜 놓은 것이지요. 한데 그런 것이 원래 다 있어 왔다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는 다는 있지 못하고 그 뒤에 모두 부처님 법문을 주석도 하고 하는 가운데서 우주론적으로 체계가 된 것인데 그렇게 이 체계가 사뭇 한 2천년 3천년 동안 흘러 왔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에 관해서 누가 어떻게 체계도 세우지 못하고 해석도 해부도 못했다 말입니다. 이런 것을 현대물리학과 불교의 우주론을 대비 시키신 분이 바로 금타(金陀)스님이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점만 그 한 가지만 보더라도 굉장히 위대하신분이라고 생각 안 되겠습니까?
『우주(宇宙)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 이것을 학계에다가 내 놓고 그야말로 제대로 검증을 받은 바는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양반이 39세에 도(道)를 통했어요. 통해서 이 분이 갓 50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30대부터는 사회에 전혀 안 나왔다 말입니다. 전혀 안 나오고 또 그때는 불교에서 우주론 같은 걸 들먹이면 아니꼽다 해서 여러 가지 노장스님들이 비방한 셈이고 이른바 우주문제라든가 수학적인 문제라든가 그런 문제가 나오면 외도(外道)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머리말을 쓴 금타(金陀)스님 천문학의 서문입니다. 「금타(金陀)화상(和尙)께서 저술한 바 미증유한 파천황(破天荒)의 우주론은 단순한 사변적(思辨的) 소산(所産)이 아닐 뿐만 아니라 경험 과학적 시도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 순수 직관적(直觀的)인 현묘(玄妙)한 선정(禪定)을 통한 통찰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있어 현행 천문학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도리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천문학 또한 아직도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니 설사 금타(金陀)화상(和尙)의 천문설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너무나 거창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어느 뉘라서 감히 부정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한 화상(和尙)의 우주론은 어디까지나 불설(佛說)에 그 근저(根柢)를 두었으며 불교 우주관인 삼천대천세계 곧 10억 우주에 관(關)한 초유(初有)의 체계화임을 감안 할 때 참으로 귀중한 불교 문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특히 불교인으로서는 불교 우주관에 관한 깊은 고려 없이 다만 일지(一知)반해(半解)한 천문(天文)상식(常識)만으로 천박한 비판을 함부로 한다면 도리어 방불(謗佛)훼법(毁法)의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훼손하는〉허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화상(和尙)의 우주론이 저으기 난해(難解)한 것은 천문학 본래의 성격상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본 저술이 구체적인 주해(註解)가 없는 원리만의 논술(論述)이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니 모름지기 진지한 구도인의 자세로 숙독(熟讀)음미(吟味) 한다면 반드시 귀중한 조도(助道)의 자량(資糧)이 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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