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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이름입니다.24

24. 천지우주가 일미평등一味平等입니다. 모두가 다 무차별하게 부처 뿐이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의 사상대로 생각하는 것이고, 또 우리의 불안의식을 온전히 없애는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우리 중생의 최상의 행복을 위한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할 때는, 본바탕은 정말로 부처라고 생각할지라도, 인간생활은 역시 업장 많은 생활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많습니다. 제 아무리 자기가 옳게 생활한다 하더라도, 옆에서 미혹 중생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불공정하고 무서운 산업사회 아닙니까?


어려운 세계에 휘말리지 않고, 7년 동안이나 옥중에서 끝끝내 자기 신념을 바꾸지 않고 불에 타서 죽은 이탈리아 수사修士 부르노 같이, 우리가 부처님만 믿는 굳건한 신앙심만 있다면, 그것 자체가 어디 있으나 바로 그것이 최상의 사회적인 봉사가 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봉사는 물질로 남한테 베풀고, 어려운 데 가서 같이 도와주고 일해 주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은 남들이 해 주는 것을 다 먹고 쓰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봉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중생들한테 신세만 끼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은 끝도 없는 바닷물같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우주 에너지가 어떻게 진동하고 운동하는가에 따라서 전자가 생기고, 결합에 따라 물질이 생기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명 자체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항시 그대로 영원히 존재합니다.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생명자체, 에너지의 실제 자체는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중 선방에서 가만히 눈감고 참선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정화시키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주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산에서 공부하면 사회봉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깨달음과 사회봉사는 둘이 아닙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자리를 깨달아 버리면, 그때는 집에 있으나 산중에 있으나 어디에 있으나, 결국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것입니다.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는 청화큰스님의 간추린 법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