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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나무아미타불

문수보살을 만나고도 알지 못하다

 문수보살을 만나고도 알지 못하다


 중국 당나라 때 법순(557~640) 화상은 유명한 재상 두여회(杜如晦)의 일가다. 그래서 그를 두순(杜順)화상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젊어서부터 수나라 문제(文帝)의 존경을 받아 매월 황실에서 나오는 보시를 모두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법순화상은 법력이 매우 뛰어나 병든 사람을 앞에 앉히고 마주 보면 잠깐 사이에 병이 쾌차하고, 귀먹은 사람도 화상이 불러 놓고 말하면 귀가 뚫리고, 벙어리도 화상이 가서 말을 건네면 말을 하였다. 미친 사람도 화상을 마주하면 잠깐 동안에 정신을 회복하여 고맙다고 인사하고 물러가곤 하였다.

 한번은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함께 가던 시자가 겁이 나서 건너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상이 함께 데리고 건너가자 강물은 멈춘 채 흐르지 않았다. 그 신기함이 이러하였으나 화상은 보통으로 여겼다.

 화상은 화엄경의 뜻을 잘 알아서 임금이 존경하였고, 대궐에 들어가 설법할 적에도 황후를 비롯한 대신들은 물론 후궁들도 모두 존경하여 받들었다.

 하루는 당나라 태종이 화상에게 물었다.

 “내가 항상 더위를 타는데 화상께서 신통력으로 고쳐줄 수 없습니까?”

 화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성덕(聖德)이 지극하시고 또 나라를 잘 다스리시니 작은 병은 근심할 것 없나이다. 다만 옥에 갇힌 죄인들을 사면시켜 주시면 자연히 병이 나을 것입니다.”

 법순화상의 말대로 하자 병이 나았다. 그래서 태종은 더욱 스님을 존경하였다.

 화상은 일찍이 ‘법계관문(法界觀門)’이라는 책을 지어 화엄경을 풀이하였고, 그 제자 지엄존자가 화상의 학설을 계승하였다.

 하루는 화상의 제자 지충(智沖)이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오대산에 갈 때에, 화상이 편지를 써 주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게 되면 즉시 그 자리에서 이 편지를 뜯어 보거라.” 하였다.

 지충이 오대산에 들어가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로 두루 다니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에서 노인 한 분을 만났다.

 노인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고달픈 줄도 모르고 애써 다니는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어딜 가면 뵐 수 있겠습니까?”

 “문수보살님은 지금 장안에서 중생을 교화하느라고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소. 그러니 여기엔 안 계시오.”

 “소승은 장안에 가서라도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어느 분이 문수보살입니까?”

 “화엄경을 강설하시는 법순화상이 문수보살이니라.”

 지충이 깜짝 놀라 발걸음을 돌리는 사이에 노인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편지를 뜯어보니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었다.


 나그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대산 비탈길을 얼마나 헤매는가

 문수보살 여기 있는데

 미타(彌陀)에게 물어 무엇하리오.


 지충이 황급히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화상은 이미 열반한 뒤였다. 때는 서기 640년(貞觀 14년)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