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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나무아미타불

관음보살의 화신인 보덕각시를 사랑한 회정대사

 관음보살의 화신인 보덕각시를 사랑한 회정대사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송라암(松羅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이 곳은 관음기도도량으로서 당시 나이 30을 넘을까 말까 하는 회정대사(懷征大師)가 3년을 기약하고 관음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회정스님은 본래 신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그런데 새삼 이렇게 천 일을 기약하고 일심으로 관음기도를 하고 있는 이유는 꼭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싶어서였다.


 회정대사는 천수경 대비주를 30만 번이나 외우면서 천일기도를 시작한 지 어언 3년, 이제 회향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는 날 새벽에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흰 옷을 입은 점잖은 부인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한다면 지금 바로 강원도 양구 방산면에 있는 해명골[海明谷]로 가서 몰골노인[沒骨翁]과 해명방(海明方)을 찾아뵙거라. 그러면 관음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깨고 보니 꿈이었다. 그 부인의 말을 꼭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천 일 동안이나 기도를 하여 얻은 꿈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회정스님은 바랑을 걸머지고 양구로 갔다. 그러나 그 넓은 천지에 해명골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 수소문한 끝에 겨우 대충 알아낸 회정대사는 마을 어귀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 해명골로 가자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해명골은 무주구천동처럼 깊은 골짜기입니다. 그 곳은 신선들만 사는 골짜기인데 대사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곳까지 가시려고 합니까?”

 “그야 사람에 따라서 볼일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저는 중의 몸이니 깊숙한 골짜기에 들어가 도나 깨쳐볼까 합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떻게 그 무인지경에서 살려고 하십니까?”

 “중이란 본디 풀뿌리나 나무 열매로 양식을 삼고, 송락(松落)과 초의(草衣)로써 의복을 대신하며,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지저귀는 산새로 벗을 삼는 생활인데 걱정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과연 도승다운 말씀이오. 그렇게 작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면 두려울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이 골짜기로 끝없이 들어가면 해명골이 나온다고 하니 그리 알고 걸어가 보시오.”

 회정대사는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 몸인지라 그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어서 계속 들어갔다. 좌우로 낙락장송이 들어서 있고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계곡이 굽이굽이 감돌고 있어서 들어갈수록 경치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한참 동안 올라가니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노인 한 분이 관솔불(송진이 배어 있는 소나무)을 피워 놓고 부엌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소승 문안드립니다. 혹시 여기가 몰골노인께서 사시는 집입니까?”

 “어디서 오시는 스님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깊은 산속을 이렇게 저물게 찾아왔소. 그리고 내 이름은 어디서 들었소?”

 “소승은 금강산 송라암에 있는 중이온데,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천일기도를 하였는데 마치던 날 꿈에 어떤 부인이 나타나 관음진신을 친견하려거든 양구 해명골로 가서 몰골노인과 해명방을 만나 뵈어야 한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나는 대사가 보다시피 산간벽지에 사는 늙은이오. 나를 찾아 무엇 하겠소.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늙은이오.”

 “소승이 천일기도를 하고 꾼 꿈입니다. 소승에게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거 참 난감하게 매달리는구려. 그래 그 여인이 관음보살을 친견하려면 나와 해명방을 찾아가 보라고 하더란 말이지. 그 여인이 알기는 뭘 아는 것이 있는가 보구려. 하여튼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을 테니 우선 좀 앉게나.”

 회정대사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이 노인이 바로 몰골노인이라’고 확신한 그는 해명방은 어디에 계신지 궁금하여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산에 갔을까? 산에 갔다면 늦은 이 시각까지 아니 돌아올 리도 없고…….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하여 몰골노인에게 여쭈었다.


 “그런데 해명방 어른은 어디에 계십니까?”

 “음, 해명방 어른은 저기 보이는 산 너머에 계시네. 저물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가도 넉넉하니 오늘은 여기서 자도록 하게.”

 그리고는 바랑을 들어 방 안에 던지고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회정대사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방 안은 매우 지저분하였다. 노인은 회정대사에게 도토리 범벅 같은 것을 한 그릇 갖다 주었다.

 “여기는 이런 것밖에 없으니 이것이라도 먹고 시장기를 면하시오.”

 회정대사가 그 노인을 자세히 바라보니 얼굴은 80세도 넘어 보이는데 근력은 상당히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추하기 짝이 없어서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흐르고 손도 몹시 지저분하였다. 또 옷도 언제 빨아 입었는지 때가 찌들어서 반질반질하였다. 그것을 보니 그만 도토리 범벅을 먹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졌으나, 너무나 배가 고파 먹고 잠이 들었다.


 회정대사가 잠에서 깨어 보니 벌써 훤한 아침이었다. 노인은 밖에서 역시 도토리 범벅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젊은 사람이 웬 잠을 이렇게 늦도록 자는가. 어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조반 먹을 차비를 하게.”

 회정대사가 얼른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 세수를 마치자 노인이 물었다.

 “그대가 해명방을 찾아가겠다고 하였지?”

 “네, 그렇습니다.”


 “해명방을 찾아가려거든 저기 보이는 저 산을 넘어 가시오. 별도의 갈림길도 없으니 저 산봉우리만 넘어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될 것이오.”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하룻밤 동안 신세를 많이 지고 갑니다.”

 “신세는 무슨 신세요, 어디를 가든 도토리 범벅이야 없겠소. 아무 말 말고 스님 볼일이나 잘 보고 가시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회정대사는 바로 앞에 보이는 큰 산봉우리를 넘어서 깊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과연 심산유곡이었다. 감탄을 연발하며 내려가다가 보니 풀로 지붕을 이은 초막이 하나 보였다. ‘저것이 해명방의 집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싸리문 밖에서 초막을 향하여 말했다.


 “주인 어른 계십니까?”

 “누구세요.”

 여자의 음성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2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젊은 처녀였다. 그런데 그 미모가 어찌나 예쁘게 생겼는지 천하의 일색이었다. 회정대사로서는 그야말로 난생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저……, 남녀가 유별한데 말씀드리기는 미안합니다만, 해명방 어른을 뵙고자 찾아왔는데 계시는지요?”

 “해명방은 우리 아버지신데 아침에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시고 지금은 아니 계십니다.”

 “그러면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점심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니 들어오셔서 툇마루에 앉아서 기다려 보시지요.”


 이리하여 회정대사는 싸리문 안으로 들어가서 툇마루에 바랑을 벗어 놓고 앉았다. 집 안을 둘러보니 몰골노인의 집과는 정반대로 매우 깨끗하였다.

 “스님이신 모양인데 어쩐 일로 우리 아버지를 찾아 오셨습니까?”

 “그것은 아버지를 뵈어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나 마찬가지인데 숨길 이유가 무엇 있습니까. 대관절 스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회정이라고 합니다. 규수의 이름도 알고 싶군요.”

 “아버지가 보덕(普德)이라고 지어주셔서 남들이 보덕각시라고 부릅니다.”

 “보덕각시, 참 좋은 이름이군요.”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나는 본디 금강산 장안사 중인데 근년에는 송라암에 있다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뵈옵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신심이 장하시군요.”

 “무어 신심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공연한 망상이겠지요.”

 “망상이라도 지극하면 진심(眞心)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꼭 망상이라고만 할 수도 없겠지요.”

 보덕각시는 조금도 스스럼없이 말대답을 잘 하였다.


 그런데 말을 할 적마다 그의 입에서는 향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해명방 어른을 뵈면 관음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가 오셔 봐야지요. 제가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요.”

 “제가 스님께 미리 부탁을 드리는데요, 우리 아버지는 아무 까닭 없이 남과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스님에게 무슨 횡포를 부리시더라도 잘 참고 말대꾸를 하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관음보살의 진신은커녕, 가짜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빼앗기고 말 것이니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참고 복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해명방이 나무를 태산같이 짊어지고 싸리문 안으로 들어왔다. 키가 9척이나 되고 얼굴이 사나워 보였다. 보덕각시와 회정대사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대뜸 해명방은 회정을 흘겨보면서 고함을 지르더니 작대기로 정강이를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너는 어떤 놈인데 규수만 혼자 있는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거냐?”

 회정대사는 보덕각시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으므로 꾹 참고 차분하게 말했다.

 “소승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 예의를 범했습니다. 잘못 하였으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놈, 용서고 무엇이고 어서 썩 나가거라. 보아하니 중놈 같은데 중놈이 처녀만 있는 남의 안집을 함부로 들어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

 노발대발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보덕각시가 보다 못해 말했다.

 “아버지, 그 스님은 잘못이 없어요. 제가 들어오라고 했어요.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라는데 어떻게 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여전히 해명방은 회정대사를 흘겨보며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말했다.

 “너는 어느 절에 있는 중놈인데 나를 왜 보려고 찾아온 것이냐?”

 딸이 말을 거들었다.

 “이 스님은 금강산 장안사 부근의 송라암에 있는 스님인데 꿈에 어떤 여인이 나타나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한다면 이 곳에 있는 해명방 노인을 찾아 뵈라고 해서 왔답니다.”


 이 말을 들은 해명방이 말하였다.

 “이놈아, 다른 사람은 만일기도를 하여도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할까 말까 한데 겨우 천일기도를 해 가지고 관음진신을 보겠다고? 그까짓 꿈은 개꿈이야. 어서 돌아가서 만일기도를 한 뒤에나 오너라. 그러니 어서 썩 나가거라.”

 해명방은 회정대사의 팔을 잡고 발길로 엉덩이를 찼다. 회정대사는 이미 어떠한 핍박이라도 받을 결심을 하고 있었으므로, 발길로 차면 또 일어서고 문 밖으로 내치면 또 기어 들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그 노인은 끝없이 나가라는 것이었다.

 회정스님은 해명방에게 애걸하였다.


 “소승이 업장이 두텁고 죄가 많사오니 업장을 벗겨 주시고 죄를 녹여 주십시오.”

 “그놈 꽤 끈질긴 놈이로구나. 네가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려면 내 딸과 오늘 혼인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겠느냐.”

 “어르신, 소승은 출가한 비구의 몸인데 어찌 파계하고 장가들라고 하십니까?”

 “이놈아 그렇다면 관음진신이고 무어고 다 틀렸다. 어서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회정대사는 매우 난감하였다. 그런데 보덕각시를 바라다보니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눈치였다. 회정스님은 몸이 있어야 관음진신도 친견하지, 이 몸마저 죽어버리면 어떻게 관음진신을 친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잘못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다 따르겠습니다.”

 회정대사가 사죄를 하였더니 해명방은 보덕각시에게 마당을 잘 쓸고 거적을 펴고 물 한 동이만 갖다 거적 가운데 놓으라고 하였다. 보덕각시가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해명방은 회정대사와 보덕각시를 물동이의 좌우에 마주 서서 보게 하고는 두 사람이 절을 아홉 번씩 하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것이 혼인식이었다. 그리고 오늘밤에 신방 화촉의 절차를 치르라고 하는 것이다.


 회정대사는 해명방의 압력에 눌려 복종을 하기는 하였으나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다는 것이 마치 마귀의 굴을 찾아온 것만 같았다. 회정대사는 몹시 불안하였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는 보덕각시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윗방에 들어가서 보덕각시를 보고 말했다.

 “이것이 도대체 어이된 일이오. 나는 계율을 지키는 스님의 몸인데 아가씨와 합방을 하라니,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노릇이오.”

 “나도 모르지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복종할 뿐이니까요.”

 보덕각시도 그저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회정대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파계를 하면서라도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계를 지켜야 할까? 보덕각시도 너무 아름답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결론을 얻지 못한 회정대사는 만사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녀와 함께 부부가 되어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녀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신방에 들어가서 보덕각시와 한 이불을 덮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생식기가 생기다가 만 불구의 여성이었다. 회정대사는 그제야 비로소 윽박지르듯 억지를 부린 노인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딸이 병신이니까 나를 윽박질러 딸을 맡기려고 하였구나’ 하고 내심 파계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불행 중에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절세의 미모를 타고난 여인으로서 불행하게도 고녀(성 불구의 여성)의 생식기를 가진 보덕각시가 매우 측은하게 보였다. 그리하여 회정대사는 부인으로 생각하고 그녀를 극진히 사랑하였다.

 다음 날 조반을 먹은 뒤 해명방은 산으로 함께 나무를 하러 가자고 말하였다. 시키는 대로 하기로 생각한 회정대사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명방이 회정대사에게 나무를 지고 장에 가서 팔아 가지고 좁쌀을 사 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 곳에서 장터까지는 50리나 되는데 장작짐을 가지고 가서 팔아 가지고 좁쌀을 사 오라고 하니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자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이제는 어찌되었든 장인이 아닌가.


 회정대사는 매일같이 나무하고 땅 파면서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관음보살을 친견하기는커녕 꿈에조차 나타나지도 않았다. 회정대사는 점점 의구심이 생겼다. 그가 이 곳에서 47일 동안 있으면서 매일같이 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와서 도끼로 쪼개 장작을 만들어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장에 가서 그것을 팔아 좁쌀을 사 오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회정대사는 따분하고 갑갑하여 날마다 해명방에게 물었다.

 “빙장 어른, 관음보살의 진신은 언제쯤 친견할 수 있겠습니까?”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것이 그렇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줄 아느냐. 여기서 한 10년은 살아야 뵈올지 말지 하다. 잔소리 말고 꾹 참고 나와 같이 나무장사나 하자.”


 이 말을 들은 회정대사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곳을 떠날 생각으로 해명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빙장 어른, 제가 오늘은 속가 집에 좀 일이 있어서 며칠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러자 해명방은 눈치라도챈 듯이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왜, 백 년이나 살 것같이 하더니 별안간 떠난다고 하느냐.”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울적하고 고향생각도 나서 한 번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 보아라. 몰골옹인가 문수인가 하는 늙은이가 공연히 이 곳을 가르쳐 주어서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사란만 피우게 하였구나.”

 회정대사는 보덕각시와 헤어지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이것도 인연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내심 작별 인사를 하고자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보덕각시. 내 오늘 집에 일이 있어 갔다가 며칠 후에 돌아오겠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잘 있어 주오.”


 “먼 길에 몸조심하셔서 잘 다녀오세요.”

 뜻밖에도 보덕각시는 담담한 표정으로 애처로운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 그의 아리따운 미모와 해박한 지식, 성품 그리고 고상한 태도가 인상적이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평생을 산골에서 자식 하나 없이 나무장사만 해 먹다가 죽을 바에는 차라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보덕각시, 또 생각이 나면 돌아오겠소. 그 동안 아버님 모시고 잘 있어 주시오.”


 보덕각시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잘 가세요.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가서 참한 여자가 있거든 장가들어서 유자생녀하고 잘 사세요.”

 보덕은 더욱더 차갑게 말하면서 눈물이라고는 손톱 끝만치도 흘리는 법이 없었다.

 회정대사는 ‘참 이상한 여자도 다 있구나. 내가 귀신에게 홀렸다가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회정은 ‘이왕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길이니 가는 길에 몰골노인에게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재를 넘어서 몰골노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래 해명방도 찾아보고 관음보살의 진신도 친견하였느냐?”

 “해명방은 뵈었지만 관음진신은 친견하지 못하고 갑니다.”

 “이 박복한 중아, 네가 가면 어디로 간다는 것이냐. 이 못난 것아, 그 해명방은 보현보살이요 보덕각시는 관세음보살의 진신인데 그녀와 부부가 되어서 47일이나 같이 한 방에서 지냈으면서도 관음보살의 진신을 못 보고 그냥 간다고 하느냐?”

 회정대사는 깜짝 놀랐다.

 ‘아! 이럴수가…….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여자가 관음보살이라니……. 이 일을 어찌한담.’


 회정대사는 ‘무슨 일이 있든지 참으라’고 한 그 여자의 말을 따르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러웠다. 가슴을 치면서 통탄해 했지만, 그러나 이젠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회정대사는 정신을 가다듬고 몰골노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너에게 길을 인도해 준 문수보살이지.”

 이 말을 들은 회정대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한데 대하여 환희심이 솟아올랐다. 그는 몰골노인에게 무수하게 절을 하고는 혹시나 하여 재빨리 다시 앞산을 넘어서 보덕각시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해명방도 보덕각시도 온데간데없고 집도 보이지 않았다.

 “보덕각시! 보덕각시!”


 회정대사는 소리쳐 불러 보았으나 물 흘러가는 소리와 바람소리뿐이요, 보덕각시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었다. 회정대사는 주먹으로 다시 한 번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죄의 업장이 두터워서 보현․관음 두 성인을 한 달 이상이나 모시고 살면서도 몰랐구나.”

 그러나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산을 내려오는 수밖에…….

 회정대사가 다시 산을 넘어서 몰골노인을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몰골노인도 사라지고 웬 검은 바위만 하나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회정대사는 성현의 조화가 이런가 하고 빈터를 향하여 백 배를 하였다. 그러나 차오르는 허탈감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성현의 신통은 귀신도 곡할 노릇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송라암으로 돌아와 다시 백일 관음기도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세 성현을 친견하고도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한데 대한 참회와 속죄의 기도요,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던 여인 보덕각시를 다시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고 싶어서였다.

 회정대사가 정성을 다하여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 밤이었다. 법당 뒷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전과 똑같이 여인이 나타났다.

 “이 천치야, 내가 틀림없이 가르쳐 주어 관세음보살과 47일간이나 같이 동거하게 하였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뛰쳐나와서 또 만나게 해 달라는 거냐. 네가 또 기도를 하니 한 번만 더 알려 주겠다. 내일 아침 한나절쯤 만폭동(萬瀑洞)으로 올라가면 관음보살의 진신인 보덕각시를 만날 것이니 그리 알아라.”


 회정대사가 깨고 보니 꿈이었다.

 회정대사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장 만폭동으로 가 보니 소복을 입은 어떤 여인이 흐르는 폭포수에 머리를 감고 있었다. 회정스님이 바싹 다가가서 보니 그 여인은 틀림없이 양구 해명골에서 47일이나 한방에서 살았던 보덕각시였다.

 회정대사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보덕각시’ 하고 소리를 치며 손을 잡으려는 순간 보덕각시는 오색빛의 한 마리 새로 변하여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날아가는 새를 쫓아갔으나 이번엔 새도 보이지 않았다.

 회정대사는 그 자리에 서서 내려다보니 반석 위에 물이 고여 있는데, 그 속으로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 보덕각시의 모습이 반사되고 있었다. 회정대사가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쳐다보니 과연 큰 굴 옆에 보덕각시가 서 있는 것이었다. 보덕각시는 회정대사에게 올라오라가 손짓을 하였다. 회정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니 보덕각시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 험한 곳을 올라오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지난 번 해명골에서 47일 동안이나 나와 같이 한 이불 속에서 지냈으니 그 인연은 백천 겁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그러니 스님은 이 곳에서 수도나 잘 하고 계십시오. 그 때 해명골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해명방 노인은 보현보살의 화신이시고, 몰골노인은 문수보살의 화신이며, 스님은 옛날 이 굴속에서 공부하시던 보덕대사의 후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석굴 속에는 스님이 공부하실 때 사용하던 경책과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스님이 이 곳에만 오래 계시면 내가 종종 현신을 할 터이니 그리 아십시오.”


 보덕각시는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회정대사가 그 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경책과 다기, 향로 등의 유물이 남아 있었다. 회정대사는 바위 위에 ‘상주진신 관자재보덕(常住眞身觀自在普德)’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고 그 앞에 초암을 짓고 300일 동안이나 관음기도를 하고 천수주문을 외웠다.

 회정대사는 그 뒤(서기 635년, 신라 선덕여왕 4년) 강화도로 와서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강화도 보문사도 역시 관음기도도량으로서 법당이 보덕굴과 마찬가지로 큰 굴속에 있다.


 회정대사는 신라시대 때 훌륭했던 보덕대사의 후신이라고 일컬으며, 보덕각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금강산 만폭동에 있는 보덕굴은 보덕대사의 굴임과 동시에 관음보살의 화신인 보덕각시의 굴인 것이다.

 금강산 만폭동의 기암절벽에 구리쇠 기둥을 받침으로 한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보덕굴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어떻게 저런 곳에 암자를 세울 수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보덕굴은 보덕암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북한 땅이지만 해방 전까지만 해도 관음기도성지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또 그 주변에는 관음조라는 아름다운 새가 날아다니면서 기도하러 온 신도들의 신앙심을 북돋워 주기도 한다. 그리고 만폭동에서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던 맑은 웅덩이를 세두분(洗頭盆)이라고 하며 보덕각시의 모습이 비친 반석 위에 고여 있는 연못 같은 곳을 영아지(影娥池)라고 한다.

 최근 북한에서 나온 불교 팸플릿을 보면 보덕굴 사진이 실려 있다. 이것을 보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사찰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