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의 자서수계(自誓受戒)
진표율사(眞表律師)는 신라말 경덕왕 때 우리나라 법상종(法相宗)을 개산(開山)한 분입니다. 그러나 이 스님은 법상종의 시조라는 사실보다 율사로 더 유명하고, 계를 얻기 위해 미륵보살님과 지장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특별한 상서를 얻고 계를 얻은 자서수계(自誓受戒)의 큰스님으로 특히 유명합니다.
진표율사의 고향은 전주 만경현(萬頃縣) 두릉(杜陵: 豆乃山)으로, 지금의 전북 김제군(金堤郡) 만경면에 해당합니다. 속성은 정씨(井氏)이고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며, 생몰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의 출가 동기는 특이합니다.
활쏘기를 잘하던 어린 시절, 하루는 논두렁에서 개구리 30여 마리를 잡아서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듬해 봄, 다시 사냥길에 나선 소년은 논두렁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지난해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물 속에서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심코 저지른 일로 이 많은 개구리들이 해를 넘기도록 고통을 받다니…….’
잘못을 크게 뉘우친 소년이 출가를 결심하고 있던 어느 날, 집에서 북쪽으로 멀리 보이는 텀뫼[母岳山] 위로 오색구름이 눈부시게 피어오르더니 이내 부처님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를 드린 소년은 불현듯 그곳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30리를 단숨에 달려 그곳에 이르자, 숲속에 작은 암자가 있었고, 암자에는 노스님 한 분이 머물러 계셨습니다. 소년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스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스님, 죄악에 가득 찬 저를 구제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진표는 12세의 나이로 출가하였으며, 그 스님은 바로 숭제법사(崇濟法師)였습니다.
진표가 숭제법사를 모시고 지성으로 도를 닦은 지 10년이 되었을 때, 숭제법사는 진표를 불렀습니다.
“나는 일찍이 당나라로 들어가서 선도삼장(善道三藏)의 밑에서 수업하였고, 그 다음에는 오대산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지성으로 기도하여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5계를 받았느니라.”
“스님, 얼마나 부지런히 하면 불보살님께 직접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정성이 지극하면 1년이면 되느니라.”
이 말씀과 함께 숭제법사는 《사미계법전교공양차제법 沙彌戒法傳敎供養次第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 2권을 주면서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너는 이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보살과 지장보살 전에 참회하여 직접 계를 받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계법을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여라.”
진표스님은 쌀 20말을 쪄서 말린 다음 변산의 부사의방(不思義房)으로 들어가서 쌀가루 다섯 홉을 하루 동안의 양식으로 삼되, 그중 한 홉을 덜어내어 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미륵상 앞에서 부지런히 게법을 구하였으나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발분한 스님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고, 갑자기 나타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스님을 손으로 받들어 바위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스님은 다시 결심했습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살의 수기를 받으리라.”
스님은 삼칠일(21일)을 기약하여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亡身懺)을 시작했습니다. 온몸으로 바위를 두들기듯 엎드려 절하면서 부지런히 참회한 것입니다.
3일째가 되자 스님의 손과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금장(金杖)을 흔들며 와서 스님을 돌보아 손과 팔을 전과 같이 고쳐 주고, 가사와 바루를 주었습니다.
스님은 지장보살의 신령스러운 감응에 감동하여 더욱 열심히 참회하였고, 마침내 삼칠일이 되던 날, 천안(天眼)을 얻은 스님은 미륵보살이 도솔천(兜率天)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은 스님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훌륭하다, 대장부여! 이렇듯 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참회하였구나.”
그리고 지장보살은 계본(戒本)을 주고, 미륵보살은 제 8간자(第八簡子)와 제 9간자(第九簡子)라고 쓰여진 두 개의 나무로 만든 간자(簡子)를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 뼈로서 시각(始覺: 닦아서 이루게 되는 覺)과 본각(本覺: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覺)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제 9간자는 법이(法爾: 진리 그 자체)이고, 제 8간자는 신훈성불종자(新熏成佛種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씨앗을 새롭게 키우는 것)를 뜻하는 것이니, 이것을 통하여 너의 과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 몸을 버리면 대국왕의 몸을 받았다가 그 뒤에 도솔천에 태어나게 되리라.”
말을 마치자 두 보살은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계법과 교법(敎法)을 전해 받고 산으로 내려오자 뭇 짐승들이 진표율사의 걸음 앞에 엎드렸고, 사람들은 정성을 다하여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대연진(大淵津)에 이르자 용왕이 모습을 나타내어 옥(玉)과 가사를 바쳤으며, 그 용왕의 권속들의 도움을 받아 금산사를 중창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머물면서 해마다 계단(戒壇)을 열어 사람들을 크게 교화하였고, 수많은 이적(異蹟)을 보이면서이 땅에 참회불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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