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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선사의 원통불법과 순선사상 |

본문스크랩] 청화선사의 원통불법과 순선사상 | 2009/01/15 19:03   
출처 允山畵禪齋 | 윤산
원본 http://blog.naver.com/cso110/140036810428
                                                                                                 이 중 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

1. 서언


청화 선사는 초인적인 수행과 열정적인 교화활동으로 불자들의 귀감이 되는 현대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출가 수행자이다. 그렇지만 간화선을 정통으로 여기는 한국불교의 풍토에서 대중들에게 염불선을 권장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외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과 평가는 청화 선사께서 가장 염려한 종파적 편견과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선사의 선사상을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 후학들의 허물도 크다고 생각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선사의 사상을 바르게 정리하여 불교수행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청화 선사의 선사상을 염불선으로 규정한다. 선사가 염불선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염불선을 선사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염불선은 선 수행의 한 방법일 뿐 중심 사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사께서 대중들에게 염불선을 권장한 것은 염불선만이 옳고 다른 것은 그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보편적 수행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사의 불교 사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선사께서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불교 사상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청화 선사께서는 모든 법문의 서두에서 불교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이야기한다. 선사의 불교 사상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선사께서는 현대 사회를 다른 종교, 다른 교리 등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분파적인 것을 지양하고 교섭과 화해를 통한 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가 안심법문이라면 이 시대의 불교는 현대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이 융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사께서 주장하는 ‘원통불법’이다. 따라서 청화 선사의 불교 사상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원통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안심법문으로 규정한 선사께서는 참선을 통해 안심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즉 참선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참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참선법만을 고집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선사는 이러한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간화선, 묵조선 등으로 분파되기 이전의 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른 바 선사께서 이야기하는 순선(純禪)이다. 따라서 선사의 선사상(禪思想)은 순선사상(純禪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청화 선사는 순선 시대의 여러 조사들이 염불을 참선과 차별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그 시대는 교(敎), 선(禪), 정토(淨土)라는 구분이 없이, 간경(看經)과 참선(參禪)과 염불(念佛)이 다 같은 안심법문으로 수행되던 시기이다. 선사의 염불선은 이러한 원통불법과 순선 사상의 토대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순선 사상을 고려하지 않으면 염불선이란 개념은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염불(念佛)과 선(禪)은 각각 다른 수행법이기 때문에 염불이면 염불이고 선이면 선인 것이지 염불과 선을 결합하여 염불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께서 이야기하는 염불선은 염불과 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선이라는 수행을 의미한다. 즉 청화 선사의 염불선은 염불과 선이 구별되기 이전, 즉 순선 시대의 불교 사상에 토대를 둔 수행법인 것이다.             

청화 선사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선사의 법어를 녹취한 두 권의 법어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 -純禪安心琢磨法門- 이다. 1989년 발행된 ꡔ正統禪의 香薰ꡕ이 있지만 대중들의 청에 응하여 수시로 설법한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서 선사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3년에 발행된 ꡔ圓通佛法의 要諦ꡕ는 그 해 2월 태안사 금강선원에서 선방의 수자 스님들을 상대로 7일간 설하신 설법 내용이며, 2002년 발행된 ꡔ마음의 고향ꡕ -純禪安心琢磨法門- 은 미국 포교를 위해 미국에 가시어 1995년 미국 삼보사에서 7일간 사부대중을 위해 설하신 설법 내용이다. 두 책이 다 같이 선사께서 7일간이라는 기간 동안 이야기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에 저술과 다름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필자는 선사의 법어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을 중심으로 선사께서 강조하신 ‘안심법문’, ‘원통불법’, ‘순선’, ‘염불선’ 등이 갖는 사상적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안심법문(安心法門)


청화 선사의 법문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은 모두 ‘안심법문’으로 시작된다.


부처님 법문(法門)의 대요(大要)는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안락법문(安樂法門)이 되겠습니다.1)

그러나 특히 불교는 팔만사천 법문 전부가 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2)


안심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로 불교의 대요이다. 안심법문은 부처님의 「탄생게」에서 확인된다. 부처님이 태어나서 온 세상에 선언한 말씀은 “천상 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 나는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없애 삼계의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겠다(三界皆苦 我當安之)”는 것이다. 안심법문은 부처님께서 깨달아 가르친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의미한다. 중생들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사실, 그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이 사성제라고

 

 

1. 서언


청화 선사는 초인적인 수행과 열정적인 교화활동으로 불자들의 귀감이 되는 현대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출가 수행자이다. 그렇지만 간화선을 정통으로 여기는 한국불교의 풍토에서 대중들에게 염불선을 권장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외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과 평가는 청화 선사께서 가장 염려한 종파적 편견과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선사의 선사상을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 후학들의 허물도 크다고 생각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선사의 사상을 바르게 정리하여 불교수행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청화 선사의 선사상을 염불선으로 규정한다. 선사가 염불선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염불선을 선사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염불선은 선 수행의 한 방법일 뿐 중심 사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사께서 대중들에게 염불선을 권장한 것은 염불선만이 옳고 다른 것은 그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보편적 수행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사의 불교 사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선사께서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불교 사상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청화 선사께서는 모든 법문의 서두에서 불교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이야기한다. 선사의 불교 사상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선사께서는 현대 사회를 다른 종교, 다른 교리 등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분파적인 것을 지양하고 교섭과 화해를 통한 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가 안심법문이라면 이 시대의 불교는 현대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이 융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사께서 주장하는 ‘원통불법’이다. 따라서 청화 선사의 불교 사상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원통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안심법문으로 규정한 선사께서는 참선을 통해 안심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즉 참선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참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참선법만을 고집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선사는 이러한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간화선, 묵조선 등으로 분파되기 이전의 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른 바 선사께서 이야기하는 순선(純禪)이다. 따라서 선사의 선사상(禪思想)은 순선사상(純禪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청화 선사는 순선 시대의 여러 조사들이 염불을 참선과 차별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그 시대는 교(敎), 선(禪), 정토(淨土)라는 구분이 없이, 간경(看經)과 참선(參禪)과 염불(念佛)이 다 같은 안심법문으로 수행되던 시기이다. 선사의 염불선은 이러한 원통불법과 순선 사상의 토대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순선 사상을 고려하지 않으면 염불선이란 개념은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염불(念佛)과 선(禪)은 각각 다른 수행법이기 때문에 염불이면 염불이고 선이면 선인 것이지 염불과 선을 결합하여 염불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께서 이야기하는 염불선은 염불과 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선이라는 수행을 의미한다. 즉 청화 선사의 염불선은 염불과 선이 구별되기 이전, 즉 순선 시대의 불교 사상에 토대를 둔 수행법인 것이다.             

청화 선사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선사의 법어를 녹취한 두 권의 법어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 -純禪安心琢磨法門- 이다. 1989년 발행된 ꡔ正統禪의 香薰ꡕ이 있지만 대중들의 청에 응하여 수시로 설법한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서 선사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3년에 발행된 ꡔ圓通佛法의 要諦ꡕ는 그 해 2월 태안사 금강선원에서 선방의 수자 스님들을 상대로 7일간 설하신 설법 내용이며, 2002년 발행된 ꡔ마음의 고향ꡕ -純禪安心琢磨法門- 은 미국 포교를 위해 미국에 가시어 1995년 미국 삼보사에서 7일간 사부대중을 위해 설하신 설법 내용이다. 두 책이 다 같이 선사께서 7일간이라는 기간 동안 이야기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에 저술과 다름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필자는 선사의 법어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을 중심으로 선사께서 강조하신 ‘안심법문’, ‘원통불법’, ‘순선’, ‘염불선’ 등이 갖는 사상적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안심법문(安心法門)


청화 선사의 법문집 ꡔ圓通佛法의 要諦ꡕ와 ꡔ마음의 고향ꡕ은 모두 ‘안심법문’으로 시작된다.


부처님 법문(法門)의 대요(大要)는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안락법문(安樂法門)이 되겠습니다.1)

그러나 특히 불교는 팔만사천 법문 전부가 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2)


안심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로 불교의 대요이다. 안심법문은 부처님의 「탄생게」에서 확인된다. 부처님이 태어나서 온 세상에 선언한 말씀은 “천상 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 나는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없애 삼계의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겠다(三界皆苦 我當安之)”는 것이다. 안심법문은 부처님께서 깨달아 가르친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의미한다. 중생들의 삶이 괴로움이라는 사실, 그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이 사성제라고

 


 1)圓通佛法의 要諦, 성륜각, 1993, p. 13

 2) 마음의 고향. 토방, 2002, pp. 12-13

 

할 때,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는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안락한 삶으로 인도하는 진리, 즉 ‘안심법문’인 것이다.

청화 선사는 보리달마(菩提達摩)에서 혜능(慧能)까지를 순선시대(純禪時代)라고 부르고 이 시대의 선사상을 ‘안심법문’으로 규정한다.3) 이러한 선사의 규정은 초기 선종의 대요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기까지 초기의 선사들이 불교 수행의 목적을 ‘안심(安心)’에 두었음은 그들의 저술과 행적에서 입증된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달마의 저술로 인정받고 있는 「略辨大乘二入四行」은 범부와 성인이 동일한 眞性을 가지고 있음을 깊이 믿어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고(理入), 괴로운 일이 생기면 과거 숙업의 과보로 여겨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좋은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기고 없어짐을 생각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탐착심을 버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진리에 따라 6바라밀을 실천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달마선의 특색은 안심(安心)이다. 혜가가 달마에게 물었던 것도 안심법문이고, 승찬이 혜가에게 구했던 것도 안심법문이다. 초기 선종의 안심법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도신(道信; 580-651)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안락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를 떠나 따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염불이란 바로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이 바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식(識)은 형체가 없고 부처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도리를 안다면 이것이 바로 안심(安心)이다. 항상 부처를 깊이 사무치게 생각하고 攀緣(대상에 의지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攀緣이) 사라져 無相하고 平等한 不二의 상태가 된다. 이 경지 가운데 들어가면 부처를 잊지 않고 생각하려는 마음도 사라지나니 다시는 부처를 억념(憶念)하려고 할 필요가 없으며, 바로 이 평등한 마음이 바로 여래의 진실한 法性의 몸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평등한 마음을) 正法이라고도 부르고, 佛性이라고도 하고, 諸法實性實際라고도 하고, 淨土라고도 하고, 菩提, 金剛三昧, 本覺 등이라고도 하고, 涅槃界, 般若 등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셀 수 없지만 모두 다같이 一體이며, 또한 能觀과 所觀의 뜻이 없다. 이와 같은 평등한 마음을 모름지기 청정하게 유지하여 항상 앞에 나타나도록 하면 일체의 모든 반연(攀緣)이 마음을 어지럽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일이 다 여래의 하나의 法身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 가운데 머물면 모든 구속과 번뇌가 자연스럽게 제거되고 소멸된다.4)           

      

도신의 안심법문은 이입(二入)의 구조를 갖는 달마의 안심법문을 계승한 것이다. 안심(安心)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먼저 우리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알아야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달마는 이것을 범부와 성인이 동일한 眞性을 가지고 있음을 깊이 믿어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는 理入이라고 했다. 이렇게 진실을 이해하면


 3) 圓通佛法의 要諦, p. 19 참조.

 4) 淨覺 著, 박건주 역주, ꡔ楞伽師資記ꡕ, 운주사, 2001, pp. 115-117을 참조한 필자 번역.

 

 그 진실에 맞추어 살게 된다. 도신은 이것을 一行三昧라고 이야기한다.

法界는 一相이니 法界에 繫緣(合一)하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一行三昧라 하느니라.5) 

 

안심은 이렇게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에 의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 이것은 사성제와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괴로움의 원인이 연기하는 법계가 一相임을 알지 못하고 自他를 분별하는 無明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正見에 의지해 살아갈 때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 근본불교의 사성제이며, 연기설에 대한 이해가 理入이라면 팔정도의 실천은 行入이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우선하고, 그 다음에 깨달음에 근거하는 실천을 통해 안락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안심법문의 구조이다.

청화 선사가 안심법문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달마에서 도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된 안심법문의 구조, 즉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그 다음에 진실한 수행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선사는 이것을 先悟後修라고 이야기한다.


이 안심법문은 다른 말로 하면 안락법문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몸을 하나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안심되면 바로 안락스럽게 되겠지요. ......

불교의 특색은 몸과 마음을 절대로 둘로 안 봅니다. 하나로 봅니다. 마음도 몸도 하나요. 또는 자연과 인간도 하나요.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안심되면 몸도 안락스럽고, 불교 전문적인 용어인 참선하는 공부로 말할 때는 안상삼매(安詳三昧)라! .....

이렇게 되어야 우리 마음이 안심이 되고 몸도 안락해집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안심이 되고 안락스러우려면 우리 공부하는 것도 역시 선오후수(先悟後修)라 우선 이치로 막힘이 없어야 우리 마음이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6)

이와 같이 청화 선사는 달마에서 도신에 이르는 초기 선종의 안심법문을 선오후수의 법문으로 이해한다. 선사가 선오후수를 이야기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철(性徹) 스님이 보조(普照) 스님의 돈오점수설을 비판하고 이단시함으로써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 논쟁으로 조계종단은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보조 스님의 가풍을 이어온 송광사에서는 돈오돈수를 비판했고, 성철 스님이 주석하는 해인사에서는 돈오점수를 비판했다. 선사는 이러한 논쟁이 불교의 대요인 안심법문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종파주의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선사는 이러한 의미 없는 논쟁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사는 먼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연원과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가 일으킨


5) 같은 책.

 6) 마음의 고향, pp.15-16

 

 

 돈점논쟁이 종파적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안심법문, 즉 선오후수의 법문으로 이 둘을 회통(會通)시킨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우리가 흔히 상식으로 알듯이 성철 스님이 맨 처음으로 말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육조단경(六祖壇經) 제7 남돈북점장(南頓北漸章)에 나와 있습니다.

단경 자체도 문제는 분명히 있습니다. 돈황본(敦煌本)이라든가 혜흔본(惠昕本)이나 종보본(宗寶本)이나 덕이본(德異本)이 다 각기 차이가 있는 것을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증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래도 역시 우리가 선(禪) 하면 육조단경을 권위있는 전거(典據)로 안할 수가 없습니다.

단경 제7 남돈북점장에는 주로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 대사가 북종(北宗)을 비판하고 남종(南宗)을 세우는 남종정시비론(南宗定是非論)의 논쟁 같은 말씀이 보입니다. 이른바 남쪽인 6조 대사는 문득 깨닫는 법인 돈교(頓敎)라 찬양하고 북쪽 신수(神秀 ?-706) 대사는 점차로 닦아가는 점교(漸敎)로서 본질적인 가르침이 미처 못된다고 비판하는 내용입니다.7)

위에서 인용한 경론에서 밝힌 바, 법에는 본래 돈점(頓漸)이 없습니다. 다만 근기가 날카롭고 둔함으로 돈점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닦고 증하는 수증(修證)에도 깊고 옅은 심천(深淺)이 있는 것이니 돈오점수라 하여 그릇됨이 될 수가 없고, 점차나 차서나 고하를 논하지 않는 무염오수행(無染汚修行)을 역설하는 의미에서의 돈수(頓修)이니 돈오돈수가 그릇됨이 아니며, 다만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수기설법(隨機說法)일 뿐입니다.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것은 불조(佛祖)의 통설입니다.8)    

        

선사는 이렇게 불교의 대요를 밝혀 종파적 분열을 종식시키고자 했으며, 그것이 선사가 이야기하는 안심법문이며 선오후수의 법문이다.



3. 순선사상(純禪思想)

순선(純禪)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불교용어가 아니라 청화 선사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그러면 참선이면 참선이지 왜 이와 같이 순선(純禪)이라. 순수한 참선이라 이렇게 명칭을 붙였는가? .....

보통 참선이 아니고 순선이라는 것은 이른바 순수한 참선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을 순수한 참선이라 하는 것인가?

중국의 초조(初祖) 달마(達摩) 스님 때부터 육조(六祖) 혜능(慧能) 스님까지의 시대를 순선시대라 하고 그때의 선을 순선이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육조 혜능 스님 이후에 다섯 파로 참선이 갈라지고, 그래서 서로 반목하고


7) ꡔ圓通佛法의 要諦ꡕ, p. 31-32

 8) 위의 책, p. 64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다시 간단히 말씀드리면 화두선(話頭禪)이 있고, 묵조선(黙照禪)이 있고, 또 뭐가 있고 이런 복잡한 갈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 마음 그대로 닦아서 나아가는 그런 참선이란 말입니다.9)


후대의 중국 선종을 무비판적으로 맹종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청화 선사가 주장하는 순선사상은 왜곡된 불교 수행풍토를 바로 잡으려는 간절한 원력의 표현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초기 선종은 안심법문을 표방했다. 그런데 혜능(慧能) 이후에 중국의 선종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한다. 중국 선종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게송은 혜능의 사후에 나타난 것으로서 달마(達摩)의 정신보다는 혜능의 사상을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10)

달마는 ꡔ능가경(楞伽經)ꡕ을 매우 중요시했기 때문에 혜능 이전의 선종은 능가종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혜능은 문맹으로서 경전에 의거하여 수행한 사람이 아니다. 혜능의 깨달음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문자를 통하지 않는 깨달음이 가능해야 한다. 말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전해진<敎外別傳>, 문자를 매개로 하지 않고<不立文字>,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키는 방법<直指人心>으로 본성을 봄으로써 성불<見性成佛>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이 게송은 혜능의 깨달음을 정당화하고, 그의 선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 그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방편은 본질로 변모한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본 뜻은 “진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 가능할 뿐이고 경전(經典)들이란 다만 우리 자신의 진정한 통찰 - 자오(自悟) - 을 자극하고 환기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전 이외에 우리를 일깨워 진리로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다른 수단들이 있고, 이 깨우침은 먹고 마시는 데 차고 더운 것은 각자가 아는 것과 같이 엄밀히 개인적 경험이라는 것이다.”11)

그러나 중국 선종이 남종과 북종으로 나뉘어 혜능을 추종하는 남종이 신수계의 북종을 공격하면서 교외별전 삼처전심(三處轉心)이라는 조작된 역사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선종의 계보가 만들어진다. 즉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 곳에서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한 이후 보리 달마에 이르기까지 28대의 사자상승(師資相承)이 이루어졌고, 중국에서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6대의 사자상승이 이루어져 33대의 사자상승을 통해 중국 선종이 성립했다는 선종의 계보(系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서천(西天) 28


 9) 마음의 고향, pp.11-12

10) 吳經熊 저, 서돈각․이남영 역, ꡔ禪學의 黃金時代ꡕ, 삼일당(서울; 1979),

         pp. 123-124 참조.

11) 앞의 책, pp. 124-125

 

 

조사설은 달마 당시는 물론 5조 홍인(弘忍)의 제자인 현색(玄賾)의 제자 정각(淨覺)의 ꡔ楞伽師資記ꡕ(730년경 작)에도 언급이 없다. 서천 28조 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선(智詵)의 ꡔ歷代法寶記ꡕ(774년경 작)이며 그 후 지거(智炬)의 ꡔ寶林傳ꡕ(801년경 작)에 서천 28조에 동토(東土) 혜능까지를 열거한 소위 33조사로 일컬어지는 선종의 계보가 확정된다.12)

이와 같이 보리달마를 초조(初祖)로 하는 중국 선종의 계보가 만들어진 것은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으로 분열된 이후이다. 중국에서 선종이 성립되던 초기에는 달마를 초조(初祖)라 칭하지도 않았고, 계보설도 없었다. 그런데 홍인(弘忍)의 제자인 신수(神秀)와 혜능(慧能)의 문도가 번성하여 남종과 북종으로 파벌을 형성함에 따라 정계(正系)와 방계(傍系)의 쟁론이 일어나 정계를 표방하면서 초조와 계보를 만들었다. 그 결과 두 가지 계보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ꡔ능가경ꡕ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신수 계통의 계보요, 다른 하나는 ꡔ금강경ꡕ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혜능 계통의 계보다. 전자는 홍인의 제자 현색(玄賾)의 ꡔ楞伽人法志ꡕ13)(730)와 현색의 제자 정각(淨覺)의 ꡔ楞伽師資記ꡕ(740)에 나오는 계보로서 동토(東土) 제1조를 ꡔ능가경ꡕ을 번역한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삼장으로 하고, 제2 菩提達摩, 제3 慧可, 제4 燦禪師 제5 道信, 제6 弘忍, 제7 神秀大師로 하고 있다. 후자는 역시 홍인의 제자인 지선(智詵)의 ꡔ歷代法寶記ꡕ(774)와 지구(智矩)의 ꡔ寶林傳ꡕ(801)에 나오는 것으로서 제1조를 보리달마로 하고 제6조를 혜능으로 하고 있다.14)

삼처전심과 교외별전설은 28조설보다도 훨씬 후대에 성립된다. 김동화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교외별전설은 28조설보다도 그 행세한 연대가 훨씬 후대에 속한다. 송대 1004년 작인 道原의 ꡔ景德傳燈錄ꡕ에도 오히려 없는 전설일 뿐 아니라 이 ꡔ전등록ꡕ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ꡔ正宗記ꡕ(1060년 이전 작)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가 靈山會中에서 拈華示之하니 가섭이 미소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였노라. 又曰, 여래는 법을 多子塔前에서 가섭에세 付하였다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傳受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내 비록 梢取하나 또한 과감히 써 審詳치 않노라(同卷 1 末)”라고 하여 그 설을 오히려 취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보면 송대에 들어와 이러한 전설이 돌기 시작하였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40년 후(1101년)에 저작된 ꡔ建中靖國續燈錄ꡕ 제1에 의하면, “四九年 三乘顯著, 拈華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후(1183년)에 저작된 ꡔ聯燈會要ꡕ 제1에 의하면 “世尊在靈山會上, 拈華示衆, 衆皆黙然, 唯迦葉破顔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摩訶迦葉”이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15) 

      

이와 같이 삼처전심과 교외별전은 중국의 선종이 오가(五家)로 분립하여 계승되던 송대(宋代) 이후에 조작된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조작을 거치면서 중국의 선종


12) 김동화, ꡔ선종사상사ꡕ, 뇌허불교학술원, pp. 97-98 참조

13) 이 책은 현존하지 않는다.

14) 김동화, 앞의 책, pp. 101-102 참조.

15) 김동화, 앞의 책, pp. 99-100

 

에서는 수행의 목적을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두게 되며, 그 결과 돈점 문제가 부각된다. 즉 깨달아 바로 성불하느냐 깨닫고 나서 점진적인 수행을 거친 후에 성불하느냐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의미를 곡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ꡔ육조단경ꡕ에서 혜능은 견성(見性)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지니,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이 바로 부처니라. 그러므로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함에도 어찌하여 자기의 마음을 쫓아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를 못하는가? ꡔ菩薩戒經ꡕ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나니 마음을 깨달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불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당장 활연히 깨달아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아야 하느니라.16)


육조가 이야기하는 견성성불은 우리의 본성이 청정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성취하는 것이다. 즉 고통과 번뇌가 없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 부처님이 가르친 평안한 마음을 얻는 것이 성불이다. 이것은 달마가 혜가에게 가르쳤던 안심법문과 다름이 없다. 혜가가 달마에게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달라고 청했을 때 달마는 혜가에게 불안한 마음을 찾도록 했고, 혜가는 우리의 본래 마음에 불안이 없음을 깨달았다. 승찬이 혜가에게 죄를 씻어달라고 청했을 때 혜가는 승찬에게 우리의 마음에 본래 죄가 없음을 깨닫게 했고, 도신이 승찬에게 해탈법문으로 인도해 줄 것을 청했을 때 승찬은 우리의 마음에 본래 속박이 없음을 깨닫게 하여 마음의 평온과 해탈을 얻도록 했다. 혜능은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온을 얻는 데 사람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돈점(頓漸)을 이야기했다.


선지식들이여 법에는 단번에 깨달음과 점차로 깨달음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달은 이는 단번에 닦느니라. ......

선지식들이여, 나의 이법문은 예부터 단번에 깨침과 점차로 깨달음을 모두 세우나니, 생각이 없음을 종으로 삼으며, 모양 없음을 본체로 삼고, 머무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17)    


이와 같이 혜능은 돈수와 점수를 다 같이 인정했다. 따라서 돈수와 점수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가를 논하는 것은 혜능의 뜻에도 어긋나며, 남종과 북종으로 나뉘어 돈점으로 정통의 기준을 삼으려 했던 혜능 이후의 선종은 순수한 선의 정신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에서 돈점의 시비가 그치지 않은 것을 선사는 안타깝게 여겨 선의 근본정신을 되살리고자 순선사상을 주장한 것이다.


16) 청화 역주,  육조단경,  광륜출판사(서울; 2003), pp. 155-156

17) 위의 책, 87-88


4. 원통불법(圓通佛法)


청화 선사는 원통불법을 강조한다. 선사가 이야기하는 원통불법은 회통사상(會通思想)을 의미한다.


순수한 선, 이것은 어느 것에도 막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흔한 말로 하면 이른바 원통불교라! 원통사상 또는 회통사상입니다.

회통 사상은 이것저것 합해서 모두다 화해를 시켜서 이루어진 하나의 진리가 이른바 회통 사상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뿐만 아니라 자고로 위대한 성인(聖人)들은 다 회통 사상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신라시대의 원효․의상․자장, 고려 때의 대각․보조․태고, 이조 때의 서산대사 모두가 다 회통사상입니다.

그러면 왜 그분들이 회통사상인가? 성자라 하는 분들은 천지 우주의 하나인 도리를 압니다. 우리 중생들은 겉만 보기 때문에 나는 ‘나’요 너는 ‘너’요, 좋은 것은 ‘좋다’ 궂은 것은 ‘궂다’ 시비 분별해서 봅니다. 형식적인 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모든 존재의 근본바탕, 근본성품을 봅니다.

따라서 근본 성품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란 말입니다. 예수도 공자도 다 그랬습니다. 근본 하나의 자리를 봅니다. 그 하나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고 부처님 아니겠습니까?18)      


이와 같이 선사가 생각하는 원통불법은 모든 것을 통합하여 화해시키는 하나의 도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회통사상에서 모든 대립과 갈등은 해소된다. 선사가 이러한 원통불법, 즉 회통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갈등과 투쟁의 원인을 회통사상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께서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은 시대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전에는 동서 양 진영이 서로 겨루고 다투는 데서 긴장이 고조돼 왔지마는 이제는 한 쪽 공산세계가 붕괴되면서 더욱 혼란이 가중되어 오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인류를 구제할 것인가? 그런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치관을 우리는 어디서 구해야 할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혼란상은 주로 서구문화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훌륭한 석학들이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서구사상으로는 앞으로 오는 21세기, 이른바 새로운 문명에 있어서 참다운 지도원리를 구할 수가 없다고 말씀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 불교인들은 더욱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가르침, 다른 문화현상들은 모든 것을 나누고 분열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부처님 가르침만은 모두를 하나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만이 본래 하나가 아니라, 자연계라든가 또는 어떠한 것이든 다 하나의 생명


18) 마음의 고향, p. 14

 

으로 보는 일원주의 사상이기 때문에 이른바 동일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나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통합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불교 사상의 일원주의, 소위 동일률적인 사고방식, 이런 가르침만이 비로소 세계를 하나로 평화스럽게 묶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게 됩니다.19)    

     

청화 선사가 이야기하는 일원주의란 서양철학의 일원론과 크게 다르다. 서양의 일원론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궁극적 실체를 어떤 하나의 존재로 보는 것이라면, 선사가 이야기하는 일원주의는 모든 대립과 투쟁을 화해하는 ‘하나의 도리’를 의미한다.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네 것, 내 것 싸워서는 민족이나 국가 간에도 절대로 화합이 안 됩니다.

화합을 하려면 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이 있어야 하겠지요.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바른 인생관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그 때는 투쟁과 반목뿐입니다.

 

몇 해 전에 어느 분이 자기는 지금 이른바 단군교를 믿고, 자기 아내는 불교를 믿고, 아들은 기독교를, 딸은 천도교를 믿는다. 그렇게 자랑삼아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것은 좋은데 피차 그것이 화합되게끔 하나의 도리를 딱 느끼고서 그렇게 화해가 되면 좋은데 그렇게 안 된다고 생각할 때는 싸움판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꼭 ‘하나의 도리’를 알아야만 할 때입니다.20)         


청화 선사가 이야기하는 하나의 도리는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통합과 화해의 원리이다.


이러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여러분께서도 하나의 도리를 알기 위해서는 피차가 순수해야 됩니다. 순수하다 보면 결국 순수한 것은 같아지겠지요. 불교도 순수하고, 기독교도 순수하고, 사람도 순수하고, 사람도 순수한 사람끼리는 잘 통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허두에 순선시대라. 참선도 그냥 화두(話頭) 한 사람이 옳다. 묵조(黙照) 한 사람이 옳다. 뭐 한 사람이 옳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 불교도 그런 시비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비나 문중이 이루어지기 전 순수한 때에 순선시대에 어떻게 말했던가? 그리고 석가모니께서는 어떻게 말했던가? 순수한 마태복음서나 요한복음서에 예수가 어떻게 말했던가? 허심탄회하게 훑어보면 거의 같아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이런 도리를 ‘천지 우주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이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님뿐이 아닌가.’ 부처뿐이라고 생각하면 너나 나나, 미운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내 딸이나 남의 아들이나 다 포함됩니다.


19) 위의 책, pp. 10-11

20) 위의 책, pp. 24-25

 

불교에서 무아(無我)라! 내가 없다. 무소유(無所有)라! 본래 내 소유가 없다. 이런 것도 그러한 심심미묘(甚深微妙)한 종교철학적인 의미에서 그때는 필연적으로 무아가 되고 무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무아가 되고 무소유가 되어야지 억지로 ‘뭐 내가 제일 좋은데’, ‘제일 훌륭한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한테 무아가 되라 하면 무아가 되겠습니까? ......  기본적인 철학이 확립돼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21)     


이와 같이 청화 선사가 이야기하는 원통불법, 즉 일원주의는 무아와 무소유의 철학이다. 그렇다면 선사가 이야기하는 무아와 무소유의 철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연기법이다.


우리가 연기법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바로 부처를 아는 것입니다.  실은 연기법이라는 대법(大法) 위에 불교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기법이 바로 우주의 대법입니다.

따라서 우주가 바로 인연, 연기이므로 다른 종교나 다른 철학도 표현을 좀 달리한다 하더라도 모두 연기법에 포섭되고, 특히 불교는 연기법으로 체계가 돼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동체자비(同體慈悲)’라는 것은 남하고 나하고 같은 몸이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과 참다운 자비가 나온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불보살(佛菩薩)은 일체중생을 동일체로 관찰하기 때문에 대자비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째서 다른 사람과 나와 같을 것인가? 분명히 현상적인 세계에서는 뿔뿔이 있는 것인데 왜 한 몸 한마음인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린 것이 이른바 바로 연기법입니다.22)    

청화 선사는 이렇게 연기하는 우주 전체를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참다운 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우주는 진여불성이라 하는 참다운 생명 자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 자체는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우주 자체가 바로 한 덩어리 생명입니다. ......

한계가 없는 우주가 하나의 부처님 덩어리입니다. 하나님 덩어리입니다.23)


청화 선사의 무아와 무소유의 철학은 이러한 연기하는 우주, 즉 생명 자체인 진여불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가 ‘내가 없는 무아(無我)라’ 이렇게 말하면 보통은 다 본래 나와 남이 구분이 있고, 내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부처님께서 나가 없다는 그런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게 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그렇게 말씀을 했겠지? 이렇게 천박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21) 위의 책, pp. 25-26

22) 위의 책, PP. 89-90

23) 같은 책.

 

그러나 불교의 전문 술어로 본래 무아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모양만 달리했기 때문에 생명 자체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본질적으로 본래로 무아의 구조화가 되어 있습니다.

본래로 나가 없고 네가 없는 그런 오직 하나의 생명이 다만 현상적으로 모양을 나툰다 하더라도 모양이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상(假相)만, 그림자만 나투고 있습니다.24)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청화 선사가 이야기하는 원통불법은 연기법에 토대를 둔 무아와 무소유의 철학이며, 연기하는 우주를 진여불성, 즉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생명철학이다.



5. 염불선(念佛禪)


청화 선사는 결코 염불선만이 참된 수행법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염불(念佛)이나 간화(看話)나 묵조(黙照)는 수행의 방법들일 뿐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우리의 생각이 우주가 한생명이라는 진여불성, 즉 본래면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불교수행이다.


우리는 선(禪)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해두어야 합니다. 달마 스님의 어록을 보나, 육조단경을 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상을 여의고서 본래면목 자리를 여의지 않아야 참선입니다. .....

화두를 참구하더라도 제일의제(第一義諦), 상(相)을 떠나고 유무공(有無空)을 떠나버린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본체에다 마음을 안주시켜야 참된 화두가 되는 것이지, 그냥 의심만 한다고 참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묵조선(黙照禪), 묵조한다 하더라도 제일의제가 전제가 되고, 제일의제를 관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25)


청화 선사는 이와 같이 마음이 본래면목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수행하는 참선을 최상승선이라고 부르고, 최상승선의 방법으로 공안선(公案禪), 묵조선(黙照禪), 염불선(念佛禪) 세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선사는 이상의 세 가지 선에 차별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청화 선사는 염불선을 권장했을까?


이행문(易行門)이라. 용수 보살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을 보면 난행문(難行門), 이행문(易行門)이 나옵니다. ‘나는 부처니까 내 힘만 믿고 가면 부처가 된다.’ 자기 힘만 믿고 가는 것이 난행문이라, 어려울 난(難), 아주 힘들게 가는 방법입니다. 부처님의


24) 위의 책, p. 93

25) 圓通佛法의 要諦, p. 207

 

 공덕을 믿고 ‘나도 본래 부처다.’ 하고 그 공덕에 의지해서 가는 것을 쉬울 이(易)자, 이행문이라, 이렇게 두 문을 나누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감성이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감성은 마음을 비약시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 부처님인데 부처님은 하나의 이치가 아니라 바로 생명이라, 내 생명의 고향이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이 자리를 간절히 흠모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을 비약시킵니다.

<중략>

그러나 감성을 소외시키고 내가 부처니까 내 힘만으로 성불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팍팍하고 힘이 듭니다. 기독교의 좋은 점이 그런 데 있습니다. 지금 세계 인구의 17억이나 믿는 만큼 그 마음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강렬한 신앙이 나오겠지요. 너무 맹목적인 점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분명히 이치를 알고 믿으면 참 좋은 것입니다.26)  


이 말씀을 분석해보면 청화 선사께서 염불을 권장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염불이 이행도이기 때문이다.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둘째는 신앙심이라는 감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이성보다는 믿고 존경하는 감성이 평등 불이(不二)의 실상에 계합하는데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셋째는 신앙심에 의존하는 염불선이 기독교와 같은 타종교와 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이유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청화 선사의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1985년 동리산 태안사에서 대중을 모아 금강선원(金剛禪院)을 열어 3년 결사(結社)를 한 후에 일반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기 이전 40년 동안 청화 선사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묵언좌선(黙言坐禪)으로 수행에 몰두한다. 이 시기에 청화 선사는 초인적인 수행을 하는 은둔 수행자로 알려진다. 이렇게 은둔 수행하던 청화 선사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산(下山) 소식을 전한 책이 1980년 출간된 ꡔ淨土三部經ꡕ이다. 40년을 좌선한 수행자가 조사(祖師)들의 어록(語錄)이 아닌 불경을, 그것도 정토부 경전을 번역 출간한 것은 의외였다. 염불은 늙은 보살들이 죽어서 극락가기 위해서나 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던 한국불교의 수행풍토에서 40년을 참선에 전념한 수행자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법문은 염불법문이었던 것이다.

40년의 수행 결과가 염불하자는 것이었는가? 염불하자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청화 선사는 왜 40년의 세월을 보냈을까? 청화 선사는 자신보다는 세상에 관심이 많은 수행자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고향에서 사재로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 광복을 전후한 혼란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 우리나라는 좌우의 사상적 대립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든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청화 선사는 24세의


26)ꡔ마음의 고향, p. 257-258

 

 젊은 나이에 처자를 두고 출가한다. 청화 선사께서 직접 출가의 동기를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선사의 출가 동기는 대도(大道)를 깨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대립과 혼란에 빠져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청화 선사께서 하산을 결정한 것은 길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염불선은 청화 선사께서 40년의 정진을 통해 얻은 대립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청화 선사께서는 ꡔ정토삼부경ꡕ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러한 염불선(念佛禪)은 불성(佛性)에 들어맞는<契合> 천연자연(天然自然)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모든 수법(修法)을 종합 포섭하였으며, 종파(宗派)를 초월한 가장 보편적인 행법(行法)일 뿐 아니라, 바야흐로 분열 투쟁의 역사적 위기에 직면한 불안한 현세대에 가장 알맞은 시기상응(時機相應)한 안락법문(安樂法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이제, 소용돌이치는 현대문명의 폭류 속에서 비록 우리들의 착잡한 인연이 성불의 대도(大道)를 직행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고향인 극락세계와 본래 자성인 아미타불을 염원하는 보편적인 인생관과 그에 따른 성실한 수행(修行)은 한사코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중략>

또한, 그러한 염불생활은 현대인의 불안의식과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도 다시없는 청량제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잃어버린 진아(眞我)의 회복과 분열된 조국의 광복과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복지를 위한 가장 근원적인 최상의 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산승(山僧)이 미급함을 무릅쓰고 ꡔ정토삼부경ꡕ을 번역하는 간절한 비원이 있습니다.27)     


청화 선사는 염불 수행을 통해 현대 사회에 문제가 되는 분열과 대립을 넘어 인류가 평화와 복지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확신을 갖게 한 청화선사의 염불선의 핵심은 무엇일까? 청화선사는 ꡔ정토삼부경ꡕ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싣고 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를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三十二상과 八十수형호를 갖춘 원만덕상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

「관무량수경」에서


27) 청화 역, ꡔ淨土三部經ꡕ, 한진출판사, 1980, pp. 16-20

 

諸佛如來是法界身 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心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相 八十隋形好 是心作佛 是心是佛   


청화 선사는 염불을 단순히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신앙으로 보지 않고 성불의 길로 이해했으며, 그 근거를 ꡔ관무량수경ꡕ에서 발견한 것이다. 온 우주 법계가 곧 부처님이며,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부처님을 생각하면, 즉 온 우주가 부처님이고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이 마음이 부처님의 모든 공덕을 지니게 되며, 이 마음이 부처가 된다. 다시 말하면 이 마음이 곧 부처님이다. 진정한 염불은 성불의 길이며, 염불하는 마음이 곧 부처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모두 염불을 한다면 우리 자신이 모두 부처님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락정토가 된다.       

청화 선사의 스승인 금타(金陀) 화상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은 이러한 ꡔ관무량수경ꡕ의 염불 사상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관법(觀法)이다. 청화 선사는 「보리방편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보리방편문 전 뜻을 한마디로 하면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본체는 법신(法身)입니다. 더 구체화시키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즉, 대일여래나 비로자나불이나 같은 뜻입니다. 또 마음의 본체에 갖추어 있는 무량공덕이 보신(報身)입니다. 마음이 텅 빈 허무한 마음이 아니라 거기에는 자비나 지혜나 무량공덕이 충만해 있는 것입니다. 무량공덕이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연 따라서 일어나는 별이나 은하계 등 우주나 인간이나 일체존재는 모두가 다 화신(化身)입니다. 더 구체적인 이름으로 하도 수가 많고 헤아릴 수 없으니까 천백억화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좁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도에서 나오신 부처님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것은 소승적이고, 대승적으로는 일체존재가 다 석가모니불인 것입니다. 화신의 현상계는 아미타불의 아(阿)에 해당하고 보신경계는 현상의 성품이 되니 미(彌)에 해당하고 화신과 보신이 둘이 아닌 본래 공한 근본경계가 법신으로 타(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신일불(三身一佛)인 한 부처인 아미타불입니다.28)  


청화 선사는 분열과 투쟁의 역사적 위기에 직면한 현대인을 구원할 원리를 정토삼부경, 특히 ꡔ관무량수경ꡕ에서 발견하고, 스승의 「보리방편문」이 그 구체적인 실천법이라는 것을 확신하고서 하산한다. 이렇게 길과 방법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지만 간화선만을 존중하며 다른 수행을 무시하거나 이단시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은 청화 선사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청화 선사는 불교를 안심법문으로 인식한다. 불교의 목적은 모든 중생이 안락한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연기하는 법계의 실상을 알아 그 실상에 따라 살아야 한다. 연기하는 법계는 차별


28) 圓通佛法의 要諦, p. 274

 

이나 분별을 떠나 있는 평등 불이(不二)의 일상(一相)이다. 너와 나, 육신과 정신, 인간과 자연 등의 분별은 연기하는 법계의 실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차별과 분별을 떠나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며, 이 하나의 생명이 부처님이다. 이 부처님을 깨닫고 살아갈 때 우리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불교를 이와 같이 안심법문으로 인식한다면 결코 대립이나 투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는 다원주의 시대이다. 다양한 사상과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청화 선사에게 불교는 다원주의 시대에 서로 대립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원리이다.


따라서 불교 사상의 일원주의, 소위 동일률적인 사고방식, 이런 가르침만이 비로소 세계를 하나로 평화스럽게 묶어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게 됩니다.29)        


이렇게 모든 분별과 대립을 떠나 일원주의로 중생을 구제해야 할 한국불교 교단의 실정은 어떠한가? 


지금 공부하시는 젊은 분들은 몇 마디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문젠데  우리 같은 한문 세대들은 사고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니까 꼭 자기가 하는 것만 옳다고 고집해 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종단의 종헌을 보면 원효 스님이나 의상 스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다만 도일(道一)30) 스님이나 태고(太古) 스님 정도로 밖에 언급이 없단 말입니다.

<중략>

그러다가는 결국은 자기 마음도 좁아지고 우리 종단도 자꾸 풍파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종파가 생기고 하겠지요. 부처님 한 분을 우리의 종주로 모시고 원효나 의상이나 도의 스님 등을 우리 선배로 모시면 되는 것이지, 무슨 이유로 꼭 종파를 갈라서 따로 종교를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가슴이 터질 지경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그렇게들 싸운단 말입니다.31)     


청화 선사는 종파적으로 분열 대립하는 한국 불교의 현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선사는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은 원효, 의상과 같은 한국의 고승들은 도외시하고, 중국 선종의 법맥을 이은 도의 선사를 뿌리로 삼고 있는 조계종의 종헌에


29) 위의 책, p. 11

30) 조계종의 종헌 제 1 조는 “本宗은 大韓佛敎 曹溪宗이라 稱한다. 本宗은 新羅 道義國師가 創樹한 迦智山門에서 起源하여 高麗 普照國師의 重闡을 거쳐 太古 普愚國師의 諸宗包攝으로서 曹溪宗이라 공칭하여 이후 그 宗脈이 綿綿不絶한 것이다.”이다. 도일 스님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청화 선사의 법어를 정리하는 과정에 도의 스님을 잘못 옮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후의 인용에서는 도일을 도의로 수정한다.

 31) 위의 책, p. 225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조계종의 기원이라고 종헌에 명시된 가지산문은 5교 9산으로 분종되어 대립하던 신라 후대에 중국에서 수입된 선종 일파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여 한국 불교의 모든 역사와 전통을 잇고 있다고 자임하면서 모든 전통사찰을 소유하고 관리한다. 한국불교는 중국 선종에 기원을 둔 것도 아닐뿐더러 조계종이 소유하고 있는 전통 사찰의 대부분은 가지산문 이전에 원효, 의상 등의 고승들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따라서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종단이라면 신라 후대에 성립된 선종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조계종 종헌 제 1 조는 이와 같이 현실과도 유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종단 불화의 뿌리가 되고 있다. 종파를 초월해야 할 종단이 종파성을 표방하기 때문에 불화가 생긴다. 성철 스님의 돈점 논쟁도 종헌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헌에 언급된 보조 스님은 점수를 주장했으니 조계종의 적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적통 시비는 간화선 이외의 수행을 이단시하거나 멸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청화 선사의 염불선이 조계종단으로부터 폄하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화 선사께서 순선 사상과 원통불법을 주창한 것은 한국불교가 종파성을 벗어나 대화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에서이다. 청화 선사는 염불선을 이러한 대화합으로 가는 가장 좋은 방편으로 인식했다.

대화합의 길은 모든 사람이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즉 쉬운 길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계종은 혼자서 가는 어려운 길을 표방하고 있다. 종헌 제 2 조에 명시된 종지는 “本宗은 釋迦世尊의 自覺覺他 覺行圓滿한 根本敎理를 奉體하며 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함을 宗旨로 한다.”이다. 조계종은 불교의 목적을 견성성불과 전법도생에 두고 있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직지인심 견성성불’은 육조 혜능의 깨달음을 정당화하고, 그의 선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조계종의 종지가 되어 분열과 대립의 근원이 되고 있다. ‘견성성불 전법도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으로 ‘견성성불’을 하고, 그 후에 비로소 남에게 전법하여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이러한 종지 아래서는 견성성불 하기 전에는 전법도생에 나설 수가 없다. 견성성불 하기 전까지는 전법도생은 미루어두고 오로지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조계종의 수행풍토는 이러한 조계종의 종헌에서 비롯된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간화선을 수행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존중하고, 여타의 수행이나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무능하거나 자기 공부도 성취하지 못한 자들이 하는 못난 짓으로 취급된다. 견성성불을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공부만 해야 한다. 산문을 벗어나지 않고 선원에서 공부만 하다가 죽어야 진정한 도인으로 칭송한다. 특히 대중생활보다는 토굴에서 홀로 수행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한다. 수행자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견성성불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무리 청정하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도 견성했다고 인가를 받지 못하면 인정하지 않는다. 견성에도 차등이 주어지고 진위가 문제된다. 자신이 성취한 견성이 옳고, 다른 사람의 견성은 낮거나 옳지 않다는 독단이 나온다. 이러한 독단이 분열과 대립을 일으킨다.

청화 선사의 안심법문과 순선 사상은 이러한 조계종의 종지에 대한 반성이다. 불교의 목적은 진리의 깨달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안한 행복한 삶에 있다. 깨달음은 이러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후대의 종파적 선종이 대립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선의 목적을 이와 같이 안심에 두었다. 청화 선사는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고 대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파적 대립 이전의 선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화 선사가 순선 시대의 선사상에 주목했을 때 선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도신(道信)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이다. 청화 선사가 순선 시대의 불교를 ‘안심법문’으로 규정한 것은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의 영향으로 보이며, 선사의 선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청화 선사는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육조 이전의 선과 후대의 선을 회통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염불이란 바로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은 바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고 하면 식(識)이란 형체가 없고 부처란 무슨 모양이나 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도리를 안다면 바로 안심이라”

부처나 마음이란 것이 모양이 있다고 할 때는 마음이 걸리겠지마는 마음이란 원래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도리를 안다고 할 때는 마음이 편안스럽다는 말입니다.

<중략>

달마 때부터 6조까지 주로 안심법문으로 모두가 다 마음을 안심케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도 먼저 안심이 되어야 하고 재가 불자님들한테 법문을 할 때도 안심을 시켜야 합니다. ......

또 다시 도신 대사 말씀에 “항시 부처를 깊이 사무치게 생각하고 반연(攀緣)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상(相)이 소멸되어 상이 없고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이런 자리에 들어간다면 부처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모든 상을 다 버리게 되는데 새삼스럽게 애쓰고 구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본다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실한 법성신(法性身)이요, 또한 정법(正法)이고, 불성(佛性). 제법실상(諸法實相), 실제(實際), 보리(菩提), 금강삼매(金剛三昧), 본각(本覺), 열반계(涅槃界), 또는 반야(般若)라고 한다. 이름은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모두가 다 하나의 몸이니라” 하였습니다.

4조 도신 대사 말씀은 권위 있는 말씀인 것이고, 귀중한 말씀이기 때문에 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중략>

“나의 이러한 법요는 능가경에 제불(諸佛心) 제일(第一)에 의지하고 또 문수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지했다.”

저는 육조단경의 부촉품에 있는 ‘그대들이 만약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얻을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증할지니라’는 경구를 보고 또 4조가 말씀하신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을 볼 때 다 비슷한 법문이라서 ‘역시 위대한 분들은 생각이 비슷한 것이 당연한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습니다.32)

       

청화 선사는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염불선이 안심법문으로서 순선 시대의 선과 육조 혜능을 종조로 하는 조계종의 선을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청화 선사는 염불선의 기원을 초기불교에서 찾는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 염불(念佛) · 염법(念法) · 염승(念僧)이라고 무슨 경전에나 다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또 부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염불은 따지고 보면 내가 참 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선(禪)이 됩니다.33)       


청화 선사는 이와 같이 염불선이 부처님 당시부터 면면이 이어져온 정통 수행이며, 대소승의 경론은 물론이거니와 조계종의 종헌에 조계종의 적통으로 언급된 조사들도 염불을 크게 찬탄하고 권장했던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34) 이것은 청화 선사께서 염불선을 단순히 이행도로서 권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청화 선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종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불교를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염불선을 택한 것이다.

청화 선사는 염불선을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본다. 청화 선사는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다름이 없으며, 불교와 기독교도 근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분들은 회통 사상인 것인가? 성자라 하는 분들은 천지 우주의 하나인 도리를 압니다. 우리 중생들은 겉만 보기 때문에 나는 ‘나’요, 너는 ‘너’요, 좋은 것은 ‘좋다’, 궂은 것은 ‘궂다’ 시비 분별해서 봅니다. 형상적인 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모든 존재의 근본바탕, 근본성품(根本性品)을 봅니다. 따라서 근본 성품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란 말입니다. 예수도 공자도 다 그랬습니다. 근본 하나의 자리를 봅니다. 그 하나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고 부처님 아니겠습니까?35)

                      

이와 같이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으로 보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도와 불교의 염불은 근본에서 보면 다름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염불도 부처님이 ‘저 밖에 어디 계신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참선이 못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천지 우주가 그대로 진여불성이다.’ 이렇게 하면서 염불할 때는 그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우리가 참구할 때도 하나님을 저 밖에서만 생각할 때는 그것은 참선이 못 되겠지요. 그러나 ‘내 마음이 본래 하나님이고, 천지 우주는 하나님 기운으로


32) ꡔ圓通佛法의 要諦ꡕ, pp. 259-261

33) 위의 책, p. 224

34) 위의 책, pp. 239-263 참조.

35) 마음의 고향, p. 14

 

 충만해 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라 안 계신 데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오! 주여’ 할 때는 그것도 참선이란 말입니다.

참선이 꼭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본래적인 면목을 떠나지 않으면 다 참선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종교도 비로소 화해가 되고, 그렇게 되어야 자기 마음이 넓어지곤 합니다.36)  


이와 같이 청화 선사께서 염불선을 권장한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수행일 뿐만 아니라 불교교단을 화합하고 다른 종교와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화 선사는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대립과 충돌을 피하지 못하면 인류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제할 원리를 불교에서 발견했으며, 염불선을 구체적인 실천의 방편으로 제시한 것이다.



6. 결어


한국의 대부분의 선사들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깨달음, 즉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청화 선사는 불교를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청화 선사의 선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육조 혜능 이전에는 ‘견성성불’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견성성불’이라는 말은 ꡔ육조단경ꡕ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서 혜능의 깨달음을 정당화하고, 그의 선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 그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ꡔ육조단경ꡕ의 ‘견성성불’은 ‘안심법문’과 근본에서 차이가 없다. 육조가 이야기하는 ‘견성성불’은 우리의 본성이 청정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도(佛道)를 성취하는 것이다. 즉 고통과 번뇌가 없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 부처님이 가르친 평안한 마음을 얻는 것이 성불도(成佛道)이다. 이것은 달마에서 혜가, 승찬, 도신으로 이어지는 안심법문이며, 육조 혜능은 달마 이래의 ‘안심법문’을 잘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대에 간화선이 등장하면서 견성성불의 의미가 변질된다. 견성은 화두를 깨치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화두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결코 견성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성불은 ‘불도를 성취한다’는 의미에서 ‘부처가 된다’는 의미로 변질된다. 그래서 ‘견성성불’은 ‘화두를 타파하여 부처가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즉 불교의 목적은 화두를 타파하여 부처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화두를 타파하는 것이 견성이고, 견성해야 부처가 되는 것이라면 간화선 이외의 다른 수행법으로는 결코 ‘견성성불’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이러한 독단적인 간화선을 종지로 삼음으로써 간화선 이외의 수행을 이단시하거나

 

36) 위의 책, pp. 101-102

 

 외도로 배척하기에 이른다.37) 그 결과 원통불교를 지향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은 무시되고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청화 선사는 과감하게 불교의 목적은 ‘안심법문’임을 천명한 것이다. ‘안심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로 불교의 대요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로 불교는 대소승을 막론하고 진리를 알고 실천하여 진리에 따르는 삶을 실현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목적을 두었다. 중생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깨달은 사성제의 진리를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 하시었고, 제자들은 이를 통해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의 과정을 밟아 열반에 이르렀다. 청화 선사는 이러한 수행을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수행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불교 수행의 바른 길이며 전통인 선오후수의 입장에서 돈점의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한다.

청화 선사는 이러한 안심법문과 선오후수의 수행이 육조 혜능 이전까지는 순수하게 잘 계승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청화 선사는 이 시기의 선을 순선(純禪)이라고 명명하고 오늘의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고 불법을 바르게 실현하기 위해서 순선 시대의 선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화 선사가 생각하는 순선시대의 불교는 ‘원통불법’이다. ‘원통불법’은 모든 것을 통합하여 화해시키는 하나의 도리를 의미하며, 연기법에 토대를 둔 무아와 무소유의 철학이다. 그리고 연기하는 우주를 진여불성, 즉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생명철학이다. 청화 선사는 이러한 불교의 원통불법을 한국 불교의 분열뿐만 아니라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갈등과 투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진리라고 생각했다.

청화 선사는 원통불법을 사회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으로 염불선을 권장한다. 그 까닭은 염불선이 부처님 당시부터 면면이 이어져온 정통 수행이며, 대소승의 경론은 물론이거니와 조계종의 종헌에 조계종의 적통으로 언급된 조사들도 염불을 크게 찬탄하고 권장했기 때문이다. 청화 선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선종을 표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종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불교를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염불선을 택한 것이다. 청화 선사는 염불선을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회통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본다. 청화 선사는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다름이 없으며, 불교와 기독교도 근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화 선사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한 수행자가 아니다. 분열과 대립으로 위기에 처한 민족분단의 현실과 다원화된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종교적, 문화적


37) 한 예로 성철 스님은 “이 화두에서 큰스님이 ‘삼 서근’이라고 대답한 말씀은 말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깊숙한 곳에 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언외현지(言外玄旨)라 하니, 곧 말 밖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 밖의 깊은 뜻, 곧, ‘삼 서근’이라고 대답한 그 근본 뜻을 바로 참구하여야만 불법(佛法)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 서근’이라고 한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지, 그렇지 않고 이것을 그냥 놓아둔 채로라면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그것은 외도(外道)가 될 뿐입니다.”라고 하여 간화선 이외의 수행을 외도시 한다.(성철스님 법어집 1집 6권, ꡔ영원한 자유ꡕ,  장경각, 1968, 머리말.) 

 

 충돌을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 출가했으며, 불교에서 그 답을 찾았다. 청화 선사께서 주창하신 순선 사상과 원통불법은 바로 선사가 불교 수행을 통해 찾은 인류 구원의 진리이며, 염불선은 이러한 진리를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수행 방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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