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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일반법문

22.“근기 · 취향 맞게 참선 · 염불 수행”


제 362호 현대불교



“근기 · 취향 맞게 참선 · 염불 수행”


< ‘무아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는 청화스님(곡성 성륜사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

 청화스님은 불자들에게 어느 한 수행법을 강조하지 말고 각기 근기와 취향에 맞게 참선, 염불, 묵조선, 주력 등으로 정진할 것을 가르친다. 특히 스님은 화두참구 우위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정의(知情意)를 조화시킨 수행법으로 염불선(念佛禪)을 주창하고 있다. >



 ◇ 한국불교에서는 화두선 지상주의라, 염불을 폄하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스님께서는 염불을 강조하는데서 더 나아가,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무자(無字)나 이뭣고,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모든 화두가 다 일체 유루적(有漏的)인 상대 유위법을 떠나서 오직 불심(佛心)만 잡으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공안이나 염불이나 모두 다 같은 것입니다. 묵조(默照)도 청정미묘하고 일미평등한 진여불성을 관조하니까 같은 것이고, 또는 공안도 제일의제(第一義諦)인 한 물건 자리를 참구하는 것이니까 같은 것이고, 염불도 부처가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스러운 극락이 십만억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 방편이 되는 것이지만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요 만법이 본래 부처일 때는 바로 선(禪)인 것입니다. 염불은 부처님 당시부터서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이라고 경전에 다 나와 있고 원래, 우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또, 부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염불은 따지고 보면 내가 참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선(禪)이 됩니다. 그런데 깊은 고려 없이 염불은 하근기(下根機) 중생이 하는 것이라고 하면 문제가 큽니다.

 그러니까 공안선, 묵조선, 염불선 이런 수행법에 옳고 그르다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새삼스럽게 역설하는 것입니다.”


 ◇ 화두, 묵조, 염불선도 근기나 성향에 맞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우리 불성은 원래 원만무결한 것이지만 중생은 숙업(宿業) 따라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서나 의지로 참구하는 쪽보다 화두를 의단(疑團)으로 참구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고 확신을 위주하고 의단을 싫어하는 사람은 화두없이 묵조(默照)하는 것도 좋겠지요. 어느 쪽으로 가나 다 성불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빠르고 더딘 차이는 있겠지요. 자기 근기에 맞으면 더 빠르고 쉬울 것입니다.”


 ◇ 염불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보통 염불이라고 하면 부처의 이름,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고 또는 부처의 상호 곧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원만덕상을 관찰하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또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습니다. 음은 똑같습니다만 앞의 것은 상(像)을 관찰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상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공덕(慈悲功德)이라든가 훤히 빛나는 지혜광명(智慧光明)등 부처님의 공덕을 상상하는 염불입니다. 그 다음은 실상염불(實相念佛)입니다. 이것은 현상적인 가유(假有)나 허무에 집착하는 무(無)를 다 떠나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이른바 법신(法身)자리를 생각하는 염불인 것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자리를 생각하는 실상염불이 참다운 본질적인 염불입니다. 이른바 법의 실상, 내 인간 생명의 실상, 우주 생명의 실상, 이것을 우리가 관찰하는 것입니다. 부처의 법신(法身)은 있지도 않고 또는 공(空)하지도 않은 중도실상의 생명의 광명을 관조하는 염불이 곧 실상염불입니다.”


 ◇ 스님이나 재가 불자들 가운데 ‘어떤 부처님을 염해야 좋을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분이 있습니다. 또는 ‘다 한꺼번에 염해야 할 것인가’하고 마음에 갈등을 갖습니다.


 “부처라는 평등일미(平等一味)자리에는 높고 낮은 우열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명호(名號)나 다 좋지요. 그러나 본사 아미타불이라, 모두를 포괄적으로 법보화(法報化) 삼신(三身)을 말할 때는 아미타불입니다. 그래서 보통 염불할 때는 아미타불을 많이 하는 셈입니다만 어떤 명호를 부른다 하더라도 아미타불을 하는 것이나 다 똑같은 공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 염불선과 화두선이 둘이 아니기에, 염불삼매와 화두삼매의 경지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염불삼매는 어떠한 경계입니까.


 “염불삼매에는 인(因) 과(果)의 두 경계가 있습니다. 일심으로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는 관상(觀像)염불을 하거나 또는 일심으로 법신의 실상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을 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부처의 명호를 외우는 행법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명(佛名)을 외운다 하더라도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꼭 법신자리를 믿어야 참다운 염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닦아갈 때 염불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견성하기 전에, 인행의 염불삼매가 성숙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가서 혹은 시방불(十方佛)이 현전(現前)하며 혹은 법신의 실상 이른바 진여불성에 계합되는데 이것을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합니다.”


 ◇ 스님께서는 삼매 체험을 강조하시면서 선정의 힘으로 나타난 신통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근본 정통선을 익혀야만 참다운 선정의 힘을 얻을 수가 있고 도력도 나오는 것입니다. 정통선으로 해서 사선정(四禪定) 사공정(四空定) 멸진정(滅盡定)까지 못나간다면 우리 자성이 갖추고 있는 무량 공덕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자성 가운데는 삼명육통(三明六通)등 무량 공덕이 갖춰져 있는데, 삼매로써 습기를 녹여야 무량공덕이 나옵니다. 불교가 다시 옛날 도인들처럼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서 자기 스스로 불을 내어 자기 몸을 태우는 정도의 도력이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현대 물질사회에 젖은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이고, 제도하기도 쉽습니다.”


 ◇ 일부 스님들 중  계율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요. 계율은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건입니까.


 “계행이 있어야 깊은 삼매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무애행(無碍行)’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걸림없네 하면서 짓는 파계는 무애행이 아닙니다. 수행의 적일 뿐입니다. 진정한 무애행은 법기에 끄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계행을 지키고도 걸림이 없는것, 그것이 무애행입니다.”


 ◇ 마지막으로 재가자를 위한 수행 지침을 말씀해 주십시오.


 “생활속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이 염불입니다. 명호부사의라! 그 이름 자체에 부사의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음성 모든 형체 하나 하나에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우주의 자비가 바로 관세음보살인 것이고, 우주 생명자체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고 때문에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행법 담당 = 김재경 기자


 ◎  청화스님은



50여년간 선원·토굴서 묵언·일종식·장좌불와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이후 은사 금타스님의 가르침을 좇아 50여년간 제방의 선원과 토굴에서 묵언과 일종식 및 장좌불와 수행에 전념했다. 60세가 넘어서야 토굴생활을 접은 스님은 1985~95년 곡성 태안사에 머물며 당시 폐찰이 되어가던 태안사를 중창했으며, 95~99년 미국 삼보사와 금강선원에 머물며 현지인들과 교포불자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특히 95년 1월 동안거 중에 7일간 대중을 위한 ‘순선안심탁마법회(純禪安心啄磨法會)’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도리를 설하기도 했다.

 스님은 79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사찰과 불교단체의 법문 요청을 마다않고 수시로 법을 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