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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2. 금륜

금륜 13호. 계戒는 우주의 도리1

금륜 13 불기 2545년 10월 】



계戒는 우주의 도리



이 글은 2001년 8월 5일 성륜사 보살계 수계식에서 청화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상相으로 관찰하면 천지 우주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의 구분이 있습니다.

 나 따로 있고 너 따로 있고 구별이 됩니다. 그러나 본래적本來的인 근본根本에서 관조觀照할 때는 모두가 하나의 자리로 귀일歸一됩니다. 성인聖人들은 이와 같이 천지 우주를 하나로 보기 때문에, 나와 남의 구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 우주는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 차원에서 너와 나를 구별해서 보기 때문에, 가지가지 갈등이 생기고 부조리不條理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불자님들께서 보살계菩薩戒를 받습니다. 보살계는 다른 계와는 다릅니다.

 가령 무슨 계율戒律을 지킨다든가, 살생殺生을 말라, 거짓말을 말라 하는 등의 금지적으로, 단순히 금욕적禁慾的으로만 되어 있는 계율戒律은 일반, 보통 계율입니다.

 그러나 보살계라는 것은, 마치 공자님이 말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내가 70세에 이르러 내 마음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럴 것인가? 그것은 공자님이 70세에 이르러 우주의 본바탕을 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본바탕 당체當體를 깨닫고 보니,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또 우주가 하나의 몸이기 때문에 자기 개인의 에고를 위해서, 자기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남에게 신세를 끼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인식론적으로 모두를 대상에서 보면, 분명히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존재가 무엇인가, 우주가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실상에서 본다면, 그때는 너와 내가 구별이 없습니다. 철학에도 여러 학문적 갈래가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 실존철학은 우주의 실상을 밝히는 철학입니다. 우주의 실상은 어떠한 것인가, 겉에서 보면 이것저것 천차만별로 차이가 있지마는, 바탕에서 보면 하나란 말입니다.

 지금 큰 바다에 떠 있는 무수한 섬들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보면 섬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바탕, 바다의 바닥에서 본다면, 섬이 아니라 육지입니다. 섬은 없고 육지뿐입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천개 만개의 섬이 있더라도, 바다의 바닥에서 보면 하나의 육지란 말입니다. 우주 만유가 바탕에서 보면 하나란 말입니다. 

 존경하시는 여러 불자님들께서 정말로 4박5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셨습니다. 50이 넘으신 노숙老熟한 교수님들도 계시고 합니다마는 고생도 하신 반면 보람있는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얼마만큼 공부가 되셨는가는 자기 입장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마는 고생만 했더라도 그것이 절대로 그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단히 소중한 공부를 하신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그 고생 바다에서는 다 고생스럽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분도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한계 상황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또 생사 문제 말고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많습니까. 그러면 고생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고생인가? 고생은 절대로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생으로 해서 다생겁래多生劫來의 업장業障을 녹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수도 있고,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부처라는 중생이 내왕하고 생사윤회하는 길에서 업 따라 죽고 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 우리 생명은 연속됩니다. 그래서 불생불멸이란 말입니다.

 우리 생명 자체는 죽음이 없습니다. 업 따라서 모양만 바꿀 뿐입니다. 금생에 불행하여 젊어서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아쉽게 생각하고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죽자마자 1초의 시차도 없이 그냥 생을 받습니다. 생명 그대로 새 옷인 새 몸을 받습니다.


 우리 생명은 본래가 하나의 실상입니다. 본래가 실상이라는 그 말은, 본래 우리가 부처란 말입니다. 부처만이 참다운 실상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우주의 본성품 자리란 말입니다.

 그 자리는 또한 우주 에너지의, 우주의 본생명 자리이기 때문에, 그냥 무생물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주 생명 자리는 제한制限되고 능력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도 끝도 없는 능력, 한도 끝도 없는 자비慈悲 행복幸福이 다 갖추어진 자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자리가 인격적으로 또는 생명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나 우주 에너지란 말이나 똑같은 뜻입니다. 또한 우주 에너지나 부처님이나 내 생명이나, 모두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명이나 우주에너지나 부처나 똑같은 말입니다. 이 셋이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남한테 보시를 할 때도, 흔히 애견대비愛見大悲라 애견愛見을 여의지 않고 일어나는 소승적인 대비로써 남을 구제한다 하더라도 번뇌煩惱가 있어서, 즉 너는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좀 도와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도와준단 말입니다.

 우주 만유의 진상을 보지 못하고, 중생이 참으로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며 자비를 베풉니다. 참다운 베품이란 무엇인가? 저 사람과 나의 생명이 본래로 둘이 아닌 자리에서 베풀어야 참다운 보시입니다. 하나의 생명으로 저 사람을 봐야, 하나의 생명으로 봐져야 실상 자리에서의 보시이고 참된 보시가 됩니다.

 그 자리가 실상 자리입니다. 다른 말로 실존實存 자리입니다. 원래가 하나의 생명인데, 우리 중생이 그렇게 보지를 못하니까 너 따로 나 따로 본단 말입니다. 그래서 보살계는 바로 불성계佛性戒라, 불성계는 상대유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계가 아니라 바로 우주의 본성, 우리 인간의 본성 자리에서 본성을 밝히는 계란 말입니다.

 공자님 말씀같이 칠십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하는 바로 그 자리가 불성佛性입니다. 우리 마음이 불성에 안주하면 우리 주체성主體性이 바로 불성입니다. 불성에 우리 마음을 두고 행동한다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닌 것이고 다른 동물과도 둘이 아닙니다. 하나의 풀포기, 하나의 돌멩이도 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물활론物活論이라는 것은 어느 것이나 유정무정有情無情 유상무상有相無相, 모양 있는 것이나 모양 없는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다고 보는 철학입니다.

 여러분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식정보화라는 것은 정보의 홍수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정보를 소화 못하면 마음이 항시 불안합니다. 그러기에 지식정보화시대에는 만중생이 모두 다 철인이 되어야 합니다. 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철학 저 철학, 교리적으로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진리의 당체當體를 파악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자기 주체主體가 섭니다. 주관이 섭니다. 주체가 서야 비로소 불안의식을 해소解消할 수 있단 말입니다. 불안한 마음에서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계菩薩戒는 불성계佛性戒라. 바로 불성, 우주 만유의 근본자리에서 우리 인간성의 근본실상 자리에 알맞은 법도法度가, 계율이 불성계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무상청정계無上淸淨戒입니다. 보살계는 상이 없는 계율입니다. 현상에서 보고 있는 차별적인 구차한 계가 아니라 우리 불성의 법도, 이 우주의 법도, 그대로 우리 인간이 준수遵守해야 될 이른바 규범이 보살계입니다.

 조금 더 부연敷衍해서 말씀드립니다마는 모든 지식정보가 혼란스럽게 얽히고 설키고 착종錯綜하고 있어서 우리가 기본적인 인생의 이론적인 체계體系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른바 유물론은 모든 존재는 다 물질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고 이에 대립해서 관념론 또는 이와 의미가 똑같은 유심론唯心論은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념론에 설 것인가, 유물론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은, 불자님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깁니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철학상의 유심론 또는 관념론 쪽에다 우리 이상理想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유물론은 오직 물질적인 행복이라든가 물질적인 평등이라든가 이런 데에다 중점적 관심을 두기 때문에 우리 인간성은 다분多分히 건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비에트 사회에서 그렇게 유물변증법을 가지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립했지마는 칠십여년 동안 이렇게 꿰매고 저렇게 얽어맸지만 결국은 한번에 다 무너진 것 보십시오.

 그것은 그네들의 철학적 경지가, 입각지가 유물론이란 말입니다. 모두를 물질로 본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하나의 마음으로, 불성으로 보는 그런 사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범신론이란 말입니다. 같은 유심론, 같은 관념론 가운데도 범신론汎神論과 일신론一神論이 있습니다. 이런 개념도 간단한 것이니까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일신론은 모든 존재를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했으니까 응당 하느님이 섭리를 해야 되겠지요. 하느님이 창조했는데, 그 창조도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하고 동물하고 다른 식물하고도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사람도 예수하고 다른 사람하고 차이가 있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계율을 지킨다 하더라도, 일신론의 관점에서는 사람끼리는 서로 죽이지 않고 또는 사랑하라고 되어 있지마는 다른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는 모든 동물이나 식물은 사람을 위한 하나의 수단手段이나 방법이나 도구道具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 희생당해도 무방하다고 본단 말입니다.

 자연에 있는 모든 것도 역시 우리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는 무자비하게 개발도 하고 그렇게 훼손시켜도 무방하다고 본단 말입니다. 이것이 일신론의 사상입니다. 그러나 범신론, 넓을 범汎 귀신 신神자, 범신론인데 우리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은 범신론이라는 범주에다 다 집어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없으나, 구태여 철학적으로 말하면 우리 불교나 힌두교나 유교 등의 종교는 모두 범신론에 해당한다고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범신론이란 무엇인가? 범신론은 우주 모두가 바로 신이라고 본단 말입니다. 자연이나 다른 동물이나 인간이나 모두가 다 신이 아님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자연이 곧 신이요, 신이 곧 자연이라고 본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것도 다른 것을 위해서 그와 다른 것을 또 희생시킬 수 없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보살계라는 것은 그러한 범신론적 견지에서 우주가 모두 다 생명 덩어리니까 그 본바탕에서 보면 더 높고 낮은 우열이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 차원에서 보면 천차만별로 구분이 되겠지마는 그래서 우선 철학적으로 범신론의 견지見地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보살계는 불성계입니다. 천지 우주의 근원적인 성품을 기조基調로 해서 이루어진 법도法度가 보살계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보살계는 우리 인간이 우주 내에서 지켜야 할 가장 근원적인 하나의 윤리도덕입니다. 참다운 철학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의식적인 실천이 따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라는 것이 그냥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법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당체當體이기 때문에 마땅히 필연적으로 윤리도덕이 따르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도 가운데서 우리 인간이 닦아야 될 법규法規가 바로 보살계입니다.


 보살계는 열 가지 무거운(重) 계와 마흔 여덟 가지 가벼운(輕) 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흔 여덟 가지 가벼운 계도 열 가지 무거운 계 가운데에 다 포함된 진리이기 때문에 상당한 장황한 시간동안 말씀을 드려야 48계를 다 말씀드릴 것인데 그래서 그 열 가지 무거운 계율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가운데에 마흔 여덟 가지 계는 다 포함되어 있는 계율입니다.

 우리가 계를 받을 때는 먼저 참회懺悔를 해야 합니다. 잘못해서 과거에 지은 죄가 없어져 버려야, 낡은 포대에 든 것을 다 비워 버려야, 새로운 것을 거기에 넣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서는 마땅히 낡은 것을 모두 깨끗이 없애야 하듯이, 과거에 지은 죄를 모두 다 참회해야 합니다. 참회하는 뜻으로 연비燃臂하시기 바랍니다. 참회진언, 옴 살바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스님들이 연비를 해주심).


 우리가 세속 생활에서 무슨 큰일을 한다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많이 있다거나 그럴 때는 절대로 성취를 못합니다. 우리 출가 스님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절에 가서 상주를 할 때도, 적어도 큰 불사를 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 산山의 산신山神이 감동할 정도로 청정해야 불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 인간 존재의 생명이라는 것은 천지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함부로 소홀히 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살계는 바로 천지우주의 근본 성품이며, 우주 에너지의 법도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성의 본래 생명인 진여불성에 알맞는 인간의 윤리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보살계를 가리켜서 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라. 상相이 없는, 상을 여읜 마음의 심지인 규범입니다. 이 계戒는 동시에 금강보계金剛寶戒라, 다시 흐트러지거나 파괴가 안되는 견고부동堅固不動한 윤리도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금강보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금생에 나와서 인간된 보람을 이룩하려고 할 때는 꼭 보살계를 지켜야 됩니다. 그래야 인계생정因戒生定하고 인정생혜因定生慧라, 계를 지킴으로 인해서 삼매, 곧 정定에 들고 정定, 곧 삼매에 의해 지혜를 얻습니다. 계율이 완벽해야만 참다운 깊은 삼매에 들어가집니다. 

 삼매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마음이 오로지 참다운 본체를 여의지 않고서 우리 마음이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하나의 본체本體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동요가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오로지 참다운 정신 통일, 이것이 삼매입니다. 이런 삼매에 들어서야 깨달음이 옵니다.

 보통 이론적으로 해오解悟라 해서 해석해서 아는 정도의 지혜가 아니라 참다운 증오證俉라, 우주의 실상 자리인 불성을 우리가 증명해서 알기 위해서는, 꼭 깊은 삼매에, 깊은 정신 통일이 전제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무슨 명상을 하든지 간에, 깊은 명상에 들려면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마음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그 불성에 깃들어 있는 한도 끝도 없는 환희심이라든가 성품 공덕이 발휘가 됩니다.

 우리가 계율이 없이 참선한다고 해서 그냥 법희선열이라든가 행복감이라든가 충족감이라든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율을 지켜가면서, 철저한 도덕률에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우리 마음의 통일을 도모해야, 깊은 삼매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삼매가 없으면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지금 연비를 하심으로 해서, 과거 누겁 동안에 우리가 지어 내려온 업장을 소멸하셨습니다. 따라서 청신淸新한 마음에서 부처님의 청정 계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1, 불살생不殺生입니다

󰡒죽이지 말라, 생명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불자들이여! 스스로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방편方便을 써서 죽이거나, 찬탄을 하여 죽이거나, 또는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주문으로 죽이는 그런 모든 짓을 하지 말지니, 죽이는 그런 인因이나 죽이는 연緣이나 또는 죽이는 방편이나 죽이는 업을 지어서, 일체 생명 있는 것을 짐짓 죽이지 말아야 하느리라. 보살은 응당히 상주하는, 항상 변치 않는 자비심으로 마치 효심孝心, 효도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뜻을 따르듯이, 진리에 효순孝順하는, 진리에 따르는 효심을 내어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구원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방자한 마음으로, 통쾌한 생각으로 살생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바라이죄波羅夷罪니라.󰡓

 바라이죄는 무거운 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정市井에 나가면 낚시질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안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혹시 하고 계신다면 그냥 중지를 하셔야 됩니다. 낚싯대를 팔고 낚시용품을 파는 그런 장사하시는 분한테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좀 덜 쓰고 절제하면서 산다 하더라도 그런 생명을 해치는, 생명을 죽이는 그러한 직업은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그렁저렁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수련도장修練道場이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인간 세상에서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그냥 지옥地獄으로 전락이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마음 잘 쓰면, 우리 생각 한번 고치면, 그냥 해탈解脫로 우리 마음을 비약飛躍을 시킵니다. 우리 마음을 초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 가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천상보다도 우리 인간을 소중히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천상은 너무 편해서, 너무 편하기 때문에 별로 수행을 하려고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다행히도 사실은 고생이 있고 여러 가지 장애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곁들여서 초월, 해탈로 비약하는 그러한 특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천상보다도 더 돋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생명을 해치는 그런 직업을 않고 또는 못하고도 그 대신 다른 직업이나 성자가 되는 길을 택하셔야 합니다. 다른 직업을 택하여서 조금 더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생명을 해치는 직업을 갖지 않으셔야 합니다.

 어느 누구한테나 이런 직업은 도움이 안됩니다. 우리 생명은 자기 생명 홀로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함께 모두 더불어 있습니다. 지금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계시지만, 여러분 스스로가 각각 떨어져 뿔뿔이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린바와 같이 산소 수소 질소 탄소나 그런 원소元素 차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다 하나로 붙어 있단 말입니다. 사실은 붙어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이 겉만 보니까 각각 떨어져 뿔뿔이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실존적으로 볼 때는 다 붙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나와 남이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것은, 사람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엄숙한 것입니다. 꼭 성인들의 가르침, 인생을 바로 산 성자들의 말씀을 우리가 환희심으로 우리 정성을 다해서 수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인생을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사람은 다시 말할 것이 없고, 다른 동물이라도 또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필요 없이 생명을 해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면, 생명은 다 하나이기 때문에 비단 금생에 그냥 보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 다겁생래多劫生來로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면서 그 가운데서 또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받습니다.

 금생에 수명이 짧은 분이나 또 금생에 병치레를 많이 하시는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과거 전생에 다른 동물이나 다른 사람을 핍박했다든가 다른 생명을 가볍게 함부로 하여, 그런 보복을 받아서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나, 마땅히 살생을 말아야 합니다.


제2, 불투도不偸盜입니다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지니라. 너희 불자들이여! 일체 재물財物에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짐짓 훔치지 말지니라. 보살은 마땅히 불성에 효순하는, 불성에 따르는 그런 마음과 자비심慈悲心을 내어, 항상 모든 사람을 도와 복福이 되고 즐거움이 되게 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남의 재물을 훔치는 자는 보살의 바라이죄波羅夷罪니라.󰡓

 훔치는 것도 역시 사기를 일부러 친다든가 또는 소매치기를 한다든가 하는 것만 훔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수입收入 아닌 것을 갖는 거, 가령 무슨 사업을 한다 할 때도 자기의 신성한 노동의 대가 외의 것을 취한단 말입니다. 부처님 주의主義는 사실상 물질적인 면에서 보면 사회주의입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것은, 공산주의가 말하는 유물론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우리 정신적인 내면적인 사회주의란 말입니다. 따라서 정당한 수입이 아닌 것을 함부로 취한다면, 우리의 복덕福德의 종자를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복을 지어야 공부하기도 쉽고 또 좋은 인연을 만나 공부가 잘 될 것인데 복덕을 훼손시키면, 그만큼 인연도 잘못 만나고 그때그때마다 여러가지 장애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런 복덕의 근원을 없애는 투도, 다시 말해 정당한 재물이 아닌 것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제3, 불음계不淫戒입니다

󰡒음행하지 말라.󰡓 우리 재가불자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서 식구가속食口家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행하지 말라고 하면, 이것은 어긋난 말씀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라고 하더라도 음행을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시는 바와 같이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입니다. 우리가 윤회한다는 것은, 뱅뱅 돌아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여기 태어나고 저기 태어나고 하는 것이 윤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윤회해서는 해탈의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 존재의 구경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해탈이란 말입니다. 윤회를 떠나서 영생하는 영생불멸의 참다운 마음의 고향, 우리 생명의 고향에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목적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역시 생로병사를 떠나서 열반락涅槃樂이라, 해탈의 영생永生의 구경지究竟地에 도달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삼계윤회라,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를 사실은 떠나야 되는 것인데 삼계三界 가운데서 욕계가 가장 낮은 세계입니다. 욕심을 미처 못 떠난 세계가 가장 낮은 세계입니다. 욕심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입니까? 욕심이 곧 욕망이 되겠지마는, 가장 중요한 욕심은 먼저 식욕이고, 그 다음 욕심이 남녀 이성욕異性欲이란 말입니다. 그 다음 욕심이 잠욕 즉 수면욕睡眠欲입니다. 따라서 욕계의 이런 상징은 바로 욕심을 의미하는데, 방금 말씀드린 식욕 이성욕 잠욕 중에서 음행淫行, 이것은 남녀 이성간의 욕심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 법문은 심심미묘甚深微妙해서, 우리 재가불자들이 제대로 잘 못 지키니까, 육재일六齋日을 말씀하셨습니다. 육재일은 음陰 8, 14, 15, 23, 29, 30일인데, 이 육재일만이라도 식욕을 참고 절제해서 한 끼만 먹어라, 또는 그날은 고기를 먹지 마라, 또 내외간도 같은 방을 쓰지 마라, 이렇게 하셨단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만 아니라 삼세 제불三世諸佛이 다 육재일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육재일을 정해서 우리 재가불자들은 의지가 약해서 평생 동안 절제하고 살 수가 없으니까, 육재일만이라도 출가한 셈치고, 출가 수행자인 셈치고 절제하라는 것이 육재일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재가불자님이라 하더라도 음욕을 절제하는 것을, 음욕을 가급적이면 끊는 것을 원칙으로 하셔야 됩니다.

 지금부터 서기 400년 전에 나온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이데아가 무엇인가 하면, 결국 하나의 실상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데아만 실상이고, 다른 현상적인 것은 모두 그림자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 금강경에도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모두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또한 풀끝의 이슬 같고 또는 번갯불 같고 항상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항상 응당히 이렇게 관하라, 이렇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안 본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우리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을 사실로 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현상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로는 사실事實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철학적으로도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이라, 어려운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마는 소박실재론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중생들은 소박하게 나는 나요, 이것은 이것이요, 금은 금이요, 은은 은이요 하면서, 우리 중생들에게 감각적感覺的으로 보이는 이것을 것을 사실로 본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이 믿는 것은, 이것은 사실은 우리 감각의 속임수입니다. 실제로 있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 가르침은, 제가 항시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상식이 아닙니다. 상식이 아니라 실상적實相的인 지혜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겉으로 봐서 우리 중생이 보이듯이 검다 희다 또는 좋다 궂다 그러는 것이지, 본래로 본바탕에서 보면 그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모두가 다 내 몸이요, 그대 몸이요, 이것이고 저것이고 인연 따라서 잠시간 있는 것 같이 보이나,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것은 순간순간 찰나찰나 변화해 마지않습니다. 순간순간 찰나찰나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것은, 사실은 어느 공간, 어느 시간대에도 있지 않단 말입니다.

 불교는 상식론常識論이 아닙니다. 하나의 실상을 그대로 말씀한 것이란 말입니다. 우주 생긴 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단 플라톤이나 그런 분들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인은 또 위대한 학자는 다 한 가지를 말씀했단 말입니다.

 이 현상계, 이것은 꿈같은 것이지, 실제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플로티누스란 철학자도 일자一者라, 우주는 하나의 실상뿐인 것이지, 가상假相이 있지가 않다고 했습니다. 가상, 이것은 그때 그때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것이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것은 일초 전과 일초 후가 똑같지 않단 말입니다.

 이천오백년 전에 우리 부처님은 어떻게 그렇게 깨달아서 우주의 실상實相을 보셨습니다. 그 뒤에도 무수한 도인들이 다 그와 같은 말씀을 역설하고 강조하셨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생들은 잘못 알아먹는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의 흐리멍덩한 눈으로 봐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이 사실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것은 가상인 것입니다.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몽환포영이라서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란 말입니다.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니까, 여실히 그것을 그대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실상을 증명할 수 있단 말입니다. 금생 내내야 애쓰고 산다 하더라도, 가상假相만 가지고 가상 가운데서 그때 그때 시비 분별하고 죽는단 말입니다. 가상이 자기에게, 자기 몸뚱이에게 이로우면 좋다고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욕 문제를 여러분께서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음욕을 끊지 못하면, 결국 자멸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시중에 나가서 보면 차가 얼마나 번잡합니까.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20년 후에는, 인구팽창을 이대로 두면 막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의술은 발달되어서 노인은 불어나고 말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차나 공해문제 때문에 우리가 숨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가정생활을 하는 내외라도 꼭 음욕에 대해서 이성간의 욕망을 절제해야 됩니다. 다만 부부간이 동지간이 되어서 진리를 닦으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부부간의 관계를 맺되 정말로 성자들이 우리한테 당부한 바와 같이 청정하시면 됩니다.

 육재일에도 육재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30일 내내 육재일 비슷하게 우리가 살면 된단 말입니다. 그러면 복을 더 받고 몸도 더 건강해지고, 또 이것은 우주에 대해서도 공헌貢獻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신 분들은 아까 말씀마따나 동지가 되어서 같이 공부를 하시고 아직 결혼을 안하신 분들은 가급적이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모두 웃음) 金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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