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청화 큰스님 법문집/2. 금륜

금륜 14호. 계戒는 우주의 도리 2

금륜 13호 불기 2545년 11월 】

 

 

계戒는 우주의 도리 Ⅱ

 

 

이 글은 2001년 8월 5일 성륜사 보살계 수계식에서 청화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입니다.

 

 

제4, 불망어不妄語입니다.

󰡒망녕된 말을 하지 말라. 너희 불자들이여,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말하거나,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말하여 몸인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항상 바른 말을 하고, 바른 소견을 가져야 하며, 또한 일체 중생들에게도 바른 말과 바른 소견을 갖게 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일체 중생에게 삿된 말과 삿된 소견, 삿된 업을 내게 하는 자는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마땅히 우리가 진리에 걸맞는 말을 해야 됩니다. 우리 인생이 너무나 짧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다 제해 버리면, 정말로 수행할 동안은 지극히 짧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이번 4박5일 동안 공부하신 것은 정말로 대 용단勇斷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동안을 가급적이면 많이 가지셔야 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가 과거 전생에 심은 습관성도 많지만, 금생今生에 나와서도 잘못 생각하고 잘못 배우고 잘못 행동한 습관성習慣性이 얼마나 많습니다. 이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별시수행別時修行이라, 사흘이고 나흘이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업이 녹아 진단 말입니다. 업이 녹아져야 본래적인 성품인 불성이 바로 나온단 말입니다. 흐린 물을 자꾸 휘저어 버리면 맑을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가만 두면 앙금이 가라앉고서 바닥이 보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은 본래로 무량無量의 자비와 지혜와 행복과 능력을 갖춘 불성인데 우리 불성을 중생이 자꾸 잘못 생각하고 분별시비하기 때문에 흐려놓는단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안정을 시켜야 됩니다. 안정을 시키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닷새고 한 달이고 몇 년이고, 우리 마음을 고요하니 명상 체험을 해서 수련을 시켜야 됩니다. 따라서 평생 내 마음 수련하는 것이 내가 금생에 태어난 보람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하셔야 기회機會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막연히 살면 그런 기회가 오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이번 4박5일 동안 50이 넘으신 원로교수님들도 계시는데, 여러분께서 굉장히 훌륭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제5, 술을 먹거나 술을 팔지 말라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버릇 때문에 너무나 필요 없는 짓을 많이 합니다. 술이 우리 건강에 대해 좋은 것이 아닌데도, 술 때문에 이루어진 해악害惡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마음이 영롱하게 철두철미 맑아야 할 것인데, 잘못된 버릇 때문에 혼탁한 마음에다 더구나 술을 먹고 어영부영하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중한 자기 생명을 그마만치 훼손毁損을 시키고, 그마만치 자기 스스로 파멸破滅을 시킨단 말입니다. 그것은 또 우리 마음만 해害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제가 말씀드립니다마는 건강이란 것은 우리 음식과도 굉장히 관계가 있습니다. 음식을 바로 먹고 절제해서 먹는다면, 웬만한 병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너무 음식을 많이 자십니다. 너무 많이 자시고 거기다가 고기고 뭣이고, 굉장히 많이 먹지 않습니까? 참 주의하셔야 됩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몸만 무겁고 비대만 하고 여러 가지 병을 거기에다 묻혀 온단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고 제일 가볍고 제일 쉽습니다. 마음도 몸도 제일 건강한 법입니다. 부처님은 80세에 가셨는데 80세까지 평생 동안 손수 탁발托鉢을 하셨습니다.

그 따가운 인도印度에서 머리에다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맨발로 다니면서 탁발했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공자님이나 다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 사는 대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표본이 없으면 어렵겠지만 표본標本이 있어서 우리는 그렇게 따르면 됩니다. 술장수하는 불자님이 계시면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하시게 되면 “아, 내가 지금 파는 술을 마시고서, 불심을 보다 돈독히 내 가지고 깊은 수행을 하여 지이다.” 이렇게 기원드리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그렇게 하십시오.

 

제6, 사중四衆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입니다

󰡒너희 불자들이여, 출가出家한 보살이나 재가한 보살이나 비구나 비구니의 허물을, 자기 입으로 말하거나 남을 시켜 말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외도外道학인과 이승학인二乘學人, 성문연각승聲聞緣覺乘입니다. 성문연각승이 불법에 대하여 비법비율非法非律을 말하더라도, 항상 자비심으로 이들을 교화하여 대승에 대한 신심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살이 도리어 불법승의 허물을 말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사부 대중은 곧 재가불자님들, 이른바 우바새, 우바이, 선남자, 선여인 또는 출가한 불자들, 비구, 비구니 합해서 사부 대중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부 대중 가운데도 역시 그때그때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서 험담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어찌했던 간에 불법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계에 있어서 굉장히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부처님 법은 우주의 진리기 때문에, 우주의 진리가 보다 융성하고 보다 더 빛나고 해야 할 것인데 조금 허물이 있다고 해서 사부 대중끼리 서로 비방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부처님 법을 그만큼 약하게 만든단 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부처님 법에 배치背馳가 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 우리의 사명이니까, 마땅히 허물이 있으면 직접 만나서 은근하게 우리 정성을 다해서 충고忠告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상호 비방을 할 때는, 필요 없이 오해를 사게 되고, 또 소중한 우리 부처님 가르침을 그마만치 약화시킨단 말입니다.

 

제7, 불자찬훼타계不自讚毁他戒,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입니다

󰡒너희 불자들이여,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비방하거나, 또한 남을 시켜 자기를 찬탄하고 다른 이를 비방하게 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응당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남의 훼방毁謗을 받아서, 나쁜 일을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을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자기의 공덕을 드러내고 남의 칭찬稱讚한 일을 숨겨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훼방을 받게 하는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우리 불자님들은 관포管鮑(관중菅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고사)의 지극히 훌륭한 우정을 들으신 적이 계실 것입니다. 관포란 것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인데, 서기(B.C.) 500년 전분이에요. 500년 전이 아니라 600년 전분이에요. 공자보다 일백년 이상 먼저 사시던 분인데, 관중과 포숙아는 아주 친한 친구란 말입니다. 처음에는 포숙아라는 친구가 먼저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제환공齊桓公을 섬겨서 상당한 지위로 올라갔었는데, 그 포숙아가 보니까, 자기 친구인 관중이 자기보다 훨씬 더 총명해 보인단 말입니다. 관중이란 분이 너무 비판적이어서 나라를 비판하다가 불경죄不敬罪에 걸려서 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만두면 관중이 죄를 받아서 귀양 가가지고 죽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포숙아가 제환공(제후諸侯의 우두머리임)한테 말을 해서, 󰡒저 관중이 나보다 훨씬 총명해서, 내가 제환공, 당신을 모시는 것보다, 지금 죄를 받아서 귀양가게 된 관중을 기용起用하시면, 훨씬 나라에 도움이 되고 당신한테는 훨씬 큰 공덕이 될 것󰡓이라고 건의를 했단 말입니다.

그 제환공도 총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직위를 만들어 가지고 줄 수가 없어서, 포숙아가 자기 직책을 양보했습니다. 자기 직책을 내놓으면서 포숙아가 제환공에게 간청을 드리니까, 제환공도 감동해서 포숙아보다 더 높은 자리를 관중에게 주었습니다. 관중은 훌륭한 분이라, 제환공을 섬겨서 정말로 제나라를 그 당시 중국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이른바 패자覇者를 만들었습니다. 장차 주나라의 튼튼한 초석礎石을 놓은 것이 관중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백년 후에 나온 공자도, 관중을 찬탄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관중이 없었더라면 북쪽 오랑캐한테 우리 문화민족인 한족이 핍박을 당할텐데 다행히 관중 덕택으로 오랑캐한테 유린당하지 않고서 문화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찬탄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남을 함부로 비방하지 않습니다. 신의 있게 친구를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공평무사公平無私합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을 보면 참 딱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합니다. 우리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참 딱합니다. 그와 같은 분들도 이 부처님의 보살계,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보살계菩薩戒를 꼭 한번씩이라도 자기 스스로는 못 지키더라도, 이론적으로라도 알면 좋을 것인데, 모르기 때문에 너무 지나친 행동을 취한단 말입니다. 마땅히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꼭 남을 찬탄해서 보다 더 높은 쪽으로 가고 결국은 성자가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야스퍼스(yaspers)란 철인도 말하기를 참다운 실존, 우정이 무엇인가, 실존적인 우정은 그 사람을 참다운 실상實相인 영원적인 해탈로 인도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참다운 우정이라고 말했단 말입니다. 참다운 우정은 역시 성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자의 길로 편달시켜 주고, 그 길을 더불어서 가는 것이, 이것이 참다운 우정입니다. 내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이 되었으면 서로 격려해서 애정만 쏟으려고 하지 말고서, 정말 참다운 우정, 서로 피차彼此 성불로 가는 그런 도반道伴이 되어서, 서로 책선責善도 하고 서로 충고도 하셔야 될 것입니다.

 

제8, 자기 것을 아끼고 남을 욕하지 말라입니다

󰡒너희 불자들이여, 너희는 인색하지 말며, 남을 인색하도록 가르치지도 말지니라. 보살은 일체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할 것이어늘, 보살이 나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돈 한 푼,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보시해 주지 아니하고, 법法을 구하는 이에게 한 구절의 법문도, 한마디의 게송도 일러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쁜 말을 욕설하는 자는 보살이 무거운 죄니라.󰡓

 

여기에 있는 바와 같이 보살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남이 달라고 할 때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 아닙니까?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인고 하면, 자기와 남을 절대로 둘로 생각하지 말고서,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남한테도 똑같이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반 보살과 보살이 아닌 사람의 행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허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철학적으로 종교적 깊은 뜻으로,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 하나의 실상이다, 저 사람과 나는 원래 한 몸이다󰡓생각하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몸으로 생각하고 베푸는 것이 참다운 보살입니다.

그러나 한 몸으로 알지 못하고 구분해서,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우월감優越感에서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좀 베풀어야겠구나󰡓 하고 베풀면, 결국 하나의 위선僞善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선이 안 되려면, 철학적으로 기본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어든 하물며 모든 것을 나와 더불어서 꼭 하나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이론적으로 따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진리와 진리 아닌 차별이 어디 있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는 천지 우주를 하나의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으로 봅니다. 하나의 진리로 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은 둘로 보고 셋으로 보고 나누어서 본단 말입니다.

 

제9, 화내지 말고, 참회하면 잘 받아 주라입니다

󰡒너희 불자들이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착하게 대하여 다투는 일이 없게 하며, 항상 자비심과 효순심孝順心을 내어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일체 중생이나 중생 아닌 물질에 대해서라도 나쁜 말로 욕설하고 폭행과 구타를 하고, 좋은 말로 참회하고 사과하여도 성난 마음을 풀지 않으면,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우리가 자칫하면, 자기가 좀 계행을 잘 지키는 사람은, 계행을 못 지키는 사람을 굉장히 멸시합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것도 역시 참다운 진리에 대한 소양素養이 없어서 그럽니다. 진리에서 본다면, 뭘 잘 몰라서 계행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내내야 그 겉에 있는 행동만 파괴가 되는 것이지 근본적인 그 사람 생명은 똑같이 다 진여불성이란 말입니다. 바탕에서 본다면 오염汚染될 것이 없습니다. 겉으로 봐야 선善이 있고 악惡이 있고, 내가 있고 남이 있지, 바탕에서 본다면 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봐서, 저 사람이 하루 빨리, 한시 빨리 참다운 계행을 지키도록까지 도와줄망정, 덮어놓고 자기가 좀 지킨 둥 만 둥 하면서 다른 사람하는 것을 멸시하고 함부로 비방한단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10, 삼보三寶를 비방하지 말라입니다

󰡒너희 불자들이여, 자신이 삼보三寶를 비방하거나, 남을 시켜 비방하지 말지어다. 보살은 한 마디라도 부처님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천 백 자루의 창검槍劍으로 자기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여겨야 할 것이어늘, 하물며 자기 입으로 비방하리오? 신심信心과 효순심孝順心을 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견邪見,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도와서 삼보를 비방한 자는 보살의 무거운 죄니라.󰡓

 

이 우주에 가장 큰 보배가 삼보입니다. 석 삼三자 보배 보寶자, 이른바 부처님과 부처님법과 부처님법을 지키는 불자들과가 삼보입니다. 그래서 독경삼보篤敬三寶라, 항시 삼보를 공경恭敬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 법은 바로 일체 중생이 다 공경하고 받들어야 될 우주의 법이란 말입니다. 또는 바로 그 자리는 생명生命 자리입니다. 부처님이란 것은,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법성法性이라, 진여眞如라, 법계法界라. 여러 가지 진리眞理에 대한 표현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 자리란 말입니다. 현대말로 하면, 우주 에너지의 자리란 말입니다. 이런 자리는 변동變動이 있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사회 변천 따라서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했지만, 위대한 철인哲人들이 다 말한 것은 다 똑같이 말씀을 다했습니다.

‘스피노자’같은 분도 근세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스피노자 같은 분도 참 천재같은 분인데 가까스로 마흔 세살엔가 네 살엔가 작고했습니다. 그 천재들은 과거 전생에 많이 닦아서, 금생에 말한 것들이 모두 다 진리에 수순隨順해서 진리에 벗어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도 독신생활獨身生活로 해서 그와 같이 마흔 몇 살까지 살다가 다른 친구들이나 나라에서 위대한 천재 같은 분이니까 도와주려고 했으나, 받지를 않았습니다. 도움 받으면 구속되고 만다고 해서 받지 않고서 하숙방에서 안경을 갈아서 안경 간 노동으로 자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자기 하숙방에서 안경을 갈고 있으니, 위생적으로 좋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 먼지 구덕에서 안경알을 갈다가 폐병肺病에 걸려서 죽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흔 네 살에 간 분이 위대한 철학을 낸 것이 무엇인가 하면󰡒우리 인간들은 하나 하나의 것을 영원의 차원에서 관찰하라, 다시 말하면 본체本體에서 보라󰡓는 말을 했단 말입니다. 즉 실상에서 보라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하나하나의 것을 현상적인데서 봅니다. 그러나 영원한 차원에서, 본래면목적本來面目的인 차원에서 보면 다 하나가 될것인데…. 그래서 스피노자도 󰡒하나 하나의 존재를 모두가 다 영원의 차원에서 관찰하라. 그러면 모두가 영원에 참여한다󰡓했습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모두를,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영원의 차원에서 본다면, 모두 다 부처 아님이 없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분들은 틀림없이 과거 전생부터 닦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약간의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만 본다하더라도 인류사에서 위대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의 소크라테스(Socrates) 이전에도 훌륭한 철학자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ritos) 또는 엠페도클레스(Emphetocras)라든가 그런 분들은, 그 당시도 모든 존재를 존재 자체에서 본단 말입니다. 즉 모든 존재를 실상實相에서 본단 말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느 철인의 가르침보다 확실하고 보다 더 간단하고 철저합니다. 이른바 진여연기眞如緣起라, 진여연기는 천지우주天地宇宙의 모든 본래 자리가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일체 존재는 진여불성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님한테서, 진여불성에서 나왔습니다. 산이요 냇(川)이요 물이요 흙이요 또는 공해公害가 짙은 오물汚物이요 모두가 다 본래면목에서 본다면 진여불성뿐이란 말입니다.

 

진여불성은 오염이 안됩니다. 우리가 현상적現象的인 자리에서는 오염되고 변질되는 구분區分이 있을지 모르지마는 그 본래의 자리, 본래의 바탕에서 볼 때는, 또는 원자原子차원에서 볼 때도 오염이 되고 안되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보다 훨씬 미세한 물자체物自體, 존재자체存在自體에서 본다면 그것이 바로 불성이고 진여고 또는 허공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는 오염될 턱이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바탕 자리에서 봐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보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고 바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입니다. 그런 자리가 인격화된 상징적象徵的인 표현이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보면 󰡒염불행자念佛行者 인중분다리화人中芬陀利花라󰡓는 말이 있는데, 염불하는 사람은 사람 가운데의 아주 향기로운 분다리화 꽃이라는 말입니다.

염불念佛하는 사람들은 염불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생명의 근본根本이 부처님입니다. 또는 우주생명의 근본자리가 바로 부처입니다. 따라서 염불이란 것은 우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의 근원자리를 우리가 환기喚起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주宇宙의 본래 자리를 현실적現實的으로 상징화象徵化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염불󰡓입니다. 또한 우주의 본래 생명本來生命을 부르는 것이 염불입니다. 그래서 염불하는 우주의 근본 자리에다 마음을 두는 염불수행자念佛修行者는 인중분다리화라, 사람 가운데서 가장 향기로운 연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관음세지위기승우觀音勢至爲其勝友라,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이 염불하는 사람, 우주의 본체本體, 자기 본래면목을 부르는 그런 사람을 가장 훌륭한 벗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진정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하신다면,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이나 또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나 다 우리를 참다운 벗으로 안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제1 불살생이라, 죽이지 말라. 제2 불투도不偸盜라, 훔치지 말라. 정당한 수입이 아닌 것을 갖지 말라. 제3 불음不淫이라, 음탕한 행위를 하지 말라. 꼭 내외간 가족구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참다운 동기同氣로 절조節操를 지키고 순결하게 살으셔야 합니다. 제4 불망어不忘語라, 망녕된 말을 말라. 제5 불음주不飮酒라, 술을 먹지 말고 술을 팔지도 말라. 제6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제7 자기를 찬탄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제8 인색한 마음으로 남한테 베풀지 않는 각박한 행동을 취하지 말라. 제9 남들이 잘못했다하더라도 참회하면 용서할 것이지 진심瞋心을 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옹졸한 마음을 갖지 말라. 제10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런 열 가지 삼세부처님 삼세제불이 정하신 또는 우주 자체의 법도인 열 가지 계율戒律을 능히 지킬 수가 있습니까? 능히 지키겠습니다.(불자들이 큰소리로 대답함)

이상으로 보살계 무상심지계無上心地戒 또는 금강보계金剛寶戒 불성계佛性戒 보살계菩薩戒의 수계식受戒式을 마칩니다. 금생今生에 꼭 성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01년 8월 5일 성륜사 보살계 수계식 법어]  

 

 

 

다시 듣고 싶은 큰스님 법문 모음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는 상대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서 비판하는 것은 대망언이 되거나 자찬훼타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상대편도 집착執着이 심해서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것이 아니라 진지眞摯하게 정말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 아까 말씀드린 중세기中世紀의 에크하르트(Eekhart)나 니콜라우스(Nicolaus)나 그런 분들은 진지하게 신학神學을 공부하고 자기 생명을 다 바쳐서 순교殉敎도 할려고 한 그런 분들을 볼 때 불교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만 위대偉大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이른바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을 갖추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존재가 오직 하나의 진리라는 일원론적 진리관眞理觀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진리도 하나요 내 마음도 하나로 향해 가야 합니다. 하나의 진리관은 상식적常識的인 말이 아닙니다. 모든 현재의 과학, 철학, 종교도 하나의 진리로 귀일歸一되어 가고 있습니다. 일체 존재는 근원적으로 본래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도 하나 쪽으로 가고 싶은 간절한 추구심追求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종당에는 다 부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부처가 되고 마느냐 하면 본래本來가 당체當體가 부처기 때문입니다. 본래시불本來是佛이라 우리 본성이 부처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성이 바로 부처기 때문에 부처가 되어 버려야 하는 필연성必然性이 있습니다. 다만 빠르고 늦는 차이 뿐 일체 중생이 개당작불皆當作佛이라 응당 당연히 부처가 된단 말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섭상귀체攝相歸體라, 상相에서 성품性品으로 간단 말입니다. 곧 체體로 간단 말입니다. 염불念佛하는 것이나 화두話頭드는 것이나 모두가 다 상相을 떠나서 근본성품으로 가는 공부입니다. 우리 중생이 금생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요새 명상도 별별 명상瞑想이 다 있습니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명상 가운데 부처님 명상이 가장 올바른 명상입니다. 가장 궁극적이고 본래로 정당한 명상이 부처님 명상입니다. 불자 가운데도 지금 유행하고 있는 명상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럽니다. 모든 명상 가운데 부처님께 귀환하는 명상 같이 차원次元 깊고 궁극적인 명상은 없습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 부처님인데 부처님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명상이 어디 있습니까. 염불같이 좋은 명상 쉬운 명상이 없습니다. 염불, 그러면 염불이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 쉬운 것인데 공부가 좀 어려워야 할텐데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나 공부가 그렇게 어려울 필요가 없습니다. 본래 우리가 부처고 천지우주도 부처입니다. 우주에 부처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부처고 천지 우주가 부처님 덩어리입니다. 자기한테 해코지하는 사람, 독사고 모두가 바로 볼 때는, 성품으로 볼 때는 다 부처란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고 미워하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처를 빨리 증명할 것인가. 내 마음 가운데 내 마음이 바로 핵심자리고 중심이니까 내 마음을 바로 그대로 느끼고 구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어려운 말로 하면 삼신사지三身四智가 다 들어 있습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보면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대들 자성 가운데에 청정법신淸淨法身이 있고 원만보신圓滿報身이 있고, 다 있습니다. 또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셨어요.

우리 자성, 우리 인간성, 우리 마음 가운데에 일체 존재의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행복도 진리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다 간추려서 말씀드리면 상락아정常樂我淨입니다. 상, 락, 아, 정이 무엇인가.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하는 우리 생명은 영원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우리 생명을 절대 죽고 남이 없습니다. 금생에 인연이 다해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이지 생명을 절대로 죽고 남이 없습니다. 금생에 인연이 다해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이지 생명은 절대로 죽고 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그것이 상, 락, 아, 정입니다. 그래서 상, 락, 아, 정의 상인 것이고 마음으론 즐거울 락자 일체 행복이 본래적으로 나한테 갖춰져 있단 말입니다. 누구한테 행복을 꾸어 올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에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자기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잘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행복한 정도가 아닙니다. 어떤 말로 자기를 미화시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를 칭찬한다 하더라도 본래 지닌 자기 마음을 다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우리가 생각할 정도의 우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바로 그대로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그대로란 말입니다. 부처님한테 있는 부처와 우리한테 있는 부처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가장 확실히 말씀드리면 천지우주가 사실은 부처님뿐인 것입니다.

중생이 어리석어서 중생의 자꾸 쓸데없는 분별시비 때문에 그렇게 보지를 못한단 말입니다. 오직 분별시비만 있는 것이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뿐이고 모두가 다 행복뿐이고 영생永生의 생명뿐입니다. 천지우주나 내 몸에나 행복만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 자체가 모두 다 총상법문으로 해서 진여불성뿐이고 진여불성 아닌 것은 없습니다.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바로 보면 불성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화두를 놓고 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체성에다 마음을 두고서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덮어놓고 의심한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하늘에 있고 어디에 계시는 부처님한테 갈앙渴仰으로 해서 부처님한테 가호를 입어야 되겠다는 것은 참다운 불법이 못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불교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 생명과 나와의 간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틈이 없는 것입니다. 천지가 부처뿐인데 무슨 틈이 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 가신 지가 2500년 이상이 되시지만 부처님은 생생히 우주에 바로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주생명이란 말입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도 절대로 구분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진리,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학교 문전에 안 다녔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에는 “절대로 나는 아주 손해봤다, 나는 무지하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러고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본래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 같은 분은 참선의 할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일자무식이란 말입니다. 그분은 학문을 많이 연구한 분이 아닙니다. 참선의 중요 핵심을 연구할 때는 육조단경을 이야기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정도로 위대한 분입니다.

그분 가신 지가 1,200년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지금 뭘 많이 배웠다, 안배웠다, 그런 것은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얼마만치 우리마음이 부처님 사상을 오롯이 다 믿고 있는 것인가, 그와 동시에 자기 마음이, 자기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가 훨씬 위대한 존재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로 용기가 나오고 삶에 보람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항시 자기를 비하卑下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영명연수永明延壽(904~975)선사는 10세기경 중국분입니다. 아주 위대한 분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참수분사斬首焚死라, 인연이 잘못되어서 내 목을 당장 베어간다 하더라도 내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정말로 불로장생하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훌륭한 불로장생의 약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 없다.”고 연수선사는 말씀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어떻게 죽든지 간에 자기 스스로는 잘 몰라서 나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하더라도 거슬러 올라가서 몇 백세 몇 만생 과거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받는 것이 모두가, 다, 자기가 지어서 받습니다.

우연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 지어서 받는단 말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보나 다 남한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가 다 자기가 지어서 받는단 말입니다. 그와 똑같이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행동, 우리가 생각하는 사고思考,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가, 남이 듣기 싫은 말을 하면 그것이 업業이 되어서 내생에 또 받습니다. 지금 하는 행동 모두가 다 우리 미래를 규정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설사 내 목을 베어간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에 우리가 지어서 금생에 받는 것이기 때문에 금생에 받아 버린다 하더라도 죽음을 본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죽은 뒤에 저승에 가서 어디로 갈 것인가 몰라 하는데 사실은 죽자마자 일초의 시차도 없이 또 그냥 몸을 받습니다. 金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