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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일반법문

9. 가까이서 뵌 큰스님

가까이서 뵌 큰스님


<2001년 6월 3일 무안 혜운사에서 가진  현대불교신문(322호 2001.6.13) 인터뷰

기사입니다.>



                    【가까이서 뵌 큰스님】

 

                 청화스님 <곡성 성륜사 조실>


322호 [2001-06-13] 

내용  “지계없이 마음정화 어렵지요”


부처님의 계율

우주의 질서 함축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률



생활속 가장 쉬운

수행법은 염불

부처님 명호

언제나 염하세요



◇3일 전남 무안 혜운사에서 법문을 마친 스님이 참석한 불자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항상 겸손하시고 자비하신 스님의 모습에서 불자들은 환희심을 내고

스님처럼 수행하고자 새롭게 발심하게 된다.



덕높은 스승을 찾아 법문을 청하고, 그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여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한걸음 한걸음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 바로 불자의 소명이다.

이 불자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매월 첫째 일요일마다 전남 곡성 성륜사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모여든다. 평생 수행의 길을 걸어온 성륜사 조실

청화스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다. 6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었던 지난 3일

새벽 5시, 기자도 청화스님의 법문을 듣기위해 서울 조계사 앞에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성륜사가 아니라, 전남 무안 혜운사로 향했다. 전남 무안군 운남면 대박산에 위치한 혜운사는 청화스님께서 지은 절이다. 무안은 스님의 고향으로, 스님은 이곳 혜운사 토굴에 머물며 수행을 했는데 지금의 혜운사 법당이 예전의 토굴 자리이다. 현재는 스님의 제자인 무상스님이 주지 소임을맡고 있는데, 이 혜운사에서 봉행된 예수재 회향법회에서 스님이 법문을 하시기로 된 것이다. 


서울에서 5시간여를 달려, 무안의 넓은 평야로 둘러싸인 대박산 혜운사에 도착했다. 절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기위해 불자들이 당도해 있었다. “우리 중생들은 본래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제행무상이라, 모든 존재는 본래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간 순간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변해갑니다. 만법유정이라, 모든 것은 그때 그때 태어나고 생겨납니다. 그러니 나라고 고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성 그 자리가 바로 순수생명자리입니다. 모든 존재가 부처임을 깨달은 분이 바로 성인입니다. 바른 신앙을 하기위해서는 모든 게 다 하나의 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힌두교, 불교 다 마찬가집니다. 우주의 근원적 생명을 이름만 다르게 부르는 것 일뿐 모두 같습니다.


항상 명심하십시오.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느 것도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찬란한 생명이자, 광명입니다. 진여불성이 나의

근본생명이자 모든 것의 근본 생명임을 깨달으세요.”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대웅전 앞마당에 선 불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법단을 내려오셨다. 깡마른 몸매에 형형한 눈빛과 자애로운 미소의 스님 모습 자체에서 많은 불자들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는 듯 했다. 성륜사신도회 부회장인 배광식거사는 청화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85년인가, 제가 집사람과 스님을 뵙기 위해 태안사에 갔을 때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때 걸레로 마루바닥을 훔치고 계시다 저희를 맞으셨어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큰스님이 마루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직접 걸레질을 한다는 것을요. 그때 <금강경>에 ‘희유세존(希有世尊)’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된 연유를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스님의 자세, 행동 그대로가 바로 가르침이 되어 부단히 우리 불자들을 각성시키시는 걸요.”스님을 곁에서 지켜본 불자들은 한결같이 항상 겸손하고, 자비하신 청화스님의 모습에 감복한다. 찾아온 불자들이 행여 불편할까 항상 편하게 앉으라 하고, 방석이라도 없이 앉은 이가 있으면 스님이 앉았던 방석을 내어주신다.


몇해 전에는 당신이 평생 지니며 굴리면서 수행의 도반으로 삼아온 온 염주를 ‘우리는 선우’의 장학기금마련 자선 바자회에 내놓으시기도 하는 등 자비로운 스님의 면모는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일찍이 14살 되던 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5년제 중등학교과정을 마친 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고향 무안에 청운고등공민학교를 세워 후학을 지도했다. 그 학교가 지금도 남아있는

망운중학교다.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던 스님은 청년시절부터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궁극에도 풀리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문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는데 금타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의문을 풀게되었다 한다. 스님이 은사 금타스님의 유고들을 모아 펴낸 <금강심론>에는 근본불교의 핵심으로서 견성성불에 필수적인 근본선정인 구차제정의 역설과 각 경론의 모든 수행법과 수행의 위차를 종합 회통하여 해탈 16지로서 수행차서를 정립해 놓았는데, 특히 불교의 우주관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이같은 금타스님의 영향으로 현대물리학과 철학 등에도 매우 해박하고 법석에서도 이를 불교적으로 풀이한 법문도 자주 하신다.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물질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입자를 분석하면 핵전자의 소립자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텅 비어버리는 공의 세계가 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저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순수에너지가 바로 불성이라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양자론과 현대과학으로도 증명하지 못하는 순수 에너지의 실체를 설명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세계를 스스럼없이 펼쳐 보이시는 것이다.


스님은 수행이 철저하셨던 은사스님을 따라 묵언과 장좌불와를 평생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오셨다. 상원, 백장암 등 여러 토굴에서 50여년간 늘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없이 수행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직접 끼니를 만들어 잡수시고, 의복 빨래도 직접 하셨다. 한 겨울에도 찬물에 목욕을 하는 등 철저히 정진했다. 

스님은 지난 95년 미국으로 건너가 팜스프링

금강선원에서 3년간 하루 한끼 공양과 묵언, 장좌불와의 정진결사를

성취하셨다. 현재 청화스님은 80에 가까운 세수지만 참선과 묵언수행을 철저히 지키시는 등 여전히 엄격한 수행의 길을 걷고 계신다. 그런 스님이

불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은 계율을 지키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률 가운데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 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계율은 우리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우주의 질서입니다.

유교의 인의예지신이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십계명, 그러한 세계종교의

우수한 도덕률도 다 불교의 계율에 들어있습니다. 계율만 제대로 지키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마음도 편해지고 주위도 편해집니다. 우리가 참선염불을

해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려 하더라도 계율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이지 마음이 정화가 안됩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마음의

정화를 도모하는 것인데 계율이 밑받침 안되면 명상을 해서 이루는 마음 정화는

올 수가 없지요.


”혜운사에서 스님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비롯한 내방객들을

맞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우리에게 연신 편히 앉으라고 하셨다. 옆에 있던 한 분이 “편히 앉지 않으시면 스님께선 불편해서 말씀을 제대로 못하십니다.

편하게 앉으세요”라고 눈치를 준 후에야 무릎을 풀어 편한 자세를 취했다.

스님께 옛날 수행하던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내가 수행은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이러고 있습니다. 수행을 잘

했으면 삼명육통을 다해서 신통자재할 것인데, 수행을 흉내만 내놔서 잘

못했어요. 그래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후회만 막심합니다.

당시에 계행도 훨씬 더 철저히 하고, 공부도 용맹정진을 거듭했으면 진작

생사대사를 끝내버렸을 터인데... 나는 지금도 생사대사를 다 끝내버리지를

못했거든요. 공부를 시원찮게 했다는 증거 아닙니까.”언젠가 기자가 서울에

있는 책방 여시아문에서, 안거를 마치고 시자와 함께 책을 사러 오신 스님을 우연히 만나 뵙고, 안부를 여쭈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스님은 “나이가 들어서도 묵언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30~40대에 열심히 공부하고, 나이 들어서는 중생교화에 힘써야 마땅하나, 아직 공부가 덜 돼서

중생교화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참된 수행에 이르기 위해 묵언수행은 필수입니다.


정평있는 수행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라며 겸손해 하셨다. 스님께 다시 여쭈었다. “스님, 공부하다가 막힐 때는 어찌해야 하나요? 특히나 요즘엔 다양한 수행법이 유행해서 불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어떻게 판단하고 수행에 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모든 명상법이 다 좋기는 좋은데, 그런 법은 해탈의 법이 아닙니다. 이른바 생사대사를 해탈하고 성자가 되는 법이 아니라, 불교적인 의미로 말하면 유위법이라. 삶의 유한적인 공덕을 위해 하는 법이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다든가, 머리가 맑아진다든가 하는 데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좋겠지요.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정말로 생사윤회를 떠나서 부처가 되어야겠다, 성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에겐 미흡합니다. 미흡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제시한 수행법으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 하는 데는 좋지요.


그러나 그것이 구경(究竟)의 경지라고 하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부처님법과는 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근본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도 삼매에 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위빠사나가 끝이 아니라 이 위빠사나를 통해서 삼매로 나아가면 좋지요. 그러나 보통은 위빠사나가 제일 수승하다고해서 문제가 되요. 부처님의 명상법이 제일 완벽하고, 가장 최상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 명상법은 바로 성인이 되고, 생사대사를 초월해서 영생으로 가는 법이기에 가장 완벽한 법입니다. 다른 법은 최상의 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입니다. 다른 법은 유한적인 공덕이 크므로,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성을 알고 하면 좋습니다.” 하루 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생활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 법은 쉽다고 하면 제일 쉽습니다.


어째서 쉽다고 하느냐면 우주의 원리를 보탬이 없이 그대로 정확히 말씀하신 것이 부처님 법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속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은 염불입니다. 염불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체계가 복잡한 것만을 높은 줄 알고 염불은 너무 쉬우니까 소홀히 생각한단 말입니다.

명호부사의라! 그 이름 자체에 부사의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음성 모든 형체 하나 하나에 다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 이름입니다. 제일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삼세제불이 모두 순수한 이름입니다. 우주의 자비가 바로 관세음보살인 것이고, 우주 생명자체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수행방법으로 어느 한 방법에만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화두선으로, 의지적인 사람에게는 묵조선으로, 각기 근기에 맞도록 이끌어주신다. 특히 스님은 지정의(知情意)를 조화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염불선(念佛禪) 제창하기도 하셨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현대인들에게 알맞은 행법이 인간의 근본을 되찾는 염불법이라 설하시는 스님은 염불에 화두를 붙여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방법과 본래가 부처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의 법신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의 방법을 통해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가르침을 주셨다.

 


이은자 기자



청화스님은? 

50여년 일종식

79세 매주 법문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며, 현재 전남 곡성 성륜사에

주석하고 계신다. 출가이후 은사 금타스님의 가르침을 좇아 50여년간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백운산 사성암, 혜운사, 태안사 등의 토굴에서 묵언과 일종식 및 장좌불와 수행에 전념했다.

60세가 넘어서야 토굴생활을 접은 스님은 1985~95년 곡성 태안사에서 머물며 당시 폐찰이 되어가던 태안사를 중창했으며, 95년~99년 미국 삼보사와 금강선원에 머물며 현지의 불자들과 교포불자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특히 95년 1월 동안거 중에 7일간 대중을 위한 ‘순선안심탁마법회(純禪安心啄磨法會)’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도리를 설하기도 했다. 스님은 태안사때 부터 지금까지 매월 첫째주 정기법회에 법문을 하신다. 이 법회 때마다 전국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기위해 불자들이 모여든다. 미국에 머물 당시에도 스님의 법문을 청하는 국내 불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98년 일시 귀국해 전국의 사찰과 단체에서 순회 법회를 하기도 했다.

요즘 스님의 법문은 현상적인 문제를 떠나 본체론적인 문제에 집중돼 있다.

우주의 근본도리가 무엇이며, 내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또 부처와 나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설하신다. 스님은 3일

혜운사 법회를 시작으로 9일 서울 조계사, 10일 동산반야회관, 13일에는 강원도양구 군법당에서 깨달음의 법문을 설하는 등 노령에도 중생교화에 적극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