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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일반법문

10. 국토개발 불교신자방문 법문

모든 인간 존래라 하는 것은 사유(思惟) 활동이 생각하는 활동이 있기 때문에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듯이 사유한다는 생각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위대한 특성인 동시에 또는 그 때문에 우리가 또 고뇌도 받는 것입니다. 개가 되고 소가 되고 우리가 했으면 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활동이 없기 때문에 행복도 모르고 불행도 모를 것인데 사람은 생각한다는 그러한 하나의 사유의 그런 특성 때문에 인생고를 느끼는 것이고 또는 따라서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는 모든 면에서 가장 최상의 것을 구하게 됩니다. 아름다움도 최상의 아름다움 또는 착한 것도 역시 가장 좋은 그런 선량한 행동 또는 아는 것도 이것저것 다 알고 싶다 말입니다.


괴테의 그 파우스트에서 있는 바와 같이 인간존재라 하는 것은 하여튼 이것저것 다 경험하고 싶고 다 알고 싶습니다. 능력은 한정이 있는 사람들이 그 와같이 구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말입니다. 여기 여러분들께서 오신 것도 무엇인가 하여튼 우리 행복에 좀 도움이 됐으면 쓰겠다. 이렇게 해서 인제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가장 최상의 복지 또는 위없는 행복 또는 다시없는 그런 지혜 이런 것을 우리가 다 구한다 말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욕계(欲界)라 하는 인간존재가 한정이 되기 때문에 구부득고(求不得苦)라. 구해서 얻지 못한다 말입니다.


 이런 것은 다 우리가 아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웬만한 것은 다 기술과학에 의해서 밝혀져 있다 말입니다. 아 ~나 또는 기타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라든가 하여튼 특히 유전공학이나 그런 것을 우리가 본다고 생각할 때에 그 웬만한 것은 또 우리가 그냥 변종도 시키는 것이고 나가서는 우리 인간의 생명현상도 다 해부를 해 가지고서 가사 아들 낳을 것인데 딸도 귀하게 생각하면 딸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유전공학은 지금 그런 기술이 있다 말입니다. 이런 때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해서는 우리 인간 불안의식을 해소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과연 아들도 딸도 재물도 또는 우리가 감투도 이런 것도 어느 정도는 추구하면은 자기 욕구대로 충족은 못 된다 하더라도 다소는 이루어질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불안의식 한도 끝도 없는 그런 추구를 하는 것인데 이런 것을 다 얻을 수가 없고 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 나라는 것은 대체로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바쁘신 분들인지라.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갖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더러 실의에 빠진 때라든가 또는 불행한 그런 경우에 봉착하면은 그때는 자기반성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인류문화사상 그 모든 종교 철학이 다 그래서 모두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마는 다른 어떠한 철학이나 어떠한 종교나 그런 것도 이런 문제를 해답을 못 내립니다.


 더구나 이 과학이라는 것은 상대 유한적인 문제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체계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그 상대성을 떠나버린 우리 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을 못 내립니다. 또 그런 것에 대해서 유일한 해답을 내리는 것이 아 부처님 법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법을 믿고 있는 셈 아닙니까. 그러나 부처님법도 소승(小乘)적인 차원에서는 해답을 못 내립니다. 아 너도 있고 나도 있고 또 그런 것은 제법(諸法)이 뭐 공(空)이니까 모두가 다 텅텅 비어 버린 허무가 아닌가. 그 상대적으로 좋다 궂다 또는 나다 너다 또는 이런 것도 ~ 텅텅 비어 버리는 오온(五蘊)개공(皆空)이 아닌가. 소승법은 여까지 밖에는 모른다 말입니다. 따라서 소승법으로 해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한히 지혜 무한히 자비 무한히 행복을 구하는 것인데 도저히 거기에서 상응된 해답을 못 내린다 말입니다.


그러나 대승(大乘)법에 있어서는 그런 해답을 완벽하니 다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 부처님 법도 어느 누구한테든지 법을 설할 때는 소승법만 많이 설하고 ~ 그때는 커다란 허물을 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부처님의 일대사 인연이라.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소승법을 설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소승 법은 가장 중요한 문제 생사해탈의 문제를 해결을 못한다 말입니다. 아 기껏해야 그 ~ 사람이 죽어지면 그만이 아닌가. 열반(涅槃)이라는 것은 텅텅 비어버리는 세계로 가 가지고서 아무것도 없어져 버리는 그런 세계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해서는 그 해결이 우리가 구하는 행복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해답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법은 다 대체로 들어서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불생불멸이요. 낳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영생불멸하고 또는 안락도 한도 끝도 없이 이른바 불교말로 하면 극락이라 말입니다.


사무친 행복 어떠한 면으로 보나 ~ 면으로 보나 조금도 흠이 없는 그런 행복이 이것이 이른바 극락이라 말입니다. 아 자기는 그렇다 치고라도 환경이 ~ 한다거나 환경이 오염돼 있다거나 이러면 또 행복이 못 되었지요. ~ 극락이라 하는 것은 자기 주체적인 그런 자기도 역시 완벽한 존재고 말입니다. 또는 우리가 사는 이른바 ~ 라. 우리 환경도 역시 완전한 세계라 말입니다. 이런 세계가 이른바 이것이 광명세계입니다. 광명세계라. 극락세계란 것은 바로 광명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중생들은 특히 욕계 중생들은 우리 시각이 굉장히 짧다 말입니다. 삼독심(三毒心)에 가리어서 보는 것이 너무나 시야가 좁습니다. 그래나서 겨우 겉에 했던 그런 부동된 상만 보는 것이지. 꿈이 실존이 아니듯이 그림자가 실제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그림자 같은 것. 또는 메아리 같은 것. 이런것 만 보고 본 성품은 못 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아무리 좋다고 보고 밉다고 보고 보통 요새말로 하면은 그 대권이 가장 좋다고 해 가지고서 온 나라가 지금 술렁거리지 않습니까.


 대권이나 이런 것도 역시 부처님 차원에서 본래 성품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대권을 쫓아간다고 그래서 거기서 뭐 나오겠습니까. 또는 인생과 우주의 본바탕을 모르는 사람들이 남을 다스린다.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인생과 우주의 인간성의 본바탕이 무엇인가 또는 우주는 어떻게 돼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도한다고 그래서 바른 길로 지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인제 플라톤의 공하고 철인이 정치가가 되고 정치가가 철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는 인류의 해악은 영원히 그치지 않는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가다가 내내야 함정에 빠뜨리고 인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치고 말입니다.


이 증거로 소비에트 그 공산사회를 보십시오. 레닌이나 스탈린이나 인제 다 보통 인물은 아니란 말입니다. 마르크스도 인제 역시 다 대천재 아닙니까. 그러나 천재라 하더라도 성자가 못 된다 말입니다. 성자가 못 되기 때문에 성자가 못 된다고 생각할 때는 인간성의 본질을 모릅니다. 또는 우주의 본바탕을 모릅니다. 인간성을 모르고 우주의 본바탕을 모르거니 그네들이 인간의 바람직한 참다운 사람은 불교말로 하면 참진 자 사람인자 진인이라. 진인을 모르거니 그런 사람들이 우리 행복을 충족시키는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가 없다 말입니다. 따라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따지고 보면 모두가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그냥 정치도 말고 아 ~뭐도 말으라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다만 그렇다는 것이지. 따라서 교수나 정치인이나 자기반성하고 자기 제한성을 느껴 가지고서 부처님 가르침에 그런 문제 해결했으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 쓴다 말입니다. 우리한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나이도 꽤 많이 먹었습니다마는 인생 갈 길은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오직 외길 석가모니가 가고 무수한 성자가 간 그 길입니다. 이 길은 예수나 공자나 다 같은 길입니다. 모두가 다 그러나 그 분들 길은 단순소박해서 이 현대적인 고리를 풀수가 없다 말입니다. 그 분들은 그 시대에 무식대중한테 한 그런 법문이기 때문에 현대에 이른바 지성적인 사회에서는 지성적인 그런 고뇌를 풀 수가 없습니다.


 가사 우리가 예수만 두고 보십시오. 위대한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진리성. 그대들이 거듭나지 않으면 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느니라. 이런 말들은 다 이것은 소중한 부처님 법문하고 똑같습니다. 심청정시불(心淸淨是佛)이라. 마음이 청정해야 부처란 말입니다. 마음이 청정해야 우리가 본래면목을 본다 말입니다. 그대들이 거듭나지 않으면 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느니라. 이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중생들이 삼독심을 제거해야만 이 비로소 이상세계 자기 참다운 면목을 볼 수 있다는 그런 뜻으로 우리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가까스로 30대에 40일 동안 금식기도 모시고 요한 앞에서 세례를 받고서 그냥 세례를 받은 뒤에 아 40일 동안 금식기도 모시고서 우주의 본성을 깨닫고서 인제 성자가 됐다 말입니다.


거까지는 우리가 인정해야 씁니다. 예수는 그 아무것도 아니다. 저네들이 우리 불교를 마귀시하듯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바이블의 그런 골수에 담아있는 그런 진리를 우리는 인정해야 쓰는 것입니다. 공자도 논어나 노자의 도덕경이나 허심탄회하게 본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 불교가 진리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겨우 30대 청년이 단 3년 동안 포교하다 갔다 말입니다. 그리고 그 포교 대상이 베드로나 모다 어떤 사람인고. 하면은 이스라엘 그 갈릴리 호수에서 인제 한 고기나 잡던 어부라 말입니다. ~ 1900년 세월이상을 그 어부들이 뭐 알겠습니까. 그것이 그런 사람들한테 제법공(諸法空)도리를 말하면 알겠습니까. 중도실상을 말하면 알겠습니까.


 따라서 그 분들한테 하는 법문이니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순소박이라. 소박한 말이나 비유나 또는 ~ 이라 아니면 은 못 알아먹는다 말입니다. 따라서 바이블 여기 보나 저 기보나 그런 비유로 충만해있다 말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께서는 태자로 태어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당대 바라문교도 굉장히 고도한 철학입니다. 바라문교를 제대로 다 공부했다 말입니다. 또는 대상도 역시 각 왕자라든가 대신이라든가 당시에 최상계급들한테 49년 동안 법문했다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완벽합니다. 다 갖추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요새 모두가 호흡법하고 뭐도 하고 그냥 뭐 마인드컨트롤이 다 별거 뭐 다하고 있지마는 그런거 저런 거 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모두가 다 들어있습니다. 모두가 다 이러한 부처님 가르침 가르침은 이것은 바로 우리 생명 자체를 제대로 밝히고 있는 것이고 또는 우주 만유의 본바탕을 훤히 밝혀서 조금도 모순이 없고 또는 우주 전체가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직설로 말씀했다 말입니다. 19세기 독일 자연주의 철학자 ~ 이분도 칠 불가사의라. 일곱 가지 부사의한 도리를 말했다 말입니다. 그 가운데도 특히 3가지만은 아주 부사의하고 신비로운 것이어서 현대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 되어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은 대체로 무엇인가 또는 대자연 원자고 또는 소립자고 그런 물질의 근원은 무엇인가. 또는 마음과 물질의 관계는 무엇인가 말입니다. 이 3가지만은 제 아무리 유물과학이 발달되어도 알 수가 없다 했다 말입니다. 그 마음이 무엇인가 또는 우주 만유의 이 물질 세상 물질이 가장 근원적인 본바탕은 무엇인가 또는 마음과 물질과의 그 상관성은 무엇인가 이것을 과학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과학은 상대유한적인 그 공간성 시간성이 있어야 과학이 되는 것이지 그거 없다고 생각할 때는 과학이 성립할 수 없다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 고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이 3가지 것을 모르면 은 현대사회 고뇌를 풀래야 풀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지구촌이 환경 오염문제 굉장히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아 땅도 오염시키면 안 된다. 물도 오염시키지 말라.


 공기도 오염시키면 안 된다. 오존층 파괴된다. 그런 것이 모두가 다 옳은 말이겠습니다. 오존층 파괴라든가 여러 가지 아황산가스를 누구나 많이 그렇게 배출시키면 안 된다든가 말입니다. 다 소중한 말입니다. 다 남한테 좋게 하고 남한테 보시하고 그러나 하고 싶어도 현대생활이 그렇게 안 돼 먹었다 말입니다. 또는 공기 저것은 있으나마나 우리가 이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상이나 ~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하면 쓰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해서는 현대적인 고뇌를 현대적인 그런 지구촌의 위기상황을 풀래야 풀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간단명료하니 해답이 돼있다 말입니다. 심불중생시 ~ 차별이라. 우리 마음과 부처와 우주와 중생과 모두가 다 하나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겉만 보니까 나요 너요 그런 지금 상만 보고서 거기에 집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의 길이란 것은 오욕 삼독심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근본바탕을 본다 말입니다. 근본바탕을 근본바탕이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불성이고 법성이고 진여고 일심이고 합니다. 아 사람끼리는 다 모두가 인제 진여가 되겠지마는 가령 동물에 대해서 무슨 진여가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로 해서 무자 화두나 모두가 그런 화두가 다 인제 ~ 습니다마는 사람만 진여불성이 있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고 또는 식물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또는 공기도 마찬가지고 흙도 마찬가지고 어느 것이나 우주에 있는 유정 무정 유상무상 모두가 다 부처님의 생명 진여불성 우주의 법성이 됐다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진여불성 법성뿐인 것입니다. 따라서 ~ 당나라 도인한테 여하시불(如何是佛)있고, 부처가 무엇인가 물으니까 인제 일과(一顆)명주(明珠)라. 또는 여하시법계고. 법계가 무엇인가. 법계란 것은 바로 우주전체를 말합니다. 이것도 역시 일과명주라. 한 덩어리의 밝은 구슬이라. 한일(一)자 덩어리 과(顆)자 밝을 명(明)자 구슬 주(珠)자 말입니다.


부처도 역시 한 덩어리의 신비로운 밝은 구슬이고 우주법계 역시 한 덩어리의 밝은 구슬이라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진여 법성 외에는 다른 것은 없는 것입니다. 성자들은 삼독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훤히 본다 말입니다. 훤히 보고 그러한 진여법성과 자기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 말입니다. 저는 항시 말씀드립니다마는 여기 지금 한 백 명 가까운 우리 불자님들이 계시겠지요. 그러나 어린애 또는 청년 또는 여자 남자 이와 같이 모두가 다 여러분들이 지금 계십니다. 그러나 다 저사람 ~ 박가 김가 김누구 박아무개 이렇게 뿔뿔이 생각을 하시겠지요. ~ 우리 중생들입니다. 그러나 뿔뿔이 지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옆에 사람과 나와의 사이에 공기가 없겠습니까. 공기가 있지 않습니까. 공기가 공기는 무엇인가. 공기는 아시는 바와 같이 산소나 수소나 그런 걸로 지금 공기가 꽉 차있다 말입니다. 산소나 수소나 그런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마이너스 플러스 양자나 또는 전자나 그런 것으로 해서 산소나 수소나  그런 것이 구성됐다 말입니다.


 그럼 전자나 양자나 그런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장에 너지 물질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전기성도 띠지 않고 말입니다. 또는 공간성도 없는 그런 우주에 가득찬 그런 장에너지 에너지의 진동여하에 따라서 전자가 되고 양자가 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자가 되고 양자가 됐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인가 어느 순간도 전자 양자가 그래도 머물러 있지 않다 말입니다. ~ 말입니다. 어느 순간도 고유한 고정된 모습을 ~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있다고 보겠습니까. 찰라무상이라. 이 세상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나 모두가 어느 찰라 동안도 그대로 머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찰라무상이라. 항상이 없다 말입니다. 세상에 가장 미세한 그런 알갱이 알갱이를 분석해 들어가면 은 종당에는 다 이것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운동도 측정할 수가 없고 위치도 측정할 수가 없다 말입니다. 위치와 운동 위치와 속도를 측정할 수가 없으니 아 그런 것이 있다고 보겠습니까.


 결국은 에너지뿐이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옆에 사람과 나와도 역시 그러한 에너지로 지금 꽉 차 있습니다. 모두가 다 내 몸도 마찬가지고 저사람 몸도 마찬가지고 저 사람과 나와의 사이도 역시 에너지로 꽉 차 있습니다. 에너지의 본바탕이 무엇인가. 현대과학은 상대 유한적인 공간성이 있어야 할 것인데 공간성 이것은 모른다 말입니다. 이것을 밝힌 분이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에너지 그 본 성품이 진여불성이라 말입니다. 따라서 진여불성으로 나와 남의 사이가 나와 너의 사이가 지금 꽉 차 있다말입니다. ~ 사이도 꽉 차있고 내 몸뚱이나 ~ 몸뚱이나 똑같이 진여불성으로 됐다 말입니다. 진여불성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진여불성이 산소가 되나 뭣이 되나 진여불성자리는 변동이 없습니다. 변질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를 천만 개 겹치고 해도 바른 것이 못되고 물질이 못되고 그림자는 그림자 아닙니까. 제로를 곱하나 보태나 나누나 제로는 제로뿐인지라.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밉다는 상 곱다는 상 이 상만 지금 보이는 것이지 실지로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색즉공인 것입니다. 분석하면 공이 아니라 바로 공이라 말입니다.


 성자가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대로 ~ 미우면 미운 데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데로 다 공이라 말입니다. 그러기에 색즉공인 것입니다. 이렇게 안다고 생각할 때는 자연도 물도 흙도 모두가 다 진여불성이 됐습니다. 또는 이런 것은 같이 모두가 다 같이 하나의 생명이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옆에 사람한테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도 바로 직통으로 자기도 그만치 훼손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연도 나와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면은 그냥 직통으로 우리한테도 그만치 해가 오는 것입니다. 물한테도 함부로 하면은 물한테 우리가 보복을 받습니다. 돌멩이 하나 모두가 다 우리하고 같은 생명이라 말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 보고 정견이라. 이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이것이 바른 철학이고 바른 종교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가치관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그래야 참다운 정신이라 바른 신앙이라고 합니다. 보조어록에도 있는 법문입니다마는 과불공덕이 ~라.


 부처님께서 그 성불하신 그런 공덕이 나와 더불어서 조금도 눈곱만큼도 차이가 없다 말입니다. 나는 지금 못나고 나는 지금 부처를 내가 지금 못 느끼는 중생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죄가 많지 않은가. 우리가 몰라서 그런 것이지 죄가 많다는 이 업덩어리 이것도 역시 성품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진여불성이 조금도 그때는 훼손이 안 되어있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운문스님한테 가서 여하시불(如何是佛)있고 부처가 무엇인가 똥 마른 막대기라. 깨끗하고 ~ 만이 부처가 아니라 더러운 것이나 어느 것이나 바른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성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부처란 말입니다.


 원통한 것은 우리가 우리 무명심 때문에 우리가 바로 못 본다 말입니다. 바로 못 봐서 그런 것이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대로 모두가 광명세계입니다. 지금 우리 불자님들께서 백프로 내 몸뚱이 이대로 부처님의 무량광명으로 구성돼있다 우주는 바로 광명 그대로다 백프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중생은 그렇게 안 보이니까 백프로 못 믿습니다. 백 프로 ~니까 부처가 바로 못되는 것이지. 백프로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그대로 바로 순식간에 부처가 돼 버리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문하실 때에 그 상황 ~ 많이 보셨겄지요.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니까 그 온 대중이 환희용약해서 말입니다. 몇 백 명 그냥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몇 백 명 수다원과를 성취하고 말입니다. 부처님 같으신 그런 세존들이 법문하신다고 생각할 때는 부처님 모습만 봐도 환희용약한다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그런 무량광명에 같이 휩싸여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 마음이 활짝 열린다 말입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 이렇게 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업장이 하도 무거우면 그때는 아직은 못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믿으셔야 씁니다. 그렇게 믿으심으로 해서 내 아들도 내가 가르치는 제자도 내가 지금 부리고 있는 그런 회사원도 말입니다. 모두가 다 본래로 부처라. 지금 ~ 겉에 그림자와 같은 그것이 미운 짓인 것이지. 그 사람의 정체는 다 같은 부처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자기 부하 직원한테 함부로 하겠습니까. 이 꼬마 자기 아들이라 고해서 함부로 하겠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부처님 사상으로 부처님 정견으로 한다고 생각할 때에 자기 아들이나 딸이나 숭배를 안 하겠습니까.


가정도 그냥 훈훈한 가정이 되어서 가출한 ~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스승을 제자가 누가 숭배를 않겠습니까. 어느 분야에서나 그러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우리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일러주신 응무소주(應無所住) ~ 심(心)이라. 집착이 없는 그런 마음 모두가 부처라는 그런 마음이 돼야 집착이 없겠지요. 집착이 없는 그런 마음으로 해서 남을 대하고 남을 가르치고 남을 이끌고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에 어느 단체나 어느 국가나 어느 국제간이나 이렇게 돼야 비로소 전쟁도 또는 갈등도 반목도 끝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원히 또 싸우고 또 죽이고 합니다. 남북이 합해지면 어떻겠습니까. 금방 행복이나 금방 화평이 오겠습니까. 부처님 사상은 가지고서 우리 중생이 자기 정성을 다해서 부처님 공부를 할 때만이 참다운 자유 참다운 행복이 있습니다. 바이블에도 있는 바와 같이 그대의 자유 그대의 행복은 진리와 더불어서 만이 존재한다. 꼭 그런 것입니다. 제가 새삼스럽게 이렇게 말씀 안 드려도 여러분들께서는 그런 소식쯤은 다 알 으시겠지요. 그렇게 그런 자리를 놓치지 않고서 지속적으로 공부해 나가야 그래야 인제 우리가 어떤 경계에 부딪히나 올바른 우주의 법도에 따른 진여불성의 그러한 법에 따르는 여법한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속을 시키지 못하면 은자기 그 무서운 습관성 금생에 나와서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생에 나와서 부모한테 배운 것이나 사회에서 배운 것이나 합해서 배운 것이 있다 없다 좋다 궂다 상대 유한적인 그러한 이른바 유루법(有漏法) 때 묻은 가르침만 배웠다 말입니다.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차근차근 상(相)에 있는 그러한 종자는 차근차근 그때는 힘이 약해지고 상(相)이 없는 것은 차근차근 그때는 힘을 더 얻어간다 말입니다. 상이 있는 것은 어두운 것이고 상이 없는 것은 밝은 것입니다. 상이 없는 그런 종자가 차근차근 더 많이 심어지다가 그렇게 되면 활짝 틔어버린다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정말로 자기 성품을 보고 자기 성품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나 너나 우주가 본래 하나의 성품이라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꼭 금생에 무한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알으시지 않습니까. 청견별도라. 때 묻지 않은 광명의 길. 이 길 밖에 우리가 갈 길은 없습니다.


 이 길을 못 간다고 생각 할 때는 윤회만 있을 뿐입니다. 지옥도 아귀도 또는 싸움 좋아하는 아수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락이 됐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본래 부처자리에는 조금도 오염도 없고 훼손도 없습니다. 성품을 본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 할 때는 지옥중생이나 또는 아귀귀신이나 돼지나 소나 독사나 모두가 다 훤히 그때는 부처로 보이는 것입니다. 금생에 위없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제 말씀 마칩니다. 다 놀으시다가 구경도 하시고 그렇게 여유 있는 기분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