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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6. 정통선의 향훈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아야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아야 


'봄이 오매 풀 절로 푸르더라(春來草自靑)' 는 어느 선사(禪師)의 간절한 가르침이 시공(時空)을 넘어 또 다시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얼마나 많은 봄이 깨달음의 빛을 가득 머금고 동리산(桐裏山)을 스쳐갔던가!


봄빛 완연한 곡성 동리산 기슭에서 법계(法界)에 가득찬 광명을 포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삶의 새 이정(里程)을 제시해 주며 사는 숨은 선장(禪匠) 청화 스님, 웬만큼 공부했다는 수행자나 신도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준한 인격자이자 호남의 도인(道人)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인들에게는 꽤나 낯선 이름이다.


불기 2531년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지난 4월 26일,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로 청화 스님을 찾아가 부처님 오신 참뜻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옥음(玉音)을 청했다.


개인적 부귀와 영화를 마다하고 헛된 이름을 피하여 숨어산 40년 세월,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세상을 향해 말문을 연 청화 스님의 첫 마디는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교의 도리(道理)가 곧 우주의 도리,

일체 만유(萬有)는 불성(佛性)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화신불(化身佛), 실상(實相) 바라볼 줄 아는 안목 필요


<기자> 스님에 관한 소식이 매스컴 등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님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며 건강은 어떠신지요?


<큰스님> 부처님의 가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사내(寺內) 대중과 더불어 같은 생활을 하지요. 새벽 2시 30분쯤 일어나 3시 예불 후 2시간 동안 좌선(坐禪)하고 8시부터 다시 입선(入禪)하여 10시 방선(放禪)합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좌선하고 저녁 예불 후 또다시 좌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40년 승려생활을 해오면서 앓아누운 적은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답니다.


<기자> 군불 때고 빨래하는 등의 일을 손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큰스님> 수행자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옛 선사들께서도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하여 후세인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생활을 하였습니다. 알고 보면 일하는 즐거움도 적지 않거든요. 봄 되면 씨앗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그것이 바로 선(禪)이 아니겠습니까?


<기자> 오는 5월 5일(음 4․8)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참뜻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큰스님>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서는 잘 아시다시피 이미 종정 예하께서 좋은 법문(法門)을 설하시어(도하 신문에 보도된 종정 법어를 지칭하는 듯) 이 산승이 새삼 다시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어오셨으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저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부처님께서 교시(敎示)한 가르침에 따라 중생들이 무명(無明)에 의함 미혹된 삶을 버리고 정견(正見)에 입각한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정견(正見)에 입각한 바른 삶이란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산승은 불교의 도리가 곧 우주의 도리라고 봅니다. 즉 불타의 가르침이 우주자연의 근원적 도리와 일치한다는 말입니다. 이 도리에 부합하는 인간의 삶이란 바로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삶' 입니다. 존재를 바로 보면 '무아' 이고 무아이므로 자연 '무소유' 인 것입니다. 수행자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무아,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도리를 체득한 진정한 도인(道人)이 아닌 담에야 무아, 무소유의 삶을 살기란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기자> 앞서 정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물과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는 것을 정견이라 할 수 있는지요?


<큰스님> 사람의 마음이란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하고 무장무애(無障無碍)하여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아무런 자취도 없지만, 그러나 그 실상(實相)은 무한한 능력을 두루 갖춘 생명의 본질로서 곧 불성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경전에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 (心卽是佛 佛卽是心)' 이라고한 것은 이를 지칭한 말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일체만유(萬有)는 모두 불성(佛性)의 광명으로 이뤄진 화신불(化身佛)이며, 우주의 실상은 바로 장엄한 연화장(蓮華藏)세계요, 극락세계인 것이지요.


그런데, 어두운 번뇌에 휩싸인 중생들이 그러한 자기 근원을 모르고 만유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인연 따라 이루어진 전변무상(轉變無常)한 가상(假相)만을 집착하여 너다, 나다, 내 것이다 하며 파멸의 구렁텅이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가지지 못하면 무아, 무소유의 바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自明)하지 않겠습니까?


<기자> 무아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또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은 용어인데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무아' 의 참뜻은 무엇인지요.


<큰스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인연 따라 잠시 구성되어 있는 임시적 존재라 하겠습니다. 불교적 표현으로 사대(四大) 곧, 물질적 구성요소 인, 지, 수, 화, 풍(地, 水, 火, 風)과 오온(五蘊) 곧, 정신과 물질의 구성요소인, 색, 수, 상, 행, 식(色, 受, 想, 行, 識)이 가화합(假和合)하여 잠시 머무르므로 무상(無常)이라 하겠고, 따라서 고유한 나(我)가 없으므로 무아(無我)라 할 것입니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무아는 불교의 도리만 아니라 우주의 도리이며 과학적 진리인 동시에 철학적 진리임이 분명해집니다.


<기자> 흔히들 현대를 일컬어 물질의 가치가 더 존중되는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물질 지상주의라고 할까요. 아무튼, 이러한 시대적 병폐를 고칠  수 있는 묘방(妙方)이 있으신지요?


<큰스님> 물질의 실상을 바로 본다면 '본래 없는 것(本無: 空)'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도 '불성(佛性) 이외의 모든 것은 마치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나니...(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 라고 하셨듯이 허망 무상한 것이 물질의 본래적 속성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물질과 정신 등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공(空)', 다시 말해 진아(眞我)이자 대아(大我)인 그것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탐욕과 번뇌로 얼룩진 삶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기자> 요즘 모 재벌그룹의 총수가 자살직전 작성한 유언장에서 '먼저 인간이 되시오.' 라고 한 말은 이 시대의 '비인간화(非人間化)'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비인간화' 병증을 구료(救療)할 인간성 회복의 묘약은 없는지요?


<큰스님> 인간이 보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먼저 정견(正見)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견의 확립을 통해 우주의 도리에 맞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얘기죠.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우주의 삼라만상이 평등무차별한 하나의 존재이며, 유정(有情)은 물론 무정(無情)까지도 모두가 부처임을 여실히 인식한다면 이를 정견의 확립이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방삼세에 변만(遍滿)한 법신불(法身佛)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정견의 확립은 가능해지고 정견에 입각하여 우주와 불법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무아, 무소유의 삶을 살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겠지요.


각자 자기 생명의 본원(本源)인 불성을 자각하여 부처님(大我)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갈등 없는 참된 인격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처님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말은 바로 우주의 도리에 부합하는 인격이 되도록 힘쓴다는 뜻이지요.


<기자> 요즘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정신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느낌 입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보다 가치 있는 삶이 될런지요?


<큰스님> 우선, 찰나에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부처님을 모든 생명의 본원(本源)으로 파악하는 것과 생명의 본원에 배치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다 같이 중요합니다. 생명의 고향,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삶이란 일찍이 여러 부처님께서 교시하신 '온갖 나쁜 짓을 그치고 모든 좋은 일을 봉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 는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에게서 떠나지 않기 위해 계율을 지키고 십선(十善)을 닦으며 참선을 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우는 등의 여러 가지 수행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잠시의 간단(間斷)도 없이 부처님에게서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 나라까지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겁니다.


<기자> 생명의 본원인 부처님을 깨닫기 위해, 즉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님을 여실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큰스님> 옛말에 '우주의 대도(大道)로 들어가는 길에는 따로이 문이 없다(大道無門)' 고 했듯이 성불을 위한 수행방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길이 있는데 각자 자기 근기에 맞는 방법이 최선의 법문(法門)이 됩니다.


성불의 길에 따로이 문이 있지는 않지만 따지고 보면 8만 4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있으며 이를 요약하면 네 가지 수행법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곧 참선(參禪) 염불(念佛) 간경(看經) 지계(持戒)의 네 가지입니다.


청허(淸虛) 스님께서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님 말씀(禪是佛心 敎是不語)' 이라고 하였듯이 선(禪)이 비록 망상을 떠나 부처님의 마음을 체인(體認)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것만이 최상유일의 방법이란 생각은 편협한 사고방식이지요. 과거 우리네 원효, 의상, 자장, 보조, 의천, 태고, 나옹, 무학, 기화, 서산, 사명, 연담 등 선교(禪敎)의 대종장(大宗匠)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염불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기도 한 것은 간화선(看話禪)만을 유일한 수행방법인양 오해하고 있는 우리나라 불교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습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불교에서도 여러 가지 선(禪)법이 고루 인정받고 발전해온 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 불교계만 간화선 일변도로 치우치는 듯한 풍조는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본체만 여의지 않으면 염불 지계 간경이 궁극적으로 선(禪)이 아님이 없습니다.


<기자> 근대 선지식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스님은 창밖을 가리키면서)

<큰스님> 저 산에 만약 꽃 한 송이가 있다면 얼마나 볼품이 없을 것이며, 과연 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지식들께서는 모두 독특한 빛깔과 향기를 지녔던 분들이며, 저는 그분들 모두를 다 같이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소속문중이 있고 직계스승이 있으나 부처님 법 앞에서 문중의식을 조금치라도 지녀서는 안 되겠지요.


다만 한 가지, 정견(正見)을 확립하지 못한 채 남을 지도한다면 그것은 곧 남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병도사(病導師)' 인 만큼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지나치게 애쓴다면 겸손을 위한 겸손, 은둔을 위한 은둔이 되지 않겠습니까?


<큰스님> 저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참선 수행시 네 가지 방해되는 일을 피하는 것뿐이죠. 방선(妨禪)의 네 가지 조건은 인간관계(人事), 생활(生活), 학문(學問), 기능(技能) 등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하는 법입니다.


<기자> 공부하는 후학들을 위해 스님께서 체험한 오도(悟道)의 기연(機緣)과 그 당시 오도송(悟道頌)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큰스님>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저는 이제 막 입산한 행자처럼 아직껏 초심(初心)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오도송을 읊겠습니까? 굳이 물어 오셨으니 제가 평소 애송하는 옛 선지식의 게송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할까 합니다.


萬緣都放下,

온갖 반연 모두 쉬고서


但念阿彌陀

다만 아미타불만을 염하나니


卽是如來禪

바로 그것이 여래선이며


卽是祖師禪

그것이 바로 조사선일레..


<기자> 오랜 시간 동안 저와 많은 불자들, 그리고 관심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법문 들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시간은 오후 2시, 스님은 곧바로 좌선에 들어 무심삼매로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 청화(淸華) 스님은 1923년 전남 무안군 운남면 연리에서 태어나 24세 되던 1947년 송만암 스님의 상좌인 금타 스님을 은사로 하여 백양사 운문암에서 출가 득도하였다. 이후 40여 년 간 제방 선지식들을 찾아 전국의 유수 선방과 토굴을 유력(遊歷)하며 수행에만 전념해 왔다.

오랜 토굴생활 끝에 경기도 안성 칠장사에서 한철 살고 나서 2년 전 태안사에 오시어 퇴락해가는 절을 일신(一新)시키는 한편, 상시선원(常時禪院)을 열어 출가 스님은 물론 재가신자들에게도 선을 공부하게 하였다.


지난 85년 10월 보름부터 21명의 선승(禪僧)들이 태안사에 모여 산문(山門)을 걸어 잠근 채 조사관(祖師關)을 뚫기 위한 3년 결사(結社)에 들어가자 스님은 조실로서 이들을 지도하는 한편 함께 정진하고 있다.


태안사는 신라말엽 혜철 스님이 중국의 서당(西堂) 화상으로부터 법등(法燈)을 이어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열고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던 유서 깊은 절이다.



부처님 오신 날(佛誕節) 특별 인터뷰로 불교신문 김윤세(金倫世) 기자와의 대담,

불기 2531년 5월 6일 부처님 오신 날 불교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