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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1. 정토삼부경

해제(解題)

해제(解題)


    一, 개설(槪說)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은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불을 신앙하고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남(왕생)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경전으로서 무량수경(無量壽經)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말한다.

  그런데 극락정토 곧, 극락세계란 흐리고 악한 예토(穢土)가 아닌 이른바 오탁악세(五濁惡世)를 여의고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三界)를 뛰어넘은 청정하고 안락한 이상적인 처소를 말한다. 그래서 경(經)에는 청정토(淸淨土)․안락국(安樂國)․불토(佛土)․불국(佛國) 등의 이름이 있다.


그러기에 극락정토란 불ㆍ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의 과보(果報)로 수용(受用)하는 청정한 보토(報土)요, 상주불멸(常主不滅)한 실상(實相)이며 모든 중생이 번뇌를 여의고 필경 돌아가야 할 영생의 고향이기도 한 것이다.

  경전에는 아촉불(阿閦佛)의 정토․약사여래(藥師如來)의 정토․문수보살의 정토․미륵보살의 정토 등 여러 정토를 말한 데도 있으나, 모든 정토의 대표적이며 일반적으로 갈앙(渴仰)하고 흠모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곧 극락세계에 관한 교설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에 관한 교법은 현존하는 장경(藏經) 중에 실로 이백(二百)여 부에 달하며, 또한 그에 따른 여러 스님네들의 저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은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인도를 위시하여 서장(티베트)․중국․한국․일본 등으로 가장 널리 유통(流通)되어, 참으로 불교 문화의 정화(精華)이며 민간 신앙의 표본이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불교계에는 이미 알려전 제한된 사료(史料)와 고증(考證)을 근거로 하고, 범부의 지견(知見)으로 분별하여 모든 대승 경전이 불설(佛說)이 아니라는 이른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은 거의 정설(定說)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정토 사상의 발생과 「정토삼부경」의 성립 년대에 대해서도 석존 이후 대승 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의 학장(學匠)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한 사료(史料)를 위주한 실증적 자세가 학구적(學究的)인 분야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신앙의 견지에서 생각할 때는 부처님의 부사의한 일체종지(一切種智)와 과거 이천(二千)여 년을 통하여 「정토삼부경」을 불설(佛說)로 확신하여 온 수많은 조사 스님들의 법력을 의심하게 되고, 또한 자성(自性)에 본래 갖추어 있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불신하는 경향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토삼부경을 불설로 확신하여 온 조사스님들 가운데는 숙명통(宿命通)을 통달하여 석존 당시를 꿰뚫어 보는 이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극락정토를 발원(發願)하는 불자(佛子)들은 부질없는 분별에 마음을 팔지 말고 정토삼부경 그대로 신인(信認)하고 그대로 수행(修行)함이 불ㆍ보살의 본회(本懷)이며 극락 왕생(往生)의 첩경(捷徑)이라 믿는 바이다.


    二, 무량수경(無量壽經)

    1, 한문 번역

  무량수경은 중국에서 열두번이나 번역되었다고 하나 이른바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 하여 현재는 오역(五譯)만 남아 있고 칠역(七譯)은 산실(散失)되었다고 한다.

  이 한문 번역은 천축(天竺…인도)의 삼장법사 강승개(康僧鎧)가 중국의 조위(曹魏) 때 그 가평(嘉平) 4년(A.D. 252)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에서 번역하였다. 여기에서는 그 유포본(流布本)을 번역하였다.

    2. 내용

  무량수경은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또는 약하여 「대경(大經)」이라고도 하며 상(上)ㆍ하(下) 두권으로 되어 있다.

  일찌기 석존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 아난존자와 수많은 제자들을 상대로 하여 광명이 무량하고 수명이 무한하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관한 한량없는 공덕과 거룩한 장엄을 설하신 경전이다.

  그 상권(上卷)에는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건설하게 된 원인과 그 과보(果報)를 설법하셨는데, 아미타불께서 일찌기 법장보살(法藏菩薩)이었을 적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처소에서 이백십억(二百 十億)의 불국토(佛國土)를 보고, 거기에서 가장 훌륭한 공덕만을 선택하여 최선의 이상국(理想國)을 세우고자 큰 서원(誓願)을 발하였다.

  그것은 사십팔(四十八)종의 서원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선인(善人)도 악인도 현명한 이도 어리석은 이도 나의 원력(願力)을 믿고 따르는 이는 모두 다 반드시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리라. 만약 이 일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래서 이 서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영겁(永劫)의 오랜 세월을 두고 온갖 수행을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법장보살은 서원을 성취하여 아미타불이 되시고 공덕과 장엄이 원만히 갖추어진 극락세계를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법장보살이 아미타불이 되신 이러한 성불(成佛)의 인연설화(因緣說話)는 비단 아미타불에만 국한한 성불의 인연만은 아니며,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의 성불 인연의 의미이기도 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성불의 도정(道程)이 되는 동시에 영생 상주(永生 常住)한 진여법성(眞如法性)의 부사의한 일대행상(一大行相)인 것이다.

  그 하권(下卷)에서는 중생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원인과 그 과보(果報)를 설법하셨는데, 중생이 극락에 왕생하는 원인에는 염불해서 왕생하는 이도 있고, 또는 다른 모든 선행(先行)을 닦아서 왕생하는 이도 있다고 하셨으며, 이러한 공덕들은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칭찬하시고 권장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생이 극락세계에 왕생한 과보(果報)를 설하셨는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극락세계에 왕생한 맨 처음이라 하셨다. 또한 극락에 왕생한 이는 누구나가 다 삼십이(三十二) 대인상(大人相)을 갖추고 지혜가 원만하며 신통력이 자재하여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을 공양하며, 또는 나와 나의 소유(所有)라는 상(相)이 없고 언제나 남의 행복만을 바라며 마음이 평정(平靜)하여 감정의 파동이 일지 않고, 매양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자비심이 충만함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부처님의 부사의하고 무한한 지혜공덕을 신(信)하지 않고는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부처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간직하고 오악(五惡)을 짓지 말고 오선(五善)을 닦을 것을 간절히 당부하셨으며, 머언 후세에 설사 모든 경전이 없어질지라도 나는 자비로써 특히 이 〈무량수경〉만은 백세 동안 더 오래 머물게 하리라고 굳게 다짐하셨다.


    三,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1, 한문 번역

  서역(西域)의 승 강량야사(畺良耶舍 A.D. 383~442)가 중국의 유송(劉宋) 원가(元嘉) 10년(A.D. 433)에 번역하였다.

    2. 내용

  관무량수경은 「십육관경(十六觀經)」또는 약(約)하여 「관경(觀經)」이라고도 한다. 석존께서 만년에 기사굴산에 계실 적에 왕사성에서 큰 비극이 일어났었다. 그것은 태자 아사세가 제바달다의 사주(使嗾)를 받아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부친인 빈바사라왕을 가두고, 아버지를 옹호하는 자기 어머니인 위제희부인마저 가두어 버렸다.

  이에, 위제희부인은 못내 슬퍼하여 멀리 석존의 왕림을 기원하였다. 그래서 석존께서는 아난존자와 목련존자를 데리고 신통력으로 부인의 처소에 나투셨다. 그리고 자신의 광명 속에서 시방세계의 정토(淨土)를 나타내시어 부인에게 보였는데, 부인은 그 중에서 모든 괴로움이 없고 안락만이 충만한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바라고 극락세계에 태어날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석존에게 애원하였다.

  그래서 석존께서는 부인을 위하사 십육관(十六觀)의 수행법을 설하셨는데, 그것은 정선(定善) 십삼관(十三觀)과 산선(散善) 삼관(三觀)으로서, 정선이란 산란한 생각을 쉬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극락세계의 국토와 부처님과 보살들을 점차로 관조(觀照)함을 말한다. 석존께서 이를 설하시는 동안 칠번째인 화좌관(華座觀)을 설하실 적에, 부인을 위하사 모든 고뇌를 없애는 법을 설하시겠다고 말씀 하실 때 홀연히 아미타불이 허공 중에 나투시니, 부인은 환희에 넘쳐 아미타불을 예배하고 깊은 신심(信心)을 일으켜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석존께서는 정선(定善) 십삼관(十三觀)을 설하시고 나서 다시 산선( 散善) 삼관(三觀)을 설하셨는데, 산선이란 산란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은 채, 악을 범하지 않고 선을 닦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산선이란 이른바 삼복(三福)이라 하여 세간의 선과 소승(小乘)의 선과 대승(大乘)의 선을 가리킨다.

  다시 석존께서는 이 三복을 중생의 근기에 배당하여 구품(九品)으로 구분하셨는데 그 중에서 상품상생(上品上生)과 상품중생(上品中生)과 상품하생(上品下生)의 삼품(三品)은 대승의 근기로서 대승선(大乘禪)을 닦아서 극락에 왕생함을 말하고, 중품상생(中品上生)과 중품중생(中品中生)의 이품(二品)은 소승의 근기로서 소승선(小乘禪)을 닦아서 극락에 왕생함을 말하며, 중품하생(中品下生)의 일품(一品)은 세간(世間)의 근기로서 세간선(世間禪)을 닦아서 극락에 왕생함을 말한다. 그리고 하품상생(下品上生)과 하품중생(下品中生)과 하품하생(下品下生)의 삼품(三品)은 이른바 삼복무분(三福無分)이라 하여 조금도 선행을 닦은 바가 없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다만 지성어린 염불만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살하셨다.

  끝에 가서 석존께서는 다시금 아미타불 염불을 찬탄하사 이것이 가장 수승한 극락왕생의 길이니, 지성으로 믿고 간직하도록 간곡히 당부하셨다.

  석존의 설법이 끝나자, 위제희부인은 진리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훤히 통달하고, 오백(五百)의 시녀들도 또한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四, 아미타경(阿彌陀經)

    1, 한문 번역

  구자국(龜玆國)의 삼장법사(三藏法師) 구마라습(鳩摩羅什 A.D. 350~409)이 중국의 요진(姚秦) 때 이세(二世) 요흥왕(姚興王)의 칙명을 받고 홍시(弘始) 4년에 번역하였다.

    2, 내용

  아미타경은 약하여 「소경(小經)」이라고도 하는데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사리불존자를 상대로 하여 설하신 법문으로서, 「대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의 뒤를 이어 두 경전의 뜻을 요약하셨다고 할 수 있으며, 극락세계의 찬란한 공덕 장엄과 그 극락에 왕생하는 길을 밝히신 경전이다.

  먼저 극락세계의 위치와 그 이름을 풀이하시고, 극락세계의 칠보 나무와 칠보 연못과 칠보 누각과 미묘하고 청아한 음악 등 부사의하고 찬란한 장엄을 찬탄하시고, 극락세계에는 바로 지금 아미타불께서 설법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광명이 무량하고 수명이 무한하므로 아미타불이라 이름하며,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중생도 또한 무량한 광명과 무한한 수명을 얻는다고 찬양하셨다.

  그런데,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적은 선근(善根)이나 적은 복덕으로는 불가능하니, 깊은 선근과 많은 복덕이 되는 염불에 의하여 극락에 왕생하라고 권하셨다.

  또한 동ㆍ서ㆍ남ㆍ북과 상(上)ㆍ하(下) 육방(六方)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염불 공덕의 위대함을 찬탄하고 증명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이렇듯 모든 부처님들께서 깊이 기억하시고 옹호하시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는 「염불」을 하라고 간곡히 타이르셨다.

  요컨대, 다른 경전들은 거의가 제자들의 간청에 의하여 설하신 법문인데, 이 아미타경은 이른바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이라 하여 석존께서 자진하여 설하신 경전으로서, 석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근본 의의(意義)인 중생 구제의 참 뜻을 밝히신 귀중한 법문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五, 아미타불(阿彌陀佛)

  아미타불은 줄여서 아미타 또는 미타라고도 하며 범본경전(梵本經傳)에는 아미나유스붇다(Amitayus-Guddha 무량수불)․아미타바붇다(Amitabba-Buddha 무량광불)의 이름이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아밀리타붇다(Amita-Buddha 감로왕불)의 이름 등이 있으나 보편적으로 아미타불이나 무량수불로 불리워지고 있다.

  「정토삼부경」에는 구원겁(久遠劫) 전에 법장보살이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세워 조재영겁(兆載永劫)의 오랜 수행을 쌓고 이미 십겁(十劫) 전에 성불하여 현재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신 부처님을 아미타불이라 한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법신(法身…陀)․보신(報身…彌)․화신(化身…阿)의 삼신(三身)을 겸전한 부처님이 아미타불이라 하였고, 선종(禪宗)과 화엄종에서는 자성미타(自性彌陀)ㆍ유심정토(唯心淨土)라 하여 일체 만법을 원만히 갖춘 참성품인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이며 극락세계 또한 청정한 마음 위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경계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그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나, 비유와 상징을 떠난 근본 뜻을 생각한다면 시간․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으로서, 영겁(永劫)을 통하여 끊임없이 십법계(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성문․연각․보살․불)의 의(依…국토)ㆍ정(正…마음과 몸)을 성기(性起)하는 우주 자체의 인격(人格)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경〉에도 그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불이요 광명이 무량하므로 무량광불이라 하였으니, 그 무량한 수명은 영원한 시간과 자비를 상징하고, 무량한 광명은 무한한 공간과 지혜를 상징하므로, 자비와 지혜를 원만히 갖춘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아미타불임을 의미하였다.

  또한 더욱 구체적인 이름으로 「무량수경」에서 십이광불(十二光佛)이라 하여 무량수불 외에 무량광불(無量光佛)ㆍ무애광불(無碍光佛)ㆍ무대광불(無對光佛)ㆍ염왕광불(燄王光佛)ㆍ청정광불(淸淨光佛)ㆍ환희광불(歡喜光佛)ㆍ지혜광불(智慧光佛)ㆍ부단광불(不斷光佛)ㆍ난사광불(難思光佛)ㆍ무칭광불(無稱光佛)ㆍ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 등을 들고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의 실상이자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며, 그래서 여러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이름) 또한 진리의 대명사인 아미타불의 그 인연에 따른 상징과 비유의 이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六, 본원(本願)

  본원이란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로서 모든 부처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성불하고자 뜻을 세운 여러 가지 서원을 말한다.

  이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는데, 총원은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한 본원 곧 사홍서원이며, 별원은 부처님마다 중생 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우신 바 아미타불의 사십팔원(四十八願)이나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십이(十二)원 등을 들 수 있으나, 보통은 아미타불의 사십팔(四十八)원을 말한다.

  그런데 아미타불이 바로 진여실상(眞如實相)이요, 중생이 본래 갖춘 자성(自性)이라고 생각할 때, 아미타불이 성불 이전 법장보살 때 세운 사십팔의 서원은 곧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삼세 모든 부처님의 서원인 동시에 우주 자체에 내재(內在)한 목적 원인이며 또한 성불을 지향한 우리 중생의 서원이요, 이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의 실현에는 먼저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서원이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七, 극락정토(極樂淨土)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으로 건립된 정토의 이름이 극락정토이며 흔히 극락세계라 하는데 범어 수하마제(須訶摩提 Suhamati; Sukhayati)의 뜻 번역이다.

  또한 극락세계의 다른 이름으로는 안양(安養)․안락(安樂)․안온(安穩)․묘락(妙樂)․무위(無爲)․청정토(淸淨土)․서방정토(西方淨土)․불회(佛會)․열반성(涅槃城)․진여문(眞如門)․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밀엄국(密嚴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등 삼십(三十)여 종의 별명이 있다.

  그런데 극락정토란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의 뜻으로서 다섯 가지 흐린 것[五濁] 이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이 없으며, 오직 즐거움만 있는 세계로서,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삼계(욕계․색계․무색계)를 뛰어넘은 영원한 낙토(樂土)임을 경전에서는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그래서 극락정토는 모든 불․보살이 수용(受用)하는 청정한 보토(報土)인 동시에 중생들 또한 번뇌 업장만 소멸하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상주불멸(常住不滅)한 실상(實相)의 경계인 것이다.

  이렇듯, 극락세계는 시간․공간을 초월한 영생의 세계인데도 경(經)에는 십만억 국토를 지난 아득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번뇌에 때묻은 중생의 분상에는 실재하지 않는 꿈같은 세계이기 때문에 중생의 차원에 영합(迎合)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임을 경전을 정독 음미할 때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범부의 망정(妄情)을 여읜 성자의 정견(正見)에는 사바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일지라도, 온갖 번뇌에 얽매이고 가지가지의 고액이 충만한 현실에 시달린 고해(苦海) 중생에게는 영생 안온한 극락세계란 역시 너무나 머나먼 이상향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은 필경 돌아가야 할 본래 고향인 극락세계를 동경하고 흠모하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간절한 서원을 굳게 세우고, 한량없는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아야 할 것이다.


    八, 염불(念佛)

    1, 염불의 의의(意義)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것 곧, 왕생(往生)함이 정토삼부경의 주제이다. 그리고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은 바른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성자(聖者)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正覺)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또한 경전의 말씀과 같이 「적은 선근(善根)과 적은 복덕(福德)」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극락세게에 왕생하기 위한 큰 선근과 거룩한 복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염불인 것이다. 우리 본래 자성이 부처님이요, 아미타불이란 부처님의 명호(이름)이기 때문에 염불이란 곧 자성불(自性佛)을 생각하고 자성불로 돌아가는 법이자연(法爾自然)의 수행법인 것이다.

  또한 염불은 부처님의 본원에 들어맞는 수행법일 뿐 아니라 삼세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기억하여 호념(護念)하시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에 비하여 불ㆍ보살의 가피가 수승함은 여러 경전이나 수많은 영험록(靈驗錄)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능엄경(楞嚴經)」에서도 석존께서 「나는 일찌기 수행할 때에 염불로써 무생법인에 들었느니라」(我本因地 以念佛心 入無生法忍)하셨고 「관무량수경」에는 「염불하는 이는 모든 사람 가운데 향기로운 연꽃이니라」(若念佛者 當知此人 是 人中分陀利華)하셨다.

  그래서 염불은 진여자성을 여의지 않는 자성선(自性禪)이라고도 하고 또한 모든 삼매(三昧)의 왕(王)이라 하여 보왕삼매(寶王三昧)라고도 하는 것이다.

    2, 염불의 방법

  염불(念佛)이란 부처님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또는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칭명(稱名)염불ㆍ관상(觀像)염불ㆍ관상(觀想)염불ㆍ실상(實相)염불 등 네 가지 방법이 있다.

  ㉠ 칭명염불은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부르는 것으로서 가장 간단하여 행하기 쉽다.

  ㉡ 관상(觀像)염불은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모습)를 생각하는 염불이다.

  ㉢ 관상(觀想)염불이란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지혜 공덕을 생각하는 염불이다.

  ㉣ 실상염불이란 부처님의 법신(法身) 곧 일체 만법의 본바탕은 있는 것(有)도 아니고 공(空)한 것도 아닌 중도(中道)의 실상(實相)임을 생각하는 염불이다.

  이러한 사종 염불 외에도 호흡과 맞추어서 염불하는 수식(數息)염불, 아미타불을 화두(話頭)로 하여 참구(參究)하는 간화(看話)염불 등이 있다. 그런데 어떠한 염불이든 자기 근기에 맞는 염불을 일심불란(一心不亂)하여 삼매(三昧)에 들면 되는 것이니 함부로 그 우열(優劣)을 시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 염불삼매(念佛三昧)

  위에 말한 염불 공부를 망념(妄念)이 섞이지 않도록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일심으로 수행함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 하고 이러한 수행이 성취되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고, 혹은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시며, 또는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에 들어맞음[契合]을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한다.

  「염불삼매경」에 이르기를 「염불삼매는 일체 모든 법을 다 포섭하였으니 이는 성문(聲聞) 연각(緣覺)의 이승(二乘) 경계가 아니니라」(念佛三昧則爲總攝一切諸法 是故非聲聞緣覺二乘境界)하셨다.


    九, 염불과 선(禪)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佛心]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佛語]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과 교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이다.

  또한 일체 만유의 근본 자성(自性)이 아미타불이요, 극락세계 역시 같은 자성(自性)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汚染)되면 그에 상응한 삼계(욕계․색계․무색계)․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에 윤회(輪廻)하는 고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과 내세(來世)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극락세계의 청정한 행복을 수용(受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극락세계를 염원(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명호(이름)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진여자성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우열(優劣)이 없으니, 염불과 선(禪)은 일치한 것이다.  
  그리고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淨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諸佛如來是法界身 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 是心作佛 是心是佛)

  또한 저명한 선사(禪師)들로서 선정일치(禪淨一致)를 주장한 이들의 법문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 보조지눌 스님(普照知訥A.D 1158~1210) : 고려스님.

  염불의 공덕이 성취되면 언제 어느 곳에나 아미타불의 참 몸이 앞에 나타나며 임종 시에는 구품(九品) 연화대에 영접되어 그 상품(上品)에 왕생한다.

  (念佛功極 於日日時時一切處 阿彌陀佛眞體冥現其前 臨命終時迎入九品蓮臺上品往生. )「念佛要門」

㉡ 태고보우 스님(太古普愚A.D1301~1382) : 고려스님.

  아미타불의 청정 미묘한 법신이 두루 모든 중생의 마음에 계시므로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이 본래 차별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곧 마음이다. 아미타불의 명호(이름)를 끊임없이 분명히 생각하고 외울지니, 힘써 정진하여 그 공덕이 성취되면 홀연히 분별이 끊어지고 아미타불의 참 몸이 뚜렷이 나투신다.

  (阿彌陀佛淨妙法身 遍在一切衆生心地 故云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亦云心卽佛 佛卽心……阿彌陀佛名 心心相續 念念不昧……久久成功 則忽爾之間 心念斷絶 阿彌陀佛眞體貞爾現前. )「太古庵歌」

㉢ 청허휴정 스님(淸虛休靜A.D 1520~1604) : 별호는 서산(西山), 조선 스님.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분명히 불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그 한 생각 한 소리에 능히 팔십억 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소멸함과 동시에 팔십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

  (心則緣佛境界 億持不忘 口則稱名念佛號 分明不亂 如是心口相應念一聲 則能滅八十億劫生死之罪成就八十億劫殊勝功德.)「淸虛堂集」
㉣ 육조혜능 스님(六祖慧能A.D638~713) : 중국 당나라 스님. 선종(禪宗) 제6조.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 극락 가리라.

  (一句彌陀無別念 不勞彈指到西方)「禪淨雙修集要」

㉤ 영명연수 스님(永明延壽A.D 904~975) : 중국 북송 스님. 법안종(法眼宗)의 제삼조(三祖)

  선정과 정토가 같이 있으면,

  마치 뿔 난 호랑이같이

  이승에서 남의 스승이 되고

  다음 생엔 부처와 조사가 되리


  선정이 없고 정토만 있어도

  만(萬) 사람 닦아서 만 사람 가니

  다만 아미타불만 뵈옵게 되면

  깨닫지 못할 걱정 어찌 있을까.


  선정만 있고 정토 없으면

  열 사람에 아홉이 미끄러지고

  중음(中陰) 경계가 나투게 되면

  별안간 그를 따라가고 말며,


  선정과 정토가 모두 없으면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의 지옥

  일만 겁과 일천 생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도 없네.


  (有禪有淨土 猶如載角虎

   現世爲人師 來生作佛祖

  

   無禪有淨土 萬修萬人去

   但得見彌陀 何愁不開悟


   有禪無淨土 十人九蹉路

   陰境若現前 瞥爾隨他去

   

   無禪無淨土 鐵床並銅柱

   萬劫與千生 沒箇人依怙.)

㉥ 천여유칙 스님(天如惟則A.D 1300년경) : 중국 원(元)나라 임제종(臨濟宗) 스님.

  염불과 참선이 같지 않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참선이란 다만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 함이요, 염불은 자기 성품이 미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淨土)임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그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을 하면 현세나 다음 생에 반드시 부처님을 뵈오리라」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부처님을 뵈옴이 어찌, 참선을 하여 도(道)를 깨닫는 것과 다름이 있을 것인가.

  아미타불 넉자를 화두삼아 자나 깨나 분명히 들어 쉬지 않고 한 생각의 분별도 나지 않는 데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오르리라.

  (有自疑念佛與參禪不同 不知參禪 只圖識心見性 念佛者 悟自性彌陀 唯心淨土豈有二理, 經云 億佛念佛 現前當來必定見佛 旣曰現前見佛 則與參禪悟道有何異哉 但將阿彌陀佛四字 做箇話頭 二六時中 直下提撕 至於一念不生 不涉階梯 徑超佛地.) 「天如則禪師普說」


해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