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885
부처님 가르침은 참다운 자기를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참배하고 있는 법당 안의 탱화 부처님도 저만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참 마음의 공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마음은 사실은 참 마음이 아닙니다.
불교 말로 하면 이것은 망아(妄我)라, 망령될 망(妄)자, 나 아(我)자, 망령된 나입니다. 여기서 “나는 제법 꽤 많이 배우고 명상도 좀 하고 했는데 왜 나같은 사람이 망아인가, 망령된 것인가” 이렇게 의아심을 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이 참 마음자리를 깨달으면 이른바 성인인데 성인이 못된 한에는 우리 누구나가 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망아. 망령된 나를 면치를 못합니다.
그래서 망령된 나가 항시 언제나 존재한다는 그런 생각을 불교 전문술어로 하면 망집(妄執)이라 그럽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은 아직 성자가 못되었으니까 누구나가 다 지금 망집을 하고 있지요. 분명히 나는 나고 너는 너고 이렇게 존재하는데 왜 이것이 망령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나라고 고집하는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비롯해서 우리가 대상적으로 보고 있는 산이나 물 모두가 다 사실은 그 실존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인연 생이라,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생겨났습니다. 인연 따라서 생겨났다는 말은 어느 하나가 고유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과 조건부로 잠시간 있는 것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몸도 역시 각 원소가 잠시간 합해져서 지금 부단히 어느 찰나도 중단하지 않고 신진대사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 몸뚱이 자체가 이것이 하나의 변화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지 고유한 내 몸뚱이가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현대물리학이 아주 극명스럽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 몸뚱이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그래요. 내 마음도 어제 마음 오늘 마음 다 똑같지 않은가. 그러나 똑같지가 않습니다. 어제 누가 나한테 좋게 하면 그냥 집착하게 되고 자기도 기분이 좋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또 그 사람이 배신한단 말입니다. 배신하면 곧장 그 사람을 내치고 싶고 보복하고 싶어지는 것이 우리 마음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 마음도 그때그때 순간순간 철나찰나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뿐인 것이지 다 변화한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신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오온개공은 우리 몸을 구성한 물질이나 관념이나 모두가 다 본래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상식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철두철미, 과학적인 동시에 또는 형이상학적인 그러한 순수생명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자기 몸을 비롯한 모든 그런 물질적 존재란 것은 사실은 있지도 않는 것인데 우리가 잘못 생각해서 겉만 보고서 성품을 미처 보지를 못하니까 있다고 착각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제법이 공이라. 모두가 다 비어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제법공의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상식적인 가르침으로 해서는 아무리 애써도 항시 있다는 것에 집착해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아집(我執)이라, 나라는 것에 집착하고 또는 법집(法執)이라, 대상적으로 보이는 산이나 물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니까 실제로 그것이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우리 중생은 보이지 않지만 우주란 것은 모두가 다 근원적인 의미에서는 진여불성이라, 어느 때나 변치가 않는 천지우주가 다 파괴되어서 텅텅 비어버리는 그때도 변치 않는 그런 실상적인 경계가 이른바 이것이 불성 아닙니까,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진리자체이니까 진여라고 그럽니다. 사람한테나 동물한테는 불성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또는 자연계의 무생물이나 그런 법은 법 법(法)자 성품 성(性)자, 법성(法性) 그러는데 내내야 똑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주 자체가, 오직 하나의 성품으로 돼있단 말입니다.
불성이라고 말하나 법성이라고 말하나 또는 진여라고 말하나 똑같은 뜻입니다. 비단 부처님 가르침이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그런 가르침이나 또는 그 가르침뿐만 아니라 옛날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철인들 가르침이나 사실은 똑같습니다. 표현이 다른 것이지 위대한 철인들 말씀은 똑같습니다. 똑같다는 말은 어떤 뜻이냐 하면 천지우주가 모두가 하나의 생명으로 돼있단 말입니다.
서기 오백사 십년 전에 나온 파르메니데스라든가 또는 그 시대에 나온 헤라클레이토스라든가 또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서나 이런 분도 우주란 것은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이다, 하나의 진리다 이런 도리를 말했습니다. 표현은 좀 다르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중세기에 나오신 분들, 이른바 스피노자는 십칠세기에 나오신 분 아닙니까. 그분은 마흔넷에 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마흔네 살 넘으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요. 마흔넷에 가신 분인데 적어도 십칠세기 이후에 칸트라든가 위대한 그런 철인들이 스피노자 영향을 안받은 분이 별로 없어요. 그렇게 위대한 분입니다.
그이의 전기를 제가 구체적으로 많이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스피노자 사진만 봐도 아무런 무슨 흐림이 없어 보여요. 그렇게 온화하고 고상하고 친절하게 보입니다. 마흔네 살에 가신 분이 현대철학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어요. 피히테라든가 또는 헤겔이나 그런 철인들 모두가 다 스피노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어떤 문제에 관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가,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천지우주가 하나의 신이요 하나의 부처입니다. 이른바 범신론이라, 우리 불자님들 좀 어려우셔도 신이 있다 없다 그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를 섭리했다는 그런 도리는 주로 기독교나 유태교나 이슬람교나 그런 데서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뜻이라든가 또는 모두가 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불교의 진여불성 아님이 없다, 또는 힌두교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바라문으로 돼있다, 이런 것이 표현만 좀 다른 것이지 결국은 똑같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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