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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6.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6.

 

불교는 무엇인가? 불교(佛敎)는 헤매지 않고서 본래 고향(故鄕)으로 가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자리, 진여불성자리 이것은 모든 생명의 근본자리인데 진여불성자리는 생명이기 때문에 부처님 이름을 거기다가 보탭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모두가 다 진여불성에다가 붙인 이름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공부가 제일 쉬울 것인가?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느 사람들은 어렵게 시리 어려운 것을 우리가 공부하면은 훨썩 더 차원이 높고 또 간단하고 누구나가 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공부하면은 차원이 낮다.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주 생긴대로, 사실 생긴대로 우리가 공부하면 된단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 마음이나 우주의 본질인 진여불성이라고 하면은 바로 부처님의 성품이라고 하면은 그 부처님의 성품 이름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내 생명의 그대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것이 사실은 제일 쉽고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쉬운 것이 없습니다. 쉬운 것은 이것은 공부가 깊이 들어가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쉬우면서 닦기가 쉽고 또 극락세계에 가기도 쉽단 말입니다.

 

부처님 법은 엄격(嚴格)하고 준엄(峻嚴)합니다. 우리가 지은대로 받기 때문에 준엄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은 본래가 어느 것도 진여불성이 아님이 없기 때문에 종당에는 다 모두가 부처가 돼 갑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가장 자비(慈悲)스럽고 한도 끝도 없는 사랑에 충만한 그런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가 알아야 참다운 지혜(智慧)인 것인데 그렇게 알지 못하고 이 겉만 보고서 근본 뿌리를 보지 못하면 그때는 참다운 지혜가 못됩니다.

 

참다운 지혜란 것은 여러분들이 아시지 않습니까? 반야(般若)의 지혜라. 반야의 지혜는 참다운 지혜란 뜻입니다. 다시 바꿔서 말하면 상이 없는 지혜란 말입니다. 상이 없는 우주의 본바탕을 그대로 보는 지혜가 반야의 지혜입니다. 이른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란 말입니다. 반야바라밀이 돼야 이것이 참다운 지혜인데 참다운 지혜는 방금도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러분들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둘이나 셋이나 그렇게 분열되지 않은 지혜란 말입니다. 하나의 지혜입니다.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하나의 자리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진여불성의 도리입니다.

 

영가(靈駕)들도 하나의 도리를 안다고 생각할 때는 저승에서 헤매지 않고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바로 가십니다.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공덕이 우리 마음에는 본래로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자리를 의심(疑心)없이 믿으면 설사 금생에 잘못 살았다 하더라도 의심 없이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의심 없이 믿는 그 순수(純粹)한 마음 때문에 극락세계에 초승해서 비약적(飛躍的)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經典)에 보면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있는 법문입니다 만은 금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꼭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삼악도에 떨어질 만한 사람들이 죽을 때는 임종(臨終)때 굉장히 고통(苦痛)을 받는 것입니다. 임종 때 여러분들, 돌아가실 분들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어느 분들은 고요히 가십니다. 어느 분들은 그냥 뭐 손을 내젓고서 아주 몸부림 치고 말입니다. 그 고통하면서 소리도 고래고래 지르고 가신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자기가 들어갈 세계, 자기가 들어갈 그 어두운 세계, 고통 세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벌써 상징적으로 그대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삼악도에 틀림없이 떨어질 만한 죄를 범한 사람도 아까 제가 말씀 드린바 임종때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느끼고 반야의 지혜란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宇宙)가 모두가 다 하나의 지혜(智慧)란 것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나 나나 또는 어느 존재(存在)나 우주란 것은 모두가 다 진여불성이란 하나의 만능(萬能)을 갖춘 것이 내 생명(生命)이다. 그 자리가 진짜 나다. 그 자리를 깨달아야 그래야 참다운 인간입니다.

 

여러분들 참 진(), 사람 인()자 진인(眞人)이란 말씀을 들으셨지요. 진인이라, 참다운 사람. 또는 대아(大我). 큰 대(), 나 아(), 또는 참 진(), 나 아()자 진아(眞我). 다 같은 뜻인 것인데 그렇게 참다운 사람은 무슨 사람인고 하면은 그 진여불성을 자기로 한단 말입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깨달은 분입니다. 한데 그 진여불성, 진여불성이 참다운 나다. 이렇게 느끼면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죄를 많이 지어서 꼭 지옥에 떨어질 사람도 순간적으로 죽는 순간적으로 그냥 정화(淨化)가 돼서 말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직행(直行)한단 말입니다. 직행도 그냥 직행한 것이 아니라 성중래영(聖衆來迎)이라, 아미타 부처님이 25보살을 거느리고서 마중온단 말입니다.

 

죽어서 자기 영혼(靈魂)이 홀로 외롭게 가는데 마중 올 사람이 없으면은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헌데 그냥 보통 사람이 마중 온 것이 아니라 아, 부처님께서 우리를 마중 온단 말입니다. 그런 것은 제가 지어서 한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에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오늘 천도를 받는 영가들이시여! 깊이 명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리(眞理)라는 것은 우주에 공변된 진리입니다. 사사로운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지어서 지은 대로 받습니다. 우리가 짓는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우리 생명의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보다도 더 중요한 길이 없습니다.

 

무수한 성자(聖者)가 무수한 철학자(哲學者)들이 모두가 다 그 자리를 탐구(探究)하고 그 자리 때문에 생명도 바치고 다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를 마다고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자리만이 참다운 행복의 자리입니다. 극락세계에 들어가야 만이 영원히 죽음이 없습니다. 이별도 없습니다. 고통도 없습니다. 따라서 참다운 행복(幸福)은 극락세계(極樂世界)에 들어가는 행복만이 참다운 행복입니다. 그러면 극락세계는 어디가 있는 것인가? 극락세계는 도처에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깨달아 지면은 우리 마음이 진여불성이라 하는 참다운 나가 되면은 그때는 이 사바세계에 있다 하더라도 극락을 느낀단 말입니다.

 

또는 저 맑은 공간에도 극락세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만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음 깨달으면은 그때는 어디 먼 데 갈 것도 없이 이 자리 자기가 선 채로 이 자리에서 극락세계를 우리가 수용(受用)을 합니다. 왜 그러는가? 부처님의 청정(淸淨)한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부처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다 부처같이 보이니 무슨 갈등(葛藤)이나 반목(反目)이나 또는 여러 가지 투쟁(鬪爭)이나 그런 싸움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다 부처같이 보이니 부처란 것은 훤히 다 광명(光明)으로 빛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니 우리한테 불행(不幸)이나 또는 여러 가지 우리 마음의 그런 어두운 마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마음 깨달으면 그때는 도처가 다 극락이란 말입니다.

 

오늘 불자님들이시여! 천도를 받는 영가(靈駕)들이시여! 극락세계는 절대로 먼 데가 있지가 않습니다. 또 우리가 극락세계에 가는 방법도 어렵지가 않습니다. 나한테 원래, 내 생명의 본바탕이 바로 부처인데 그 부처자리, 부처님의 그 자리, 그 자리에 가기는 우리가 버릇이 들어서 쉽게는 갈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가장 쉬운 법은 부처님 이름을 외이는 것입니다. 부처님 이름을 외이면은 그 때는 이름을 외이는 즉시에 우주(宇宙)의 본바탕인 불성(佛性)하고 같이 상통(相通)이 됩니다.

 

중생(衆生)이 부처님 생각하면은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부처님으로 충만(充滿)해 있어놔서 부처님은 또 우리를 그대로 굽어본단 말입니다. 우리가 절을 하면은 부처님은 우리가 절하는 것을 보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면 또 부처님도 공명(共鳴)을 다 하시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주저 없이 우리 몸 이대로 갖고 가지고 있는 대로 참다운 실상(實相)적인, 가상적(假想的)인 그런 사람이 아니라 참다운 본래 우주(宇宙)생명 그대로인 참다운 진인(眞人)이라. 참다운 . 진아(眞我). 이렇게 되셔서 위 없는 행복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