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자님들은 결단을 내리셔야 됩니다. 결단을 내리시고 그 다음 문제는 공부하는 걸로 해서 그 삼학도三學道라, 석 삼三자 배울 학學자 길 도道자, 삼학도라. 삼학도의 관념을 항시 마음에 두고 거기에 준해서 공부를 하셔야 되어요. 계율戒律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와 이것이 삼학도 아닙니까. 계율戒律이 없이 절대로 선정禪定에 못 들어 갑니다.
근세近世에 있어서 더러는 계율이 없더라도 무애행無礙行도 하고 아무렇게나 먹고 막행막식을 해도 도인이 된다. 부처님 가르침에나 정통조사正統祖師의 가르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꼭 도덕적道德的으로 하자瑕疵가 없이, 도덕적으로 계율을 지켜야 선정에 들어갑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 삼매불현전三昧不現前이라, 계율을 인도印度의 말로 시라尸羅라고 말합니다. 시라불청정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삼매불현전이라 깊은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깊은 삼매三昧에 못 들어가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삼매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지속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아까 말씀마따나 우리 그 지성적知性的인 미혹迷惑이나 무명無明이나 또는 우리의 업에 칭칭 감겨져 있는 업장業障이 안 녹아지는 것입니다. 이른바 심리心理와 생리生理가 온전히 녹아져야 참다운 깨달음이 온단 말입니다. 사생활私生活이 그렁저렁 사는 사람은 절대로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우리 재가불자님들도 좀 고생스러워도 육재일六齋日이 있지 않습니까. 육재일 이라는 것은 하다못해 한 달에 엿새만이라도 출가한 스님네 같이 생활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끼 먹고 또 내외간 같이 살아도 잠자리 같이 않고 고기도 안 먹고 술도 안 먹고, 요새가 얼마나 참 무서운 때입니까. 금년만 해도 제가 아는 분이 암으로 해서 둘 셋 네 분이나 죽었어요. 그야말로 무서운 시대입니다. 그 암癌을 퇴치하려고 그 서양의 문명 의학醫學들이 얼마나 몸부림을 칩니까마는 아직도 결국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단념을 한 모양 같아요, 그렇게 부자로 해서 미국 내왕하고 어디 내왕하고 그렇게 해도 결국 암은 치료를 못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 원인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대체로는 우리 입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관념상 우리 생각이 삼독심三毒心을 못 떠납니다. 그 독 가운데 제일 무서운 독이 무슨 독입니까? 삼독심이 제일 무서운 독입니다. 탐욕심貪慾心을 내고 진심嗔心을 내고 또는 무명심無明心 어리석은 마음을 내고 이것이 가장 무서운 독毒이란 말입니다.
진심嗔心을 내면 진심을 내는 즉시에 우리 세포細胞를 오염汚染시킵니다. 우리 인간 세포가 60조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세포가 없어졌다 생겼다 그럽니다. 그런 세포에 우리 생각 하나하나가 다 반영이 됩니다. 좋은 생각은 우리 세포를 조화調和를 시키는 것이고 좋지 못한 생각은 우리 세포를 그때는 중독中毒을 시킵니다.
따라서 암이고 무엇이고 별것이고 모두가 다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잘 못 먹거나 잘 못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공부하는 방법도 역시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참 염불念佛만 죽자고 하는 그런 공부도 있고, 또는 우리가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대다라니大陀羅尼를 외워서 하는 공부도 있고 또는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참구參究해서 하는 공부도 있지 않습니까. 다 훌륭한 성불成佛의 법法입니다. 성불의 법인데 가장 중요한 핵심核心은 무엇인고 하면 우리 마음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봐 같이 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떠나지 안아야합니다.
남한테 우리가 무엇인가 베푼다 하더라도 그냥 저 사람은 나보다 못사니까 불쌍하니까 베푼다. 이런 것은 단순한 선행善行 밖에는 안 됩니다. 따라서 선행을 했으니까 그런저런 과보는 좀 받겠지요. 허나 이른바 도업道業이라, 도道을 성취하는 진리眞理를 성취하는 업業과는 이것은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저 사람과 나와 본래本來로 둘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본래로 둘이 아닌 것입니다. 도둑하고 나와도 둘이 아니고 아, 살인 죄인하고 나하고도 둘이 아니고, 그 곤충과 나와도 다 둘이 아닙니다. 성품性稟에서 본다고 하면 모두가 다 일매지게 다 하나입니다. 거기다 우리마음을 두어야 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우리 중생은 사실事實을 외면하고 허상虛像에다 우리 마음을 집착執着시킵니다.
따라서 사실에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서 모두와 나와 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베풀어야 참다운 보시布施고 이른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됩니다. 공부하는 방법이 아까 말씀드린 봐 같이 염불念佛로 해서 부처님을 생각해서 부처님이 되어가는, 사실은 제일 쉽기는 쉽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참 본래 부처데, 본래 부처가 부처를 생각해서 부처가 되니까 그때는 제일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고 다른 공부도 역시 모두가 다 그런 투여요. 우리가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의심疑心하는 것도 화두공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화두공안 그것이 내내야 우리 자성自性을 우리 불성佛性을 깨닫는 하나의 방편方便이어요. 모두가 다, 따라서 어떠한 공부든 간에 아까 제가 말씀드린 봐 같이 반야般若의 지혜智慧, 천지우주天地宇宙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 아님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고서 화두공안을 들고 염불을 하고 그래야 됩니다.
염불念佛도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이렇게 하는 것도 염불이지 않습니까. 허나 부처님은 저 밖에 계시고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동경憧憬하고 그러면 우리한테 가호加護를 준다. 이것은 참선參禪은 못됩니다. 단순한 타력염불他力念佛은 되어도 참선은 못됩니다. 그런 염불은 참다운 염불도 못됩니다. 일체존재一切存在가 부처 아님이 없다. 이 자리 즉 말하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자리 반야般若의 자리, 참다운 반야바라밀은 깨달아야 되겠지만 그 전에도 역시 우리가 반야바라밀을 지향하는 천지우주天地宇宙를 일원적一元的인 진여불성眞如佛性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반야의 관조법觀照法이란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염불을 해야 그래야 참다운 염불이고 염불참선念佛參禪 그래요. 진여불성자리 참다운 실상자리를 떠나지 않고서 하는 염불이 이른바 실상염불實相念佛인 동시에 염불참선입니다. 그래서 다른 우리가 어떠한 공부를 하든지 간에 가령 묵조선黙照禪이라, 잠자코 마음을 관조하는 그런 참선을 한다 하더라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봐 같이 반야바라밀을 항시 안 떠나야 참다운 묵조선이 됩니다. 화두공안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무엇인가? 의심만 죽도록 한다고 그래서 그것이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니어요. 그렇게 하면 상기上氣가 되기가 쉽지요. 따라서 그 우주宇宙에 충만充滿해 있는 그 한도 끝도 없는 무량공덕無量功德을 갖춘 그 진여불성 자리 자성자리 본래자기주인공本來自己主人公자리를 놓치지 않고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해야 됩니다.
그렇게 허셔서 부지런히 공부해서 명년明年 봄에 제가 또 죽어버리면 그때는 만나 뵙지 못하고 제가 다시 살아서 오는 경우는 우리가 서로 지금 같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하여든 우리 공부가 훨썩 더 진척되고 우리 마음도 몸도 그야말로 청정한 그런 진정한 불자가 되어서 서로 피차 상봉하도록 하십시다.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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