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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03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 우리 중생이 본래로 그 부처의 성품을 다 가지고 있고 또한 동시에 우주자체가 법계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오늘날 잘 못사는가. 혼란스럽고 항시 불안스러운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현재도 그렇고 또는 과거도 그렇고 또는 저 고대古代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시 우리는 그 불안스러운 세계에서 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까도 얼핏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참 자기를 모른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령 김 아무개하면, , 김 아무개가 이것이 인제 진짜 내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는 것은 이것은 이른바 가짜입니다.

 

불교말로 하면 망아妄我, 망녕될 망자 나 아자 말입니다. 망아라.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뒤바뀌어서 거꾸로 보기 때문에 그 나라는 존재가 내 몸뚱이고 내가 금생에 받은 내 성이고 이름이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실은 부처님 법에서 비추어보면, 부처님 법까지 미처 안가고 보통 과학적인 상식으로만 본다 하더라도 그런 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자님들 깊이 생각을 하십시오. 우리가 평생 우리 몸뚱이 종 되지 않습니까. 우리 또 번뇌망상煩惱妄想의 종이 된단 말입니다. 노예가 되어서 우리가 끙끙 앓다가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인생고해人生苦海아닙니까. 헌데 우리가 그렇게 섬기고 아끼던 그 몸뚱이는 사실은 이것은 본래本來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없을 무, 나 아자 무아無我. 무아를 모르면 불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무아란 말입니다.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봐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아, 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산소나 수소나 탄소나 그런 것이 잠시간 인연의 화합으로 해서 내 몸뚱이가 되었고, 내 마음은 무엇인가. 내 마음은 탐심貪心과 진심嗔心이나 그런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생각 그것이 우리 마음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 것은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바와 같이 모두가 다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요 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그림자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림자가 없는 것 아닙니까. 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관념觀念, 또는 너라는 관념. 모두가 이런 것은 다 꿈이요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그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상식적으로 소박하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이것은 실지로는 있지가 않은 것인데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있다고 착각錯覺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범부가 대상적으로 인식認識하는 객관세계, 이요 또는 물이요 하늘이요 모두 그런 세계, 이런 것도 사실은 우리 중생이 생각하듯이 그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도 허망虛妄한 것입니다.

 

허망하지 않다고 하면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모든 있는 존재는 다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와 같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은 어느 때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십니다. 부처님 말씀은 진실을 진실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부처님 말씀은 조금도 가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삼독심에 가리어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를 못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은 없는 것을 있다고 보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아無我기 때문에 진정으로 내가 없는 무아기 때문에 무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무아를 깨닫지 못하면 어떠는 것인가. 참말로 옳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하는 것은 그 인생고해라. 끝도 가도 없는 우리가 지금 고해에서 헤맨단 말입니다.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거든 따지고 보면 내 권속眷屬도 나한테 소속된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재산권도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모든 재산도 내 것이 아니다. 그래버리면 이건 혼나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법으로 생각할 때는 나도 없거늘 내 소유가 어디가 있을 것인가.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면 사실은 세상이나 모든 것이 다 다툼이고 또는 불안한 것이고 또는 갈등 반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못살면 그때는 틀림없이 인과필연因果必然으로 우리 스스로 죄를 짓고 또 그 과보果報로 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는단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법은 사실은 제일 쉽기도 하고 제일 확실하고 또는 우리를 최상最上의 행복幸福으로 인도하는 그런 법입니다. 어째 그러는가 하면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씀한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꾸로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고 참말로 있는 것은.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참 진자 나 아자 참사람은 참말로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대상적인 산이요 풀이요 또는 물이요 하는 것은 이런 것은 모두가 다 허깨비같은 것입니다. 뜬 구름같으나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참말로 있는 것은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 중생은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사실로 있다고 생각하고 성인들은 그러지 않고서 현상계는 허망한 것이고, 그 근원적인 실상인 그 부처님 세계, 그 불성의 세계,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계의 세계 이런 세계가 참말로 있는 세계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나 능엄경楞嚴經이나 다 그렇게 말씀을 했어요. 연화장 세계라, 또는 극락세계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극락세계는 우리 마음 떠나서 우리가 사는 이 공해公害도 많은 이런 세계 떠나서 저 성층권成層圈에나 올라가 가지고서 그런 공해 없는 세계가 아닌가.

 

이것은 크게 착각입니다. 극락세계는 우리를 떠나서 어디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어요. 이 세계 이대로 바로 극락세계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법계 바로 연화장 세계고 말입니다. 가장 이상세계입니다. 죄는 어디가 있는고 하면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스스로한테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삼독심에 가 있습니다.

 

나중에 인연 따라서 아,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는 그때그때 후에 인연에 맡기고서, 오늘은 간단히 제 말씀을 줄여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은 그냥 덮어놓고서 이것이 좋으니까 좀 고생스러워도 이것을 억지로 해라, 이런 말씀은 절대로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항시 이 우주의 도리道理에 딱 들어맞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말씀은 그 우주의 도리, 저 그리스, 그 서구인들 말씀으로 하면 이른바 로고스logos지요.

 

우주의 도리, 우주의 법리, 그런 도리에 들어맞고 또는 동시에 우리한테 기쁨을 준단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그냥 고생스럽게 우리가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기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가르침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또는 부처님 마음은 부처님 말씀은 또 우리한테 우리가 한시간 공부하면 한 시간 공부한 만치 우리한테 유익하단 말입니다.

 

, 부처님 공부 지지리 해봐도 돈 버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절대로 말으십시오. 지금 당장에 돈은 못번다 하더라도 부처님 공부를 한 시간 하면 한 시간 한만치 틀림없이 그 사람 서원誓願이 정당한 한에는 틀림없이 그 보답이 있습니다. 우주란 것은 인연법因緣法이기 때문에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우주가 모두가 다 인연에 얽혀있어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기라는 존재와 별도로 따로 있는 그런 독불장군獨不將軍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관계가 있어요. 모두가 다 거지하고 나하고 관계도 있고 또는 개와 나와도 관계가 있고 말입니다.

 

또는 예수Jesus (Christ)님과 나와도 관계가 있고 또는 마호메트Muhammad와 나와도 관계가 있고 말입니다. 다 모두가 직접 간접의 차이는 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모두가 다 관계가 있습니다. 나한테 와서 내 욕을 실컷하는 그 사람하고도 나하고는 다 관계가 있어요.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한 몸입니다. 한 몸입니다.

 

새 한 몸 또 한마음 모두 그러지 않습니까. 아주 그 유명한 한마음선원도 있지 않습니까. 다 훌륭한 말씀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나 너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생물無生物이나 생물生物이나 모두가 다 이것이 다 한 한 몸이어요. 한 몸이고 한 생명입니다. 이 우주란 것은 모두가 통 털어서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 프랑스의 유명한 베르그송Bergson이란 그 철학자도 역시 불교와 상당히 근사하고 가까운 점이 있습니다만 이 분 말씀도 아, 우주란 것은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다, 약동躍動하는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갈파를 하셨어요. 사실 그렇습니다. 나 따로 있고 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모두가 다 같이 관계성 때문에 관계성으로 해서 불교말로 하면 그때 인연으로 해서 다 붙어있단 말입니다.

 

옆 엣 사람과 또는 그 자기와의 관계가 산소나 수소나 그런 원소가 없는 데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다 알으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한 1000여명 우리 불자님들이 모셨지만 우리 모두가 그 원소차원에서는 지금 다 붙어있어요. 모두가 다. 우리 안목이 짧으니까 그 거시적인 우리 중생이 볼 수 있는 안목에선 내 몸 따로 네 몸 따로 그렇게 있는 것이지, 산소나 수소나 그런 원소차원만 본다하더라도 나와 너와 모두가 다 지금 붙어있어요. 모두가 다 그러나 더욱 더 진여불성이라, 천지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이 바로 불성인데 부처님의 성품인데 부처님의 성품자리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천지가 부처님뿐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