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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01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전도몽상이라는 법문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전도몽상이 나와 있으니까. 불교인들은 전도몽상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몽상하면 보통 생각하기를 우리 보통사람들은 전도몽상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전도몽상이 거꾸로 보는, 모든 사태를 거꾸로 보는 이른바 아주 꿈같은 그런 것이기 때문에 보통 차원에서는 전도몽상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전도몽상은 사실은 우리 범부凡夫가 보는 범부의 견해는 모두가 다 전도몽상에 해당합니다. 우리 중생衆生이 보는 견해見解와 성자聖者가 보는 견해見解와 우리가 구분해서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범부가 보는 견해는 모두가 다 하나같이 사실은 전도몽상顚倒夢想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 중생들은 무슨 물질 그러면 물질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물질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할 때는 부처님법이 잘 못됩니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우리 마음이나 또는 부처나 또는 모든 중생, 우리 불교에서 중생할 때는 그냥 사람이라든가 또는 동물이나 그런 것만이 중생이 아니라 일체존재一切存在가 모두가 다 중생衆生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사람이나 또는 일반 동물이나 또는 무생물이나 일체존재가 모두가 다 이것이 다 마음뿐이란 말입니다.

 

이른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뿐이기 때문에 어떠한 물질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이것은 사실은 우리가 바로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전도몽상으로 본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사실은 물질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이 없는 것이란, 그런 소식은 사실은 어떤 누구나가 다 상식적으로는 긍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의 여러 가지 그런 과학적인 사고로 본다 하더라도 물질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쇠는 쇠대로 존재하고 또는 흙은 흙대로 존재하고 공기는 공기대로 존재하고, 이렇게 대상적으로 우리가 느낄 때는 모든 존재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보는 현대인들의 그런 감각에서는 도저히 긍정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물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성자의 견해, 성자의 견해만이 진실을 진실대로 봅니다. 헌데 성자의 견해는 분명히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고 이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에 와서는 현대의 초정밀과학에 있어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실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고 분석하고 들어가서 저 끄트머리 가서는 이른바 양성자陽性子나 중성자中性子나 그런 것이 된다는 것이 과학적인 결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양성자나 중성자나 그런 이른바 초미립자超微粒子단계 아주 미세한 그런 미립자단계에 있어서는 그 중성자나 양성자나 그런 아주 미세한 것은 사실은 분석을 해놓고 보면 무엇인가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무엇인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른바 현대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 중요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

 

불확정성不確定性의 원리原理 이것은 하이젠베르그Heisenberg, Werner Karl 1901-1976가 내놓은 것인데, 불확정성의 원리는 무엇인고 하면 모든 존재는 결국은 이것은 확정적으로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와 같이 현대의 그런 아주 최첨단의 정밀과학에서는 물질이란 것은 무엇인가 지금 결론을 낼 수가 없습니다.

 

결론을 낼 수가 없는데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 물질이 무엇인가는 모르기는 모르는데 그 물질이란 것은 아주 끄트머리에 가서는 신비부사의神秘不思議한 그 무엇이란 말입니다. 신비부사의한 그 무엇이란 것은 어렴풋이 알 수가 있는 것인데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 이른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그런 말씀이 나왔겠지요.

 

그와같이 물질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그런 것을 그런데 벌써 그 우리 부처님가르침은 물질이란 것은 이것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이 무엇인가 모르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물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물질의 끄트머리에 가서는 이것은 모두가 다 마음뿐이다 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부처님께서는 이미 말씀해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이란 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범부중생의 전도몽상, 범부중생이 상식적으로 그렇게 보는 견해에서 우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 정말로 부처님 그런 견해에서라든가 성자의 견해, 사실은 성자만이 모두를 바로 보고 전도몽상을 않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상식적으로 대상적으로 우리가 산이 있으면 저건 산이다 또는 물이 있으면 물이다 이렇게만 보는 것이 중생의 견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봐서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든 존재를 깊이 파고 들어가서 가장 근원적인 자리에 이르면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버린단 말입니다.무엇이 무엇인지 몰라버리는 자리가 이제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하나의 마음이라 하는, 마음이라 하는 그러한 신묘神妙한 그런 경계境界에 이르게 되겠지요.

 

따라서 우리 중생들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학문적으로 많이 공부를 했다든가 또는 무얼 안다든가 이렇게 우리가 이제 생각하고 자기스스로 아만심我慢心을 낸다하더라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은 참말로 아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범부가 아는 것은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전도몽상해서 거꾸로 봐서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이 우선 나라는 그런 관념, 나라는 관념觀念이 이른바 불교에서 아집我執 아닙니까.

 

나라는 관념도 우리 중생이 전도몽상해서 나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우리 중생들이 전도몽상하지 않으면 즉 다시 말하면 잘못보지 않으면 그때는 나라는 관념을 가질 수가 없단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가 나라고 생각할 때는 우선 내 몸뚱이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몸뚱이 보고 나라는 관념을 가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라는 관념도 사실은 내 몸뚱이는 어디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생각할 때는 보통 내 몸뚱이는 지금 체중體重은 얼마나 되고 신장身長은 얼마나 되고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허나 우리가 정확히 생각해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라는 그런 관념도 역시 그런 물질이라는 물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전제에서 나라는 그런 관념을 우리가 형성시킬 수가 있는 것이지 물질이란 것은 본래로 없는 것이다,

 

모두가 다 순수한 생명生命뿐이다, 순수한 생명이라고 말할 때는 순수한 생명 이것은 개별적인 생명이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생명이 없이 그 모든 존재가 사실은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개별적인 생명 이것은 우리 중생들이 잘못 봐서 개별적인 생명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지 성인聖人들이 바로 보는 그런 차원次元에서는 우주宇宙가 바로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란 말입니다. 하나의 동일한 생명체입니다.

 

이른바 동일철학同一哲學이라, 우주자체가 동일한 그런 생명체인데 우리 중생들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전도몽상이라, 거꾸로 보니까 잘 못 보니까 상식적으로 보니까 우리가 이제 동일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우리가 본단 말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나라는 관념, 이것은 동일한 생명체를 갖다가 우리가 국한시켜서 자기 몸뚱이라는 것이 있다고 전제해서 우리가 자기가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성인들과 우리 범부들의 차이는 거기에 있습니다. 성인들이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공부를 꽤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 우주를 동일한 하나의 생명체, 즉 다시 말하면 하나의 생명체니까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러겠지요. 그런 모든 존재가 자타自他를 떠나고 또는 시비是非를 떠나고 그런 자리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우리가 볼 수가 없다고 그러면 아직은 범부입니다. 범부중생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금생에 나와서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책무가 무엇인고 하면 우리 인간들이 이른바 아집我執이라, 나 아, 집착할 집, 아집이라, 아집을 떠나고 법집法執을 떠나서 우리가 해탈解脫로 가는 길입니다. 아집을 떠나지 못하고 법집을 떠나지 못하면 불교 인생관人生觀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윤회輪廻를 면치를 못합니다. 우리 생명은 금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전생도 무수생無數生 동안에 존재해 왔고, 또는 우리가 금생에 해탈을 못하면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해 갑니다.

 

일반사람들은 윤회를 잘 믿지를 않습니다. 우리 불교인들 가운데도 윤회를 잘 믿지를 않아요. 과거에도 우리 생은 무수생 동안에 나고죽고 나고죽고 존재해왔고 또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탈을 못하면 또 몇 만생을 우리가 헤맬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놓으니까 지금까지도 우리 중생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