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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심론/본연스님의 금강심론 읽기

함께 읽는 금강심론 읽기(1)


1. 금타金陀대화상[大和尙1898~1948]

 

금타金陀대화상은 일제의 강점기와 해방의 혼돈 속에서 풍운아風雲兒적 삶을 살면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선지식입니다. 짧은 삶이기에 크게 알려진 것은 없고 당신의 속가 아드님 법능法能성기性起스님이 저술한벽산碧山약기略記에 나오는 것과 전해지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이 맞추어 추리할 뿐입니다.

 

금타金陀대화상께서는 1898년 전북 고창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릴 적부터 천재적 기질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이웃 일본사람에게 빌린 측량기 설명서를 대충 읽고 바로 땅을 측량하여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특히 수리數理방면에 뛰어나셨는데 후일우주宇宙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을 저술한 인연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22세였던 19193월 고창만세운동에 연루되어 고창에 있는 문수사文殊寺에 피신, 문수사에서금강경金剛經을 수십 독 독송하고 발심發心하여 백양사 만암曼庵스님에게 출가하였습니다. 수계 당시 법명이 상눌尙訥이였으나 1936[38] 선정禪定 중 금색 두루마리 중간에 타자 글씨를 보고 금타金陀라 개명하였으며 건당建堂 법호法號가 벽산碧山이며 벽산당碧山堂 금타金陀대화상이라 불렸습니다.

 

출가이후 20대는 서울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에서 공부도 하시고 만해萬海 한용운스님과도 왕래가 있었으며 한용운스님의 성북동 심우정 터 구입에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승려가 결혼하는 것이 허물이 아닌 시기라 결혼도 하셨고, “금강산에 가서 밀교密敎를 공부했다” “일본을 몇 번 오갔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저술을 편집한 금강심론金剛心論에 상당부분이 밀교입니다.금강심론에 저술된오륜구자명비석五輪九字明秘釋은 일본 진언종 흥교興敎대사의 글인데 당신께서 밀교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일본을 오가지 않았는가? 추측합니다.

 

30대 만행萬行 같은 삶을 정리하고 백양사로 돌아오셨는데 백양사 강원講院에서 강주講主하신 기록도 있습니다. 화상께서 경전을 보시면 열 줄씩 찍어서 보시고 두 번 보면 암기하였다고 합니다. 금강심론에는 소승小乘, 대승大乘, 밀교密敎경전 까지 모두 인용하였는데 천재天才가 아니면 불가不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36[38] 백양사 운문암雲門庵에 기거하시면서 동안거 중 선정에 들어 용수龍樹보살[150?~250?]로 부터보리방편문菩堤方便門을 전수받고 21일 용맹정진 끝에 대각大覺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은 믿기 어렵겠지만 깊은 삼매三昧에 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금타金陀 대화상의 깨달음은보리방편문의 세계이며우주의 본질과 형량맨 마지막도 보리방편문내용과 일치합니다. 보리방편문은 마음이 허공같이 되었을 적에 펼쳐지는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그 후 보임수행으로 부안 월명암月明庵에서 한 철 사신 것 외에는 열반 들기 전까지 운문암雲門庵과 정읍 내장산 벽련암碧蓮庵을 오가시면서 수행하셨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사람들이 뛰어난 한국인들 암살명단을 백 명 작성했는데 그 가운데 금타金陀 대화상도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화상께서는 당신의 깨달음을 감추고자 운문암에서는 여법히 수행하시면서 산에 내려와서는 일부러 때를 입히는 행위를 하셨는데 산 밑에서 본 사람은 평가 절하하고 운문암에서 함께 정진한 대중은 부처님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대각大覺을 이루고 5년이 지난 1941년 처음으로 벽련암碧蓮庵에서 일본어로 우주의 본질과 형량이라는 책을 등사본으로 50여부 출판했습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라 공식적인 출판은 일본어가 아니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0여부 대부분은 일본 각 대학 연구용으로 보내졌으며 그 중 일본 동양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을 본정거사의 노력으로 2019년 영인본 금강심론에 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어 1943보리방편문菩堤方便門

1944년 봄에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독해讀解

여름에해탈解脫16

1946석존일대기釋尊一代記」 「수릉엄삼매도결首楞嚴三昧圖訣

1947금강삼매송金剛三昧頌」 「삼륜단공송三輪但空頌

관음자륜송觀音字輪頌」 「현기懸記를 저술하셨습니다.



대화상께서 열반하신 다음 해인 1949년에 금타金陀대화상의 저술을 모아 증보增補정음正音 관음문자觀音文字[일인전一人傳에 일인도一人度]책을 석판인쇄로 출판하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큰스님께서 소장하고 계시던 366, 군산 동국사 소장 237, 월정사 박물관 소장 373호입니다.

월정사 박물관에 있는 373정음관음문자[일인전에 일인도]책이 회유하게 된 인연은 월정사에 1980년대 열반하신 만화萬化희찬喜讚스님이라고 계셨습니다. 이 어른스님의 속가 할아버지가 황해도 분이신데 일제 강점기시절에 앞으로 이북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가족을 이끌고 남으로 피란 나오셔 오대산 근처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후손이 할아버지가 소장하고 계시던 불교관련 고서적을 월정사 박물관에 기증을 하였는데 이 기증한 서적 목록 속에 있던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단행본 만화萬化스님 시봉 이야기를 읽다가 발견 광주 본정거사님께 부탁하여 월정사 가서 확인하고 사진으로 찍었는데 맨 마지막장에 작가 미상의 신심을 돋우는 권유문勸誘文이 있어서 운문암 금강심론에 실었습니다.

 

금타金陀 대화상님의 저술은 한국 불교의 자산으로 후대에 전해져야 하며, 팔만대장경을 총 정리한 것으로서금강심론이 한 권으로 평생을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금타金陀 대화상님 저술 가운데 백미白眉를 꼽으라 하면 저는금강삼매송을 꼽습니다. 한 마디로 당신의 오도송悟道頌이나 같으며 삼매三昧 과정을 이렇게 소승, 대승, 밀교에 증거證據하여 자세히 설명한 글은 못 보았습니다.

 

1948년 동안거가 끝나고 대중은 다 탁발을 보내고 운문암에 대중은 몇 분 없는 음력으로 124일 관음재일 날 한 낮에 열반에 드시었다고 합니다. 이날은 비와 눈이 섞여서 내렸으며 그 시절은 어려운 시절이라 제대로 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다비하였는데 다비장[백양사 청류암 가는 길 중간쯤]에서 3일 동안 베 폭 서기가 하늘로 뻗쳤다고 합니다. 열반 당시 세속나이 50세였는데 좀 더 오래 사바세계에 계셨다면 당신의 법이 더 융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