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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김호성님의 정토행자의 편지

어머니의 아들

편지 7(201785)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선생의 책 나무아미타불(모과나무)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있는데, 그 중에 어쩌면 좀더 부각되어도 좋았을 법한 인물으로 렌뇨(蓮如, 1415-1499)스님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렌뇨스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정보는, 겨우 탄이초(歎異抄)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을 남긴 분이 렌뇨스님이라는 것, 그 필사본 제일 뒤편에 이 탄이초라는 책은 함부로 보여서는 아니 된다고, 일종의 금서(禁書)조치를 내린 분이라는 정도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의 아미타교토(동국대 젊은 학생스님 4)과 함께 교토를 방문하면서, 부쩍 이 스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716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정토진종 대곡파의 종립대학인 오타니(大谷)대학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일본 대학은 일요일도 도서관이 문을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날도 오타니 대학 도서관은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도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돌고 있는 도서관에서 좀 쉬면서, 이것저것 둘러보는 중에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거(安居)”라는 말입니다.

 

정토진종 대곡파에서 안거를 하는데, 그때는 오타니대학에서 주로 강의를 하고 듣는 것 같습니다. 신청은 대곡파 총본산인 동본원사에서 하지만, 실제 안거는 오타니대학에서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네 안거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안거 때에 하는 강의의 교재를 따로 모아놓은 서가(書架)의 한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蓮如上人御一代記聞書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아마도 렌뇨스님의 전기라고 볼 수 있을 그런 책입니다. 목차를 넘겨보았는데, 익숙한 말이 등장합니다.

 

機法一體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읽으신 분이라면 친숙한 말일 것입니다. 기는 나무라고 말하는 중생이고, 법은 아미타불입니다. 그러니 기법일체라는 것은 중생과 아미타불이 일체, 즉 한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과 아미타불이 한 몸임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중생이 부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부처를 부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러한 기법일체 사상은 원래 정토종 서산파의 사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서산파 심초의(深草義 = 정토종 서산심초파)의 사람 손에 의한 저술이라고 추측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겐이(顯意, 1238-1304)스님의 저술이 아닌가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나무아미타불에 나옵니다.

 

그런데 렌뇨스님의 전기에서 한 장의 이름이 기법일체라는 것을 보니까,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기법일체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하는, 아마도 겐이스님의 저술이라고 하는 안심결정초(安心決定鈔)라는 책이 정토진종의 성교전서(聖敎全書) 속에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그 점은 제가 이번에 후지 요시나리(藤 能成)선생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역시 그렇다. 정토진종의 성교전서 속에 안심결정초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성교전서 속에 이 안심결정초가 들어가게 된 인연 역시 렌뇨스님과 관련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렌뇨스님은 이 책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서점에 가보았는데, 이 렌뇨스님의 일대기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편지(정토진종에서는 고분쇼/御文章이라 말하고, 진종대곡파에서는 오후미/御文라고 말합니다.)를 일본어로 옮긴 렌뇨문집(笠原一男 지음, 岩波文庫)을 사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편지는 더러 우리의 나무아미타불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념 다념조에 인용되어 있는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왕생은 지금의 신력(信力)으로 구제해 주신

사무치는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나의 목숨이 있는 한은 보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염불해야 한다.

 

이런 편지를 신도들에게 보냄으로써,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제8조인 렌뇨스님은 정토진종의 중흥조라고 높이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신란스님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 이야기를 하려면 꼭 그 어머니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렌뇨스님의 아버지, 즉 정토진종 본원사의 제7대 문주(門主) 손뇨(存如)는 시봉하는 하녀를 가까이했다 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렌뇨스님입니다. 이때 아직 정처(正妻)로부터는 아이가 없었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자로서 렌뇨가 태어났으니, 가히 천덕꾸러기 신세였을 것입니다. 렌뇨가 19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정처 소생의 아들, 즉 렌뇨의 동생이 태어납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정처 소생이 본원사의 제8대 문주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제8대 문주로 렌뇨가 정해집니다. 이 사이의 일은 저도 아직 모릅니다. 이때 렌뇨의 나이 43세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본원사는 참배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양식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렌뇨스님 덕분으로 오늘날 일본불교 최대종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렌뇨스님 살아생전에 본원사에 참배객들이 미어터졌다고 합니다.

 

렌뇨스님은 6세 때에 어머니가 그 절을 떠나갑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자리를 피해준 것입니다. 이후 렌뇨스님은 43세로 문주가 될 때까지 본원사의 구석진 방에서 공부에 매진했다 합니다. 이때 스님이 읽은 책은, 정토진종의 정통으로 평가받는 책만이 아니라 이단이라 평가를 받는 책까지 다 읽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정토진종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책 중의 하나가 서산파의 책 안심결정초입니다.

 

제가 근래 이런 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렌뇨스님의 편지쓰기를 감히 배운 것입니다. 앞으로 렌뇨스님은 좀더 공부를 해야 할 분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어머니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습니다. 시는 바로 이런 장면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어머니 1이 그것입니다.

 

독했다독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원사  크고 높은 문을

나갔다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겨우 여섯   아들

내버리고 나갔다 중요한 일에

아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어머니 혼자 생각으로결단을

내렸다그것이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이라독배를  

마셨다 거대한 본원사의 문주(門主) 

될 아들이 아니던가 아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되었다.

 

천한 하녀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

라는 멍에만 해도 무거웠다.

그런데  옆에 어미가 있어서는

 된다고 결단을 내리는 

6년이 걸렸다부처님은 6 고행

 하셨으나,  어머니는 6 불면

 했다. 밤마다  생각 일으켰다 

 

지웠다.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정토진종의 

신심이 비록 결혼을 허락하나비천한 

하녀의 몸에서 난 서자를 문주로 모실 

어떨지 알지는 못했다 시퍼렇게  

정처(正妻) 마님이 살아있었지 않던가

다행히 아직  소생이 없었다

 

이때 선수(先手)쳐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는지 모른다어느 날 아침마침내 

 거대한 성() 나서야  때가 왔다.

아직 아들은 깊이 잠들어 있다뺨에

마지막 뽀뽀 한  하고눈물을 흘리며

빈손으로 본원사 산문을 나서는

여인이 있었다그날 이후그녀를

다시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그날 이후 꿈에서 말고,

생시에 아들을 한번이라도 보았는지

어땠는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17 7 19)

 

저도 어떤 어머니의 아들인데, 하루 날 잡아서 어머니께 얼굴 한번 보여드리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어머니보살마하살

 

김호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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