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이 쌀장사를 하는데 쌀 한 가마니를 못 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쌀가마니가 볏짚으로 만든 80K 나가는 쌀가마니지요. 이분이 본인방 앞에 쌀가마니를 갖다 놓고 들락거릴 적마다 쌀가마니를 번쩍 드는 것을 상상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제는 됐다 싶어 번쩍 드니 번쩍 들리고 그 후로는 쌀 한가마니 드는데 별 부담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분은 현재 연세가 8십이 넘으신 분인데 학창시절 군(郡)에서 달리기를 항상 일등 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달리기를 잘하냐고 물어보니 그 시절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내일 시합이 있으면 잠들기 전에 본인이 달리기를 한 사람 제치고 두 사람 제치고 결국 자신이 우승하는 것을 상상하고 잠들면 다음날 달리기를 하면 전날 상상 한데로 자신이 우승한다고 합니다. 체육하시는 분들은 이런 것을 이미지 훈련이고 합니다.
현상을 상상하여 마음에 이미지를 심고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한 때 유행했던 마인드컨트롤이라는 것이고 절집에서는 관상(觀想)수행이라고 합니다. 염불수행에서도 관상(觀想), 관상(觀象)염불이 있고 관상수행의 대표적인 경전이 무량수불(無量壽佛)을 관상(觀想)하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입니다. 결국은 염불수행도 부처님의 명호를 염(念)하며 관(觀:관상)하며 부처님의 마음과 행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현 우리나라 수행 풍토에 관상수행은 드물지만 제가 하는 수행이 관상수행입니다 법당에서 염불 할 적에는 아미타불이 빛의 속성이 있기에 무량한 빛을 관상하고 그 무량한 빛을 온 우주에 방사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것이고 앉자 서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마음을 열고 가슴과 손으로 일체중생을 품으면서 들숨을 하며 날숨에는 일체중생에게 마음의 빛, 자비심을 방사하는 것을 관상하며, 그 다음 고통 받는 중생, 그들에게 낱낱이 자비심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을 관상하는 것입니다. 마트이던 공항이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도 그 모두를 가슴과 손으로 품어주며 자비심을 관상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수행입니다.
물론 자신의 아픈 부위도 자비심을 일으키고 어루만져주는 것을 관상하는데 경험으로는 완치 경우도 있고 절반정도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스스로 해보시면 효과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쌀 한가마니 달리기, 아픈 부위 관상(觀想) 정도는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업을 녹이여 자비심을 일구어내고 그 자비심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일, 수행은 평생을 하여도 부족한 것입니다.
수행에 근본은 탐(貪).진(瞋).치(痴) 삼독심(三毒心) 소멸에 있는 것입니다. 삼독심이 소멸되면서 소멸된 만큼 순수한 의식, 마음. 보리심과 자비심이 드러나는 것이고 수행이 깊을수록 자비심은 세밀해지는 것입니다. 다겁생의 뿌리깊은 삼독심을 소멸하는 방법론에 수행방법이 각자의 기질과 인연에 따라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이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티베트 글에 “수행법이 거푸집에서 찍어내듯이 똑 같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자비심을 관상하는 수행은 바로 삼독심을 녹일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고 과학적으로도 증명되는 수행이며 먼저 자신에게 이익이 되며 일체중생에게 이익 되는 수행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