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浮雪居士) 사허부구게(四虛浮漚偈)
* 출가했을 때에 운문암 절에 가서 보니, 안에 수능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와 순치 황제 출가시(順治皇帝出家詩), 그리고 부설거사 사허부구게(浮雪居士四虛浮漚偈)가 붙어 있어서, 특별히 인상 깊게 간직하고 외우고 있습니다. 요 근래 큰 스님들도 순치황제 출가시나 부설거사 사허부구게는 상당히 좋아하면서 소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공부인한테 이 부설거사의 허부구게가 굉장히 의의 깊은 법문이 됩니다.
* 부설거사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신라 때 도인 거사입니다. 자기 아내 묘화(妙花)도,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도, 다 깨달은 도인이라고 전합니다. 부안(扶安)변산 월명암에 가면 월명각시라고, 부설거사의 딸의 부도가 있을 정도로 네 분 다 위대한 분으로, 마치 인도의 유마(維摩)거사나 중국의 방(龐)거사와 비교하기도 하는 위대한 분입니다. 애초에는 승려인데, 과거 숙세 인연으로 묘화 아가씨와 만나게 되어 할 수 없이 결혼은 했으나, 거사로 있으면서 승려 못지않게 공부 정진하여, 도반들보다도 더 빨리 깨달아서 도반들을 다 제도한 분이라고 합니다.
* 거느린 처자 권속 삼대밭 같고
쌓여진 금은 옥백 산더미 같아도
임종에 당하여 외로운 혼만 떠나가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날마다 힘들여서 살아온 세상길에
벼슬길 올랐어도 머리는 백발이라
염왕은 벼슬과 영화를 두려워 않거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재주가 뛰어나서 말로는 요설변재
천 글귀 시를 지어 만호후를 경멸해도
다겁생의 아만의 근본만 늘게 하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요,
가사 비구름 몰아치듯 설법을 잘하여
하늘 꽃 감동하고 돌멩이 끄덕여도
껍데기 지혜로는 생사를 못 면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한 뜬 거품이로다.
浮雪居士四虛浮漚偈
妻子眷屬森如竹
金銀玉帛積似邱
臨終獨自孤魂逝
思量也是虛浮漚
朝朝役役紅塵路
爵位纔高已白頭
閻王不怕佩金魚
思量也是虛浮漚
錦心繡口風雷舌
千首詩輕萬戶侯
增長多生人我本
思量也是虛浮漚
假使說法如雲雨
感得天花石點頭
乾慧未能免生死
思量是也虛浮漚
*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하고”, 처자와 권속이 번성해서 마치 삼대나 대밭의 대나무같이 수가 많고,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帛積似邱)라도”, 금이나 은이나 또는 옥이나 비단이나 재산이 많아서 마치 산더미 같다 해도,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하니”, 죽어서 갈 때는 홀로 외로운 혼으로 돌아가니, “사량야시허부구(思量也是虛浮漚)라”, 생각해보면 이것도 허망한 뜬 거품이로다.
* 네 가지 글귀가 모두 허부구이기 때문에 허부구게라고 합니다. 처자 권속이 그렇게 많고 재산인 금은 옥백이 산더미같이 많다 하더라도, 임종 때는 결국은 홀로 외롭게 혼만 가는 것이니, 생각해보면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수행자라고 해서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요”, 아침마다 날마다 하루 종일 애쓰고 애쓰는 세상길에서, 세상은 복잡하고 번뇌가 많으니까 홍진이라 합니다. 이러한 고달프고 때 묻은 세상 바닥에서, “작위재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요”, 벼슬 지위가 가까스로 높이 좀 올라 갈 땐 이미 벌써 센 머리가 되는 것이니,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라”, 금어는 벼슬아치들이 차는 훈패나 같은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저승에서 우리의 행동을 심판하는 존재입니다. 설사 심판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잠재의식 마음자리에 들어 있는 업의 종자는 스스로 심판되어서, 업 따라 굴러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염라대왕이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염라대왕은 우리가 높은 벼슬아치가 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이것도 생각해 보면 허망한 뜬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 “금심수구풍뇌설(錦心繡口風雷舌)이라”, 비단 같은 마음, 수놓아서 울긋불긋한 입이니까, 재주가 많아 말재간의 요설변재가 바람 같고 번개같이 능란합니다. “천수시경만호후(千首詩輕萬戶侯)라도”, 천호후나 만호후는 이른바 지방 호족이나 왕자 제후(諸侯)라는 말입니다. 시를 잘 지어서 많은 시로써 이름이 유명해지면, 만호후와 같은 제후[왕]도 가벼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정도로 명예라든가 능력이 훌륭하더라도, “증장다생인아본(增長多生人我本)하니”, 인아란 아만심을 말합니다. 다생겁래로 우리가 인간인지라 어떤 누구나 아만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자기 잘났다는 생각은 있는 것입니다. 시를 잘 쓰고 제후[왕]를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도, 이런 것은 모두가 다 다생겁래로 자기 아만심의 근본만 더 증장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참다운 깨달음의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도 아무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해보니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 “가사설법여운우(假使說法如雲雨)하고”, 가사 법을 설하는 것이, 마치 구름이 흘러가고 또 비가 오듯이 막힘이 없이 설법을 잘 해서[법사를 말하겠지요], “감득천화석점두(感得天花石點頭)라도”, 사람만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 꽃도 감동하고 돌 같은 무생물도 끄덕끄덕 수긍할 정도로 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남인도의 진나(陣那-Dinnaga)법사[보살]는 대승 법문을 하는데도, 당시에 모두들 법집(法執)에 휩싸여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비방만 하니까, 하도 한탄스러워서 산에 올라가 돌을 세워 놓고 대승법문을 했더니, 어찌나 도리에 맞는 법문이던지 돌들이 끄덕끄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점두(石點頭)라 합니다.
* 하늘에 있는 꽃이 감동하고 돌들이 수긍할 정도로 설법을 잘하더라도, “간혜미능면생사(乾慧未能免生死)하니”, 간혜는 마른지혜라는 말입니다. 물기가 있으면 바싹 마르지가 않겠지요. 선정의 물이 없으면, 선정은 물로 비유합니다. 바싹 마른 지혜, 곧 실증이 없는 허망한 분별지혜라는 말입니다. 세간에서 남한테 칭찬도 받고 잘났다는 말도 듣고 설법도 잘하더라도, 생사 문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나무라고 별스런 똑똑한 소리를 다하더라도, 선정으로 습기를 못 녹였으면, 생사에는 힘이 없고 해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설법을 잘 해서 돌멩이들이 끄덕이고 하늘에 있는 꽃이 감동할 정도가 된다 해도, 바싹 마른 지혜, 다만 이론만의 지혜, 해오만의 지혜인 간혜로는 생사를 면할 수 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역시 허망한 뜬 거품입니다.
* 중국 당나라 약산유엄(藥山惟儼)선사는 석두희천(石頭希遷)스님의 제자로, 마조스님과 같은 시대의 선사입니다. “강남은 약산 유엄선사요 강서는 마조 도일스님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데 선사이기 때문에 설법을 잘 안하는데, 많은 대중들이 간절히 설법을 청했더니, 법상에 올라가 아무 말 없이 한참 눈만 끔벅끔벅하고 있다가 내려와서 조실방으로 가버렸습니다. 원주가 따라가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스님의 법문을 청했는데 어찌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불경의 해설은 강사가 하고, 계율을 설하는데는 율사가 있는데, 나는 선사가 아니냐?”고 하면서, 다시는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이렇게 많은 말이 없는 것인데, 저는 선사의 분상에서 너무 번다한 해설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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