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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8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영겁회귀라 하는 소중한 금언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영겁회귀라는 것은, 모든 것이, 모든 만법이 다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말입니다. 어느 것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찰나 찰나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면 종당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종당에는 다 하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가 왔던 하나의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영겁을 두고 되풀이하는 것을 영겁회귀라 합니다.

 

* 하나의 자리란 무엇인가? 하나의 자리는 바로 대총상법문입니다. 대총상법문이라는 것은 또 어떤 것인가? 대총상법문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 자성, 우리의 본성 자리, 또는 우주의 본성 자리를 말합니다.

 

* 마명대사의 대승기신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심진여시대총상법문지체야心眞如是大總相法門之體也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 바탕인 진여, 이것이 바로 모든 만법의 기본적인 본체란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본체를 여의지 않습니다. 본체를 여의지 않는 것이 대총상법문입니다. 이른바 진여불성의 본체입니다.

 

* 육조단경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아소설법 불리자성我所說法 不離自性이라, 내가 설하는 바 이 법문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우주라는 것은 어느 때나 본래 갖추고 있는 예지가 있어서, 본래면목 자리인 진여불성이 어느 누구한테나 갖추어져 있습니다. 비록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부처님 가르침과 흡사한 말씀을 한 분도 가끔 있습니다.

 

* 마태복음서를 보면 “먼저 하늘나라와 하늘의 뜻을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대에게 갖추어지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런 것도 우리 불교에서 자성을 깨달으면, 우리 본래면목을 깨달으면, 모두가 거기에 다 부합이 된다는 말씀이나 흡사합니다.

 

* 육조단경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우리 마음이 바로 우리 자성인데, 우리 자성 가운데 우리 마음의 본체, 우리 마음의 본체가 바로 청정비로자나불淸淨毘盧遮那佛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체가 바로 법신불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체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덕성, 지혜공덕이 바로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입니다.

 

* 법신과 보신을 근거로 해서 모양을 나투고 또는 변화하는 그러한 차원에서, 이것이 천백어고하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입니다. 즉 우리 마음 가운데에 법신과 보신과 화신 삼신이 원만히 갖추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되풀이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마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 우리의 본래 마음은 이 우주와 더불어 둘이 아닌, 우리 생명과 더불어 둘이 아닌 그 법신을 온전히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가운데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들어 있습니다. 영생하는 생명과, 또는 다시없는 행복과 극락의 위없는 행복과, 또는 신통 자재하는 신통과 삼명육통을 다 갖추고, 그리고 만덕을 갖춘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또는 우리 마음의 본체는 번뇌가 조금도 없습니다. 본래 청정이란 말입니다.

 

*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의 부처님, 청정법신이 그대로 우리 마음의 본성품입니다. 그 자리에는 지혜ㆍ자비ㆍ능력ㆍ행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성, 우리의 본성이 지금 이대로 원만구족한 진여불성인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마음이나 예수님 마음이나 달마스님 마음이나, 마음의 본바탕은 똑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 마음은 영겁회귀라, 우리는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몇 겁을 되풀이하더라도 부처가 되는 일입니다. 또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중생의 공통업력共通業力에 의해 텅텅 빈 허공에서 다시 우주가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성겁이 되면, 여러 가지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존재가 거기에 의지해 산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주겁입니다.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찌꺼기가 생깁니다. 물질이란 것은 오랫동안 되다 보면, 그야말로 불가역성不可逆性 에너지입니다. 이른바 다시 활용할 수 없는 에너지, 엔트로피가 자꾸만 쌓여 나중에는 산화가 되어서 불이 난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괴겁이라, 우주가 삼천대천세계가 다 파괴됩니다.

 

* 파괴된 뒤에는 물질은 허공무일물虛空無一物입니다. 텅텅 비어 버린단 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비어 버립니다. 그러나 물질은 없으나, 우리 중생의 심식心識은 남아 있습니다. 즉 무색계 중생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무색계 중생이 텅텅 빈 공겁 세계에서, 아직은 중생이어서 좋다 싫다하는 마음이 있겠지요.

 

* 싫다 좋다 하는 그런 마음이, 에너지가 상호 작용해서 다시 우주를 형성합니다. 그러면 다시 텅텅 빈 공겁에서 우주가 성겁이 되고 그러면 중생이 살고, 다시 파괴되고 텅텅 빈공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 우주는 영겁회귀를 합니다. 우주가 이루어지고 다시 존재가 살고, 또 파괴되고 또 텅텅 비어 버리고, 또다시 이루어지고 다시 모든 존재가 살고, 또 파괴되어 버리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역시 본래 부처기 때문에 꼭 부처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부처가 되어가는 나그네 길에 있습니다.

 

*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몰랐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것저것 알기는 많이 알지만,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마땅한 인간의 할 일을 모른단 말입니다. 인간의 당위를 모릅니다.

 

* 부처님 가르침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 가야 할 길을 압니다. 생본무상生本無常이라, 우리가 태어났더라도, 본래는 태어남도 없습니다. 불생불멸한 것이 우리 생명의 본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거품같은 모양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이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그때그때의 변화가 무상합니다.

 

* 멸본무멸滅本無滅이라, 이 육신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명 자체는 그대로 영원히 존재합니다. 불생불멸한 생명의 존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조금도 이울어짐이 없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자체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입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자체를 인격화할 때, 이것이 나무아미타불이요, 약사여래요, 관세음보살이요 하는 것입니다. 불생불멸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무생물이 아닙니다. 이른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무량수불無量壽佛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그 뜻입니다. 아미타불을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 속에 갖추어 있는 공덕이 끝도 가도 없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미타불의 rdhejr을 나타내는 명호입니다.

 

* 광명무량光明無量이라, 진리 광명이 한도 끝도 없이 많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내가 생명이거니 내 생명의 본고향 자리가 바로 법신불이고, 바로 영원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대로 우주 생명입니다.

 

* “부처님은 우주 생명이니까 훨씬 크고, 내 마음자리는 아주 왜소해서 별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 같으면 비교가 되겠지마는, 물질이 아닌 마음, 순수 생명은 비교가 안됩니다.

 

* 하나 가운데 일체가 다 들어가고, 일체 가운데 하나가 들어가고(一中一切多中一)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오직 하나의 진리입니다(法性圓融無二相).

 

* 인간의 영혼이 우리 눈에 안보이니까, 영혼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렇게 의심을 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존재가 허망무상하지만 이와 같이 존재해 있듯이, 영혼도 우리 중생의 제한된 육안에는 안보인다 하더라도, 천안天眼이라든가 또는 법안法眼이라든가 불안佛眼으로 볼 때는 분명히 인간 모양으로 존재해 있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생명인데 그 생명이 갈 곳을 잘 모르면, 이른바 중음中陰에서 오랫동안 헤매이는 것이고, 갈 곳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그냥 천상이나 극락세계에 초승超昇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 극락,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지는 사람들은, 그것은 우리 중생들한테 좋은 일 많이 하면 좋은 데에 태어난다는 권선징악식 말씀으로 가르치려는 것이겠지, 하고 지레짐작합니다. 극락이 어디 있을 것인가? 또 천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천상도 어디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극락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 우리 인간은 본래에서 본다면, 몽환포영夢幻泡影입니다. 꿈이요 허깨비같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그때그때의 변화가 무상한 것입니다. 따라서 천상 세계다 다 변화가 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극락세계라는 것은 생명 자체가 본래의 생명이 안주하는 자리, 자기 고향에 돌아간 자리입니다.

 

* 극락세계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태어난 분들은 모두가 다 몸이 광명의 몸(光明身)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극락이 있는가 없는가 그런 것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열심히 보시면, 부처님께서 어떻게 극락세계를 말씀하셨던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지식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 극락은 분명히 우리 생명의 본고향에 돌아가는, 진여불성 자리로 돌아가는 성자의 영들이 안주하는 곳입니다. 이른바 극락은 영생의 고향이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극락에서 쉬다가 다시 중생계로 돌아온다고 생각할 때에, 중생들이 불쌍하면 그때는 수원수생隨願受生이라, 다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원력을 세워서 중생계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내려오기도 하고 또는 지옥도 가는 것입니다.

 

* 극락세계는 온전한 자유, 참다운 자유, 진여불성의 자리요, 영원한 안락의 자리입니다. 진여불성이 되어서 모든 인간의 고뇌가 없고 오직 행복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가 극락세계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명假名에 불과한 허무의 자리가 아닙니다.

 

* 광명을 몸으로 하고 바로 우주를 몸으로 하는 그런 자리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순수 생명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가 다 우주를 몸으로 합니다.

 

* 우리는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꼭 부처가 안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이요, 일체중생가당작불一切衆生皆當作佛이라 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본래 부처기 때문에, 본래 불성이기 때문에 반드시 당위적으로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무생법문無生法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확연히 깨달아서, 영원히 극락세계에서 안주하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2001년 2월, 경남 합천 해인사 천도재초청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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