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1. 실상 염불선

19. 제4절 청화역주[육조단경] 해제

19. 제4절 청화역주[육조단경] 해제

 

1. 회통법문(會通法門)

 

대승경전(大乘經典)은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나 [열반경(涅槃經)]이나 [반야경(般若經)]이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이나 모두 한결같이 선(禪)과 교(敎)와 정토염불(淨土念佛)을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회통(會通)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다.

방편가설(方便假說)과 인연비유(因緣譬喩)를 생략(省略)하고 오로지 생명(生命)의 실상(實相)인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단번에 깨닫는 견성오도(見性悟道)만을 역설(力說)함을 선(禪)이라 하고, 언어문자(言語文字)로써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 등 모든 근기(根機)들을 두루 살펴 극명(克明)하게 표현함은 교(敎)이며, 진여불성(眞如佛性)이란 우주생명(宇宙生命)에 온전히 귀명(歸命)하여 수희참구(隨喜參究)함이 정토염불(淨土念佛)의 법문(法門)인 것이다.

 

[유마경(維摩經)] {불국품(佛國品)}에 "불(佛)은 언제나 동일(同一)한 뜻으로 설법(說法)하나 중생(衆生)이 기연(機緣)에 따라 대승(大乘) ․ 소승(小乘) ․ 점교(漸敎) ․ 돈교(頓敎) 등 종종(種種)의 차별(差別)을 생(生)한다." [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 중생수류각득해(衆生隨類各得解)]하였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나니, 일체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덕상이니,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라." [제불여래시법계신(諸佛如來是法界身) 입일체중생심상중(入一切衆生心想中) 시고여등심상불시(是故汝等心想佛時) 시심즉시삼십이상팔십수형호(是心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 시심작불시심시불(是心作佛是心是佛)]하였다.

 

 

 

2. 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

 

달마대사(達磨大師)(?~528)로 육조(六祖)혜능대사(惠能大師)(638~713)까지를 통칭(通稱)하여 순선시대(純禪時代)라 하는데, 그것은 달마대사(達磨大師)의 친찬(親撰)이라는 [소실육문(少室六門)]의 “이입사행(二入四行)”의 법문(法門)이나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부터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606)의 [신심명(信心銘)]을 거쳐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580~651)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과 오조(五祖)홍인대사(弘忍大師)(602~675)의 [수심요론(修心要論)]과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師)의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자성(自性)(자기본성(自己本性) 곧 진여불성(眞如佛性))에 온전히 귀의(歸依)함을 간곡심절(懇曲心切)하게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특(特)히 단경(壇經)에서는 자성(自性) ․ 불성(佛性)이란 표현(表現)을 돈황본(敦煌本)에는 팔십여(八十余)번, 유통본(流通本) ․ (덕이본(德異本) ․ 종보본(宗寶本))등에는 백여(百余)번이나 되풀이 강조(强調)하였는데, 혜능대사(惠能大師)께서 귀의삼신불(歸依三身佛)을 설(說)할 때 대중(大衆)들에게 혜능대사(惠能大師) 자기(自己) 입(口)을 따라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에 귀의(歸依)하고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에 귀의(歸依)하고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歸依)합니다.”를 세 번씩 삼창(三唱)을 되풀이 하도록 하여 제각기(各己) 자기자성(自己自性)을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는 열화(烈火)같은 투철한 서원(誓願)으로 대중(大衆)으로 하여금 깊은 감분정진(感奮精進)을 다짐케 하였다.

이렇듯 자성불(自性佛) 신앙(信仰)이 확립(確立)되면 필수적(必須的)으로 자성(自性)을 깨닫는 수행(修行)을 결행(決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무상참회(無相懺悔)

 

일체만유(一切萬有)인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본래(本來)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이기 때문에 근원적(根源的)으로는 일체선악(一切善惡)에 따른 죄성(罪性)이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중생(衆生)의 무명분별(無明分別)로 인(因)하여 시비선악(是非善惡)이 있게 되므로 진참회(眞懺悔) 곧 무상참회(無相懺悔)란 자기본성(自己本性)인 자성(自性) 곧 불성(佛性)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함을 통찰(洞察)하여 일체시일체처(一切時一切處)의 생각 생각에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고 무염오(無染汚)인 무주상행(無住相行)을 여행(勵行)하는 것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마음 바탕에 그릇됨이 없음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바탕에 어지러움이 없음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 바탕에 어리석음이 없음이 자성(自性)의 혜(慧)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現實的)으로 숙업(宿業)을 벗어나지 못한 업식중생(業識衆生)의 분상(分上)으로서는 무상참회(無相懺悔)의 도리(道理)에 입각(立脚)하여 모든 악(惡)을 단호(斷乎)히 짓지 않고 결정(決定)코 모든 선(善)을 닦는 계율(戒律)과 일체윤리행(一切倫理行)을 실천(實踐)해야 하는 것이다.

 

4.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모든 존재(存在)의 실상(實相)을 비추어 보는 최존최상(最尊最上)의 지혜(智慧)이다. 반야지혜(般若智慧)로 통찰(洞察)할 때 우주만유(宇宙萬有)는 본래(本來)로 일미평등(一味平等)한 진여법계(眞如法界)인 것이다.

따라서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있으면 불지(佛智)요 성지(聖智)며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없으면 중생(衆生)의 분별지(分別智)요 범부(凡夫)의 망념(妄念)인 것이다.

 

그래서 반야지(般若智)는 중생(衆生)을 미혹(迷惑)한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인도(引導)한다 하여 도피안(到彼岸)이라 하며 일체제불보살(一切諸佛菩薩)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에서 나왔다 하여 반야불모(般若佛母)라 하였고 육백권(六百卷)의 방대한 『대반야경(大般若經)』 또한 한량없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공덕(功德)을 찬탄(讚嘆)하였다.

 

『지도론(智度論)』에 『반야바라밀시제불모제불이반야위사(般若波羅蜜是諸佛母諸佛以般若爲師)』라고 하였다. 이른바 육바라밀중(六波羅蜜中)의 오바라밀(五波羅蜜)인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등(等)의 수행덕목(修行德目)도 모든 명상(名相)을 여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근본(根本)으로 하여야만 비로소 명실공(名實共)히 오바라밀(五波羅蜜)이 되는 것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선지식(善知識)이여, 지혜(智慧)로 관조(觀照)하면 안팎이 사무치게 밝아서 자기 본심(本心)을 알게 되고 본심을 알면 본래 해탈(解脫)됨을 알게 되나니 바로 반야삼매(般若三昧)요 곧 무념(無念)이니라. 무엇을 무념(無念)이라 하는가? 일체법(一切法)에 염착(染着)하지 않음이 바로 무념(無念)이니라.」고 하였다. [선지식(善知識) 지혜관조(智慧觀照) 내외명철식자본심(內外明徹識自本心) 즉본해탈(卽本解脫) 즉시반야삼매즉시무념(卽是般若三昧卽是無念) 하명무념(何名無念) 약견일체법(若見一切法) 심불염착(心不染着)시위무념(是爲無念)].

 

5.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만을 역설(力說)하여 행주좌와일체처일체시(行住坐臥一切處一切時)에 순일직심(純一直心)함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였는데 덕이본(德異本)이나 종보본(宗寶本)에는 정종분(正宗分)에 일행삼매(一行三昧)을 언급(言及)하고, 다시 [부촉품(咐囑品)]에서 한결 구체적(具體的)으로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재차(再次) 강조(强調)하였다.

 

특(特)히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는 【일상삼매(一相三昧)는 우주법계(宇宙法界)가 진여실상(眞如實相)의 일상(一相)이기 때문에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하고, 생각생각에 일상삼매(一相三昧)를 여의지 않고 참구수행(參究修行)함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였으며,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일상삼매(一相三昧)에 입(入)하고자 하면 마음속으로 오로지 한 부처(佛)의 명호를 상속(相續)하여 외우면 즉시(卽時) 염중(念中)에 능(能)히 과거(過去) 미래(未來)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불공덕(一佛功德)과 무량제불(無量諸佛)의 공덕(功德)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라】하였다.

 

그리고 【문수설반야경(文殊說般若經)】을 인용(引用)하여 「부처를 염(念)하는, 염불(念佛)하는 마음이 바로 불(佛)이요 망상(妄想)하는 마음이 바로 중생(衆生)이며 염불(念佛)은 곧 염심(念心)이고 구심(求心)은 바로 구불(求佛)인데,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은 본래 모양이 없고 부처(佛) 또한 모습이 없기 때문에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닌 도리(道理)를 알면 바로 이것이 안심(安心)이니라」하여 이른바 「안심법문(安心法門)」 달마(達磨) 의 원리(原理)를 도파(道破)하였으며, 그리하여 『항상 염념(念念)히 불(佛)을 억념(憶念)하면 반연(攀緣)이 일어나지 않으며 번연(飜然)히 모든 상(相)을 여의고 여실(如實)하게 평등무이(平等無二)한 여래진실법성신(如來眞實法性身)을 성취(成就)하게 되나니, 달리 이름 하여 정법(正法)이라 하고 또한 불성(佛性)이라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정토(淨土)라 하고, 보리(菩提)라 하고, 또한 금강삼매(金剛三昧) 본각(本覺) 열반계(涅槃界) 등 비록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모두가 동일(同一)한 진여불성(眞如佛性)이니라 』하였다.

 

달마대사(達磨大師)로부터 전승(傳承)되어온 수행법(修行法)을 극명(克明)하게 밝힌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과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師)가 【단경(壇經)】에서 결정설법(決定說法)한 직절간명(直截簡明)한 수행법(修行法)을 통(通)하여 순선시대(純禪時代)의 수행법(修行法)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에 입각(立脚)한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가 혜능대사(惠能大師)의 직설(直說)대로 최존최상승최제일(最尊最上乘最第一)의 수행법(修行法)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