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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1. 청화 큰스님의 행화

[스크랩] [청화淸華스님 열반涅槃 10주기 추모] [4] 청화淸華스님 어록語錄 20선選 ②



[1] 인간 능력이 한계가 있다고 하면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모두를 다 알 수 있고,
모두를 다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본래 면목은
그런 무한의 공덕장입니다.
[2] 진실수행을 간단없이 지속할 때,
마치 흐린 물이 쉴 새 없이 흘러가노라면,
그 자정작용에 의해 절로 맑아지듯
어두운 번뇌의 그림자는 가뭇없이 스러지고
날로 생명의 광명인 부처님과 가까워지며,
필경 부처님과 하나되는
생명의 근본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 마음의 고향은 바로 부처님으로
하나의 이치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내 생명의 고향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간절히 흠모하는 마음이
염불念佛인 것입니다.
[4] 공부하실 때 꼭
일상삼매一相三昧를 기억해두십시오.
일상삼매一相三昧는
모두가 하나의 실상입니다.
둘이 있고 셋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의 실상입니다.
우주의 실상을 안 놓치고
우주가 우리 중생이 보듯
천차만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상이기에
실상에다가 마음을 두고서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것이 일상삼매一相三昧고,
그 다음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일행삼매一行三昧는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그 자리를
생각생각에 간단없이
그대로 지속시킨단 말입니다.
참선의 교과서 같은 육조단경에도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라는
말씀이 여섯 군데나 있습니다.
그리고 육조단경의 부촉품에
"그대들이 만약 여래의
종종무량의 법을 통달하려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증할지니라"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5] 일상삼매一相三昧는 다시 말씀드리면,
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의 실상이란 말입니다.
거기다가 마음을 두어야 하는데
거기다가 잠시 마음을 두어도
다른 것이 생각나면 흩어져 버리겠지요.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지속시키는,
이른바 염념상속念念相續이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꼭 명심하셔서 참선선방에서든지
세속에서든지 될수록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6] 생명의 본체에다 마음을 두어야합니다.
생명의 본체 이것이 불성이고 법신이고,
또 진여불성이라.
부처님께서 마르고 닳도록 말씀하신
법신, 진여, 불성 또는
실상, 실재 또는 주인공,
이런 말씀이 모두 다 하나의 도리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참다운 대승불교가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열반이고 바로 극락입니다.
[7] 산중 선방에서 가만히 앉아
참선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정화시키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주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산에서 공부하면
사회봉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깨달음과 사회봉사는 둘이 아닙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자리를 깨달아 버리면
그 때는 집에 있으나 산중에 있으나
어디에 있으나 결국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것이요 공헌하는 것입니다.
[8] 참선도 염불도 열심히 하시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는 꿈 속에서라도 가끔
영원적인 광명이 훤히 빛날 것입니다.
수행을 잘하면 나도 너도 없고,
미운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어집니다.
나날이 좋은 날, 때때로 좋은 때입니다.
우리 마음은 나다, 너다, 좋다, 궂다,
시비를 다 떠나서 천지우주의 순수 에너지,
순수 정기인 부처님만 생각하는 것이
참선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화두를 드는 것이고,
염불도 그 자리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9]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왜 비어 있는 것인가?
인연따라 잠시 합해져서
차근차근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머물지 않으며,
또 어느 한 순간도 공간성이
있을 수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공空이라 한 것입니다.
부처님 법은 철저히 과학적입니다.
모든 존재는 인연따라
잠시 합해졌으나 합해진
그것이 조금도 머물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도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새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라 했습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에 우리가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있겠습니까? (중략)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제법공이라 해서 다만 공空으로 안다면,
그 때는 불교가
허무주의에 떨어지고 맙니다.
불교를 '허무주의' 라 말하는 것은
불교를 잘못 아는 것입니다.
불교는 결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중생이 보는 그 자리만
공空인 것이지 영원한 생명, 즉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의 자리는
항상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10] 화두를 참구하든 묵조를 하든
염불하든 주문을 외우든 경經을 읽든 또는
다른 종교를 믿든지 간에
우리 마음이 본질적인
생명의 본질 자리를 안 떠나면,
다 선禪이 된다고 해야
이른바 법집法執이 아닌
참 다운 선禪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11] 우리는 지금 광명 세게에 삽니다.
비단 부처님 뿐만 아니라
우리 몸뚱이가 이대로 광명 덩어리입니다.
물질로 보는 것은 우리가 속물이니
번뇌에 가려서 물질로만 보이는 것이지
물질은 '오온개공' 이지요.
본래 허망한 것입니다.
참으로 있는 것은 광명 덩어리지요.
앞으로도 참선하실 때
다른 망상은 하지 마십시오.
"아! 우주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일체 공덕을 갖춘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영원 불멸한 생명 자체구나" 라는
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꿀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2]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면 병도 낫습니다.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자식으로 생각하십니다.
법화경 등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은
"중생도 모두 내 아들(皆是吾子)" 이라 하시어
중생을 가엾게 여기길
갓난 아이같이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천지 우주가 부처님 뿐이라 느끼고
염불念佛하십시오.
[13] 영가현각永嘉玄覺대사가
한 말씀이 있어요.
꿈 속에서 보니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다 있지만(몽리명명유육취夢理明明有六取),
깨달은 뒤 불 때는 천지 우주가 다 비어 있다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는 말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물질이라는 찌꺼기가
본래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처님 가르침은 참으로 심심미묘甚深微妙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소박한 상식으로는 다 알 수 없어요.
눈에 안 보이는 생명 자체, 이른바
형이상학적인 그런 존재를
다 포함하기에 그렇습니다.
[14]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금생에 아무 것도 못 깨닫고 죽는다 하더라도
금생 내내 "나무아미타불" 하신 분은
이 몸뚱이를 버릴 때는 번연히 깨달아
"나무아미타불" 몇 마디에
극랙세계를 가는 것입니다.
[15] 어떤 불행도 우리가 지어 받는 액운입니다.
어느 것도 인과응보를 벗어 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지어서 받는 자업자득이니
남을 원망하지 말고 참회해야 업장이 녹습니다.
업장을 벗으면 인과를 초월합니다.
귀신이나 신장이나
나무아미타불을 가장 숭배합니다.
그래서 아미타 염불을 하면,
우주의 참생명을 표현한 것이기에
한 번 외우면 외문 만큼 업장이 녹습니다.
그래서 신들도 굽어 보는 것입니다.
[16] 부처님 법은 쉽다고 하면 제일 쉽습니다.
어째서 쉽다고 하느냐면
우주의 원리를 보탬이 없이
그대로 정확히 말씀하신 것이
부처님 법이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은 염불念佛입니다.
염불念佛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체계가 복잡한 것만을
높은 줄 알고 염불念佛은 너무 쉬우니
소홀히 생각한단 말입니다.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그 이름 자체에
부사의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음성 모든 형체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 이름입니다.
제일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입니다.
삼세제불이 모두 순수한 이름입니다.
우주의 자비가 바로 관세음보살인 것이고,
우주 생명자체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기에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을
염念하는 것이 좋습니다.
[17] 염불에 일념이 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리고
다른 이름도 무방합니다.
지장보살도 무방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다 신통한 것인데,
이른바 부처님의 총대명사가
"나무아미타불" 입니다.
또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쪽으로
우주의 인력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번 부르면 부른 만큼
우리한테 행복이 옵니다.
[18]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의 존재에 맞추어진
인간의 업장의 안목에서 비추어 보니
사람이 예쁘게도 보이고
밉게도 보이는 것이지
정말로 더 깊은 눈으로,
더 밝은 부처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 반드시 예쁘고 밉고
그렇게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자가 보는 눈 만이 정(正)다웁게
바로 보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가 가상假想만 보는 것입니다.
망상妄想만 보는 것입니다.
극락세계가 우리의 고향입니다.
어차피 극락에 몇 만생을
윤회하다가라도 꼭 가야 합니다.
기왕이면 윤회하고 갈 것이 아니라
금생에 가까스로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 귀중한 가르침 붙들고서
다른 쪽에 한 눈 팔지 마시고
정진수행하여 극락왕생하시기 바랍니다.
[19] 부처님 명호를 외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성불의 길입니다.
꼭 부처님 명호를 놓치지 마시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잊지 마시고 외우십시오. (중략)
우주의 생명 대명사, 그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입니다.
염불은 단 며칠만 해도,
그 때는 억지로 하려고 안 해도
절로 염불이 됩니다.
그러면서 익어지면, 저 영원의 에너지,
영원한 생명이 광명 가운데서
환희심 넘치는 공부가 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하셔서 제일 쉽고 확실한 공부를,
그러나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공양을 자실 때도 속으로는 염불하십시오.
소리를 내나 안 내나 다 좋습니다.
그때그때 상황 따라 하셔서,
금생에 꼭 성자도 부처도 되십시오.
그렇게 하셔서 확실하고 쉬운 염불로
우리 생명이 돌아가야 할 본래의 그 자리를
꼭 닦으셔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0] 부처님 법대로 살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렇게 바르게 사시기 바랍니다.
욕심 만큼 우리한테
큰 해독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결단을 하셔서
꼭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시고,
부처님 지혜의 말씀은
우리를 최상의 행복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셔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즉
법을 닦아 나가면 거기에 따르는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면 오랜동안 공부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건강에도
집안에도 좋고 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꼭 금생에 성불하시길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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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無量光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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