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1. 청화 큰스님의 행화

[스크랩] [청화淸華스님 열반涅槃 10주기 추모] [6] 청화淸華스님 어록語錄 80선選 ③



[1] 부처님의 부사의한 힘을 믿으십시오.
부처님의 무한의 힘 말씀입니다.
[2] 참다운 님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을 흠모하고 추구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맑아지고
안온한 충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3] 부처님은 내 몸에도 가득 차 있고
우주 법계에도 충만해 있습니다.
부처님을 인격적 생명체로 생각하지 않고
원리로만 추구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4] 극락極樂, 도道, 보리菩提, 본질本質,
본래면목本來面目, 주인공主人公, 진아眞我,
진여眞如, 부처님 등은 나의 본질과
내 생명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5] 진여불성이 바로 우리 마음이라는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그 공부는 다 옳습니다.
[6] 불자의 목적은 성불에 있지만
전생과 금생의 업장 때문에
성불은 먼 길입니다.
이 때는 깊은 참회와
이행문易行門을 통한 염불이
성불하는 데 가장 쉽습니다.
닦는 길이 어려우면 도중에 포기합니다.
성불의 문, 수행의 문은
쉬운 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7] 인생은 무수만생無數萬生,
오랜 나그네 길입니다.
성불을 못하면
다시 몇 생이고 윤회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향이며 우리의 본성이요
본질인 영원한 불성에 못 가면
몇 생을 헤매야만 합니다.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겪어야 합니다.
[8] "나무아미타불" 한 번 하면
그 만큼 업장이 녹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 바로 우주의 이름이요
우주음宇宙音이기에 업장이 녹습니다.
[9] 어떤 종교나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보려고 애씁니다.
예수님도 유대 사람이 우매하여
방편이나 비유로만 말했습니다.
우주와 자성을 보는 가장 빠른 길이
참선이고 염불입니다.
[10] 성자나 도인의 말 가운데
알맹이만 요약하면 다 같으므로,
종교간에 다툴 것이 없습니다.
성자나 도인의 말은 옳은 말이며,
거짓이 없습니다.
[11] 여러 종교 가운데
인간 본질에 관한 진리를
체계화한 것은 불교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세계 석학들의 말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본질을 부처라 봅니다.
이 본질을 보는 가장 과학적이요
합리적 체계가 염불이요 참선입니다.
[12]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美)은
불교의 정定에 해당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眞)은
불교의 혜慧에 해당하며,
선을 추구하는 마음(善)은
불교의 계戒에 해당합니다.
또한 수행법으로 해서
인간성을 종합적으로 구족시키는 것은
염불, 곧 염불선입니다.
[13] 공부도 우리 마음이 갖추고 있는
본질적 요소와 상응해서 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면
불성과 상응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법이자연法爾自然입니다.
[14] 불교 공부는
쉬운 문(易行門)으로 가심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도 인간성과 인간 본질에
맞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문이 정토문淨土門인데,
이것은 타력문他力門이고,
부처님 명호를 염念하는 염불문입니다.
[15] 이행문易行門은 "내가 부처다",
"내가 본래 성불해 있다" 고
생각하고 닦는 문입니다.
참선은 난행문難行門인데 비해
염불은 이행문易行門이라고 합니다.
[16] 이해가 안 되는 중생을 위해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극락이 십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다" 함은 이행문易行門의 말씀입니다.
난행문難行門에서는 유심정토唯心淨土,
마음이 극락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시 극락이란 부처를 성취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17] 불성, 자성 자리만 믿고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을 인격적으로 흠모하고 추구하여
'믿음' 으로 닦는 것이 염불입니다.
[18] 부처님에 대한 사모와 그리움이 있어야
우리 감성이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한층 성불의 길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내 생명으로
갈앙하고 연모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이 그리움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함과 같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고 비약시킵니다.
친구간에도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미워하면 얼마나 추해집니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한데,
지고至高하신 부처님,
본래면목인 생명의 부처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을 얼마나 정화하고
비약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염불念佛입니다.
[19] 부처님을 그리고 추구하는 방편은
부처님 영상(무량공덕을 갖춘 영상)을 상기하며
부처님 이름(名號)을 부르는 것입니다.
무량광명을 상상하든지
부처님의 원만덕상을 상상하든지
부처님을 상상하는 모든 방편을 동원해
그리워하며 부릅니다.
영상을 못 갖추고 그냥 명호만 불러도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명호(이름)에 공덕이 묻어 있기에
불성이 밝아집니다.
[20] 자선사업 만이
사회를 정화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생각 바로 먹는
정념正念이 우주를 정화시킵니다.
악한 마음은
우주를 오염시키고,
선한 마음은
사회와 우주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21] 우리의 잠재의식은
꿈 속에서도 공부합니다.
그래서 오매일여寤寐一如, 청량삼매淸凉三昧,
동정무간動靜無間이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우리의 나태한 신심을
얼마나 격발시켜 주는 말입니까?
[22] 부처님은 생명의 본질로 계시니
안팎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23]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은
상징적인 부처님이며,
천지우주에 충만한 부처님은
아니 계신 곳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24] 부처님의 지혜을 믿는 한
염불은 평생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법이
자연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행은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수행이라야 합니다.
[25] 부처님 이름은 공덕을 따라 부릅니다.
모두 하나의 부처님인데,
부처님 공덕이 무량하시니
그 공덕에 맞는 부처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중생 구제는 관세음보살,
지혜에는 문수보살 등으로
공덕에 맞춘 이름, 즉 명호를 쓰게 됩니다.
[26] 수식염불은
호흡을 헤아려 가며 하는 염불이고,
참구염불은
소리없이 마음으로 부르는 염불입니다.
간화염불은
부처님 명호를 화두로 해서
부처를 구하는 염불입니다.
관음염불은
천지우주가 부처님의 자비로운 성령이며
관음의 화신이라 믿고 하는 염불입니다.
즉 일체 존재를 관음의 화신으로
알고 하는 염불입니다.
[27] 하심下心하려면 법의 실상,
우주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하심下心이란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경전에 범하심자 만복자귀의
凡下心者 萬福自歸依, 즉
하심下心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는
만가지 복이 스스로 온다고 했습니다.
[28] 참으로 있는 것은
주객을 떠난 오직 부처님 뿐입니다.
실상묘해實相妙解라,
천지우주의 실상은
오직 부처님 뿐임을 얻는 것,
우주에 참으로 계시는 것은
영원한 부처님 뿐임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29] 가장 바른 참회로써
무생참회無生懺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곳에
내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참회입니다.
자기라는 망집을 부정하는 것이 참회입니다.
[30] 비록 관찰도 참구도 않고
이름만 외운다 하더라도 꼭 성불합니다.
원래 부처인지라,
또는 부처님 명호는 사람 이름과 달라
부처님의 공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호 자체가 부사의합니다.
부처님 명호는 부처님께서 친히
무량공덕을 담아 만드신 진리의 이름입니다.
[31] 바른 견해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을
여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법이
나온 바도 멸한 바도 없음을 압니다.
생사에 걸리는 수행은
바른 견해의 수행이 못됩니다.
[32] 스스로 자증自證한
부처님의 지혜(聖智)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간혜乾慧는
비록 지혜는 있다 하더라도
아직 선정의 지혜를 얻은 바 아니므로
생사를 면할 수 없습니다.
생사를 면하는 길은 철저하게
본래 생사가 없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증명의 길이 참선이고 염불입니다.
[33] 옹졸한 마음이 뭉치고 뭉쳐 병소가 됩니다.
병소 속에도 부처님은 들어 있습니다.
마음이 탁 트이면 병이 없어집니다.
정말로 부처님을 믿으면 마음이 확 열리고,
확 열리면 병이 떨어집니다.
[34] 진진찰찰 구청구설
塵塵刹刹 俱聽俱設 이라,
법계의 일체 유정 무정은
모두 법을 설하고 법을 듣습니다.
바로 보면 일체 존재가 부처님 아님이 없습니다.
모든 소리가 염불이고 설법이 아님이 없습니다.
[35] 무아는 불교의 대요체요 대강령입니다.
무상이기에 무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아이기에 아我 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생명이고 하나의 부처입니다.
왜 무아가 불교의 대강령일 것인가,
불교는
아我를 떠나고자 하는 수행이고 염불입니다.
때문에 아我를 떠난 것이 부처입니다.
[36] 문聞 사思 수修로 불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무상이 무상으로 안 보이니 문제입니다.
무상을 자기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것이 문聞 사思 수修입니다.
문門은 많이 듣고 간직함입니다.
사思는 행동으로 참다운 자기화 하는 것이며,
수修는 닦는 행위, 즉 염불과 참선입니다.
가장 하기 쉽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염불입니다.
참염불은 천지우주가 이대로 부처님 뿐이라 보고
아미타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것입니다.
[37] 일체 만유가 부처님과 더불어 하나다, 즉
일체 만유가 부처님이라 보고
불성 뿐이라고 믿고 생각하면서 염불하면, 
참염불이요 곧 염불선이 됩니다.
[38] 자기 견해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마음이 불심佛心에 안주해 있으면,
어느 곳이나 선방禪房이다 해서
무처선無處禪이고,
어느 때고 선을 할 수 있다 하여
무시선無時禪입니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이라 했습니다.
생각마다 부처님과 진리를 생각하면,
모두 극락세계라 했습니다.
실은 티끌 하나도 부처 아님이 없고,
오막살이도 극락 아님이 없습니다.
[39] 염불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소리 뿐의 염불이 아니라
부처님을 생각하고 그리는 마음이
반드시 구족되어야 합니다.
불성을 느끼고 염불하면,
심장이 연꽃처럼 활짝 핍니다.
[40] 실로 우리 능력은 본래 부처님이기에
석벽무애石壁無碍라, 돌벽도 뚫고 나갑니다.
[41] 대승大乘 공부는
이 몸 이대로를 광명으로 바라 봅니다.
광명은 내 몸이나 내 마음의 근본입니다.
동시에 광명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생명이요 공덕장이라,
일체 작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지우주나 내 몸이 광명덩어리입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위대한 광명인
부처님 진리를 증거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광명은 우주법계에 충만한 생명 자체입니다.
[42] 인생 행로의 지표가 인연법입니다.
인연법 따라
인생이 진행, 발전,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43] 부처님 은혜의 알맹이는 인연법입니다.
그것은 인因도 연緣도 과果도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원칙, 화학적 법칙 모두 인연법입니다.
모이고 흩어지고 생성하고 파괴되는
모두가 인연법을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연법은 뛰어난 과학입니다.
[44]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인지라,
사람을 봐도 부처요, 개를 봐도 부처입니다.
부처로 생각해도 손해가 없습니다.
[45] 가장 좋은 생각, 가장 좋은 행동,
가장 좋은 말이 부처입니다.
그 중에 염불은 바로 이런 소중한
부처님 이름을 염念하는 수행이므로
수행 중의 수행이 됩니다.
진리 자체, 생명 자체, 광명 자체,
우주 자체를 사모 찬탄하는 수행입니다.
염불선은 어느 때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하기 쉬우니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부처님 경전 이백부 이상에서
염불을 말씀하셨습니다.
[46] 부처님은 사랑 가운데 사랑이요,
님 가운데 님입니다.
어이하여 사랑 가운데 사랑인가?
가장 사랑하는 내 생명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왜 님 가운데 님인가?
내가 목마르게 그리워하며 찾아가야 할
내 생명의 고행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일체 만유의 님이요,
평생 우리가 닦다가 종국에는
돌아가야 할 필경의 의지처입니다.
부처님을 자기 님으로 사랑하는 선법,
이것은 벌써 자기 감정에 만족한지라
찾으면 찾을수록 더 그립습니다.
[47] 중생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과 더불어
터럭끝 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是心是佛),
이 마음으로 부처를 만든다(是心作佛) 했습니다.
[48] 문득 본성을 깨닫기는 쉬우나,
무수생의 습기習氣는 하루 아침에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깨달음에 의지해 닦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이것이 점수漸修입니다.
우리 생리가 정화되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생리와 심리를 정화시키는 것이 계행입니다.
계율이 앞서야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49] 삼매로 마음이 정화되어 업業이 녹아지면,
자연의 천고天鼓 소리를 듣습니다.
천고天鼓는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우주의 음音입니다.
[50] 불성佛性과 하나 될 때
삼명육통三明六通을 합니다.
꼭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못해도
오래도록 부처님을 안 떠나고 공부하면,
광촉光觸(부처님 광명과 접촉)이 되어
업장이 소멸됩니다.
[51]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야
동체대비同本大悲이며,
상相이 없어야 참 자비慈悲입니다.
[52] 일체 만유를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진여불성으로 보는 견해가 정견正見입니다.
[53] 불안不安을 해소하고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따라서 너와 나를 둘로 보는 이원론으로는
불교도 아니고 안심도 얻지 못합니다.
[54] 현상과 근본이 합해진 것이 불교입니다.
바닷물이 바람에 의해 일어나 파도가 되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파도는 없고 바다만 있습니다.
순수 생명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55] 불교인은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을 믿어야 됩니다.
우리를 성불하게 하는
부처님의 원願을 믿어야 됩니다.
우주법계에는 우리를 불성으로 이끄는
인력이 있음을 믿어야 됩니다.
우리를 부처로 만들려는 원願의 힘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음도 믿어야 됩니다.
[56] 삼계가 부처뿐인데 누구를 나무라겠습니까?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부처님은
' 입일체중생심상중入一切衆生心想中' 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디 계시는가?
모든 중생의 마음 가운데 계십니다.
곧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계십니다.
또 나는 부처님 안에 있습니다.
부처님과 나는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57] 몸은 우리의 업장에 붙어 있는 짐입니다.
각자 자기 업장에 알맞은 몸을 받습니다.
몸은 업장의 소산입니다.
자기 몸을 보며 업장을 짐작하는 것입니다.
[58]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무슨 경經이나 그 경經이
최고의 경經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經이 성불의 법法입니다.
그래서 정통 조사는
"이 한 가지 만이 법法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59] 염불은 부처와 중생을 하나로 인식하고,
이것을 안 떠나려는 것입니다.
염불을 놓치지 마시고,
염불을 통해 부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불성과 접근이 됩니다.
[60]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 덩어리입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라,
부처님 몸이 우주법계에 충만해 있습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라,
티끌 하나도 부처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두두물물화화초초頭頭物物花花草草가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 이라는
《화엄경》말씀도 있듯이
우주 삼라만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61] 원력은 부처님 무량 공덕을 믿는
신앙심에서 생깁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이란
말씀이《법성게法性偈》에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願을 세울 때가
바른 깨달음에 드는 순간" 이라는 뜻입니다.
원願이 세워지지 않는 신앙이나 수행은
무력합니다.
원願은 바로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큰 기반입니다.
신앙은 도의 뿌리요,
공덕(능력,수행력)의 어머니입니다.
[62] 신해信解 공덕인 믿음과
깨달음의 공덕은 오바라밀五波羅蜜
(육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을 뺀 공덕,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의
다섯가지 공덕)을 능가합니다.
믿음의 공덕이 이렇게 큽니다.
믿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믿고
순수한 믿음의 중요성을 아시고
부단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63] 우리의 염력念力은 광선보다 빠릅니다.
염력念力은 곧 우리 마음의 힘입니다.
[64] 자기가 부처임을, 자기 본성이 불성임을
확인하고자 염불을 합니다.
우리 본각의 참 성품을 깨닫는 것이
참다운 염불입니다.
생각생각에 부처를 안 떠나면서,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마음을 가질 때
참염불입니다.
[65] "정직한 분 가운데 가장 정직한 분은 
부처님이다" 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정화 정도에 따라 마음이 깊어집니다.
우리 마음이 머무를 곳은 중도실상, 즉
지혜의 자리입니다.
이것이 염불이고 참선입니다.
[66] 공부하다 보면, 몸이 텅 비어 버립니다.
부처님 말씀이 고마워서 며칠이고 웁니다.
공부해 보면 아십니다.
부처님은 진실만 말씀하십니다.
[67] 두두물물이 부처요,
천지우주와 내가 이대로 부처라는 마음이
보리심菩提心입니다.
이 보리심菩提心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참선이 됩니다. 참염불이 됩니다.
또한 염불선이 됩니다.
[68] 공부가 깊어질수록 신심이 깊어집니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밝은 빛이 비쳐옵니다.
부처님 광명이 처음에는 별빛만 하다가
점점 넓어집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몸도 가볍고 시원해집니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69]《무량수경無量壽經》
'유통분流通分' 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그지없이 기뻐하여 아미타불을
다만 한 번 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분명히 알아 두라.
바로 이것이 위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라."
[70] 염불선은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면서
실상, 즉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진여불성 등)인 것을 觀하는 수행입니다.
한 가지 더 간곡한 부처님 부촉을 전하겠습니다.
"내가 중생들을 위해 무량수경을 설하고
아미타불의 극락에 관한 모든 공덕 장엄을
보고 듣고 알도록 하였으니
마땅히 정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간구할 것이며,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71]《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먼 미래에 이 세상에 불법이 망하고
모든 경전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말세 중생을 가엾이 여겨
특히 이 무량수경 만은 일백년을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이 무량수경을 만나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는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또한 "설만세계화設滿世界火
필과요문법必過要聞法 요당성불도要當成佛道
광제생사류廣濟生死流" 라 하였습니다.
이는 "설사 세계가 불로 가득하더라도
반드시 꼭 들어가야 할 법문이니
마당히 성불하여 생사의 바다에 있는
중생을 널리 구하라" 는 뜻입니다.
[72] 수행은 자기 성향에 따라 해야
진전이 빠릅니다.
맞지 않으면 시간 낭비입니다.
[73] 부처가 되게 하기 위한
우주의 원력과 법칙과 서원이 본원本願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겠다는 뜻이 본원本願입니다.
우주가 본래 갖춘 서원이 본원本願입니다.
[74] 극락세계가 광명 정토이고,
아미타불은 우리의 실상이자 본래면목이고,
극락세계 교주이며 우리 자신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극락세계는
우리와 별개의 세계가 아닙니다.
또한 극락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광명 세계가 천상에 있다 하더라도
이 세계가 광명 세계화 되어 되어갑니다.
극락세계는 바로 보면
천지우주가 다 극락세계입니다.
왜냐하면, 천지우주가 부처님 광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사스님은 이 우주를
'일과명주一顆明株' 라 했습니다.
한 덩이 밝은 구슬이란 말입니다.
불성 광명에서 보면,
모두가 맞닿아 있는 찬란한 구슬입니다.
[75] 부처님 법에 따라, 즉
여법如法하게 따르는 생활은
여법주의如法主義,
불성주의佛性主義,
인도주의人道主義입니다.
부처님과 진리와 윤리에 따르는 생활입니다.
항상 부처님을 앞세우고,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떠나지 않는 생활입니다.
[76] 이승二乘은 인생을 고苦로 봅니다.
보살은 인생을 공空으로 봅니다.
부처님은 인생을 마음(心)으로 봅니다.
일체유심조로 보는 것이지요.
마음이 열린 정도에 따라
각각 보는 세계가 다릅니다.
그러나 오직 천지우주가
부처님 뿐이라는 생각을 안 떠나면,
그 마음을 일념법계一念法界라 합니다.
천상(극락)세계는
항상 일념법계一念法界라,
항상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의
염불의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77] 낙엽을 밟으면서 이 가을에는
인생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무상無常의 계절에도
무상無常을 무상無常으로 안 보고
못느껴서 문제입니다.
무상無常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78] 염불과 참선을 하되,
꼭 계戒를 지니셔야 합니다.
용수보살 법문에 "계戒를 지키는 자는
안 되는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79] 실상에서 보면 모두가 극락입니다.
이제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
첫째 쉽게 닦는 이행문을 택하여 염불하며,
둘째 정견으로써 천지 우주 만유와
내가 한 생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셋째 도덕적인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80] 불자 여러분!
가장 높은 그리움은,
모든 존재의 근원 생명인
부처님을 향한 그리움입니다.
이 마음과 불성과는 거리가 없습니다.
닿아 있습니다.
미운 사람도 예쁜 사람도 없는
그 자리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마음 자리임을 아시고
물러서지 말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南無阿彌陀佛_()_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無量光明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