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1. 청화 큰스님의 행화

[스크랩] [청화淸華스님 열반涅槃 10주기 추모] [2] 청화淸華스님 어록語錄 20선選



[1] 인류의 평화는 진리의 본체를
하나로 보아야만 이루어집니다.
[2]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부처님 아닌 것이 없음이니
천상과 천하 온 누리는
오직 부처님 뿐입니다.
[3] 온 우주 전체가 부처입니다.
이 사람을 보나 저 사람을 보나
이것을 보나 저것을 보나
길 가다 독사를 보나 무엇을 보든
그 모든 것이 본래 부처입니다.
모든 것을 부처로 보는 것이
실상實相으로 보는 것입니다.
[4]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어서
내가 정화되면 우주가 정화되고
우주가 정화되면 나 스스로도
그 만큼 정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우주와 함께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5] 염불은 부처님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하셔야 합니다.
번뇌에 젖어사는 중생들이
하루 빨리 부처가 되려면
갈앙심을 갖고 정화해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듯
부모님 그리워하는 맑은 마음으로
부처님 명호를 불러야 합니다.
떠나온 고향도, 돌아갈 곳도
그 곳임을 알듯이
명호 그대로가 부처님 진신이요,
나의 참 이름임을 아셔야 합니다.
[6]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검소하게 살면
그 만큼 죄와 빚을 덜 집니다.
몸뚱이 하나 잘 먹이고, 잘 입히고자
사치하고 과소비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만큼 죄와 빚을 집니다.
모든 것이 인과이기에 어떤 것도
인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몸뚱이 하나 보존하고자
과다한 물질을 소모한다 생각할 땐
꼭 그에 따르는 보상을 해야 합니다.
한 몸뚱이로 금생에 와서 먹고 입지만
우리가 부처님 길을 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7] 염불을 하건 참선을 하건
본체에 의지하셔서
이 길 저 길 헤매지 말고
한 길로 나아 가십시오.
빨리 못가면 우주의 궤도에서 이탈되니
빨리 가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정토는 끝내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기에
염불은 어려운 길이 아닌
가장 쉬운 길입니다.
본연本然으로 돌아가기에
순풍에 돛 단 배와 같습니다.
[8] 부처님 공부 가운데
제일 좋은 방편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관념가운데
가장 깊은 관념이 바로
부처님 명호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안에 들어있는 공덕은
무량한 공덕이기에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을 하면,
수승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을
부르는 염불수행을 하십시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염불수행을 하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면
반야의 지혜를 증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9] 원수처럼 미운 사람들이
저 숲의 나무처럼 무수하게 많다면,
우리는 결코 그 많은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분노심, 즉 진심嗔心 하나만
다스리고 없앨 수 있다면,
외부의 원수처럼 여기는
그 모든 이들은
한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봄날에 얼음 녹듯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찰나라도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온 몸의 세포가 오염된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0] 마음이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무장무애無障無碍하여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아무런 자취도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다만
허무하게 비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은 무한능력을 원만히 갖춘
생명의 광명으로써,
불성佛性, 곧 부처님(佛)인 것입니다.
경經에 이르신 바,
'마음이 바로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 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일체 만유萬有는 모두 한결같이
불성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화신化身의 부처님이며,
우주 실상은 바로
장엄 찬란한 연화장세계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11] 어느 종교나 안심安心이라,
마음이 편안하고 안온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특히 불교는
오로지 팔만사천 법문 전부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입니다.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말씀입니다.
[12] 나도 부처요 너도 부처요
일체 존재가 부처님 아님이 없기에
마음 안에서
부처가 부처를 찾는 것이
염불선이요 견성성불의 첩경입니다.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이
생명의 고향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지름길 임을 잊지 마십시오.
[13] 불교를 굉장히 많이 공부한
스피노자(Spinoza, 1632∼1677)가
한 말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게 무엇인가 하면
'영원의 차원에서 현실을 관찰하라,
그러면은 현실 하나하나가
영원에 참여한다.' 라고 한 말입니다.
남편을 봐도 아내를 봐도
영원한 진리의 차원에서
잠시 몸을 나툰
남편이요 아내라 여기고
누구를 봐도 진여연기로 인해
진여불성이 잠시 인연 따라
나투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항상 근본에서 비춰본다는 뜻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의 동요도
안 일어나고, 또 그렇게 보는 것이
연기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14]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심信心은
마음을 활짝 열고
천지와 나와 둘이 아니고
너와 나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나도 둘이 아니라는
반야 지혜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15] 내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 만유의 근본 생명인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우리 마음의 본체이기 때문에
바로 불심佛心입니다.
[16] 이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 것 네 것을 갈라 놓고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체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17] 반야를 모르는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한 번 미운 사람은
계속 밉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번뇌가 멸해서
실상을 바로 보게 되면,
모두가 비할 바 없이
청정한 부처님 광명으로 빛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명의 눈으로는
바로 못 보기 때문에
미운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때문에 밉게 보는 내게
죄가 있고 어리석음이 있는 것입니다.
[18] 우리의 본래 성품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염불하시려면
그렇게 바르게 실상염불을 하십시오.
실상염불을 하셔야
비로소 참다운 공덕이 있단 말입니다.
실상염불의 공덕은
어디에다가 비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보든지
좋은 사람을 보나
나쁜 사람을 보나
복 있는 사람을 보나
인상이 나쁜 사람을 보나
어떤 것이나 부처님으로 생각하면
그 때는 서로 상통이 됩니다.
내외가 살 때도
부인이 남편을 부처로 보고
남편이 부인을 부처로 보면,
그보다 좋은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친지나 사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을 보더라도
다 부처로 보는 실상염불을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염불입니다.
[19] 서산대사는
"대승불교의 할아버지라는
마명보살도 염불하고,
대승불교의 아버지라는
용수보살도 염불했거늘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염불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심下心하면서
염불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염불의 방식으로는
심즉연불경계心則緣佛境界라,
즉 부처님 경계에
우리 마음을 머물게 하고
구즉칭명불호口則稱名佛號라,
즉 입은 부처님 명호를
분명히 부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른바
실상염불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경계는
오직 우주 전체가
하나의 부처라는 경계입니다.
마음을 그런 경계에 머무르게 하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단 말입니다.
이것이 실상염불법입니다.
마음으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며
입으로 부처님을 부르는 것이
하나가 되어 염불하면,
팔만사천번뇌를 소멸하고
동시에 팔만사천 공덕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걸음걸음 소리소리 생각생각마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하십시오.
이렇게 해야 염불삼매에 들어갑니다.
염불삼매에 들어가지 못하면,
업장을 온전히 소멸시키기 어렵습니다.
한 번하면 한 만큼 공덕이 있습니다.
[20] 불자 여러분!
공부가 깊어지면
일체 공덕이 모두 드러납니다.
꼭 금생에 자기 생명의
본 고향 자리로 가셔야만 합니다.
다소 제대로 못 간다 하더라도
몸도 마음도 잊을 정도의
아주 쾌적한 경안심輕安心,
또는 광명이 보일 수 있는
정도까지는 공부하셔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하셔서
무량공덕을 이루시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南無阿彌陀佛_()_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無量光明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