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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선원/무주선원 불사

무주선원개원법회 일오큰스님 법문

 

 

 

지상법문 일오一悟스님

* 일오스님은 1965년 고향인 함양 상연대에서 출가해 월인(月印:1999년 입적)스님으로 부터 ‘이뭣고’ 화두를 받고 행자시절부터 줄곧 참선에만 매진해왔다 월명암, 백장암, 화엄사, 탐전, 사천 구룡사, 해인사, 현풍도성암 등에서 공부했다 현재 월명암에 계시다.

 

분별심을 여읜 무주심의 세계가 성인의 세계

번뇌 망상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 이 자리에서 버리면 돼
전체가 다 가짜인 무상 도리를 알고 버려야
진짜 무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

* 지난 21일 열린 본연 스님의 무주선원 개원법회에서 원각선원장 일오(一悟) 스님이 본래 그대로의 무주심(無住心)을 일깨우는 법문을 설하셨다. 스님은 참선이든 염불이든 무주심이 되는 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위해 불자들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공부하기를 당부했다. /편집자 주

무주선원 개원법회에 인연을 같이하게 돼 대단히 반갑습니다. 점안하면 혹 점안이란 과연 무언지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승불교권에선 부처님을 아무리 훌륭한 모습으로 잘 조성해서 모셨다하더라도 점안법회를 거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모습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처님 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부처님 모습을 본떠서 나무, 쇠, 흙 등 물질을 가지고 조성하는 것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점안의식인 것입니다. 오늘 점안의식을 정성들여서 법답게 잘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이 여기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을 진짜 관세음보살님이라 믿고 와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무주선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미타불 염불선입니다. 염불선(念佛禪)을 통해 부처님과 똑같은 하나가 되는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며 부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근본 뜻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부처님을 물론 믿고 생각하고 실천해 들어가는 부처님 제자니까 부처님과 나를 이원화하면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따로 계시는 걸로 알고 그 세계에 들어가야 된다고 믿는다면 벌써 이원화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곧 부처님과 다름없는 내 마음 이대로가 부처라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 차별 없는 마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중국 대주혜해 스님은 돈오입도요문에서 “너희들이 항상 한순간도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도리를 내가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항상 부처님과 같이 있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곧 부처입니다.

그것이 곧 무주심이예요. 그래서 본연 스님이 선원이름을 무주선원이라 한 겁니다. 우리가 각자 수행을 잘해서 무주심이 돼 버리면 항상 부처님과 같이 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무주심인가를 봅시다.
분별의 세계에서는 보면 보는데 끌려가고 냄새가 들어가면 냄새에, 혀에 들어가면 맛있는 거에 집착하게 되는 겁니다. 육근육식을 갖고 살다보니 분별의 세계를 여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게 내가 아니라 했거든요. 왜냐 이것은 무상한 것이니, 조건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져 없어지는 무상 도리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영원불멸의 나라는 존재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무상무아에 먼저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연기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기운에 의해 그것이 실제가 없이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거라, 변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도 그런 것입니다. 육근육경육식, 이것을 나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대상을 상대하고 일어나는 것이니 가짜 다, 진짜 내가 아니다하는 분별의 세계, 망상의 세계를 여읜 무주심의 세계는 성인의 세계입니다.

중생의 세계는 분별의 세계라 허망한 세계인데 그 도리를 모르니 이것 때문에 중생고가 생겨납니다. 분별의 세계, 조건적으로 생겨난 허망한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세계가 정토삼부경에 보면 10만8천리 먼 세계라 그랬습니다. 이 전체가 우리 중생을 이 무주심(無住心)으로 귀착시키도록 하는 방편입니다. 육조 스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십악(十惡)을 제거하면 10만리를 가고, 앉은자리가 그대로 극락세계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육근육경육식 분별심을 여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 망상이 따로 있다고 보면 이것은 부처님의 세계가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분별만 여의면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빠른 시간에 아라한을 증득한 바이야 제자에게 무주심의 소식을 법문하십니다.

“바이아여, 그대가 볼 때는 보기만 해라, 들을 때는 듣기만 해라, 냄새 맡을 땐 맡기만 해라. 거기엔 그대가 같이하지 않는다. 거기엔 그대가 없다.”

이에 바이야 제자는 바로 깨달아 아라한을 증득합니다.

이 말은 육조 스님이 무주심을 설명할 때도 부처님과 똑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찰라생, 찰라멸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꾸준히 머물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마음은 계속 바뀌고 있다며 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 것을 생사라, 우리는 이 순간에도 계속 생사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 광명이 구름 한 점 없는 본래 그것인데, 부처님의 점안 세계란 것은 이 부처님의 세계는 본래 점안이 되어 있는데 생멸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해 현상계에 머물러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방편으로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을 점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절 이름이니 마침 무주선원이니 그 도리를 알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육조 스님이 나무꾼으로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하는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오조 홍인 스님을 찾아가니 남방 오랑캐가 무슨 불법을 배우냐 하니, 당시는 변방엔 모두 남멸 북적 동이 서융이라 해서 전부 오랑캐라 그랬습니다. 그러니 육조 스님이 사람에겐 남북이 있을 수 있지만 불성엔 남북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참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소식를 알아버린 것입니다. 이건 배워가지고 아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깨닫는 법이 이렇게 기가 막힌 것입니다. 육조단경 법문은 기막히게 잘된 경입니다. 무념이종 무상이체 무주이본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해서 법문하신 겁니다. 이 무주심의 근본을 밝힌 것입니다. 다시 간단히 말하면 그냥 무심입니다. 백 가지 천 가지 모두 마음 없애는 공부입니다. 버리는 것이 우리 공부고 수행입니다. 어떻게 버리냐 전체가 다 조건에 의해 생긴 가짜인 것을 알아야 버릴 수 있는 겁니다.

응무조주 이생기심 하나면 됩니다. 그냥 무심이여, 하나도 많은 것입니다. 마음 없애는 방편, 분별심이기에 가짜요, 버리기 위해 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수행도 합니다.

전체가 다 물질 현상계 마음의 세계 모두가 가짜인 줄 알고 버려야 합니다.

생각 생각이 앞생각 지금생각과 뒷생각이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을 다 끊어 없애 버리고 한 생각도 없는 그걸 무주심이라 착각하는데 한 생각도 안 일어난다면 무정물이나 마찬가집니다. 순간순간 생각이 계속 이어져 가지 때문에 그 마음을 이용해 생멸이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육조 스님은 한 생각 깨닫고 그냥 그걸 쓰고 사신겁니다.

들으면 들은 대로 집착하고 보이면 보는 대로 집착하고 전부 집착이 병이라 버릴 수만 있다면, 참 마음을 어디 찾아 얻으라고 한 게 아니라 드러난 이대로 여기서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꼭꼭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겠다는 것은 착각 이라는 것입니다. 듣고 볼 줄 아는 이건 우리 스스로 가져온 것입니다. 본래면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성, 법성, 아미타불이 다르지 않아 하나라는 겁니다. 일불 세계가 바로 무주심의 세계입니다.

아미타부처님 염하는 한 생각 의지해 들어가는 것은 가장 쉬운 수행법입니다. 화두해야 공부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데 의심이 들어가면, 내가 나를 모르니 의심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빛깔도 없고 어떤 놈이 지금 보고 듣고 분별하는지 묘하고 묘한 거라, 이걸 하나 알자는 겁니다. 이걸 모르니 중생이라 그런 겁니다. 의심만 사무치면, 간절하면 온 세계가 나를 알고자 하는 의심으로 뭉쳐버리면 안 깨달을 래야 안 깨달을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선방에서 결재하고 화두를 제대로 못하니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아미타불 염불도 부지런히 생각하다 보면 염념상속하게 되어 있어 아미타불 염하는 그 생각으로 염념상속,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일념만 되어버린다면 한 생각 생생하게 생기고 그게 무주심, 염불삼매에 들어가고 그 생각하되 생각을 여의는 세계다 이 말입니다. 또렷이 챙겨야 되니 염념상속해 무념처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십악팔사가 다 제거돼 앉은 자리가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육조 스님은 앞생각, 지금생각, 뒷생각 생각을 끊어 없애려 하지 말고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 한 생각 놓치면 안 되는 것처럼 이것이 무주심이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방편이라 무주심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하시고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이걸 떠나선 없습니다.

어떤 방편이 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신라 때 보면 도성암이란 절에 도성 선사가 육신등공 했다고 합니다. 월명암에서 부설거사의 딸 월명각시가 육신등공을 했고, 강원도 금봉사에서 염불만일을 해서 마지막 회향 날 30사람이 육신등공했다고 합니다.

무주심의 도리, 청화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한 것도 극락왕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서 염불선을 얘기한 것입니다. 청화 스님의 그러한 뜻을 가지고 무주선원에서도 오늘부터 염불도량의 만일회를 하고 있다니 특별한 법회다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들 하셔서 같이 성불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제주불교신문에서



* 청화(淸華)큰스님과 인연은 처음에는 출가하려 큰스님을 찾아갔으나 청화큰스님께서 나보다 월인(月印) 스님이 더 훌륭하신 분이다(당신께서 말년에도 이런 말씀을 하시였습니다.) 하며 월인 스님을 추천하여 월인 스님 제자가 되었으나 마음은 항상 큰스님을 존경하신다고 말씀하시였고 큰스님 행사에는 꼭 참석하시며 평생을 오로지 참선만 하신 수행자의 귀감이 되시는 큰스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