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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자유게시판

[스크랩] ◈ 無我의 이유 -1 / 청화 큰스님

    
        
     
      
     
     
    
      
      □ 無我의 이유 -1 / 청화스님   
      금강경에 '통달무아법자 진시보살(通達無我法者 眞是菩薩)이라, 
      무아법에 통달한 사람이 진실로 보살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없다 하는 무아법(無我法)에 통달하여야만 
      참다운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저번에도 말씀했습니다마는, 
      우리 범부와 성자와의 차이도 역시 내가 있다는 것을 
      여의는가 미처 못 여의는가에 있습니다. 
      '나' 라는 아상(我相)을 미처 못 여읜다면 범부이고 
      '나' 라는 아(我)가 멸진(滅盡)되어 버려서, 
      그 번뇌(煩惱)가 다 끊어져버려서 그야말로 
      참, 무아(無我)가 되고 대아(大我)가 되어야 
      비로소 성자인 셈이지요. 
      또, 정도(正道)와 외도(外道)의 차이도 역시, 
      정도는 마땅히 그 구경지(究竟地)가 반드시 '내가 없다' 하는 
      무아를 증득(證得)해야만 정도(正道)의 표준이고, 
      그에 반해서 외도(外道)는 어디까지나 나를 못 여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떠한 신통자재(神通自在)로 재주를 많이 부린다 하더라도 
      나를 못 여의는 것은 외도(外道)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부할 때에 "내가 없다 무아다" 
      이런 말은 하기는 쉽습니다마는 
      '분명히 내가 존재하는데 어째서 없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는 참 답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화두(話頭)도 들고 
      염불(念佛)도 해서 공부를 많이 하면은, 
      그때는 '나' 라는 것이 그냥 문득 끊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업장(業障)이 무거우면 좀처럼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 때는 우선 방편적(方便的)으로 '내가 어째서 없는가' 하는 
      원인을 좀 캐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부처님 교리(敎理)의 참뜻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듣고서, 그냥 얼른 느껴가지고서 깨달아 버리면은 
      문제가 안되겠습니다마는, 업장이 가리어버리면 
      통달보리심(通達菩提心)을 못합니다. 보리심(菩提心)자리,
      자성(自性)자리를 미처 못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그런 때에는 우리가 방편으로 그때그때 여러가지 한계(限界)를 
      제시(提示)해 가면서 해설(解說)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진아(眞我)입니다. 
      '참나' 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대아(大我)라, '큰 나' 입니다. 
      그리고 자기라 하는 범부성(凡夫性)이 
      소아(小我) 즉 망아(妄我)입니다. 
      우리 불교에서 나를 말할 때는 보통 3차원으로 말합니다.
      그 한가지가 망아(妄我)입니다. 망아란 우리 중생들이 
      미처 번뇌를 못끊은 즉 말하자면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에 얽매인 '결박된 나' 요 '망령된 나'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망아는 본래 없습니다. 
      저번에도 말씀했듯이, 망아는 
      마치 어두컴컴할 때에 새끼 토막을 뱀으로 보는 그런 견해, 
      사실은 있지 않은데 망상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 또는 그대가 이쁘다 밉다 이런 것은 망아입니다. 
      사실은 이런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두울 때에 잘못 봐서 
      새끼 토막을 뱀으로 보는 그와 같은 견해, 이것이 망아입니다. 
      그러나 또한 전혀 없지가 않습니다. 
      인연 따라서 이렇게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존재를 가리켜서 가아(假我)라고 합니다 
      가아란 잠시간 거짓으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가아(假我)의 참다운 본질이 무엇인가? 
      곧 가아의 본바탕이 이제 무아(無我) 이고, 
      진아(眞我) 또는 대아(大我)입니다. 
      우리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망아(妄我)를, 
      망령된 나, 잘못 본 나를 떠나는 동시에 분명히 지금은 있는 
      가아(假我)의 본질을 찾는 것이요, 
      이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성불(成佛)의 공부입니다. 
      어째서 내가 없다고 하는가?  
      이런 문제는 중요한 문제니까, 
      좀 군더더기 같지마는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공부해보면 아시겠지마는, '나'라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탐심이나 진심이나 치심이나 모두가 '나'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나' 라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런 것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번뇌의 모든 것 즉, 근본번뇌, 수번뇌가 다 나를 기준해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내가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명백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성자(聖者)가 못 되는 한에는 
      제아무리 말로는 다 해도, 역시 나를 잘 못 떠납니다. 
      따라서, 무아(無我)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에 말씀드리는 정도는 척척 외워서, '나' 라는 망상(妄想)이 나올 때는 
      그냥, 이런 법문으로 대치를 해 버려야 합니다.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여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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