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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동선스님의 편지

[스크랩] 청(淸) 속법(續法)이 사십이장경에 소초(疏鈔)하고 붙인 글

() 속법(續法)이 사십이장경에 소초(疏鈔)하고 붙인 글

 

육도(六道)가 범부가 되는 까닭은 탐욕일 따름이고 삼승(三乘)이 성인이 되는 까닭은 바른 도()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를 따르면 위로 오르고 욕망을 탐착하면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와 욕망()이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도를 생각하면 도의 이치가 길어지고 욕망의 뜻은 사라지며, 마음이 욕망을 생각하면 욕망의 뜻이 강해지고 도의 이치는 약해진다.

이렇듯 곧 자기 마음이 생각 움직임을 알면 어찌 알지 못할 것인가!

우리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큰 일의 인연(一大事因緣)’은 자기 마음을 아는데 있다. 깨달음의 이치를 통달하여 애욕을 끊고 도의 행을 닦아, 이로써 바른 깨침을 비로소 이루어 곧 삼승의 가르침을 설하시었다.

계원(鷄園)에서 처음 외치시고 곧 아집 · 법집 두 가지 장애를 공하게 하여 마음 근원을 바로 가리켜(直指心源) 진리의 성품을 널리 밝히시니, 힘쓰심()은 바름()을 얻어 참됨()을 지킴에 있다.

그러므로 삼가 자기 뜻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뒤에 욕망의 애착이 마르게 되면, 그 지극한 도를 알아 마음 바탕이 맑고 깨끗해져 본디 있는 불성을 회복하니, 이것이 곧 이 경의 말씀이다.

그러니 그 공이 또한 크지 않는가!

경이 비록 아름다우나 어찌 할 것인가. 서천에서 흰 말과 낙타가 이르러서 우담발라꽃이 불 가운데 피어난 뒤에야, 축법란과 마등가가 맨 처음 이 경을 옮겨내고, 한 명제가 이를 석실 난대(蘭臺)에 감춰두었다. 진위조(晋魏朝)에 참으로 상교(像敎)가 일어나 종지로 해 우러르는 것이 다른 모든 법문이었으나 이 한 전적만 전하여 유포할 수 없었다.

당송(唐宋)에서 지금에 이르도록 좋은 판본(善本)을 볼 수 없었고 또한 일찍이 이 글 풀이함을 듣지 못한 것은 마치 이를 바다 속에 숨어있는 용궁에 감춘 것과 같았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슬프다. 삼장(三藏) 십이부(十二部)가 다 부처님 말씀이라. 비유하면 마치 꿀을 먹는 것과 같아 가운데와 갓이 다 달다.

그런데 어찌 뒤를 들고 앞을 버릴 것이며, 뿌리를 버리고 끝을 쫓을 것인가.

이 묘한 법을 두어두고 논하지 않는 것은 비록 이를 따르려 하나 말미암을 수가 없음일 따름이다.

내가 도량에 있으면서 우연히 좋은 판본을 얻어 운서선사(雲棲禪師)의 남기신 가르침을 받아 글을 따라 풀이하니, 현수(賢首)법사의 뜻의 문(義門)을 따라 종승(宗承)을 높이 연설한 것이다.

가는 티끌 수 국토가 마흔둘 경의 글 아님이 없게 하고자 하고, 번뇌를 끊지 않고도 스스로 끊어지도록 하게 하여, 강가강 모래수 세계가 모두 이 경 오백 말이 되면, 도를 증득함이란 저절로 증득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경의 글에 곧장 이르지 않아도 말을 들어서 끼치는 곳에서 다 법신을 짓고, 때로 낮은 지혜가 알지 못해 의심해 믿을 때에도 부처님의 지혜를 또한 이루게 된다.

축법란의 가르침의 빛이 지금에야 오히려 빛을 놓고, 마등가의 신통변화가 그 뒤에야 다시 드러나니, 이것이 서술하고 짓는 진실한 마음이다.

근본 뜻을 간략히 펴서 널리 뒤의 읽는 이들에게 고한다.

 

강희(康熙) 경신년(庚申年) 9월 중양일(重陽日)

관정행자 속법(灌頂行者 續法)이 자운장실에서 머리말을 쓴다.

 

                                          *사십이장경강의 /학담역해/ 큰수레

출처 : 청연사
글쓴이 : 文正堂 香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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