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우리 세대는 만화세대입니다. 만화를 보면서 꿈을 키운 세대인데 어릴 적에 수많은 만화를 보고 세월이 가도 한 컷이 기억이 뚜렷한데,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고깔모자 쓴 사람의 등장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나이를 먹어도 기억은 뚜렷한데 이해는 잘 안 되었는데, 세월이 흘러 절집에 들어와서야 눈 덮인 산은 히말라야 산이고 고깔모자는 티베트 스님들이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근래 와서야 티베트에서는 관세음보살님도 고깔모자를 쓰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이런 장면이 기억 속에서 오래 갈까하는 의문에 전생에 그 곳과 인연이 있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 티베트 불교가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정신세계사에서 처음으로 80년대 후반? “아 조국이여” 달라이 라마 자서전이 나오고부터 많은 티베트를 소개하는 책들이 나왔습니다. 달라이라마자서전을 보고 눈물이 왜 그리 나오는지 아무튼 그 후로 티베트관한 책은 거의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내용이 마음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바라 볼 적에 느낌으로 전생의 습관(習慣: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가지고 금생을 산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절 집에 들어와 편하게 정진하며 사는 것도 전생부터 익혀온 습관이며 또 한 생에 온전한 비구(比丘)되기는 힘들다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 말라고(戒) 해서 하지 않고 참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 같으면서 전생의 오랜 습관이 아니면 힘든 것입니다. 이런 안목으로 절집에 들어와 마음과 몸이 널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적에 연민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문은 어릴 적에 고향 인천에서 바닷가에 낚시를 가면 누구나 손쉽게 잡는다는 망둥이도 그리 나에게는 안 걸리는지 망둥이를 잡아서 주렁주렁 풀에 끼워서 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는데, 이제야 돌아보면 업이 가벼운 사람은 업 지을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초록은 동색(풀색과 녹색은 같은 색이라는 뜻으로,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한패가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업(業)끼리 서로 만나는 것이 세상이치입니다.
옛 어른 말씀이 업이 가벼운 사람은 과보가 빨리 돌아오기에 죄를 안 짓는데 업이 두터운 사람은 과보가 늦게 닥치기에 더 많은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또 경전의 글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과보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이런 글, 이런 말을 보고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만 마음으로 사무쳐 느끼어보지 못했기에 이렁저렁 사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 자성원 물양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