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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7. 어록에 있는 염불법문

7. 어록에 있는 염불법문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바로 마음이라.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도다.

 

 

 

 

自性彌陀何處在 時時念念不須忘 一朝忽得情塵落 倒用橫拈常不離

자성미타하처재 시시염염불수망 일조홀득정진낙 도용횡념상불리

                                                             -나옹대사(懶翁大師)

 

나옹스님 어록에 “우리 자성의 미타가 어느 곳에 있는고? 시시때때로 잊지 말고서 간절히 생각할지니 하루아침에 문득 번뇌 망상이 다 떨어지면 거꾸로 쓰나 또는 누워 잡으나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 망상이 미처 안 떨어질 때는 그냥 애쓰고 화두를 들려하고 염불하려 하겠지만 한번 망념만 떨어져버리면 거꾸로 쓰나 옆으로 누우나 언제 어느 경우에나 조금도 자성경계 본래면목자리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옹화상 염불 게송 가운데 끝에 있는 구절입니다.

 

 

  阿彌陀佛淨妙法身 遍在一切衆生心地 故云心佛衆生 是三無差別 亦云心卽佛

 아미타불정묘법신  편재일체중생심지 고운심불중생 시삼무차별 역운심즉불

 

佛卽心 心外無佛 佛外無心 如是眞實念佛 十二時中四威儀內 以阿彌陀佛名字

불즉심 심외무불 불외무심 여시진실염불 십이시중사위의내 이아미타불명자

 

 帖在心頭眼前 心眼佛名 打成一片 心心相續 念念不昧 久久成功則 忽爾之間

 첩재심두안전 심안불명 타성일편 심심상속 념념불매 구구성공칙 홀이지간

 

 心念斷絶 阿彌陀眞體 卓需現前 方信舊來不動名爲佛 - 太古大師 -

심염단절 아미타진체  탁수현전 방신구내불동명위불 - 태고대사 -

 

  그 다음은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 게송입니다. “아미타불의 청정미묘한 법신이 두루 일체중생의 마음자리에 본래 갖추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나 부처나 중생이나 세 가지가 차별이 본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바로 마음이라. 마음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도다. 이와 같이 진실한 염불을 할 때는 밤낮으로 행주좌와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심두(心頭)에나 안전(眼前)에 붙여 두어라.”

 

맨 처음에는 관상적으로나 실상염불(實相念佛)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부르기도 쉽고 또 우리가 가장 공경하고 그리워하는 이름이니까 계속 불러도 별로 싫증이 안 납니다. 아미타불 명호를 우리 마음에나 눈앞에서 여의지 않고 딱 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안불명(心眼佛名)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우리 마음으로 생각하고 눈으로 실지로 광명무량한 세계를 보려고 계속 공부해 나갈 때 마음이나 눈이나 부처의 명호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따로따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공부가 익어지면 이것이고 저것이고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두를 다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을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 합니다. 어떤 공부를 하든지 우리 마음이 타성일편이 되어서 나와 우주가 하나로 되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그 자리를 애써 놓지 않고 상속적으로 생각 생각에 조금도 어두워지지 않게 오래오래 공을 이루면 문득 찰나 동안에 우리 범부심이 끊어진다. 그래서 아미타불 진체(眞體)인 우주에 변만한 진여불성이 활연히 앞에 나투나니 이것이 바로 불생불멸한 생명의 실상인 부처임을 믿을지니라.”이런 뜻입니다.

 

 

眞如念佛 念佛功極 日日時時 於一切處 阿彌陀佛 淨妙眞體 冥現其前

진여염불 염불공극 일일시시 어일절처 아미타불 정묘진체 명현기전

 

臨命終時 迎接九品蓮臺 上品往生 - 普照著 念佛要門 -

림명종시 영접구품연대 상품왕생 - 보조저 염불요문 -

 

 또 보조(普照知納)국사의 염불요문(念佛要門)에는 “진여염불(眞如念佛)”이라, 진여염불은 앞에서도 든 바와 같이 대상적으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성이 바로 미타이고 우주가 바로 부처라는 염불이 진여염불입니다.

 

“진여염불의 공이 사무치면 나날이 때때로 어디에나 아미타불의 청정미묘한 진체(眞體)가 불현듯 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임종할 때는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이나 성중(聖衆)들이 마중하여 구품연대(九品蓮臺)의 상품상생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극락세계는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한 점 티끌도 없고 오염이 없고 만 공덕을 갖춘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 아니겠습니까? 바로 보면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寂光土)라, 이 세계가 이대로 극락세계인데 우리 중생이 번뇌에 가려서 미처 수용을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에 대해 말슴드리겠습니다.

능가사자기는 정각(淨覺)스님이 저술한 책입니다. 5조 스님의 제자 가운데 십대 제자가 있었는데 혜능(慧能) 대사, 신수(神秀) 대사, 현색(玄賾)대사, 지선(智詵)대사 등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인 현색 대사의 제자가 정각스님입니다.

 

정각스님이 저술한 능가사자기가 전에는 미처 발견 안 되다 돈황(敦煌)에서 발굴된 것은 1907년경입니다. 돈황에서 발굴되어 나온 문서 가운데는 과거에 재래적으로 불교에서 모르는 것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육조 혜능스님하고 신수대사가 마치 경쟁하는 것같이 단경(壇經)에도 기록이 되어 있고 그렇게 전수가 되어온 것인데 돈황에서 나온 여러 가지 문서를 본다면 신수 스님도 위대한 도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은 응당 도인이 되겠지요. 5조 홍인(弘忍)대사 칠백(七百) 제자의 상수(上首) 제자인데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이전까지는 신수스님은 점수(漸修)나 하면서 별로존경을 받지 못하고 6조 혜능스님만 돈오돈수니까 위대하다고 칭송해 왔습니다만 돈황문서가 발굴된 다음에는 모두가 공평하게 바로잡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4조 도신(道信)대사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도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런 문헌이 없었는데 돈황에서 발굴한 능가사자기 가운데 이 법문이 들어 있습니다. 그 뒤에서 지극히 귀중하다고 훤전(喧傳)해서 여러 가지로 참고하고 주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念佛卽是念心 求心卽是求佛 所以者何 識無形 佛無相貌 若也知此道理

염불즉시염심 구심즉시구불 소이자하 식무형 불무상모 약야지차도리

 

卽是安心 常憶念佛 攀緣不起則 泯然無相 平等不二 入此位中 憶佛心謝

즉시안심 상억염불 반연불기칙 민연무상 평등불이 입차위중 억불심사

 

갱불수징 즉간차등 즉시여내 진실법성신 역명정법 역명불성

更不須徵 卽看此等 卽是如來 眞實法性身 亦名正法 亦名佛性

 

역명제법실상 실제 역명정토 역명보제 금강삼매 본각등 역명반계 반약등

亦名諸法實相 實際 亦名淨土 亦名菩提 金剛三昧 本覺等 亦名槃界 般若等

 

명수무량 개동일체야 - 능가사자기

名雖無量 皆同一體也 - 楞伽師資記

 

 

“염불이란 바로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은 바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하면 식(識)이란 형체가 없고 부처란 무슨 모양이나 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도리를 안다면 바로 안심이라”

 

부처나 마음이란 것이 모양이 있다고 할 때는 마음이 걸리겠지마는 마음이란 원래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도리를 안다고 할 때는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입니다.

 

자기한테 죄가 많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겠지요. 승찬(僧璨 ?~606)스님이 2조 혜가스님한테 올 때 풍병에 찌들어서 “저한테는 죄가 많아서 이렇습니다.”하고 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니까 혜가 대사가 “죄가 그대 마음의 어디에 있는가?” 하였습니다. 마음이 원래 없거니 무슨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죄를 어디에서 끌어낼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원래 없고 죄상도 본래 없으나 자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단계에서는 죄를 범해 놓으면 인과를 받습니다. 우리가 금생에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남을 죽이기도 하고 또는 다른 동물도 함부로 하면서, 범부분상에서 이치로만 ‘상(相)이란 본래 없지가 않는가?’ 하는 정도로는 과보를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견성(見性)을 해서 자성불(自性佛)을 본 다음에야 죄상의 상을 여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마음도 원래 자취가 없고 마음이나 부처나 원래 형상이 없다는 도리를 알 때는 벌써 이것이 바로 안심이라는 말입니다.

 

달마 때부터 6조까지 주로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 모두가 다 마음을 안심케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도 먼저 안심이 되어야 하고 재가 불자님들한테 법문을 할 때도 안심을 시켜야 합니다. 안심을 시켜놓고서 철저히 도덕적인 계율을 지키라고 해야지, 안심도 없이 억지로 지키라고 하면 재미도 없고 또 구속감을 느낍니다.

 

또 다시 도신대사 말씀에 “항시 부처를 깊이 사무치게 생각하고 반연(攀緣)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상(相)이 소멸되어 상이 없고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이런 자리에 들어간다면 부처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모든 상을 다 버리게 되는데 새삼스럽게 애쓰고 구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본다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실한 법성신(法性身)이요 또한 정법(正法)이고, 불성(佛性), 제법실상(諸法實相), 실제(實際), 보리(菩提), 금강삼매(金剛三昧), 본각(本覺), 열반계(涅槃界), 또는 반야(般若)라고 한다. 이름은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모두가 다 하나의 몸이니라.” 하였습니다.

 

4조 도신 대사 말씀은 권위 있는 말씀인 것이고 귀중한 말씀이기 때문에 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我此法要 依楞伽經 諸佛心 第一 又依 文殊說般若經 一行三昧 卽念佛心是佛

아차법요 의릉가경 제불심 제일 우의 문수설반약경 일행삼매 즉염불심시불

 

妄心是凡夫 若善男子 善女人 欲入一行三昧 當先聞般若液羅蜜 如說修學

망심시범부 약선남자 선여인 욕입일행삼매 당선문반약액나밀 여설수학

 

然後 能入一行三昧 不退不壞 無碍無相 善男子 善女人 欲入一行三昧

연후 능입일행삼매 불퇴불괴 무애무상 선남자 선여인 욕입일행삼매

 

應處空閑 捨諸亂意 不取貌 繫心一佛 專稱名號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

응처공한 사제난의 불취모 계심일불 전칭명호 수불방소 단신정향 능어일불

 

念念相續 卽是念中 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 無量無邊

염염상속 즉시염중 능견과거미내현재제불 하이고 염일불공덕 무양무변

 

亦與無量諸佛功德 無二不思議

역여무량제불공덕 무이불사의

 

- 도신 부법장 사조 입도안심요방편법문(능가사자기) -

- 道信 付法藏 四祖 入道安心要方便法門(楞伽師資記) -

 

 

“나의 이러한 법요(法要)는 능가경(楞伽經)에 제불심(諸佛心) 제일(第一)에 의지하고 또 문수설반야경(文殊說般若經)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지했다.”

 

저는 『육조단경(육조단경)』의 부촉품(咐囑品)에 있는 “그대들이 만약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증할지니라.”는 경구를 보고, 또 4조가 말씀한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을 볼 때에 다 비슷한 법문이라서 ‘역시 위대한 분들은 생각이 비슷한 것이 당연한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습니다.

 

“즉염불심시불(卽念佛心是佛)이요. 망념시범부(妄念是凡夫)라” 원래 부처인지라 부처를 염하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요 반대로 상을 내는 망념일 때는 범부라는 말입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마땅히 먼저 반야바라밀을 들어야 한다.” 누누이 말씀 드렸습니다만 반야가 있으면 불자이고 반야가 없으면 불자가 못됩니다. 반야가 없으면 결국은 속물입니다. 반야가 있어야 참선이 되는 것이고 반야가 없으면 참선이 못됩니다. 반야는 무엇인가? 반야는 바로 제법공(諸法空)의 지혜입니다. 또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지혜입니다.

 

“그 반야바라밀에서 말씀하신 것 같이 배운 연후에야 능히 일행삼매에 들 수가 있다. 그래야 후퇴도 물러남도 없고 또는 파괴함도 없고 거리낌도 없고 또는 상이 없다. 선남자 선여인들이 일행삼매를 정작 공부하려고 할 때는 집요한 시끄러운 인연이 없는 한가한 곳에서 모든 산란한 생각을 다 버리고 상을 취하지 않고 마음을 부처의 경계에 매어 두어야 한다.”

 

부처의 경계는 무슨 경계인가?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 마음이 부처의 경계를 잡기가 좀 곤란스럽습니다. 부처란 것은 ‘본래면목 자리가 아닌가.’ 이렇게는 알지만 우리 마음을 부처의 경계에다 맨다고 할 때에는 어떻게 맬 것인가? 이렇게 의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부처란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일체 존재의 생명인 동시에 상이 아니지만 인연이 닿으면 또 현상계에 상을 나투는 것입니다. 즉, 유(有)도 아니고 가(假)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고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감견(感見)을 했으면 좋은데 미처 감득(感得)을 못한 사람들은 부처에다 마음을 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때라도 “나라는 이 몸뚱이나 너라는 몸뚱이나 천지 우주에 있는 모든 두두물물이 다 비어 있다”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자리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비어 있는 무량무변한 자리에 무량공덕을 갖춘 청정적광(淸淨寂光)이 충만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마음을 매는 것이 실상관(實相觀)입니다.

 

이리하여 ‘전칭명호(專稱名號)라.’ 우리가 초심일 때는 역시 뭐라 해도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이름을 자꾸만 외우고 하나만 생각해야 마음이 모아집니다.

 

공부가 익어져서 한 고비를 넘은 사람들은 외울 것도 없지만 처음에는 하나로만 외워야 마음이 계속되어 통일이 잘 되는 것이지 이렇게 저렇게 잡스럽게 할 때에는 마음이 통일이 안 됩니다. 한 부처한테 마음을 내고 오로지 명호를 외우고 또 기왕이면 부처의 상호를 상상하면 좋겠지요. 상호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무량공덕을 갖춘 상호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러를 때마다 그만치 흐트러진 마음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신 방소(方所)에 따라서 단정히 바로 향해서 앉고 한 부처님에 대해서 생각 생각에 생각이 끊어지지 않을 때에는 즉시 그 생각 가운데 능히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제불을 다 본다. 한 부처의 무량무변한 공덕을 생각하면 바로 무량한 부처님 공덕을 다 감견(感見)하여 제불공덕과 둘이 아닌 부사의한 공덕을 성취한다.”는 것이 도신선사 입도안심요방편법문에 있는 염불찬탄의 법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