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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134

134. 진리라 하는 것은 어느 누구만 진리를 따라서 가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그렁저렁 몰라도 무방하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한 번 외운다 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뜻을 대승적으로 바르게 알고 하는 것과 또는 바르게 모르고서 방편적으로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관세음보살을 외우나 화두를 참구하나 바르게 할 때는 그것이 우리를 해탈의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를 성불로 인도하지만 그냥 맹목적으로 할 때는, 즉 염불하면 나한테 복이 많이 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할 때는 조그만 한 선근(善根)은 되어도 그것이 해탈로 우리 중생의 때 묻은 몸을 성자의 길로 인도하는 그런 것은 못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거니와, 했다고 생각할 때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 것을 사실 그대로 보는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이 제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인연 따라서 과거 전생에 지은 업의 바람 따라서 잠시간 이와 같이 각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서 가상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꾸만 생각을 하면 내 몸에 대한 애착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내 몸은 내 것이고 그것이 '나'라고 한다면 자기 몸에 대한 애착을 못 버립니다. 내내야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몸 때문에 나옵니다. 자기 몸하고 가까운 인연 때문에 나옵니다. 따라서 자기 몸에 대한 애착을 못 뿌리치면 자기 가정도 평화롭지 못하고 사회도 마찬가지고 더구나 대승(大乘) 공부는 어림도 없습니다. 대승 공부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도방하(都放下)라, 자기 몸뚱이가지도 몽땅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몽땅 버려버리면 몽땅 손해가 아닌가? 절대로 몽당 손해가 아니라 그야말로 몽땅 다 얻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생고를 떠나서 추구하는 행복을 틀림없이, 확실히 우리가 받는 공부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무한의 행복을 받는 공부입니다. 참선 공부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지금 자기의 관념 생각으로는 그렇게 못 느낀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절대로 안하신 부처님과 부처님 뒤에도 무수한 성인들이 다 증명한 가르침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다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다 허망하게 다 비어 있고, 그 대신 우주에는 부처님의 그런 광명, 진여불성의 생명이 충만 되어 있다, 화장실 가운데나 냄새가 지독한 가운데나 또 흙 속에나 공기 속에나 어디에나 진여불성으로 충만하여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여야 그래야 대승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꼭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부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은 저만큼 멀리 극락세계에 계신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자리는 물론 언제 어디에나, 어느 순간에나 어느 티끌 속에나 바로 보면 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인 것입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부처님이란 뜻입니다. 염불을 하는 것은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나 모두가 부처 아닌 것이 없음을 우리가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번뇌에 가려서 안 보이므로 그 총명하신, 모든 존재를 바로 보신 부처님의 지혜, 반야지혜(般若智慧)로 우리가 재차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잘 못 보는 것을 제거하고서 참다운 부처님 지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 가운데도 또는 공기 가운데도 부처님의 진여불성,부처님의 생명의 빛은 훤히 밝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부처님 광명을 보는 듯이 부처님 명호를 부르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맑아지면 분명히 부처님의 광명은 눈앞에 정말로 실존하므로 참으로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중생의 흐리멍덩한 업식이 우리 생명을 위해서는 아무 필요도 없는 부질없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런 불성광명을 못 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오랫동안 무명과 무지(無智)에 가렸던가. 성인들이 공부할 때는 자기 마음이 번뇌의 때 묻은 생활을 하였던 것을 통탄하고, 땅을 치고 통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부질없이 망상을 했던가? 그렇게 하다가 공부를 바로 해서 어느 날 자기 번뇌가 녹아서 정말로 부처님 광명이 훤히 나올 때는 제 아무리 점잔하고 근엄한 분도 너울너울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억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행복보다도 제일 큰 행복이 열반제일락(涅槃第一樂)입니다. 우리 번뇌의 마음을 없애고서 참다운 마음을 찾는 행복같이 큰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한테도 나라를 위해서 제일가는 애국자요, 집안 어른으로서도 가장 수승한 길이요, 어머니로 해서도 가장 수승한 길입니다. 세계는 이러한 성자가 한 분이라도 더 나오셔야 합니다. 도 아니고 자기한테 갖추고 있는 진여불성 자리, 우주에 다시없는 그런 보배의 자리를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보고 마니보주(摩尼寶珠)라고 합니다. 일체의 신통(神通), 공덕(功德), 자비(慈悲), 지혜(智慧)가 다 나오는 보배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신통, 지혜, 자비, 행복이 다 들어 있는 보배입니다.


염불하고 참선하고 하는 것이 모두가 다 이러한 보배에 우리가 가까이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우신 대로 관세음보살을 여태까지 하여 왔으면 관세음보살을,밖으로만 구하지 말고, 천지우주가 다 관세음보살 부처님 한 분뿐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속으로 외우시면서 참선을 하시고 또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을 하신 분들은 밖에서 구하지 마시고 천지 우주 모두가 다 아미타 부처님뿐이구나! 어떻게 하시든지 간에 화두를 하시는 분도 마찬가지고 천지 우주가 부처님 아닌 것은 조금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그 자기가 외우고 있는 화두나 또는 염불을 놓치지 말고 생각 생각을 지속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에 번뇌가 싹트지 않고서 우리 마음이 걸음걸음 진여불성 자리, 우리 본래의 마음자리에 가까워집니다. 꼭 지속을 시켜야 됩니다. 부처님만 생각하는 우리 마음의 고향 길, 가장 행복스러운 길, 그 길로 가는 그 자리만 생각하는, 그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