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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123

123. 부처님 오신 날은 삼천대천세계에 가장 축복스러운 봉축일입니다.

부처님께서 탄생 하시자마자 바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또는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이와 같이 갈파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단순히 훌륭한 금언金言이구나, 성인들의 성언聖言이구나, 이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 나라는 생명은 대체로 어떠한 것인가 하는 이른바 참 자기, 참 자기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 인생관문제란 말입니다. 우리가 불행스럽고 또는 행복스러운 것도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자기의 참다운 실상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관을 확립을 해야 비로소 세계관도 거기에 따라서 확립이 되는 것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것은 ‘하늘위에나 하늘아래나 이 천지간에 나 홀로 존엄하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나 홀로 천지간에 존엄스러운 것인가? 나라고 하는 문제 우리 중생들은 나라는 것을, 나라는 본바탕, 나라는 실상, 나라는 실존을 잘 모릅니다.

우리 중생이 나라는 것은 불교적인 의미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존재를 바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는 나라는 것은 사실은 가짜 나입니다 망령될 망妄자 나아我자 이른바 망령된 나입니다.


부처님께서 참자기, 그 우주의 하늘이나 땅이나 우주에 통틀어서 모든 존재 가운데서 나라는 것이 제일 존엄스럽다. 이 말은 무엇인고 하면은 아까도 얼핏 말씀드린바와 같이 참다운 자기, 참다운 자기는 바로 우주의 실존이나 똑 같습니다. 참다운 자기라는 그런 뜻이나 우주의 실상이다. 이런 뜻이나 똑 같습니다. 참다운 자기는 이른바 전문적인 불교말로 하면은 큰 대자 나 아자 대아大我라. 또는 참 진자 나 아자 진아眞我라. 이런 것이 이른바 참다운 자기란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다운 자기를 아는 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참다운 자기를 모른다는 것은 이와 같이 비참하고, 이와 같이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단순히 논리적으로 진리에 이끌어 가는 가르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한테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위대한 그러한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가, 이런 것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한단 말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처음에는 행복같이 보일는지 모르지만은 그것은 순간적인 쾌락에 불과한 것이고 참다운 인생의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지를 못합니다. 우리한테 제일 소중한 것은 부처님께서, 그 부처님오신 날에 맨 처음 선언하신 참 자기,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다시 둘도 없는 참 자기, 우리의 참 본래면목 자리, 이런 자리를 우리가 한시도 놓치지 말고 오늘 관등觀燈을 연등燃燈하실 때도, 그 연등이란 것은 그냥 덮어놓고서 복을 비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끝도 갓도 없는 우주의 광명을 우리가 관상觀想하고 또는 우리 마음이 우리 생명의 본래에 있는 광명자리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리 마음의 어두운 우리 마음을 훤히 부처님의 성품으로 비추고 확장시키고 영원히 해탈을 시키는 그런 연등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한없는 정말로 윤회를 빨리 떠나서, 나쁜 업을 짓고 여러 가지 업 때문에 우리가 이곳으로 저곳으로 윤회하는 뱅뱅 도는 우리 불행을 떠나서 정말로 영생해탈이라, 참다운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빌면서 오늘 봉축의 날, 부처님오신 날 법어로 갈음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