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심(心)은 허공(虛空)과 등(等)할 새"
우리 마음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어느 제한도 없고, 어느 장애도 없듯이 우리 마음은 사실은 장애가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나라는 장애, 너라는 장애 그런 상에 지금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걸려있는 것을 우리가 '마음은 허공과 등할 새"라는 실존 그대로 말하는 법문으로 해서 딱 털어버려야 합니다.
마음은 허공과 등할 새 "편운척영(片雲隻影)이 무(無)한"
조각 구름이라 던가 조그마한 그림자도 없는 편운척영(片雲隻影)이 무(無)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넓고 크고 또는 것이 없는 '허공적심계(虛空的心界)를 관(觀)하면서" 허공 같은 그런 마음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광대무변한 허공 같은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인데 다만 텅 비어 있는 생명도 없는 그런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끝도 갓도 없는 그런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다. 오염도 없고 그야말로 청정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비어있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생명인 것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트여 있는 광대무변한 하나의 생명체 이것이 이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염(念)하고" "차(此) 허공적심계(虛空的心界)에"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마음세계에, 마음의 세계가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일월(超日月)의"
달이나 해보다도 훨씬 더 찬란스런 초월적인 그런 "금색광명(金色光明)을 대(帶)한" 금색광명을 띠고 있단 말입니다. 그냥 우리가 물리적으로 보는 금색광명이 아니라 '초일월의' 그런 물체가 아닌 물질이 아닌 질료가 아닌 순수한 적광(寂光), 정광(淨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광명을 띠고 있는
"무구(無垢)의 정수(淨水)가 충만(充滿)한" 티끌이 없는, 조금도 때 묻지 않은 정수가 청정한 하나의 생명수가 충만한 "해상적성해(海象的性海)를 관(觀)하면서" 마치 바다 같은 그런 성해를 그야말로 끝도 갓도 없는 바다 같은 하나의 광명의 바다를 우리가 관찰 한단 말입니다.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를 관찰하면서, 이것 역시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도 하나의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것도 생명이기 때문에 그때는 부처님 이름을 붙이지요.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그래서 "원만보신(圓滿報身) 인달하여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염(念)하고" 그런 모든 가능성 모든 생명이 생성하고 또는 섭리하는, 모든 가능성의 생명이 거기에 원만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신비부사의하고 전지전능하신 살아계시는 실존(實存)의 초월적 인격체(人格體)입니다. 여기 "인달하여'는 접촉사의 고어(古語)에 불과합니다. '원만보신 인달하여' 이것은 '원만보신인'것과 같습니다. 원만보신인 노사나불을 생각하고, "내(內)로 염기염멸(念起念滅)의" 자기 마음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무색중생(無色衆生)과" 우리 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좋다, 궂다, 밉다. 예쁘다 하는 추상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인 것입니다.
우리 관념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과, "외(外)로 일월성수(日月星宿)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밖으로 보는 해, 달, 별, 산, 내, 등과 대지(大地) 기타 모든 만상의 "무정중생(無情衆生)과" 아직 의식이 발달되지 못한 그런 중생들과 "인축(人畜) 내지(乃至) 준동함령(蠢動含靈)의" 그런 식활동이 있는, 물론 아직은 의식이 완전히 발달은 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오관(五官)은 있습니다.
'인축내지 준동함령의' 사람이나 축생이나 또는 꾸물거리는 식이 있는 "유정중생(有情衆生)과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일체중생 그러면 그때는 앞서 말씀과 같이 우리 관념의 무색중생, 일반 동물이 아닌 무정중생, 동물인 유정중생, 이들을 합해서 일체중생 그럽니다. 일체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일체 중생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중생은 모두가 다 "성해무풍(性海無風) 금파자용(金波自涌)인" 그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는 그야말로 광명의 생명의 그런 바다, 초일월의 금색광명이 충만해 있는 생명의 바다 위에서 바람도 없지만 금파자용이라, 스스로 자(自)자, 뛸 용(涌)자 금색파도가 스스로 뛴단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 사람과 동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무엇인가 하면, 무량무변한 천지우주에 금색광명이 가득한 가운데서 인연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생성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금색바다에서 뛰노는 물거품 같다는 것입니다. 금파자용인 일체존재는 모두가 다 끝도 갓도 없는 금색광명의 바다에서 스스로 뛰는 "해중구(海中漚)로 관(觀)하면서" 거품 구(漚)자, 바다 가운데 있는 거품으로 우리가 관찰한단 말입니다. 사실은 거품인 것입니다.
나는 끝도 갓도 없는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는 바다에 있는 거품이요, 산이요, 내요, 사실은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저 성좌(星座)라든지 은하계(銀河系)라든지 보다 더 큰 성운, 그런 것에 비교하면 하나의 점도 못되는 것입니다. 창해일속이라, 그야말로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좁쌀 한 알만도 못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해서는 파스칼의 말과 같이 천지를 다 감싸있지만 존재적인 의미로는 먼지하나 만큼도 못합니다.
바다 가운데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이것이 숫자가 너무나 많으니까 사람 수, 동물 수, 무생물들의 수, 두두물물 산이요, 내요, 들이요, 별이요, 수없이 많으므로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라. 이런 것이 모두가 원래 부처님한테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모양은 천차만별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전부가 부처한테서 나왔으므로 근본 부처님 성품은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이 잘 못 본단 말입니다.
바로 보면 아무리 산이 되고 사람이 되고 하여도 조금도 변질이 없는 것입니다.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념(念)하고" 석가모니불을 좁게 생각할 때는 저 인도(印度)에서 나오신 역사적인 석존이시고, 광범위하게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의 모든 존재가 다 석가모니불입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다시 "피(彼)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청공삼계(淸空三界)와" 즉 맨 처음의 비로자나불을 말한 청공삼계와 끝도 갓도 없는 텅 빈 마음의 세계와 "정만성해(淨滿性海)와" 천지우주의 그런 모든 역량, 모든 가능을 갖춘 금색의 바다와 "구상중생(漚相衆生)을" 금색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생, 즉 말하자면 거품같이 일어나는 일체중생을, 거품 같은 중생을 "공(空), 성(性), 상(相) 일여(一如)의" 청공삼계의 공, 정만성해의 성, 구상중생의 상, 이것이 결국 셋이 아니란 말입니다.
일여란 결국 하나란 말입니다. "일여(一如)의 일합상(一合相)으로 통관(通觀)하면서" 하나의 일합상으로 통합해서 종합적으로 관찰하면서 "삼신일불(三身一佛)인" 청정(淸淨)법신, 원만보신(圓滿報身),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삼신(三身)이 결국은 하나의 부처님입니다. 하나의 부처인 "아(阿, 化), 미(彌, 報), 타(陀, 法) 불(佛)을 상념(常念)하고" 아는 화신불을 의미하고, 미는 보신을 의미하고, 타는 법신을 의미합니다.
아미타불을 항상 생각하고 내내야 그러니까 아미타불은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고 우주가 우주를 생각하는 셈입니다. "내외(內外) 생멸상(生滅相)인"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기 관념이라든지, 또는 밖에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적인 것이라든지, 이러한 내외의 생하고 멸하는, 자기도 죽고, 자기도 없어지는
또는 일체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다 생하고 멸하고 생사를 거듭합니다. 생하고 멸하는 "무수중생(無數衆生)의" 수 없는 중생들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조금도 고유하게 머물지 않는 행(行)이란 말입니다.
무상(無常)이라. 우리가 무상이라는 말을 굉장히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떤 것이나 고유한 존재가 없단 말입니다. 어떠한 존재나 어느 순간도 머물지가 않습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내 관념이나, 부처님 불성, 이 외는 모두가 움직이고 경망(輕妄)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 같습니다. 무상제행을, 덧이 없는 허망한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하면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인" 마음 심(心)자, 따를 수(隨)자, '마음이 만경에 따라서 궁굴다' 마음이 만 가지 경계로 뒹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요, 별이요, 산이요, 내요 모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마음이라 하는 우리들의 생명체(生命體)가 인과율(因果律) 따라서 만 가지 경계(境界)로 궁굴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시국이 나쁘게 흘러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참 밉살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딱하지만 그러나 모두가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불성기운이 인과법(因果法) 따라서 흘러갑니다. 우리 모두가 혼란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 미타의 미(彌)는 원만보신 노사나불, 타(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미타의 즉, 법신과 보신이지요. 현상적으로 제아무리 잘되고 못되고 천지가 모다 파괴돼서 텅텅 비어 버리고 또 생성되고 하는 모든 것이 미타의 일대행위(一大行爲)입니다. 일대 행상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이 보리방편문은 우주의 모든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 딱 묶은 것입니다. 하기 때문에 읽어보시고 읽어보시면 더욱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하나의 아미타 부처님으로 통일 돼 갑니다.
이 보리방편문을 잘 외우십시오. 한 번 암송하면 한 번 외이신 만큼 이상하게 정말로 내 마음이 부처구나! 내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이 무량수의 공덕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시면 조그마한 자기라는 것에 옹색하고 폐쇄된 마음이 해방됩니다. 결국 불교는 자성 해탈이라. 해탈은 자기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물질에 얽매이고 자기에게 얽매이고 어느 관념에 얽매이고 그러한 것을 우리가 다 파헤치고서 이제 이렇게 풀어버리는 이것이 해탈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진리만이 참다운 해방이 있습니다. 지금 물질의 해방, 그 빵 좀 많이 있으면 좋고, 그러한 해방은 참다운 해방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물질에 얽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결국 물질에 칭칭 얽혀서 그걸 못 풀므로 사람들이 경직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다 털어버리면 물질도 관념도 마음도 결국 다 털어버려야 만이 참다운 행복과 해탈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앞서 말한 타성일편이라, 천지우주는 오직 마음뿐이다. 부처뿐이다. 하나의 진리로 다 되어 있다. 이렇게 관념을 딱 붙여 두셔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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