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도인들이 보면 빈 가운데 다만 비어있지 않고서 불성광명(佛性光明)이 충만한 자리, 모두를 찬란스러운 불성으로 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실상입니다. 그런데 실상이 아니라 텅 비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허무를 느낍니다.
우리 마음은 지금은 별 것이 아니지만 내내야 마음 저변은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같이 그런 고도한 법문이 아니면 우리 마음이 항시 안정을 못 취합니다. 항시 불안스럽습니다. 있다고 해소 불안스럽고 텅 비었다고 해도 불안스럽고 합니다. 전부가 다 부처다 이렇게 되어버려야 본래성품이기 때문에 마음이 활발하니 풍요합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가장 풍요해지는 행법 이와 같이 현상이나 실상이나 모두를 종합적으로 수렴한 법문이 앞서 천태지의 선사의 법문이요, 또 금타대화상(金陀大和尙)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입니다. 따라서 이 법문은 우주만유를 하나의 도리로 딱 통달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체험은 미처 못 한다 하더라도 사실은 우리 마음이 개운한 것입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어디가 아파도 우리 불성은 아프지 않고, 아파도 말뚱말뚱 불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습니다. 이러한데서 우리가 불성 자리에 마음 두고 사는 것이 불교인의 생활이지요.
염불(念佛)도 결국 부처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부처를 안 떠나기 위해서 항시 부처를 염합니다. 본래 부처이니까 말입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결국은 부처뿐인 것이니까 부처를 안 떠나기 위해서 우리가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이니까 말입니다. 옛날의 방편염불은 부처님 그러면 저만큼 밖에서 우리가 부처님을 부르면 우리한테 와서 가피를 준다 이런 식이지만, 사실 원래 염불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이것 보나 저것 보나 모두가 부처다. 이렇게 부처님을 염불하는 것입니다.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
"心은 虛空과 等할세,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한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法身인달하여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此 虛空的 心界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性海를 觀하면서 圓滿報身인달하여 盧舍那佛을 念하고,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衆生과 外로 日月星宿 山河大地 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人畜乃至 蠢動含靈의 有情衆生과의 一切衆生을 性海無風 金波自涌인 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인달하여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다시 彼 無量無邊의 淸空心界와 淨滿性海와 漚相衆生을 空. 性. 相 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여 阿(化), 彌(報), 陀(法)佛을 常念하고, 內外生滅相인 無數衆生의 無常諸行을 心隨萬境轉인달하여
彌陀의 一大行相으로 思惟觀察할 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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