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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95

95. 꼭 지금 현대는 신앙(信仰)도 바른 철학과 더불어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다운 신앙이 못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부처님의 총(總) 대명사(代名詞)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본사(本師) 아미타불이라! 모든 부처님 이름이 많이 있으나 모두가 다 아미타불로 귀일(歸一)이 됩니다.


아미타불은 다시 더 부언(附言)해서 말씀을 드리면 부처님의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다 종합적으로 통합(統合)한 이름입니다. 아미타(阿彌陀)의 아(阿)는 화신을 의미하고, 미(彌)는 보신을 의미하고, 타(陀)는 법신을 의미합니다. 법신, 보신, 화신의 뜻을 잘 모르시는 분은 이 정도는 꼭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독교도 하나님이 있고, 성령(聖靈)이 있고, 또는 하나님 아들인 예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른바 삼위일체(三位一體)라,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나 우리 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이나 거의 비슷비슷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신, 보신, 화신 사상이 보다 더 확실하고 명백한 진리(眞理)입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도 부처님의 법신(法身)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독교 성전(聖典) 가운데서 진리(眞理)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체로 부처님 경전(經典)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진리 가운데 방편(方便)을 떠난 참다운 도리(道理)는 기독교 성경 가운데 다 들어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천지우주와 나는 따로 있다' 우리가 소박하게 생각할 때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연(自然)은 저기가 있고, 나는 여기가 있다. 우리가 자연은 마음대로 이용해도 좋다. 나무도 마음대로 베어서 집을 지으면 될 것 아닌가. 흙도 우리가 마음대로 파헤치고 비료나 농약을 잔뜩 많이 주어서 수확 많이 내면 될 것이 아닌가. 물 저것도 마음대로 써도 무방하지 않은가. '하이타이'고 무엇이고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해서 하천으로 흘러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자연 그것은 죽은 것이므로, 우리 생명(生命)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우리 마음대로 해도 무방하다. 이런 사고방식이 서양(西洋)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둘로 봅니다. 하나님은 저기 높은 곳에 있고, 나는 여기 낮은 곳에 있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봅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똑바로 알아버리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건강하고도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건강이라는 것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보통은 욕심(慾心)을 지나치게 많이 부리고, 또는 필요 없이 성질(嗔心)을 냅니다. 성을 낼만한 이유가 있어가지고 성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면 아무런 까닭 없이 성을 냅니다. 내가 저 사람은 밉다라고 했을 때 그 밉다는 마음의 자취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도 자기 아내와 남편은 좋아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밉다, 곱다 하는 것도 모두가 다 인연(因緣)에 따르는 조건부(條件附)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은 그러한 것들이 허망(虛妄)한 것입니다. 우리 중생(衆生)이나 자연(自然)이나, 나나 너나 이런 것은 모두가 다 하나입니다.


'하나'이므로 일여평등(一如平等)이라. 모두가 다 평등(平等)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소중하게 우리가 사람 몸 받고 태어나서 그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핵심(核心)을 모르고 금생(今生)에 그렁저렁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상(相)에만 걸려서 그렇게 고생(苦生)하다 소중한 인생(人生)을 다 보내버립니다. 정말로 사람 몸 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쩌다가 그래도 과거 전생(前生)에 우리가 무던히 살았기에 사람 몸을 받았습니다. 개나 소는 우리가 잡아먹어도 무방하지 않는가. 개나 소나 그런 것도 겉만 그러한 모양인 것이고, 우리 사람도 역시 겉만 사람 모양을 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잘못 살아서 지금 개나 소나 닭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근본(根本)에서 생각하면 모두가 같습니다. 똑 같은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금생(今生)에 잘못 살면 내생(來生)에 개나 소나 돼지가 분명히 됩니다.


인과필연(因果必然)이라! 그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습니다. 다만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가 다 가릴 것이 없이 본래에는 허망무상(虛妄無常)한 것이다. 본래에는 공(空)이다. 이렇다고 해서 개나 소나 돼지하고 나하고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적인 모든 것이,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모두 나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제법공(諸法空) 도리, 근원적인 도리에서 보면 우리 중생 차원에서 보는 나요, 너요, 어버이요, 누구요, 이런 관계가 다 허망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상적인 차원에서 보면 소중한 부모, 소중한 아내, 소중한 남편, 소중한 친구입니다.


자연(自然)과 나와 둘이 아닌 일여평등(一如平等)이라. 일여평등이라는 말을 잘 외우십시오. 한일(一)자, 같을 여(如)자, 다 하나로 평등(平等)하다는 말입니다. 바다에서 그 바람 따라서 천파만파(千波萬波) 파도(波濤)가 일어나도 다 똑 같은 물입니다. 물이 100도에서 비등(沸騰)이 돼서 수증기(水蒸氣)가 되고, 또는 응고(凝固)가 되어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서 내려오나, 또는 0도 이하에서 얼어서 고체(固體)가 되어도 내내야 수분(水分)은 수분입니다. 그와 똑 같이 부처님이라 하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우주(宇宙)의 정기(精氣), 우주의 순수(純粹) 에너지 불성(佛性)이나 다 같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