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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옛 이야기(3)

사비야의 전생이야기


 숫타니파아타(경집)의 사비야 경에서 우리는 사비야라는 행각(行脚)고행자에 관한 얘기를 접한다. 전생에 사비야의 친척이었던 한 천신이 그에게 나타나서 행각 중에 만나는 고행자나 브라만들에게 이런 이런 질문을 해 보라고 일러준다.

 "이 질문들을 대답해 내는 사람 밑에서 보름지기 범행을 닦아야 한다."고 천신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옛 스승들의 설에 의하면, 그 천신은 전생에 사비야와 꼭 혈연 관계였다는 뜻은 아니고 도반스님이었는데 사비야의 안녕과 향상을 진정으로 걱정해주기를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하듯이 했기 때문에 경에서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전생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섭불(迦葉佛) 주19 은 이미 열반에 드셨지만 그의 가르침이 행해지고 있던 그 시절에 고귀한 세 가문의 아들들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들은 숲속에 살면서 가끔 가까운 도시에 나와서 그곳의 황금탑에 참배하고 법문을 듣곤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잠깐 동안이나마 숲을 비우고 떠나는 것마저도 방해로 여겨져 "숲속의 자신들의 적정한 거처[아란야]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해서 심해탈(心解脫)을 이루고 말자"고 합심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최소한의 성취조차 거둘 수가 없었다. 마침내 서로 상의를 했다.

 "탁발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생에 너무 연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목숨을 보전하는데 그처럼 급급하다면 어떤 성위(聖位)에도 이르지 못하고 말 것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범부로 죽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 사다리를 타고 험준한 바위 위에 올라가서 사다리를 밀쳐내 버리고 몸뚱이와 생명을 돌아봄 없이 사문된 도리를 다하기로 하자!"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셋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심성을 잘 타고났기 때문에 바로 그날로 성위에 도달하고 육신통까지 구족하게 되었다. 신통을 써서 하늘로 솟아올라 히말라야 산으로 갔다. 거기서 얻은 공양을 외로운 바위 위에 있는 도반들에게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들은 말했다.

 "존자시여, 당신의 할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의 공부는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탈을 못한 우리로서는 당신과 얘기하는 것마저도 시간낭비가 될 뿐입니다. 제발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말아 주십시오!"

 아무리 해도 벗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알자 장로는 떠나갔다.


 이삼일이 지나고 나서 둘 중 하나가 불환과 주20 에 이르렀으며 다섯 신통 주21 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장로가 했던대로 했으나 셋째에게 공양을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그 역시 떠나갔다. 그러나 세 번째 스님은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높은 단계에도 이를 수가 없었다. 바위에 오른 지 이레째 되던 날 그는 죽어서 욕계천상(慾界天上) 주22 에 태어났다. 같은 날 다른 두 스님도 세상을 떴다. 번뇌가 다한 성인은 반열반 주23 에 들고, 불환객은 그들의 마지막 존재를 사는 정거천(淨居天) 주24 의 최상천에 화생(化生) 주25 했다.


 세 도반 중 마지막 사람은 천신으로 태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생을 통해 욕계 육천을 두루 편력하면서 거기서 누릴 수 있는 갖가지 복을 마음껏 누렸다. 업이 다하자 그는 그 천상 세계를 떠나서,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절에 한 여성 고행자의 태 중에 들어가 다시 지상에 태어났다.

 그는 사비야라는 이름을 받았고 나이가 되자 집을 나와 떠돌이 고행자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논객(論客)으로 종교적 논쟁에서 일찍이 져 본 일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논쟁하기를 두려워했다.


 때마침 사비야 수행시절 도반이었던 저 정거천의 천신의 마음에 사비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보니 사비야는 이 지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사비야를 부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에 세워주기 위해 그는 경에 나오듯이 몇 가지 질문사항을 가르쳐 주고는

 "이 질문들에 능히 대답해 내는 사람 밑에서 수행생활을 영위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사비야에게 부처님에 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만일 사비야가 진정한 구도자라면 다른 고행자나 사제들의 천박함을 보게 될 것이며, 결코 부처님을 확인하는데 실패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만 어떻게 현명한 질문을 잘 던질 수 있는지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경에 나오듯이 사비야는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고, 묻는 족족 해답을 얻었다. 그는 비구가 되었고 곧 성위에 도달했다.


붉은 연꽃


 한 때 세존께서는 사바티 근처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사리불 존자는 자기에게 계를 받은 한 젊은 비구를 시자로 두었는데, 그는 금세공사(金細工師)의 아들이었다. 사리불 존자는 생각했다.

 `젊은이들의 염처로는 신체의 부정함을 수관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리고는 욕정을 억누르기 위해 부정관을 닦으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 젊은 비구의 마음은 도대체 그 명상 주제에 친숙해 질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에게 그런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것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장로는 생각했다.

 "젊은이들에겐 이것이 틀림없이 맞을 거야."

 그리고는 똑같은 명상주제를 거듭 지시해 주었다. 그러나 넉 달 동안 애를 쓰고도 그 비구는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리불은 그를 세존께 데리고 갔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에게 무엇이 적합한 지 알아내는 것은 그대의 능력 범위 밖이오. 사리불이여, 그는 부처에게 지도를 받아야만 되는 사람이오."


 그리고 세존께서는 신통력을 써서 눈부시게 붉은 연을 만들어 젊은 비구의 두 손에 놓아주면서 말씀하셨다.

 "자, 비구여, 사원의 응달진 모래땅에다 이 연을 심어라. 그리고 가부좌하고 앉아 그것을 바라보며 `붉다 붉다'하고 생각하라."


 그 비구는 무려 오백 생 동안 줄곧 금세공사의 가정에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세존께선

 `붉은 대상이 그에게 맞을 것이다.'하고 아셨던 것이다.

 그 중은 시키는 데로 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저 완전한 명상적 몰입의 최고상태인 네 가지 선[四禪]을 차례로 성취했다. 어떻게나 달통했던지 이 네 가지 선은 차례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면서 자유자재로 선에 들 수 있었다.


 이제 스승께서 마음으로 의지를 가했다.

 `연꽃은 시들어라.!'

 명상을 마치고 나자 비구는 그 붉은 연꽃이 시들어 퇴색해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빛나던 형상이 이젠 쇠퇴하여 구겨져 버렸구나!'

 거기에서 생생한 무상의 인식을 얻게 되자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그리고 이런 무상수관을 계속하여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무상한 것은 고(苦)다. 고(苦)인 것은 자아일 수 없다.'

 그러자 그에게는 세 존재계[三界]가 마치 불꽃 속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었다. 소년들이 그 속에 들어가 연꽃을 따서 연못가에 무더기로 쌓고 있었다.

 그 중에 아직 물 속에 피어 있는 붉은 연꽃들은 마치 불타는 갈대밭의 널름거리는 불꽃같이 보였고, 지는 꽃잎은 지옥 속으로 낙하하는 형상으로 비췄다. 또 땅위에 쌓여 있는 꽃 중에서 위에 얹혀 먼저 시든 것들은 꼭 불길에 타다 남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광경에 충격을 받고 그는 생의 과정에 대해 수관했다. 그러자 더욱더 삼계가 그에게는 불길 속에 쌓인 집과 같아서 피신처나 안전한 곳이라곤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때 세존께서 방에 앉아 몸에서 빛을 발하니 광채가 그 비구의 몸 위에까지 뻗쳐 얼굴을 덮었다. 비구는 쳐다보며 생각했다.

 `저것은 무엇인가?'

 그러자 그것이 마치 세존께서 자기 곁에 와 서서 계신 것처럼 보여졌다.


 이것을 보자 그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 예배했다.

 스승은 그의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일깨워 주는 게송을 읊었다.


 마치 연못에 들어가

 연 줄기를 뽑듯

 온갖 욕망을 끊어 버린

 비구는 `차안'도 `피안'도 버린다.

 뱀이 낡은 껍질을 벗듯이

 (Sn. 게송.2)


볼품없는 나무


 옛날 베나레스에 한 왕이 살았는데 이름은 브라흐마닷타라 했다. 그는 넉 달에 한번씩 꼭 코끼리를 타고 왕실 공원으로 가서 연회도 열면서 떠들썩하게 즐기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그가 공원에 갔을 때 입구에 서 있는 흑단 나무에 꽃이 만발하고 잎이 무성한 것을 보고 무심히 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뒤따라오던 아첨꾼 신하는 `이 꽃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에 왕이 따셨겠지' 하며 생각하고 코끼리 등에 앉은 채로 그도 왕이 했던 것처럼 꽃을 한 송이 땄고, 그것을 보고 그 많은 측근 신하들도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모두 똑같이 흉내를 내었다. 마침내 꽃이 한 송이도 남지 않고 모두 없어지자 사람들은 잎을 땄다. 꽃도 잎도 다 없어진 그 나무는 앙상한 줄기를 드러낸 채 거기에 서 있었다.


 저녁에 공원에서 나오던 왕이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나무가 어떻게 된 일이지?'

 왕은 생각했다.

 `내가 공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산호같은 분홍빛 꽃이 산뜻하게 초록색 잎 사이로 빛나면서 저 나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잎도 꽃도 볼 수가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보니 자신의 바로 옆에는 꽃은 하나도 없지만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었다. 그러자 왕은 다시 생각했다.


 `저 나무는,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무거울 정도로 피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쪽 나무는, 시선을 끌만한 아무런 매력이 없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고 성한 채로 지금껏 남아 있다. 나의 왕위도 저 꽃이 만발한 나무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욕심을 일으키는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출가 수행자의 삶은 이 꽃이 없는 나무처럼 마음을 끌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왕위가 저 꽃이 핀 나무처럼 짓밟히지 전에 일찌감치 출가해서 저 매력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색깔의 수수한 승복으로 바꿔 입고 집 없는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왕은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그는 관법(灌法)을 닦아 연각지(緣覺智) 주26 를 깨달았다. 이런 연유로 다음 게송이 읊어 지게 된 것이다.


 산호색 나무가 무성한 꽃과 잎을 떨구듯

 속인의 옷과 생활을 버리고

 황갈색 법의를 걸치고 출가하라

 그리고 코뿔소처럼 홀로 행각하라.

 (Sn. V.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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